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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91229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487
    IP : 175.213.***.18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1/01/20 22:41:54
    http://todayhumor.com/?lovestory_91229 모바일
    [BGM] 나는 여지껏 기다리며 살아왔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맹문재, 꽃




    지금 네가 흘리고 있는 진땀이 비누 거품처럼 꺼지고 말겠지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으련다


    너는 사라지는 운명에 미련을 가지고 사진이나 찍어대지 않는다

    떠날 때에는 그림자까지 거두어 갈 용의를

    너럭바위의 표정처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절벽에 매달려 있는 조난자처럼 장맛비에 패인 언덕에서

    흔들리면서도 권투 글러브를 끼는 링 위의 도전자 같은 불길을

    너의 키 위로 넘긴다


    그 어떤 하소연도 패악으로 간주한다고

    너는 정으로 비석을 쪼듯 녹음한다

    햇볕이 바뀔 때마다 네 목소리는 변색되고 말겠지만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믿고 있기에

    너는 추억을 한 움큼 움켜쥔 바람처럼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2.jpg

     

    허영선, 뿌리의 노래




    깊디깊은 바윗돌 잘도 견뎌왔구나

    갯메꽃, 뫼메꽃 살가운 것들 껴안고

    잘도 견뎌왔구나

    억세게 땅을 움켜쥔 채 늙은 뿌리는

    늙은 노래를 부르며 삶을 견뎌왔으니

    우린 놀랍게도 무르고 헐은 상처도 싸매며

    메꽃, 달개비꽃 보드라움을 노래해 왔구나

    질펀한 여름날의 해무

    길 잃은 자들 위로 짙게 깔려

    버둥거리며 우린 길을 찾아왔으니

    막버스가 이미 지나가도 두렵지 않았던 건

    삶은 이미 견딤의 시작에서

    견딤의 정점으로 향한다는 의지 아니었던가


    자갈은 자갈대로 한밤중 자갈자갈

    섬 속에서 떠다니는 섬은 부웅부웅 소리 내며

    해무가 지우는 길을 빛나게 닦는구나

    들어봐라, 제주 섬 한밤을 빙빙 돌며

    떠나지 못하는 뿌리의 울음

    견딘 만큼 더 견디라 하지 않느냐

     

     

     

     

     

     

    3.jpg

     

    이달균, 평촌역에서




    나는 여지껏 기다리며 살아왔다

    오지 않는 기차를, 허기진 한 줄 시를

    이렇듯 목만 길어진 짐승처럼 살아왔다


    기실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비련의 사랑도, 피 묻은 혁명도

    혼돈의 이천 년대를 열망한 적도 없었다

     

     

     

     

     

     

    4.jpg

     

    김두안, 의자




    의자에 앉아 있다

    의자처럼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흰 바람이 뽑혀 나가고


    오늘은 가을이

    오늘을 따라 떠나갔다


    의자에는

    겨울이 따사로이 앉아 있고


    나는

    겨울 무릎 위에 앉아 있다

     

     

     

     

     

     

    5.jpg

     

    박서영, 업어준다는 것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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