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뒤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그 아이를 차지한 그의 뒷 모습을.
내가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반 쯤 변할 때까지도 가지지 못했던 그녀의 사랑을 가진
그 녀석이 정말 부러웠다.
XX중학교.
"야, 일어나 임마."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던 A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부스스 일어났다.
고개를 들고 눈을 뜨기가 무섭게 매캐한 먼지가 그의 얼굴에 뿌려졌다.
펑
"캬하하! 야 이 새끼 봐! 존나 병신 아니냐?"
"그러게, 낄낄. 좆밥아, 졸리냐?"
그들은 A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양동이에 한가득 퍼 온 물을 끼얹었다.
A의 입에선 뒤늦게 '아니'라는 소리가 나오려고 했지만 대신 눈물만 나올 뿐이었다.
그나마도 뒤집어 쓴 물 덕분에 티도 나지 않았지만.
"그 쯤 해."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아이는 짧게 줄인 치마와 타이트한 교복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A와 친구사이였던 P였다.
"아 저 년 또 재미없게 만드네."
"됐다. 가자."
일진의 무리는 대놓고 P를 째려보고는 발을 쾅쾅 구르며 교실을 나갔다.
넋이 나간 채 앉아있는 A를 향해 P는 슬금슬금 걸어갔다.
"너 왜 자꾸 당하기만 해?"
"......"
P는 A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A는 그 눈빛을 애써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P는 손에 들고 있던 빵을 그에게 내밀었다.
"먹어. 또 점심 굶었지?"
"......"
P는 A의 입에 빵을 억지로 집어 넣고는 등짝을 팡팡 쳤다.
"새꺄. 난 내 친구라는 사람이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거 싫어요. 알겠니?"
P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A의 귀에 꽂았다.
가사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그녀가 좋아하는 '정글 북'의 OST라면서 받아놓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신나는 리듬을 듣다 보니 A의 마음은 진정되었다.
'친구.'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친구라는 말은 어쩌면 A에게는 더욱 더 가슴 아픈 말일지도 몰랐다.
글쎄, 기억을 되짚어 보면 이 아이는 처음부터 기가 좀 셌다.
나이와 덩치에 맞지 않는 당찬 성격과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넉살을 가졌고
A보다 공부는...... 좀 많이 못했을 지라도 외모도 출중하고 그 단점을 커버할 만한 장점이 많았었다.
덕분에 일진 행세를 하고 다니는 아이들의 눈 밖에 나기도 했지만
그녀를 건드려봐야 일이 많이 귀찮아지리란 것을 알았기에 그냥 회피하는 모양새였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A는 그녀와 정 반대였다.
소심하고 자기관리는 뒷전인데다 낯가림까지 심했으며
공부만 잘 했지 다른 단점들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나마 P가 그에게 먼저 다가가 주었으므로 이 정도까지나 발전했다는 것도 맞는 말이었다.
덕분에 성장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P는 학급에 있는 모두와 친해졌다.
A는 친구라고 말할 사람은 P밖에 없었다.
P는 XX중학교에 갈 성적을 간신히 맞추었다.
A는 P와 떨어지기 싫어서 XX중학교에 일부러 성적을 맞추었다.
P는 중학교에 들어가 일진 무리와 친해졌다.
A는 그 일진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P의 성적은 점점 더 떨어졌다.
A는 그런 P의 성적을 올려주기 위해 매일매일 그녀를 찾아갔다.
P의 외모는 날이 갈 수록 점점 더 빛이 났다.
빛이 강해질 수록 A의 그림자는 더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P는 고등학교의 진학을 포기했다.
A는 그럴 수 없었다.
P는 A와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지만
A는 P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썼다.
P는 여전히 놀러만 다녔다.
A는 대학교에 진학하였다.
A의 P를 향한 감정은 어찌 보면 정말 순수했던 감정이었지만
그의 마음 속에 있던 심연이 너무나도 깊은 탓에
그 감정은 뒤틀리고 어두워지며 점점 이상하게 변해갔다.
P에게 쓸데 없는 일로 카톡을 하는 일이 잦아졌고 아무 시간에나 전화를 해대기 시작했으며
트위스북에 P가 늦게까지 노는 사진이 업로드되기라도 하면 그 날로 A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몇 시까지 놀 것이냐', '세상이 험하니 일찍 들어가라'는 등의 잔소리조차 서슴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장장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미 그의 마음 속에서 P는 자신의 연인이었다.
그러면 그럴 수록 P의 마음은 점점 더 멀어졌다.
그녀는 단지 A가 불쌍해서 놀아주려고 한 것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까지 질질 끌어오다 보니 이 녀석이 착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단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후 일어났다.
오늘도 그녀가 늦게 집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날씨도 춥고 많이 걱정이 된다. 혹시나 누가 납치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우리 이쁜 P가 걱정이 된다.
나는 그녀를 지켜 줄 야구 배트를 들고 집을 나섰다.
세상이 참 좋다.
SNS만 있으면 좋아하는 사람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으니.
트위스북의 위치 정보 시스템을 켜서 그녀의 위치를 검색해보았다.
▼[♣♣히오스 모텔♣♣]
이성의 줄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히오스 모텔은 근처였다.
맑은 푸른 빛의 육각형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차마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무슨 짓을 당하고 있다면 내가 구하면 될 일이지만
트위스북에 따르면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이 있는 모양이었다.
난 조용히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처음 보는 남자의 품에 안겨서 나왔다.
술에 취해 홍조를 띈 그녀는 남자를 향해 황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남자놈의 얼굴도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었다. 안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일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은 짧다.'
나는 배트를 들고 뛰어나갔다.
어딘가의 지하실.
"일어나."
죽도록 얻어터져서 만신창이가 된 남자는 눈을 서서히 뜨고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기 무섭게 매캐하고 반짝이는 가루가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것은 나무가 탄 재였다.
"끄으아악!"
"이 새끼, 존나 병신이네."
눈에 재가 들어갔는지, 그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저 반 억지로 짜내는 소리가 흘러나올 뿐이었다.
"뭐야 이 새끼. 졸리냐?"
A는 양동이에 든 펄펄 끓는 물을 들이부었다.
"으...으이이...으아...."
살점이 부풀어오르고 물집이 잡히는 것이 A의 눈에 들어왔다. A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마 이 놈도 지금 울고 있을 것이었다. 단지 그 물땜에 티가 안 날 뿐이겠지.
그 때 바닥에 피를 흘리며 엎드려 있던 여자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그만해..A야..."
그녀는 짧은 핫 팬츠와 망측스럽게 맨 살을 드러낸 옷을 입고 있었다.
A는 아무 감정 없는 기계처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얘는 또 일을 재미없게 만드네."
A는 P를 째려보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얼굴을 바짝 붙이고 그의 면상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남자인 A가 보아도 잘 생긴 얼굴이었었지만, 지금은 물집과 피멍으로 뒤덮여 있을 뿐이었다.
"너 왜 자꾸 나를 배신해?"
"......"
A가 남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비록 몸은 남자를 향해 있었지만
A는 P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P는 그 눈빛을 애써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A는 손에 들고 있던 유리조각을 그에게 내밀었다.
"먹어. 또 굶고 술이나 처먹었지?"
".끄르르륵......"
A는 남자의 입에 유리조각을 억지로 밀어넣으며
그의 아구창을 펑펑 찼다.
남자의 입에서 피 묻은 살점이 떨어졌다.
"새꺄. 난 내 걸 빼앗아 가는 게 제일 싫어요. 알겠니?"
A는 의자에 걸터앉아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A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다운 받았던 '정글 북'의 그 음악이 흘러나왔다.
신나는 리듬은 지금 상황과 너무 대비되었다.
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A는 음악에 맞춰 자신이 개사한 곡조를 흥얼거렸다.
이 몸은 찌질이들의 왕, 정글의 V.I.P.
더 아래로 갈 곳 없어, 심통이 나버렸네.
난 평범히 살고 싶어, 저 인간들처럼.
병신처럼 사는 건, 이젠 싫어졌다네.
오, 우비 두
그러면 이 몸도
너처럼 걸으며, 말도 하고.
날 보라고, 이 정도면.
이 놈보다 훨씬 낫다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