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해체가 결정된 아파트 단지에 케이블을 철거하러 갔었다.
전체 3동 중 이미 2동은 해체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것은 4시 반 무렵으로, 이미 주변은 어스름에 잠겨 있었다.
해체업자들도 작업을 끝내고 돌아간 터라, 넓은 부지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어 조금 기분이 나빴다.
철거를 맡게 된 집은 4층 건물 꼭대기 층이었다.
방안 배선을 철거하고, 1층에 있는 단자함에서 4층까지 연결된 선을 뽑으려 뚜껑을 열었다.
검은 종이가 넉 장 펄럭펄럭 떨어졌다.
뭔가 싶어 자세히 보니, 붓으로 쓴 것 같은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부적인 듯했지만, 별생각 없이 작업을 이어갔다.
케이블은 배관 안에서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기에 바로 뽑힐 거로 생각해 그대로 잡아당겼다.
처음에는 아니나다를까 쑥쑥 빠져나왔지만, 갑자기 무언가에 걸려 내려오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3층으로 올라가 선이 지나가는 박스를 열어봤다.
아직 선이 보인다.
4층과 3층 사이에서 막혀 있는 거겠지.
힘을 줘서 억지로 잡아당겼다.
뿌득뿌득뿌득!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선이 내려온다.
수많은 머리카락이 엉킨 채.
애당초 케이블밖에 들어있지 않은 배관 속에 머리카락이 들어있을 리가 없다.
케이블에 엉킨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있노라니, 케이블이 뽑힌 구멍에서 검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저 녹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런 광경을 연속해서 보고 있자니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나는 선을 잡고 1층으로 미친 듯 내려왔다.
잡고 오는 사이에도 뿌득뿌득하고 엉킨 머리카락들이 계속 뜯겨 나왔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위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목소리나 발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숨결처럼 [하아... 하아...] 하는 느낌이.
그게 벽에 울려 퍼지며, 내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손에 엉킨 머리카락을 뿌리치고, 케이블을 뽑은 채 거기서 달아났다.
지금 그 단지는 철거되고 공터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