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Cyker님이 투고해주신 이야기를 각색 / 정리한 것입니다.
대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1학년 때 저는 같은 방향에 사는 친구와 모든 수업을 같이 들었습니다.
같은 과였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피곤해서 수업 시작 전에 잠시 엎드려 자다가 일어났는데, 제 모습을 보더니 친구가 기겁하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니 얼굴을 좀 봐라, 임마. 곧 죽을 사람 같아.] 라고 말하더군요.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그러자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한두 명씩 모이더니, 제 얼굴을 보고 진짜 아픈 사람 같다고,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다고 말하며 걱정했습니다.
저는 딱히 아픈 곳도 없고 몸 상태도 괜찮았기에, 친구들이 왜 저리 호들갑인가 싶어 강의실 뒤에 있는 거울을 봤습니다.
지금도 그때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온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더군요.
입술도 파랗고 얼굴 전 부위에 피가 싹 빠져나간 것처럼...
딱 전설의 고향 같은 데서 보던 귀신 얼굴 마냥요.
아픈 데도 없고 몸에 이상도 없었지만, 얼굴을 보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작 10분 전, 그것도 전공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복잡한 심정을 느끼다 집에 도착했습니다.
놀까 싶기도 했지만, 이내 거울에서 봤던 제 얼굴이 잊히지 않아 쉬어야겠다고 결정했죠.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잘 준비를 했습니다.
집에 와서 씻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더군요.
힘들거나 피곤해서 힘이 쭉 빠지는 게 아니라, 제 몸에서 뭔가 휑하니 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방 침대에 누우려고 했는데, 온몸의 감각과 본능이 거부하더군요.
저는 제 본능과 육감을 믿는 편입니다.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건진 적도 많고, 무시하고 하다가 다치거나 손해 본 적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동생 방 침대에서 누워서 잤습니다.
그렇게 저녁도 되기 전부터 자면서 계속 뒤척였는데, 잠깐잠깐 깰 때마다 몸에 아직도 힘이 하나도 없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 와중에 동생이랑 부모님들이 집에 오는 소리, 쟤 왜 저리 빨리 왔냐고 얘기하는 소리 등이 들리더군요.
그리고 다시 잠들었는데, 누군가 우리 집 도어락을 누르고 집에 들어오는 구둣발 소리에 잠이 확 깼습니다.
우리 집 도어락은 비밀번호가 4자리이고, 이웃집, 윗집, 아랫집 등은 전부 비밀번호 자릿수가 6~8자리라 도어록 누를 때 번호 누르는 소리가 몇 번 들리는지 만으로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아닌지는 판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리가 매우 뚜렷하고 가까이에서 들렸거든요.
새벽 4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었고, 아까 분명히 가족들이 다 집에 들어왔으니 저는 도둑이나 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침대 옆에 있는 목검을 조심스럽게 빼 들어 제 품에 안고, 이불 속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 도둑이 제 동생 방이나 안방으로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잠귀가 밝으신 어머니께서 밤에 현관 소리가 나면 깨서 나오시거나, 도둑이 안방으로 제일 먼저 갈 거라 판단했거든요.
겉으론 누워서 자는 척하며, 이불 속에서는 목검을 꽉 그러쥐고 안방 쪽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했죠.
그런데 큰 도어락 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중 아무도 깨질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떤 소리도 나지 않고 사방에 조용한 적막만이 흘렀죠.
현관 바로 정면이 제 방이고, 거기엔 저에게 자리를 빼앗긴 동생이 자고 있었습니다.
수천 번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 뛰쳐나가서 도둑과 맞서야 하나?
동생을 지키러 지금 나갈까?
아니면 상황을 보며 더 기다려야 하나?
난 지금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데, 나가봤자 나는 물론 가족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건 아닐까?
수만 가지 생각을 하다, 결국 나가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런데 몸은 낮에 제 방에서 잘려고 했을 때 났던 그 본능적 거부 반응을 다시 일으키더라고요.
그래서 조금만 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딱 거기까지 생각을 했는데, 혼잣말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며 영상이 보이더군요.
동생 방과 현관의 위치는 구조상 ㄷ자라서 동생 방안에서는 현관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동생 방 문은 꽉 닫혀 있는 상태라 밖이 보일 리 없었죠.
근데 저에겐 현관문을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모든 상황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검은 양복에 검은 중절모, 검은 구두를 신은 남자가 구둣발 소리를 내며 제 방문 앞에 서더군요.
[원래 네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네가 대신 가야겠다. 미안하구나...]
그러더니 제 방문을 슬쩍 열었습니다.
[아니, 왜 얘가 여기서 자고 있는 거지?]
그러더니 다시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제가 자는 동생 방 쪽으로 오더군요.
순간 우리 집 강아지가 맹렬히 짖기 시작했습니다.
치와와랑 크기가 비슷한 작은 요크셔테리어입니다.
겁이 엄청 많은 편이라 자기보다 작은 고양이만 봐도 도망가는 놈인데, 진짜 물어 죽일 기세로 쉬지도 않고 맹렬히 짖더군요.
그 사람은 우리 집 강아지 때문인지 더는 앞으로 오지를 못하더군요.
[허, 이것 참... 원래 네 주인이 갈 게 아닌걸 아는 거냐. 고놈 참 맹렬히도 짖네. 날 샐 때 다 되어가서 아무라도 데려가야 하는데 미치겠군.]
남자는 그러면서 강아지 앞에서 서성거리며 초조해하더군요.
그리고는 [하는 수 없지...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이군.]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때까지 전 격한 긴장 속에서 힘도 없는 손으로 잡은 목검을 꽉 잡고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사라짐과 동시에 온몸에 힘이 다시 들어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시계를 봤는데 6시가 조금 넘었더군요.
잠시 후 자명종이 울리고, 어머니께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침대에서 나와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조퇴한 이야기랑 지금 몸 상태에 관해 말하다가, 어머니께 새벽에 누구 들어온 사람 있냐고, 쫑이 짖는 소리는 못 들었냐고 여쭤봤습니다.
어머니는 어제 가족들 전부 다 일찍 들어와서 일찍 잤다며, 자는 내내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냥 얼버무렸습니다.
게다가 딴 건 다 이해를 해도, 문도 닫힌 동생 방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로, 구조상 볼 수 없는 바깥 상황을 제가 본 게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꿈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신기하고 뚜렷한, 이상한 꿈이었구나...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꿈이니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쫑아!] 하고 강아지를 부르며 덥석 안았습니다.
근데 강아지가 목이 쉬었더군요...
순간 말 그대로 몸이 굳으며 식은땀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제 나름대로 추리해서 내린 결론으로는, 저는 그 날 혼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라 온몸에 핏기가 없었으며 몸에 힘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새벽에 들어왔던 남자는 저승사자고, 원래 데리고 가기로 했던 사람 대신 저를 데려가려 했지만 우리 집 강아지가 짖으며 막아선 바람에 실패하고 날이 밝자 그냥 돌아간 거겠죠.
강아지는 그때 심하게 짖어서 목이 쉰 거고요.
아직도 생생한, 차마 믿어지지 않는 제 실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