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22사단에서 군복무를 했었습니다.
3개의 대대중 하나의 대대가 돌아가며 해안 경계 임무를 맡았었는데 제가 신병으로 전입했을 때가 해안 경계를 맡은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습니다.
해안 경계 근무도 산 속에 위치한 gop의 경계근무와 아마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ENT와 BMNT가 근무의 기준이 되고 전반야조와 후반야조가 나뉘어서 경계근무를 서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이런거 군기밀유포죄 아니겠죠?)
물론 해안 근무가 산 속에 위치한 gop보다 편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우선 초소로의 투입 경로가 산보다는 평탄하다는 점(물론 경사가 급하거나 계단이 매우 많은 섹터도 있습니다만)과
산보다는 그래도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근무를 선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이에 반해 단점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소금기 있는 해풍을 맞기 때문에 피부가 급속도로 썩창이 된다는 점과
총기 수입을 좀 더 신경써서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한 여름에 주간 근무를 서고 있으면 다 벗고 뛰어가서 놀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팽배해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은근히 바다의 파도소리가 낮에는 시원하고 듣기 좋은데 깜깜한 밤에 들으면 우울증을 유발한다고도 하더라구요.
다른 이들에게는 해안선에 떠오르는 해의 모습이 낭만적일지 모르지만 아마 해안 근무를 서신 분들은 그저 그런 풍경으로 느껴지실 겁니다.
각설하고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제가 해안 근무를 설 때 꽤나 기묘한 일이 잦았던 2번 초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직접 귀신이라던가 알 수 없는 형체를 본 목격담 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기묘한 일이기 때문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2번 초소에 대해 간략히 말하자면 초소로는 드물게 2층 형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1층은 아마 방공호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이고 실제 경계 근무는 시야 확보에 유리한 2층에서 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경계 근무에 유리한 초소이고 위치 또한 요충지로 보였는데 A급 상황이외에는 여기서 근무를 서지 않더군요.
또한 1층 방공호의 출입문이 폐쇄되어 있었습니다.
신병 시절의 저는 아 그냥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소대 간부의 순찰병으로 따라 나설 때에 소대 간부가 그 2번 초소를 안 잡는 이유가
귀신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저한테 그러더군요.
저는 뭐 원래 귀신이야기 같은 것들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며 소대 간부말을 들었습니다.
소대 간부가 해줬던 말은 어디 부대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였습니다.
초소에서 누가 자살을 했다는 둥, 1층 방공호에서 다수의 인원 사고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였습니다.
상급 부대 순찰자가 한번씩 들를 때도 2번 초소 얘기를 꺼내는 걸로 봐서는 꽤나 유명한 초소였나 봅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있을법한 군대 괴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직접 2번 초소와 관련된 기묘한 일을 경험하거나 들음으로써
확실히 2번 초소가 일반적인 초소는 아니구나, 유명한 이유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1 > 무전기에서 들린 여성의 웃음소리
제가 2번 초소와 관련하여 기묘한 일을 처음 겪었을 때는 저의 이등병 생활이 거의 끝나갈 때 쯤이였습니다.
당시 전입 후 첫 100일 휴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라 굉장히 들떠있었습니다.
물론 제 사수도 4박 5일이 아니라 4.5초다, 나가면 4일 내내 술이다, 나가면 모든 여자를 볼 때 눈에 자동적으로
포토샵 기능이 작동한다 등의 썰을 풀더군요.
이렇게 사수와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초소 투입 겸 순찰을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다른 초소 투입 인원들의 이상없이 초소 투입 완료했다는 무전이 하나 둘 씩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저랑 제 사수가 2번초소 부근 쯤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무전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무전에 노이즈가 낀다는 일 자체는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였습니다.
저희 소대가 자리잡은 소초로 부터 일정 거리 떨어져 있는 곳에 방송국이 하나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1,2,3번 초소 부근에서 전파 방해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죽음의 소초 브리핑 연습으로 달달 외울 때 숙지했었거든요.
실제로 야간 근무는 아니지만 주간에 초소 작업하러 나왔을때 노이즈가 끼던 적도 꽤나 있었구요.
그래도 확실히 밤은 밤인지라 괜시리 지직 지직 되던 무전으로도 살짝이나마 털이 쭈뼛쭈뼛 서더군요.
그러자 사수도 꽤나 긴장했던지 'ㅅㅂ 또 이 ㅈㄹ이네.' 하면서 욕을 툭 뱉더군요.
그러다가 갑자기 무전기의 노이즈가 심해지더니 정말 뜬금없게도 지직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굉장한 하이톤으로 '히히히히ㅣ히힣'하는 여자 웃음소리가 한 2~3초간 들리더군요.
그날은 바다의 파도도 거의 안치던 날이라 정말 고요했기 때문에 여자 웃음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당연히 저희 소대에는 여자 간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전에 노이즈가 껴도 톤 자체가 하이톤으로, 그것도 분명한 여자 목소리로 변하는 일은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와 사수는 화들짝 놀랬습니다.
사수랑 저는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으악~'이라는 정석적인 외마디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사수는 쥐고 있던 무전기를
떨어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평소에 부대에서 장비 관리를 엄중히 하라고 계속 교육해왔고 심지어 투입로는 백사장 부근이라 안그래도 모래와 자갈들이 많아서
잘못 떨어트리면 장비값을 물어내야 하는 경우까지 생길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초간 정적이 흐른 뒤에 사수가 '씨발 뭐야'라는 말을 나지막히 뱉은 후 무전기를 챙겨 후후 불며 모래를 털고서는
요리조리 만지기 시작하더군요. 아무래도 장비 걱정이 되긴 했나 봅니다.
그러고선 다시 무전기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자 한숨을 푹 쉬고선 저보고 '야, 너도 확실히 들었지? 그 이상한 여자 웃음소리...'
라고 물어왔습니다.
저도 아직 놀란 기운이 가시지 않아 눈을 크게 뜨고 저도 똑똑히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그 날 사수는 '씨발'이라는 욕을 근무지에서 달고 다녔으며 초소에서도 저와 함께 그 웃음소리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습니다만
저희가 얘기한다고 그 웃음소리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도 아니였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전파 방해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이 일에 대한 보고 따윈 하지 않았지요.
그냥 사수와 제가 심심하면 이 일을 다른 부대원에게 썰로 퍼트리는 수준으로 끝났습니다만 아직도 야밤에 혼자 길을 걸을 때면
그 하이톤의 여자 웃음소리가 종종 생각나곤 합니다.
< 2 > 소대장님이 본 것은?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만 들었을 때 꽤나 기묘한 일이라고 느껴졌고
하도 소대장님이 사골로 푹 우려낸 진국의 이야기라 여러분들께 말하고자 합니다.
때는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뒤의 늦여름이였습니다.
저도 어엿한 일꺾이 되었고 나름 후임도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군생활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와 비례하여 작업에 제가 불려가는 일도 점점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하루는 오전 주간 작업으로 전날 근무 비번이였던 저와 상꺾인 선임 한명을 포함해 4명이서 2초소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작업의 내용은 2번 초소 문 보수였습니다.
꽤나 강력했던 태풍이라 그런지 원래 저희가 투입됐을때 2번 초소 1층 방공호의 폐쇄된 나무 문이 많이 갈라지고 부서졌다는 이유였습니다.
뭐 그때도 2번 초소에 대한 소문이 있어서 그런지 가서 여자 귀신보면 번호따오라고 하고, 남자 귀신보면 군번을 물어봐서 자기보다 선임이면
경례라도 때리고 오라는 부소대장의 농담을 뒤로 하고 공구랑 나무 판자를 들고 2번 초소로 향했습니다.
아 그런데, 진지하게 방공호 안으로는 절대 들어가지마라고 하더군요.
뭐 계속 밀폐되고 습한 공기라 마셔봤자 좋을거 하나도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도착하니 제 아무리 유명한 2번 초소라고는 해도 대낮이니까 그냥 난데없는 일반적인 초소였습니다.
다만 1층의 방공호를 폐쇄한 나무 문들 중 몇개는 갈라지고 몇개는 부서져 그 틈으로 어두컴컴한 방공호 안이 들여다 보이는
그 모습 하나만은 을씨년스럽더군요.
작업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갈라지거나 부서진 나무문은 전부 다 떼버리고 가지고 온 나무 판자로 못질하여 새롭게 문을 만들어
다시 방공호 입구를 폐쇄하는 것이였습니다.
더구나 간부가 대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는 후딱 끝내고 사이드 좀 타다 가자라고 합의를 본 상태였습니다.
총 4개의 나무문을 뜯어내려고 다가가니 확실히 갈라지고 부서진 문 틈사이로 새어나오는 방공호 안의 공기는 느낌부터가 다르더군요.
미적지근한 온도에다가 기분 나쁠 정도의 습기, 거기다 쾌쾌한 냄새까지...
정말 소문에 걸맞는 깨름찍한 느낌의 공기였습니다.
이 때 갑자기 후임 한명이 나즈막히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어 성xx상병님? 근데 여기 나무 문 부서진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치 안에서 나무 문을 두드려서 나무 파편들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 같은 모습같습니다"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성상병과 저는 동시에 '씨발~'이라는 구수한 욕과 함께 겁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근데 또 그런 말을 들으면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인지라, 한번 그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니
후임 말대로 그 모양이 마치 안에서 문을 때려서 파편이 바깥쪽으로 튀어 나온 듯한 모습이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원인이 태풍인지라 우연히 이런 모습으로 흩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저는 장난으로 그 후임에게
'그럼 니가 들어가서 살펴보고 와봐' 라고 웃으면서 말하니 '죄송합니다'라고 바로 수그리더군요.
작업 자체는 수월하게 진행되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나무 문까지 못질을 한 다음 적당히 퍼질러 앉아 노가리나 까며 놀다가 점심시간에 맞춰 복귀한다는 무전을 날리고
설렁 설렁 소초에 복귀를 했습죠.
기묘한 일은 그 다음날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마침 성상병과 제가 사수와 부사수로 같이 2번 초소와는 정 반대편 경로의 초소에 후반야 근무를 서고 있었던 떄였죠.
그 날은 소대장님이 후반야 순찰이였는데 순찰 타이밍이 워낙 신출귀몰했기 때문에 부사수인 저는 주 근무 목표인 해안 지역 일대의
전방 경계보다는 오로지 순찰자 하나만을 바라보는 사주 경계를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후반야 인원이 가장 약해진다는 3시가 약간 넘어선 시각에 저희 초소로 순찰을 오시던군요.(이런건 군기밀 아니겠죠? ㄷㄷ)
변태같이 발걸음을 죽이면서 말이죠.
하지만 저는 오로지 순찰자바라기 행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서 발견하고는 수하를 대며 소대장님을 맞이했습니다.
소대장님은 간단히 근무 중 이상이 없냐고 묻다가 갑자기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야, 근데 니네들 오늘 나 자고 있을때 2번 초소가서 무슨 작업했냐? 보니까 문도 다 부서져있고 엉망이더만 또 주변에 제초 깔짝하고
사이드 타다 왔지?"
순간 저는 제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은 태풍이 지나간 지 꽤 시간이 흐른 뒤라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한 날씨였거든요.
성상병도 살짝 당황하다가 소대장님이 장난치시는 줄 알고
" 에이~ 저랑 xx랑 ㅇㅇ랑 ㅁㅁ랑 이렇게 4명이서 가서 놀기만 했겠습니까? 부소대장님이 시키신 문 보수 작업 다하고 놀다 왔습니다~"
라고 받아치더군요.
소대장님은 웃으면서
" 지랄하고 자빠졌네 ㅎㅎ, 아까 나랑 얘(소대장님 옆에 있던 순찰병)랑 오면서 보니까 문 부서져있고 엉망이던데? "
라고 말하니 성상병은 또 그걸 웃으며
" 어 그럼 귀신이 부순거 아닙니까? ㅎㅎ 소대장님보다 선임이시면 화도 못내고 어쩝니까?"
라고 받아쳤습니다.
그제서야 소대장님이 웃음기를 싹 지우시고 정색하시더니
" 야 성xx, 나 지금 장난아니다. 똑바로 말해, 오늘 가서 무슨 작업했어?"
라고 물으시더군요.
성상병도 소대장님이 정색하니 웃음을 거두면서
" 저랑 xx랑 4명이서 가서 진짜 문 보수작업 하고 왔습니다. 야 xx, 맞지? "
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당연히 사실이니 맞다고 했죠.
그걸 듣더니 소대장님은 ' 씨발 진짜야? 구라아니고 진짜로?' 라고 2번이나 더 물어왔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저랑 성상병이랑 같이 가서 문 보수 작업 한건 사실이였으니까요. 당연히 진짜라고 대답했죠.
그러니까 소대장님이 파랗게 질려서 순찰병 데리고 2번 초소 방향으로 뛰어가더군요.
그러고선 '현재 1번 초소 경계병들 2번 초소 상태 확인 바람'이라는 무전을 날리더군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무전이 들려왔습니다.
'2번 초소 이상 무'
'2번 초소 방공호 문 이상 없는지 다시 확인 바람'
'이상없다는 보고'
'문 부서져 있거나 하지 않은지?'
'오전에 보수 작업 통해 현재는 문에 이상없다는 보고'
저랑 성상병은 실시간 무전 중계에 귀를 쫑긋 세우며 소름이 돋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무지 소대장님이 장난치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저 뒤로 특이한 무전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간만에 긴장한 상태로 후반야 근무를 서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지나 날이 밝고 벌써 근무 철수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소대장님이 근무 철수 인원 데리러오시길래 성상병이 2번초소 문 상태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습니다.
소대장님은 얼빠진 표정으로
"야 씨발... 나랑 얘가 분명히 2번 초소 문 부서진거 봤는데... 씨발 분명히 봤는데.... 너네 말 듣고 다시 가니까 멀쩡하더라 씨발..."
이라고 말하더군요.
그 날 근무 마치고 소초로 돌아와서 소대장님은 2번 초소의 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히 다른 초소 인원들은 궁금해서 저랑 성상병한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왔었기 때문에 저는 겪은 그대로 말해줬었죠.
그리고 그날 조식을 먹을때 소대장님 옆에 순찰병으로 있던 후임에게 개인적으로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야, 구라안치고 너도 진짜 보니까 문 부서져 있더냐?"
"일병 xxx, 예 그렇습니다. 정말로 군데 군데 문이 부서져있고 나무 쪼가리 흩어져있었고 엉망이였습니다."
"씨발, 근데 다시 가보니까 멀쩡했다며?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상식적으로?"
"근데 진짜로 처음 봤을때는 엉망이였습니다. 그래서 소대장님이 그거 보고 성상병님 또 사이드 탔다고 저한테 그러셨습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거야. "
그 후임도 어리둥절한 표정이긴 매 한가지더군요.
결국 이 사건은 모종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었지만 이 일 이후로 소대장님은 매번 순찰때마다 2번초소를 꼭
들리셨고, 또한 새로운 신병이 전입할 때마다 거처가는 통과의례일 정도로 이 이야기를 푹 우리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정말로 소대장님과 그 후임이 본 광경은 무엇이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