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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isa_920623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10
    조회수 : 453
    IP : 50.245.***.27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7/05/05 04:43:17
    http://todayhumor.com/?sisa_920623 모바일
    봄, 벌과 나비가 되어, 그리고 농부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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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어린이날이겠지요. 어렸을 적 부모님 손 잡고 어린이대공원이나 동물원들에 가서 하루를 보내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 저는 그때 부모님이 어떤 고생을 하셨는가를 이해하고도 남을 나이가 됐군요. 

    어린이날께는 거의 맑았습니다. 그리고 보면 그때쯤이면 봄의 기운이 한참 올라올 때였습니다. 시애틀은 계속 비가 내리다가, 오늘 드디어 봄날의 정수같은 맑은 날씨를 보여줍니다. 한참 비를 맞았던 벚꽃들은 일찍 졌지만, 다른 꽃들은 갑작스레 따뜻해진 날씨 아래서 온갖 향기를 뿜어댑니다. 

    봄의 꽃그늘, 새롭게 펼쳐진 연록색 나뭇잎이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를 걷는 우체부는 그래서 모처럼 날씨 때문에 행복합니다. 한국에서 오는 소식들도 반갑습니다. 친구들은 사전투표를 마치고 인증샷을 날려 줍니다. 대부분은 엄지를 척 든 사진을, 그리고 간간이 다섯 손가락을 쫙 편 친구들도 있습니다.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들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지금 시애틀의 거리는 화려합니다. 우리집 뒷마당의 포도나무도 이렇게 오월이 와서야 버드브레이크 Bud break 를 시작했습니다. 나이 어린 청소년들의 얼굴에 피어난 여드름꽃 같았던 싹들이 터지며 잎사귀로 변해가는 과정. 그리고 꽃들은 천지에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향기를 풍기는 것이지요. 

    희망은 향기를 풍깁니다. 꽃은 그것이 열매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름이 다가오면 그 꽃들은 떨어지고 열매로 여물게 됩니다. 여름은 바로 이런 꽃들이 '여무는 계절'입니다. 열매가 열음. 그것이 '여름'의 의미라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향기엔 유혹이 들어 있습니다. 벌도, 나비도, 어떤 꽃들은 파리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정을 합니다. 꽃이 유혹인 것은 그것이 새로운 생명을 맺기 위한 생식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열매를 맺고, 땅에 떨어져 열매 안에 담긴 씨앗의 형태로 어떻게든 땅에 묻히고, 거기서 다시 새싹을 틔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운일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사람에게 유용한 열매들일 경우 분명히 사람들의 손을 타서 수확의 기쁨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투표를 합니다. 희망의 향기를 전해주는 그 수많은 공약들에 몰려드는 벌과 나비처럼, 우리는 그 공약들이 수정되어 실현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 향기에 지금은 몰리지만, 우리의 투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벌과 나비인 우리는 투표라는 행위 이후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 겁니다. 농부의 심정으로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 그리고 내가 지지한 후보의 공약이 열매를 이루도록 손길을 내어줘야 합니다. 그냥 그것이 땅에 떨어져 저절로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싹을 틔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는 선거로 사람만 뽑아 놓았지, 그 뒤로 우리가 민주주의와 복지세상, 통일 세상의 열매를 그냥 얻는 줄 알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됐습니까. 마치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정원에 잡초가 무성한 것처럼, 우리가 이뤄냈던 민주주의는 낙과로 떨어져 버리고 그 자리에 유신의 독초가 스멀스멀 자라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촛불은 거대한 낫이 되어 그 독초들을 슴벙슴벙 베어 버렸습니다. 

    이제 그 독초들이 베어내어진 자리에 다시 과일과 곡물을 심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번엔 전에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맙시다. 투표로 수정을 시키고, 지지로 거름을 줘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민주주의의 농부가 되고, 정원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투표를 한 분들도 계십니다. 직접 투표할 수 없는 것이 좀 아쉽긴 합니다. 그러나 저도 그 새로운 대한민국을 가꿔 나가는 것에 손 하나는 보탤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열매를 봐야지요. 그 달콤한 과실들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마 집의 텃밭에서 아주 작은 농사라도 지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하다못해 집안에서 화분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쉬운 건 없습니다. 그냥 자라는 건 없습니다. 여러분은 벌과 나비이며 농부이며 정원사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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