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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91142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432
    IP : 175.213.***.189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21/01/01 21:50:33
    http://todayhumor.com/?lovestory_91142 모바일
    [BGM]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영무, 별똥




    죽음에도 울음이 터지고

    탄생에도 울음이 터진다

    남들을 울리며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면

    탄생은 스스로 울면서 올 뿐

    삶의 끝과 시작에는 늘

    눈물이 있다

    캄캄한 하늘

    칠흑의 어둠 가르며

    별똥눈물 떨어진다

    아, 갑자기 환해지는 마음

    누가 죽었나

    누가 태어났나

     

     

     

     

     

     

    2.jpg

     

    유수연, 오목렌즈




    직선을 곡선으로 휘게 하는 힘이 있어

    숫돌에 밤낮으로 갈아 시퍼렇게 날선 칼날도

    돗수 0.1의 안경을 통과하면 둥글게 마음을 말아 쥐곤 하지

    기억의 눈동자 안쪽에 박힌 깨진 유리조각 같은 분노도 둥글게 말리면서

    흰 웃음을 가지런히 내보이곤 해


    둥근 것은 부드러워

    둥근 것을 만지면 깊이 갈비뼈 밑에 앙금 짙게 깔린 상처도

    치자 꽃잎을 시냇물에 흔들었을 때 꽃잎물이 투명한 물에 번지듯

    풀풀 풀어지곤 하지

    그런거야

    꽃잎물이 시냇물에 번지며 흘러가는 것

    서로 물들이며 씻어주기도 하는 그런 것

    이것 좀 봐

    딱딱한 각질처럼 각진 곳에 갇혀 있던 생각들이 돌멩이를 들추네


    둥근 돌멩이 그늘 밑 삶을 꼼지락거리는 것들

    잠자리유충, 어린 가재, 미생물들

    렌즈를 통해 물속을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생물의 실핏줄 같은 눈들이 보여

    물결이 햇빛의 각도를 다르게 받아내듯

    렌즈를 통과한 빛으로 서로를 다르게 받아내는 거야

    내 눈에 치자꽃 꽃잎물이 박하향처럼 번지고 있어

     

     

     

     

     

     

    3.jpg

     

    고형렬, 화살




    세상은 조용한데 누가 쏘았는지

    모를 화살 하나가 책상 위에 떨어져 있다

    누가 나에게 화살을 쏜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화살은 단단하고 짧고 검고 작았다

    새 깃털 끝에 촉은 검은 쇠

    인간의 몸엔 얼마든지 박힐 것 같다

    나는 화살을 들고 서서

    어떤 알지 못할 슬픔에 잠긴다


    심장에 박히는 닭똥만한 촉이 무서워진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아파왔다.

    혹 이것은 사람들이 대개

    장난삼아 하늘로 쏘는 화살이

    내 책상에 잘못 떨어진 것인지도 몰라

     

     

     

     

     

     

    4.jpg

     

    조병화, 주점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마다 가슴을 뚫고 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 할

    아무런 죄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꽃밭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허나 이력서를 쓰기 싫은

    그날이 있고부터

    나는 이 거리의 회화를 잊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그런, 수속조차 이미 나에겐 권태스러워

    우울이 흐린 날처럼 피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산다는 것이 권태스러운 일이 아니라

    수속을 해야 할 내가 있어


    그 많은 우울이 흐린 날처럼 피면 글 한 자 꼼짝하기 싫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아버지가 된 그 일이

    마침내 어쩔 수 없는 내 여생과 같이

     

     

     

     

     

     

    5.jpg

     

    이윤학, 사다리




    재떨이에 걸쳐져 재로 변한 담배 한 개비

    필터만 남은 담배를 쳐다본다

    커다란 재떨이는 담배에게

    흰 벽을 한 감옥과도 같다

    죄수의 영혼은 벽을 타고 내려와 사라졌다

    죄수의 몸의 형체는 외부로 통하는

    사다리꼴이다


    무수한 담배꽁초 위에

    죄수들의 임시 거처였던 담뱃갑이

    비틀어 버려져 있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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