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줬더니, 잠깐 굳었다가 엄청 비웃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내 입장에서는 꽤 기분 나쁜 이야기다.
올해 6월에 3살이 된 딸 이야기다.
아이들한테는 자주 있는 일이겠지?
딸에게는 상상 속의 친구가 있다.
자주 말하는 건 "팬더씨", "너구리씨", "토끼씨" 셋이다.
[팬더씨는 아직 아기야.] 라고 말하기도 하고, [장난감 어지럽힌 건 내가 아니라 너구리씨야!] 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런데 어째서인지 토끼씨만은 뭔가 좀 이상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토끼씨에 관해서는 다른 둘과 달리 꽤 구체적인 표현을 하기 때문이었다.
[토끼씨는 언니니까 젓가락질을 잘해!]
[토끼씨는 지금 베란다에서 꽃을 보고 있어.]
어느날, 딸이 혼자 피아노를 장난감 삼아 놀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문득 들어보니 더듬거리지만 제대로 된 멜로디를 치고 있었다.
도... 레... 미, 도, 레... 미.
튤립이었다.
피아노를 가르쳐 준 적은 없었다.
나도, 아내도.
이상하다 싶어 물어보자, [토끼씨가 알려줬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져, 나는 딸에게 물어봤다.
[토끼씨는 어떤 아이야?]
[음, 그러니까, 귀가 길어!]
[그럼 이런 아이야?]
나는 동화책에 그려진 토끼 캐릭터를 보여줬다.
[아니야.]
[그럼... 이거?]
이번에는 진짜 토끼 사진을 보여줬다.
[아니야.]
그 후에도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아직 딸이 알고 있는 단어도 많지 않아 더 이상의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딸 스스로도 생각하는게 잘 전해지지 않아 답답해하는 모습이었기에, 그날은 그만두기로 했다.
딱 하나 알 수 있었던 건,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 토끼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딸이 흥분해서 내게 달려왔다.
[이거! 이거!]
한권의 잡지를 손에 든채 외치고 있었다.
[왜 그러니?]
딸은 잡지의 사진을 가리켰다.
[이게 토끼씨야!]
[어...? 이게 토끼씨야?]
[응!]
딸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끄덕였다.
그 사진은 방긋 미소짓고 있는 바니걸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