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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김도언, 스티븐스의 아침
스티븐스는 자전거를 닦는다
차가운 겨울 아침
스티븐스가 털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닦는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닦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일 테지만
스티븐스에겐 가장 스티븐스다운 일이다
스티븐스는 털모자를 벗고
자전거 바퀴에 달라붙어 있는 거리들의
혈액을 털어낸다
혈액이 반짝인다
스티븐스가 지나간다
스티븐스가 지나간 자리에
그가 닦은 자전거가 있다
아침도 먹지 않고
자전거를 닦는
스티븐스의 아침은 겨울의 외부에서 돌아왔다
스티븐스가 털모자로부터 멀어진다
낙엽이 어슬렁거린다
스티븐스의 자전거는 한 번도 쓰러진 적이 없다
그걸 이해한 자 역시 스티븐스뿐이다
허연, 일요일
별로 존경하지도 않던 어르신네가
"인생은 결국 쓸쓸한 거"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는 지금도 연애 때문에 운다
오베르 가는 길
여우 한 마리 죽어 있다
여우 등에 내리쬐는 그 빛에 고개 숙인다
길 건너 저녁거리와
목숨을 맞바꾼 여우
보리밭 옆 우물가
사람들은 여기서도 줄을 서 있다
마음이 뻐근하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
박정만, 해 지는 쪽으로
해 지는 쪽으로 가고 싶다
들판에 꽃잎은 시들고
나마저 없는 저쪽 산마루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유병록, 사탕
인간이 한 번도 지나가지 않은 골목에서
눈사람소년이 눈사람소녀에게 사탕을 건넨다
사탕이 다 녹으면 마치 지구도 사라질 것처럼
가만히 물고 있는 소녀
달콤하니까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사탕은 녹는다
캄캄한 벼랑 아래로 돌을 던져 그 깊이를 짐작하듯
사탕이 녹는 소리를 듣는 소년
달콤하니까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희미하게 웃을 수도 있겠다
녹는다는 것은 따듯한 나라에 도착했다는 뜻
더 이상 추운 나라에서의 일은 떠올리지 않는다는 것
곧 흰색 목도리와 장갑의 촉감만 남을 텐데
녹는다
둥글고 달콤한 사탕이
눈사람소녀의 입속에서 머뭇거리지도 않고
김사인, 비
가는 비여 가는 비여
가는 저 사내 뒤에 가는 비여
미루나무 무심한 둥치에도
가는 비여
스물도 전에 너는 이미 늙었고
바다는 아직 먼 곳에 있다
여윈 등 지고 가는 비
가는 겨울 비
잡지도 못한다 시들어 가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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