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가입 후 첫 글을 씁니다.
눈팅으로는, 오유를 한지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글로 쓰려니 많이 설레고 떨리네요.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유에 제 심정을 털어놓고, 부끄럽지만 위로받고 의지하고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서,
머릿속으로, 늘 자기전에는 그렇게 정리가 잘 되었던 내용이 막상 글로 옮기려니 이렇게 힘든것인지는 몰랐습니다.
먼저, 전 해외에 서식하는 오징어입니다.
이민온지 십수년이 지났고, 작년에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한국에서는 그렇게 문턱이 높다는
모국 대기업 현지법인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대학 전공과는 상이한 부서였지만, 좋은 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사회 초년생으로써 배움에 뜻을 두고자 일했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일년이 넘어서고, 점점 고문관 티를 벗어날 즈음에 제 담당 대리님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너무나도 어여쁜 공주님이 셋인 대리님은, 평소 쾌활하고 정말 밝으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어두우셨습니다.
겉차례로, 의미없는 대화를 안주삼아, 술이 어느정도 들어가자, 대리님이 말문을 여시더라구요.
"oo아, 너는 앞으로 5년후에 꿈이 뭐냐?"
뜬금없는 대리님 말씀에 저는 그냥 장난으로 받아넘기려고 했습니다. "글쎄요? 대리님처럼 이쁜 딸내미들 아버지요?"
그런데 제가 실수를 했던것 같습니다. 그런 대리님 표정은 처음봤거든요..
"너는 내가 밟아온 전철은 밟지마라. 니가 하고싶은 꿈을 지금 말할 수 없다는건, 너도 벌써 사회에 물들어가는거니"
대리님 말을 듣고서 집에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내가 언제부터 꿈이란걸 꾸어본적이 있는지.
어렸을땐 제 꿈은 엔지니어셨던 아버지처럼 엔지니어가 되는것이 목표였는데, 언젠가부터 현실에 안주하고
전공도 현재 상황에 맞춰, 시대에 맞춰, 심지어 직장마저도 시대상과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며 살아왔던 기억만이 절 부끄럽게 하더군요.
대리님의 경우에는, 십여년간 해외법인에서 일해오시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주재원보다 올라갈 수 없다는 한계에 절 붙잡고 한탄하신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민자의 입장에서, 모국과 새로운 정착지에서의 이도 저도 아닌 소속감의 박탈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온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회의감이 들더군요.
많은 이민 1.5세들이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시간을 보내며 삶을 꾸려나가지만, 그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말 자신의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지.
많은 차별을 딛고 모국의 기업에 헌신하려 하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현지채용 백인과는 또한 어떠한 역차별을 겪는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니 더이상 일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제가 하고싶은, 그리고 꿈을 꾸어보자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객기를 부리고, 대책없고 철없는 어린아이같은 행동이였던것 같아서, 무직이였던 8개월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ㅠㅠ)
막상 그만두고 나오니 현실에 막히더군요.
정말 전 운이 좋아서, 또한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모국기업에 취직이 유리했던것이지, 이곳에서의 모국기업 경력이나 위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버리더라구요.
결국 무직인채로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가고, 세달쯤 되는순간부터는 저도 제 자신이 너무 싫더군요.
술과 담배에 의지해서, 아무도 만나고싶지 않고, 나만 이세상에서 가장 슬픈 놈 코스프레를 하며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너무나도 힘든데, 오히려 고생하시는 부모님이나 가족에게는 제가 힘들다는 내색하기 싫어서, 아닌척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날들에
우연히 오유를 접했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말이죠)
처음에는 너무 우울해서, 재미있는 유머라도 보면서 기분전환을 할 생각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고민게시판에서, 저와 비슷한, 또한 저보다 더욱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보며, 또한 그 분들에게 하나하나 진심이 담긴 목소리를 남겨주시는
오유인들께, 정말 저에게 해주시는 말씀 같아서. 한줄 한줄 읽어나갈때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지위, 빈부, 인종, 성별을 떠나, 정말 진심어린 응원과 보살핌에, 한마디 한마디가 꼭 제게 힘내라고 해주시는것 같아서
제가 좌절의 수렁에 너무 깊이 빠져있지 않게 절 끌어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ㅠㅠ
그 이후로, 800여통의 이력서와 자소서, 그리고 6번의 인터뷰 끝에, 드디어 제 몸과 마음에 맞은 옷을 찾았습니다.
정말 제가 열심히 노력하게끔, 또한 꿈을 쫒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오유... 너무 감사합니다,
당장 오는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하는데 많이 떨립니다.
회사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도, 봉급이 많지도 않지만, 제가 떳떳하게 제 5년 후, 아니 그 이후의 꿈을
어느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한번 저에게 힘을 주신 모든 오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ㅠㅠ
정말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오유. 사랑합니다.
좋은 저녁, 그리고 즐거움이 넘치는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