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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wedlock_9110
    작성자 : 허니순살치킨
    추천 : 11
    조회수 : 1809
    IP : 182.226.***.95
    댓글 : 26개
    등록시간 : 2017/07/06 03:05:50
    http://todayhumor.com/?wedlock_9110 모바일
    귀여움의 본질에 대하여
    옵션
    • 창작글

    일기체.

    어느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


    동네에 유명한.. 꽈배기를 주로 취급하는 집이 있는데
    마침 빵나오는 시간에 맞춰 그 집 앞을 지나다가 평소와는 달리 줄이 별로 길지 않길래 충동적으로 꽈배기를 샀다. 두개.
    나와 아버진 먹지 않지만 남편과 엄마. 이렇게 두 명의 꽈배기 신봉자를 위하여.
    집에 와서 두 사람 앞에 꽈배기를 풀어놓으니 마침(!) 엄마가 속이 좋지 않아서 기름에 튀긴 건 별로 먹고 싶지 않다며 사위에게 다 먹으라고 양보를 했다.

    잠깐 여기서 콩깍지+남편 자랑 잠깐.

    내 남편은 귀엽다.
    잘생겼는데 귀엽기까지 하다.
    원래는 잘생기기만 했고 귀엽진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귀여워지더니(아마 고양이와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습성을 연구하고 부터인 듯 하다)
    그 동안은 내 앞에서만 귀여웠는데 내가 고양이들 쓰다듬을 때 같이 쓰다듬쓰다듬하면서 귀엽다 귀엽다 해주니 최근엔 귀여움이 흘러서 아무데서나 귀엽다.
    아무데서나 귀여운데 별 제지를 하지 않고 역시 내가 귀엽다 귀엽다 깔깔거리면서 칭찬을 해주니 이젠 귀여움이 넘쳐서 귀여움 학원을 차리겠다는 헛소리를 할 정도다.
    사랑받는 남자의 필수스킬은 귀여움이라며.
    이 사실을 많은 무뚝뚝하고 대화할 줄 모르는 남자들에게 전수해주고 싶다며.(귀여운 대화라곤 멍멍멍멍 밖에 할 줄 아는게 없으면서)
    난 그럼 그 근거없는 자신감이 귀여워서 또 귀엽다 귀엽다 하게 된다.
    귀여움 강화의 무한 루프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잔뜩 강화된 귀여운 남자가 평소에도 좋아라하는 꽈배기를 장모에게 양보받아 순식간에 먹을 수 있는 꽈배기가 두 배가 되었다.
    남편은 야옹야옹하고 두번 외치더니 우리집 고양이가 츄르를 보고 달려올 때 내는 소리인 아우우아유우우 - 마치 인디언 소리 같은 - 하면서 꽈배기 두 개를 자기 앞으로 당기고 멍멍하더니 나를 보고 헥헥했다.(남들이 보기엔 끔찍한 종의 혼재일 뿐)
    (기다려를 한 적도 없는데 내 반응을 살피며) 내가 먹어도 좋아.라고 하자 신나서 꽈배기를 폭풍 흡입.

    엄마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실소하며 넌 남편을 개같이 대하냐고. 남편한텐 자넨 왜 개같이 구냐고.. 하다가 말해놓고 보니 뭔가 아닌가 싶어서 아니 그러니까 왜 니넨 왜 멍멍을 하냐고로 얼른 정정.
    우리 아버지는 평생 애교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이라 가끔 엄마는 사위의 귀여움을 목격할 때 짜증 아닌 짜증을 내는데(과연 그런 이유일까)
    역시나 그날도 살짝 짜증이 난 상태로 나에게 남편이 흘린 꽈배기 설탕이나 잘 닦으라며 행주를 집어 던졌다.

    난 심각해졌다. 행주를 맞아서가 아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귀여움이 넘치고 있다.
    원래 샤프한 사람이고.. 얼굴 자체에서 잘생김은 몰라도 귀여움은 느껴지지 않기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회사에서 고객과 기술 얘기를 할 때 진지하게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다가 갑자기 야옹해버리는 장면을 상상해버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그러고 보니 최근 마트에서 감자칩을 들고 불쌍하게 머엉머어엉 헥헥헥헥하면서 사달라고 조르다가 지나가는 부부 중 여자쪽의 눈에 띄어 모르는 사람을 빵 터지게 한 적도 있고(터져주었으니 다행이지 눈살을 찌푸릴만한 일이 아닌가) 같이 버스를 타다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버스가 출발 했을때 손잡이를 급히 잡으면서 아코 냐아앙 같은 소리를 낸 적도 있었다.(그나마 이건 아마 나만 들었던 것으로 추정)
    게다가 나까지 영향을 받아서 뭔가 힘을 쓰는 일을 할 때 나도 냐아오옹 소리를 기합으로 넣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귀여운건 내 앞에서만 하고 정도껏 귀엽게 굴도록 하자.. 귀여움도 적당히 해야지 심하면 주변에서 짜증을 낼 수도 있다.. 라고 꽤 진지하게 얘기를 꺼냈다. 예전엔 내 앞에서만 했었는데 요즘은 넘치는 것 같다고.

    남편이 말하기를..

    "귀여움의 본질은 과함에 있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귀여운데 과하지 않은건 귀여운 척인거야. 자기도 모르게 선을 넘어 버리는 것. 그것이 순수한 귀여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 우리는 고양이가 귀엽다고 말할때 그것이 본성이기에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거야. 얜 너무 귀여워라고 생각하지만 그 너무라고 하는 과함 자체가 고양이가 가진 귀여움의 실체이며 본질 그 자체..."

    따위의(정확하게 기억도 나지 않음) 진지하게 난 정말 귀여우니 괜찮아 나불나불.
    변명이 길어져서 본질이니 외연이니 삼천포 토론에 휘말리면 나도 어느샌가 신나서 헛소리를 하고 있게 마련이라 당장 정신을 추스르고.

    "그래서 절제하지 않겠다는거야?"

    "더 이상 내 귀여움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면 절제해 보도록 할게. 본성을 억압하는 것은 좋지 않고 반드시 반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른데선 참았다 내 앞에서만 그 반동으로 더 귀여워지면 되잖아. 사람들이 오빠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괜찮아.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고, 귀여움의 완성은 얼굴이니까"

    이럴수가. 남편의 자신감이 이 정도로 업그레이드 되었다니. 신이시여.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이까.
    사실은 그냥 아저씨일 뿐인데.
    이 미친듯이 스스로에게 치명적이고, 사회에 유해하며, 국가의 민폐덩어리 착각이 무한 루프에 빠져서 더 강화되기 전에.. 어서 조치를 취해야만...

    "그러니까... 당.신.은. 조심해야지"

    정색과 단호함을 날려주니 남편은 금방 의기소침해졌다. 남편은 쉬운 남자다.
    하지만 나는 그 쉬움이 또 귀여워서 꺄아아 빠순이 모드.

    "삐졌쩌요? 아냐아냐 잘생겼어. 귀여워"

    아무래도...
    세상에 못할 짓을 하고 만 기분이다.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고 해도.. 그냥 귀여운 것은 몰라도 '본질적으로 귀여운 것'에는 이렇게 늘 지고 만다. 크윽. 분하다.




    세줄 요약

    남편은 귀여움
    남편은 본질적으로 귀여움
    그리고 잘생겼음(크윽. 분하다.)


    허니순살치킨의 꼬릿말입니다
    다음엔 쉬운 남자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뻘글을 써봐야겠다.

    할일이 많아지니 현실 도피는 해야겠고.
    쓸모없는 창작욕만 불타오르는, 새삼 시험 기간 같은 기분이라니.
    오늘도 이렇게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며 뻘글을 쓰고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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