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을 열고 집안에 들어선 지훈은 들고있던 청소도구가방을 내려놓고 마스크를 고쳐쓰며 인상을 썻다.
집안에선 시체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가방에서 탈취재를 꺼내어 온 사방에 뿌린 지훈은 그제야 좀 나아진 듯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쪽 업계에선 제법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시체썩는 냄새가 좋게 느껴질리 만무했다.
“이 냄새는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되네.”
그렇게 중얼거린 지훈은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았다.
거실은 마치 누가 페인트 통이라도 쏟아놓은 것처럼 검붉은 얼룩으로 가득했다.
“자 그럼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말한 지훈은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리곤 조용히 집안이곳 저곳을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아 선배님. 진짜라니까요. 딱 한번만 믿어보세요.”
김형사의 간절한 부탁에도 최형사는 흔들림이 없었다.
“시끄러. 네가 뭐라 하건 민간인은 수사에 참여 못시켜.
게다가 탐정 같은거도 아니고. 뭐? 청소부?
자네 동창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김형사는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강하게 대꾸했다.
“지훈이는 그냥 청소부가 아니에요. 특수 청소부라구요.
사람이 죽은 집 전문 청소부요. 그리고 중요한건 직업이 아니라니까요.
그 친구 능력이 중요한 거에요.”
최형사는 골치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김형사가 준 지훈의 신상정보 파일을 들어 보였다.
“그래. 사실 제일 믿음이 안가는게 바로 그 능력이란 부분이야.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내가 이런걸 믿을 거 같아?”
최형사는 손가락으로 ‘사이코매트리’라는 글자를 가르키며 말했다.
지훈이 손을 움직일 때 마다 지훈의 머릿속으로 영상이 펼쳐졌다.
한참을 영상을 보던 지훈은 어느 순간 손을 멈추고 정신을 집중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손에 들고있는 남자.
그 남자는 특이하게도 얼굴에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후로도 한참을 집중하던 지훈은 이내 눈을 뜨고 고개를 저었다.
손을 대충 닦아내고 다시 장갑을 낀 지훈은 휴대폰을 열고 전화를 걸었다.
“보나마나 일 빨리 끝내놓고 와달라고 하겠지....”
“왔어? 아 아직 허락은 못받았는데 좀만 더 얘기해 볼게.
그 선배가 좀 꽉 막힌 데다가 그런건 전혀 안믿거든.
그건 그렇고 현장은 어땟어? 거긴 그 하얀가면 자식 짓 맞지?”
김형사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았다.
“그래 그렇겠지. 거기 까지 하면 딱 네 번째 사건인데....”
김형사는 사건 파일들을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자. 일년동안 이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총 5번의 살인사건이 일어났어.
네가 오늘 봤던게 네번째 사건이었고.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지만 끈을 이용한 살해 방식으로 봐서는 동일인물의 짓인것 같아.
그래 네가 봤던 하얀 가면 그 자식 말이야. 그런데 다섯번째 사건은 왠지 다른놈 짓인것 같단 거지.”
김형사는 얼마전에 일어난 다섯번째 살인 사건이 하얀 가면의짓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있었다.
이전 사건과 흡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모두가 동일 인물의 소행일거라고 생각했지만 김형사만은 예외였다.
지훈은 지난 일년간 그가 청소했던 4곳에서 봤던 하얀 가면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하얀 가면.
그 섬뜩한 가면을 쓴 남자가 끈으로 피해자의 목을 조르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신선한 모습이었다.
경찰들은 자신의 말을 믿을리 없기 때문에 범인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지훈과 그의 친구인 김형사만이 알고 있었다.
지훈은 김형사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일어난 살인사건이 그 하얀 가면 짓이 아니라는 증거는 있어?”
“증거야 없지. 하지만 왠지 냄새가 나. 내 생각에는 그 사건은 하얀가면짓이 아니야.
김형사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이 사건이 진짜 그 하얀 가면 짓인지 네가 직접 봐줘야겠어.
선배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 볼 테니까.”
지훈은 작게 한숨을 쉬며 슬쩍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최형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두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일단 확실히 말해두지만 난 자네가 가졌다는 그 특기 안믿어.
당연히 거기에 기댈 생각도 없고 당신 말을 신뢰할 생각도 없어.
내가 자넬 이 현장에 오도록 허락한건 그저 저 후배 놈이 하도 졸라대서야.
다시 말해서 이건 수사가 아니고 비공식적인 일이란거지.
그러니 입단속 잘하라고.”
머쓱해하는 김형사를 죽일 듯 노려본 최형사는 덧붙였다.
“한가지 더.
만에 하나 되도 않는 거짓말을 지껄인다면 당장 철창안에 쳐박아 버릴테니 그렇게 알아.”
그렇게 말하곤 최형사는 성큼성큼 현장으로 들어갔다.
“진짜 이상하네. 답답한 사람이긴 했지만 이정돈 아니었는데 왜 저렇게 정색을 하면서 화를 내나 몰라.
자꾸 사건 빨리 끝내려고만 하고....”
김형사의 중얼거림에 지훈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으며 최형사의 뒤를 따랐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끝내.
다시 한번 말하지만 헛소리 해대면 무슨 이유를 대서건 감방에 쳐넣을거야.
난 분명 경고 했어.”
입구에서 팔짱을 끼고있던 최형사가 거칠게 말했다.
지훈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원룸. 원룸치곤 제법 넓고 깨끗한 곳이었지만
천장에서 늘어져 있는 올가미 때문에 음침한 느낌이 들었다.
대충 방을 둘러본 지훈은 천천히 장갑을 벗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한채 올가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어땠어? 뭐가 보였어? 내가 맞았지? 그 가면쓴 놈 아니지?”
눈을 뜬 지훈을 보며 김형사가 몰아치듯 물었다.
최형사는 그런 김형사를 죽일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곧 지훈에게로 옮겨졌다.
지훈은 최형사의 그 눈빛을 잠시 보다가 김형사에게 말했다.
“아니. 그놈 짓 맞아. 이번엔 네가 틀린 것 같다.”
김형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재차 쏟아내기도 전에 지훈은 최형사를 지나 현장에서 벗어났다.
“이제 됐지?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네.”
최형사는 후련다는 표정으로 김형사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돌아섰다.
집으로 향하던 최형사는 자신을 따라오는 발소리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사이코매트리 같은걸 못믿으시겠나요?.”
몰래 최형사의 뒤를 쫒던 지훈이 물음이었다.
최형사가 대답이 없자 지훈은 최형사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못 믿으시는 것 같네요. 하지만 진짜입니다.
확실히 전 물건으로부터 지난 일을 볼 수 있어요. 그 덕에 아까 확실히 봤죠.”
잠시 최형사의 표정을 살피던 지훈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형사님이 사람을 목 졸라 죽이는 모습이요.”
지훈을 가만히 노려 보던 최형사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냥 정신 나간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나 보네. 믿어지지가 않아.”
지훈은 최형사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말했다.
“죽은 사람이 아내분이랑 바람이 났었나 보네요.
분명 충동적인 살인이었을 텐데 침착하게 증거를 없애고 완벽한 연기까지.
확실히 현직 경찰은 다르네요. 전혀 틈이 없어요.
최고의 연쇄살인범에 어울리는 완전 범죄네요.”
그 말에 최형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말은 반만 맞았어. 우선 난 연쇄살인범이 아니야.
난 그저 죽어 마땅한놈 하나를 죽인 것 뿐이야.
그냥 그 살인마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비슷하게 현장을 꾸며 놨을 뿐이지.”
잠시 뜸을 들인 최형사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완전 범죄라는 말은 맞아. 내가 일처리는 확실한 편이거든.
증거 같은건 절대 나오지 않을거야.
네가 하는 말은 그냥 헛소리 정도로 받아들여지겠지.
김형사가 동조한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최형사의 말에 지훈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제 말을 오해 하셨네요. 전 형사님이 연쇄살인마라고 한적 없어요.
그저 ‘최고의 연쇄살인마에 어울리는 살인’ 이라고 했죠.”
지훈은 가방을 열어 하얀 가면을 꺼내어 쓰며 말을 이었다.
“제가 저지른 범죄로 남아도 전혀 문제가 없겠다 뭐.. 이런 얘기입니다.”
말을 마친 지훈은 번개처럼 최형사에게 달려 들었다.
“사이코매트리. 이것 만큼 살인자에 유용한것도 없어요.
현장을 몇 번이고 다시 보면서 증거를 완벽하게 없앨 수 있죠.
게다가 직업이 특수청소부 라면 말 다했죠. 흔적을 없애는데는 귀신이거든요.
그 누구도 현장에서 증거를 찾지 못할 거에요.”
최형사는 필사적으로 목에 감긴 와이어를 풀기위해 버둥거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지훈은 안정된 자세로 지훈의 목을 조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더 좋은건 제가 사람을 죽이는 환상적인 장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현장을 청소하기 전에 그 멋진 장면을 다시 보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마 형사님은 모르실겁니다.”
최형사의 몸에서 힘이 빠져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훈은 와이어를 한층더 강하게 조이며 말을 이었다.
“형사님은 저의 다섯 번째 희생자이자
최고의 연쇄살인마 하얀 가면의 여섯 번째 희생자가 되는겁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