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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이진명, 여행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첫 여자도 첫 키스도 첫 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얼마나 눈부신가
안 돌아오는 것들
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 번 똑딱한 그날의 부엉이 눈 속의 시계점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그때는 몰랐다
안 돌아오는 첫 밤, 첫서리 뿌린 날의 새벽 새떼
그래서 슬픔과 분노의 흔들림이 뭉친 군단이
유리창을 터뜨리고
벗은 산등성을 휘돌며 눈발을 흩뿌리던 그것이
흔들리는 자의 빛줄기인 줄은
책상도 의자도 걸어 논 외투도
계단도 계단 구석에 세워둔 우산도
저녁 불빛을 단 차창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고
없었다. 없었다. 흔들림이
흔들리지 못하던 많은 날짜들을 스쳐서
그 날짜들의 어두운 경험과
홀로 여닫기던 말의 문마다 못을 치고 이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흔들리지 못하던 나날들의 가슴에 금을 그으면
놀라워라. 그래도 한 곳이 찢어지며
시계점처럼 탱 탱 탱 피가 흐른다
보고 싶은 만큼, 부르고 싶은 만큼
걷고 걷고 또 걷고 싶은 만큼
흔들림의 큰 소리 넓은 땅
그곳으로 여행 가려는 나는 때로 가슴이 모자라 충돌의 어지러움과
대가지 못한 시간에 시달릴지라도
멍텅구리 빈 소리의 시계추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자꾸 틀린 말을 하더라도
안도현, 처음처럼
이사를 가려고 아버지가
벽에 걸린 액자를 떼어냈다
바로 그 자리에
빛이 바래지 않은 벽지가
새것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집에 이사 와서
벽지를 처음 바를 때
그 마음
그 첫 마음
떠나더라도 잊지 말라고
액자 크기만큼 하얗게
남아 있다
최영철, 소주
나는 어느새 이슬처럼 차고 뜨거운 장르에 왔다
소주는 차고 뜨거운 것만 아니라
격정의 시간을 건너온 고요한 이력이 있다
지금 웅덩이 안으로 조금씩 흘러들어가
차고 뜨거운 것을 감싼다
어디 불같은 바람만으로 되는 것이냐고
함부로 내지른 토악질로 여기까지 오려고
차가운 것을 버리고 뜨거운 것을 버렸다
물방울 하나 남아 속살 환히 비친다
소주는 차고 뜨거운 것만 아니라
불순의 시간을 견딘 폐허 같은 주름이 있다
오래 삭아 쉽게 불그레진 청춘이
남은 저를 다 마셔 달라고 기다린다
신달자, 서늘함
주소 하나 다는데 큰 벽이 필요 없다
지팡이 하나 세우는데 큰 뜰이 필요 없다
마음 하나 세우는 데야 큰 방이 왜 필요한가
언 밥 한 그릇 녹이는 사이
쌀 한 톨 만한 하루가 지나간다
황석우, 웃음에 잠긴 우주
어느 여름날의 이른 새벽이다
나는 잠 깨여 눈떴다
나의 머리맡에 와 앉은 꼬마고양이도 눈 떠서 야옹한다
고개 들어 창문을 열고 뜰아래를 보니
담 밑의 채송화들도 눈떠서 귀엽게 웃는다
하늘도 가슴프레 눈떠서 우슴을 흘리고
머-ㄴ 재아래의 아침 해도 눈떠서 빙그레 웃고 떠올라오는 듯
왼 세계가 눈떠서 웃는 순간이다
우슴에 잠긴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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