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녀가 내 얘기라고 생각 안했다"
[오마이뉴스 2005. 04.28 11:58:00]
[이한기 기자]
▲ '떨녀 동영상'에 등장하는 이보람씨의 춤은 밸리댄스의 백미라고 불리워지는 온 몸을 떠는 쉬미(shimmy) 동작이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저는 이보람이지, 떨녀가 아니잖아요. 사람들도 떨녀 동영상을 보고 좋아하는 거지, 이보람을 좋아한 건 아니잖아요. 저는 춤을 잘 추거나 무용에 대해 전문적인 사람도 아니고, 아직 부족한 배우는 학생일 뿐이에요.
무엇보다도 대학로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분들께 죄송해요. (언론의 추측기사와 루머 등) 이런 일이 없었다면, 보잘 것 없는 저로 인해서 대학로 거리 공연이 좀 더 뜰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면 공연하는 사람들과 친해질 수도 있잖아요. 언론에서도 대학로에서 거리 공연하는 분들을 부각시켜주시지, 제가 뭐 대단한 애라고 저를 이렇게…."
지난 4월초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떨녀 동영상'의 주인공은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4월 중순에는 '떨녀'가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 1위로 떠올랐다. 몸을 부르르 떨며 추는 춤 때문에 소위 '떨녀'라는 이름으로 퍼져나간 그녀의 춤 동영상은 4탄까지 소개됐다. 그녀의 춤은 밸리댄스의 백미라고 불리워지는 온 몸을 떠는 쉬미(shimmy) 동작이다.
수많은 '떨녀 기사'에 정작 떨녀 본인의 이야기는 없었다
'떨녀'가 언론에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 15일 <도깨비뉴스>가 처음으로 그녀의 동영상을 소개하면서부터다. 이후 <경향신문> <동아일보> <연합뉴스> <조선닷컴> 등에서도 '떨녀 신드롬'을 다뤘다. 화질 상태가 좋지 않은 동영상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물론 정체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런 호기심 탓에 많은 언론에서 그녀에 대한 기사를 썼지만, 정작 그 기사 안에 본인의 이야기는 없었다. 한편에서는 팬카페가 생겼고, 다른 한편에서는 '연예기획사의 계획된 프로모션'이라거나 '연예인 지망생의 자가발전'이라는 루머가 떠돌았다. 급기야 27일 <조선닷컴>에서는 '떨녀'는 코카콜라의 기획?'이라는 보도를 톱1으로 내보냈지만, 결국 이 기사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오마이뉴스>는 27일 저녁 '떨녀 동영상'의 주인공인 이보람(23)씨를 직접 만나 1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그녀의 동영상을 처음 인터넷에 올렸던 바이러스필름의 방호석(32)씨도 함께 했다.
그들은 더 이상의 추측기사와 오보가 난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보람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나는 이보람, 전문적인 기술도 없고 쇼맨십도 없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 '떨녀'의 정체에 대해 네티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스스로 본인 소개를 해달라.
"이름은 이보람이고 나이는 23살이다. 현재 경희대 무용학과 3학년이다. 법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 대학로에서 춘 춤이 '떨녀 동영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대학로에서 춤을 추게 된 계기는?
"나는 (춤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도 없고 쇼맨십도 없다. 동영상에 나온 건 춤이라기보다는 스포츠댄스, 밸리댄스의 쉬미 동작이다.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안무를 한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대학로 거리 공연에서 게스트 자격으로 섰다. 이후 주말에 몇 차례 더 나갔다. 대학로 말고, 친구들과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종로에선가 춤을 춘 적도 있다."
-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려면 용기와 배포가 필요할텐데.
"(대학로 거리 공연에서 정기적으로 춤을 추는) 그분들과 나는 장르가 다르다. 그분들이 멋있게 춤 추는 모습을 보고 무모한 용기, 쓸데없는 용기를 부린 것이다. 거기에는 화려한 조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테레오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홍대 클럽에 가서 친구들과 춤을 함께 춤을 추는 것과 대학로에서 추는 것은 비슷하다. 대학로에 모인 사람들은 (관객이라기보다는) 같이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 아니냐."
- '떨녀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뜬 건 알고 있었나.
"동영상부터 본 건 아니고 도깨비뉴스 등을 통해 알았다. 그때는 그냥 웃어 넘겼다. (해상도가 낮아) 춤추는 게 마치 괴물 사진처럼 나왔다. '그게 기사거리가 되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이보람이고, 그 사람은 떨녀 아니냐.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내 문제가 되다보니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거나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한 순간의 흥미거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꿈은 연예인도 아니고 모델도 아니다"
- 광고기획사의 인위적인 프로모션이라거나, 떨녀 본인이 연예인 지망생이라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떨녀 동영상을 찍은) 방호석씨하고는 3월 중순께 처음 인사를 나눴다. 두세번 만났을 때 방호석씨가 본인의 직업을 밝혔고, 나도 내 신분을 이야기했다. 방씨가 스쳐가는 이야기로 이것도 광고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나의 꿈은 연예인도 아니고 모델도 아니다.
경희대에 입학하기 전에 서울예전에 한 학기를 다닌 적이 있다. 그 때 방학동안 안보이던 선배들 가운데 나중에 광고에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학과 아이들이 과제로 포스터 사진을 찍으러 오면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그럴 때도 나는 연예인이 될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굴이 특별히 예뻐서 어디 내놓을 정도가 됐다면 어디 오디션이라도 봤겠지만… 이런 식으로 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광고 모델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웃어 넘겼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 오늘(27일) <조선닷컴>에는 '떨녀 동영상은 코카콜라의 기획'이라는 기사가 톱1으로 떴는데. (이후 <조선닷컴>은 여러 차례 수정기사를 내보냈다.)
"솔직히 많이 지쳤다. 내 친구들 가운데 이런 일을 모르는 애들도 있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묻지 않았는데도 '내가 떨녀야' 이렇게 말할 수도 없지 않느냐. 부모님도 기사를 봐서 알고 있다. (부모님 심정이) 좋을 리가 없다. 부모님께 죄송했다. 마치 내가 잘못한 것 같아서. 팬 카페도 처음에는 좋았지만….
그런데 나는 이보람이지 떨녀가 아니지 않느냐. 사람들이 떨녀 동영상을 보고 좋아하는 거지, 이보람을 좋아한 건 아니다. 쉬미댄스를 춘 것도 내 일부분이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나는 (전문적으로) 춤을 춰왔던 사람도 아니고, 무용에 대해서 전문적인 사람도 아니다. 아직 부족한 배우는 학생일뿐이다."
- <조선닷컴>에서는 '떨녀'가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내가 피해자라면, 기획사가 없으니 가해자라면 방호석씨일텐데. 만약 내가 피해자라면 남에게서 불편을 받았거나 협박을 받아 춤을 춘 꼴이 되는데. (<조선닷컴>에서) 나를 피해자라고 추측한 게 나를 위해주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사를 추측으로 쓰면 신문이 아니지 않느냐."
- 어쨌든 이보람씨가 대학로 거리 공연에 게스트로 나오면서 대학로 거리 공연단도 언론에 적잖게 시달렸다.
"대학로 길거리 공연하는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나로 인해서 대학로 거리 공연이 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그 분들과 같이 밥도 먹고 친해질 수도 있을 것이고, 하나의 동아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언론에서도 대학로에서 거리 공연하는 분들을 부각시켜주시지, 내가 뭐 대단한 애라고 나를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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