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꿨어. 무서운 꿈은 아닌데 이상했어.
어릴 때 꾸곤 했던 멍청한 꿈 말고 난 사실 다양한 꿈을 꾸지는 않는 편이야. 흐릿하고 생뚱맞게 꾸는 꿈들 빼고 내 꿈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고 (야한 꿈은 제외해야겠지만 그것도 이상하니까 더 언급하진 않을게) 내 꿈은 일반적으로 굉장히 지루해.
이 꿈은 좀 달랐어.
법정에서부터 시작됐는데,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가득한 재판에 참석하고 있었어. 어느 순간 판사가 잠깐 휴식을 취하겠다고 하더라. 방에는 법정이 잘 보이는 테라스로 이어지는 큰 두 개의 유리문이 있었어. 난 담배를 피우러 나갔고 다른 배심원 한 명이 따라왔어.
밖에 나가니까 키가 크고 턱수염이 난, 검은 정장과 타이 차림의 남자가 이미 있었어. 나랑 같이 나온 다른 사람은 나와 그 남자 사이에 서서 잡담을 좀 했어. 턱수염 난 남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곡조의 휘파람을 불고 있었어.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라서 휘파람 같은 사소한 것에서도 곡조나 멜로디를 알아채곤 하는데, 이 곡조는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됐어. 특별한 조성을 따르는 것도 아니고, 불협화음인 데다가 마구잡이였고 듣기 좋지도 않았어. 휘파람 부는 것 자체가 좀 생뚱맞은 일이었는데도 그 남자는 짧은 부분을 계속 완벽하게 반복했어. 의식적으로 그걸 듣고 머릿속에서 다시 그려보려고 했지만, 내가 지금 그걸 바로 옆에서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뇌가 기능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아예 이해를 못 하는 것처럼 말야. 어쨌든 나는 담배를 다 피웠고, 같이 나왔던 사람과 다시 안으로 들어갔어. 재판은 계속 진행됐고.
몇 분 후에 어떤 여자가 시끄럽게 헉하는 소리를 내더니 유리문을 가리켰어. 턱수염 난 남자가 아직 밖에 있었는데, 몸을 굉장히 충격적으로 뒤틀고 비틀고 있었어. 그는 돌아서 법정을 쳐다봤는데, 눈은 완전히 돌아가 있고, 흰자는 실핏줄이 다 터져있었어. 갑자기 입에서 엄청난 양의 피를 뱉어내더니 목이 엄청나게 격렬하게 요동쳤어. 몸도 계속해서 떨리고 있더라. 거대한 벌레 같은 무언가가 그의 목에서 튀어나오더니, 그의 머리를 완전히 잘라냈어. 거의 1미터는 되어 보이는 긴 기생충 같은 게 그의 머리가 있던 곳에서부터 꿈틀거렸어. 아직 몸에 붙어있는 채로 말야. 공포가 법정을 가득 채웠고, 두 명의 경비원이 문을 잠갔어. 안타깝게도 이게 유일한 출구였어.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는 경비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이 일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어. 대다수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통화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중 몇몇은 발작적으로 울부짖기도 했어.
나와 같이 담배 피우러 나갔던 남자는 구석에 아기처럼 웅크리고 있었어. 몸을 얌전하게 흔들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더라고.
방금 뭣같은 기생충으로 변한 남자가 불던 휘파람과 정확히 똑같은 곡조였어.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곡조를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할 수 없었어. 그냥 안 됐어.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한건지, 그는 휘파람을 불고 있었어.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이 가득 차서 곡조를 정확히 기억할 수가 없더라. 대신 경비원들을 도와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당연히 내 꿈속에서 난 항상 영웅이니까) 구석에 있던 남자가 꼿꼿이 서더니 소리를 질렀어. 소리를 지르려고 한 것 같은데 대신에 나온 건 울걱울걱하는 소리뿐이었어. 일어서자마자 그의 머리가 목에서 터지더니 똑같은 기생충 같은 게 나오더라.
경비원 중 한 명이 총을 꺼내서 기생충의 머리를 쐈는데, 상체를 포함한 온몸이 털썩 쓰러지기 전에 터진 머리에선 끔찍한 소음과 역겨운 갈색 액체가 터져 나왔어. 이 시점에서 난 더 많은 사람이 그 곡조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단 걸 깨달았어. 더 많은 사람이 휘파람을 불수록 역병처럼 더 많은 사람에게로 퍼졌어. 거의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똑같은 곡조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는데도 난 아직도 그걸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더라. 너도 이쯤 되면 알았겠지만, 나도 이제 휘파람이 이 기생충이 퍼지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어. 아직도 문밖에 서서 머리에 붙은 기생충만 격렬하게 꿈틀거리는 것 빼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남자를 쳐다봤어. 점차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기생충이 되어가고 있었고, 마지막 남은 몇 명도 그렇게 되기 전에 난 잠에서 깼어.
결말이 찜찜해서 좀 기분이 나빴지만 내 평범한 아침 스케줄로 돌아가기로 했어. 집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컨트리클럽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스파하러 가는 날이었거든. 차에 여친을 태우고 휴일을 즐기러 떠났지. 여자친구에게도 꿈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걔도 결말에 실망하긴 했어. 아무튼, 주차하고 입구 쪽 계단으로 걸어갔어. 꿈에서 봤던 턱수염 난 남자와 소름 끼치게 비슷한 사람을 지나쳤지만 기분 탓이겠거니 했어. 요즘 힙스터들은 다들 저런 길고 무성한 턱수염을 기르기도 하고, 그 남자의 얼굴을 잘 가렸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도 없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그 곡조가 머릿속에 떠올랐어. 아무런 조성이나 형식에도 맞지 않는 불협화음의 곡조가 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반복적으로 재생되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