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28 차기 한국경제학회회장에 선출된 이재용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경제가 지난 40년간 비교적 건실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교육열 덕분이기도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했기 때문이라 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한국경제는 좌파적 가치의 도전을 받고 있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쟁이나 능률 같은 시장경제원리보다 복지나 분배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상당수 경제학자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점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이처럼 부족한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학자들의 책임도 크다. 향후 활발한 사회참여를 통해 시장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 기여하겠다. 역시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금융통화위원과 한국금융학회, 한국국제경제학회장을 역임한 부르주아경제학교수다운 생각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에서 한국경제론에 대한 강의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이는 한국경제를 제대로 강의할 수 있는 경제학 교수가 없다는 데 있다. 한국경제의 진단에 대해서는 모두들 한 마디씩 하지만 구체적으로 한국경제를 전공하는 경제학도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고구려사 문제가 나왔을 때 고대사 공부를 하는 역사학도가 거의 없다는 점이 확인된 바와 같다.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이 경제학의 여러 분야 중 자신의 편협한 지식만으로 한국경제를 분석하고 진단해 버리고 만다. 그것도 철저하게 영.미식 부르주아 자본주의경제의 이론 틀로 재단하는 것이다. 고대사는커녕 한국자본주의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나 검토 없이 현실의 당면한 한국경제를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분석하고 마는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조선반도의 식민지 경제, 토지문제의 농민적 해결을 통해 반봉건적 생산관계를 지양하고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국민경제의 공업화를 이룩하겠다고 시작한 미군정에서부터 한국전쟁 전후시기의 농지개혁, 미국의 PL480으로 대표되는 잉여농산물원조 등을 통한 미미한 자본축적에서부터 1960년대 이후의 개발독재에 의한 고도성장이라는 한국경제의 특성이 오늘날 경제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연관성을 얘기해야 한다. 물론 1997년 IMF금융위기 이후의 한국경제는 사실 수혈을 통한 체질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당면한 분석에 있어서도 재벌중심 정경유착의 경제구조인가 아니면 초국적 자본의 3자복합체(미재무부, 아이엠에프, 월가)의 음모인가, 아니면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처방을 향한 대안은 달라진다.
이 교수가 지적한 한국경제가 좌파의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노무현 정부가 분배나 복지를 더 중요시하고 있거나 이를 정책으로 실천하고 있는 양 얘기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보수 세력들이나 외국자본들이 주장하듯이 노무현정부와 그 지지 세력들을 좌파로 분류하는 것은 진정한 좌파세력의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이다. 노무현 정부만큼 신자유주의세계화에 충실한 정부는 없다. 아마 좌파적 가치를 붙인다면 정당은 민주노동당이고 대중적으로는 조직된 노동자와 농민단체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시장경제’라는 말 한마디로 그 외의 모든 가치를 반시장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규정하는 단순함이 드러나고 있다. 자본주의시장경제, 사회민주주의시장경제, 사회주의시장경제 중에서 제일 첫 번째를 의미하는 말이겠지만 그것을 일명사로 뭉뚱그려서 시장경제라 통칭할 수 없다.
특히 지난 40년간의 한국경제를 시장경제라 일반화한다면 그야말로 한국경제를 현재의 상황에서 너무나 단순화시킨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난 시기 한국경제의 성장을 높은 교육열과 시장경제체제에서만 본다면 본질에서 비켜가는 것이다. 근대사회형성의 경제사회적 토대로서의 농지개혁, 저농산물 가격과 이촌향도에서 비롯한 저임금에 의한 원시적 자본축적이 오늘날 한국경제의 물적 토대가 되었고 지속적 성장의 동인이었다. 교수, 판.검사, 의사, 국회의원, 고위관료 등으로 대표되는 교육열이 아니라 공돌이, 공순이로 대표된 한국의 노동계급이 40년간의 한국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경제가 고도의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니라 고강도 장시간 노동의 노동집약적 단순조립 가공 산업에 의해 오늘에 이르렀다면 그들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계속 노동이 가능한 세대는 재교육 또는 재훈련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당연히 사회적 복지체계 내로 편입되어야 한다. 그들이 지금 극도로 유연화된 노동시장에 머물면서 저급한 노동환경을 껴안고 살아가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오늘날 좌파적 요구는 어쩌면 변혁적 혁명론이 아니라 기여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정의적 분배론이기에 부르주아 자본주의를 사수하려는 경제학자들께서는 너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그것조차도 막는다면 노동자들은 오히려 좌파적 혁명을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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