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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박정대, 장만옥
멀리 가는 길 위에 네가 있다
바람 불어 창문들 우연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 골목길에
꽃잎 진 복숭아나무 푸른 잎처럼 너는 있다
어느 날은 잠에서 깨어나 오래도록 네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랑은 나뭇잎에 적은 글처럼 바람 속에 오고 가는 것
때로 생의 서랍 속에 켜켜이 묻혀 있다가
구랍의 달처럼 참 많은 기억을 데불고 떠오르기도 하는 것
멀리 가려다 쉬고 싶은 길 위에 문득 너는 있다
꽃잎 진 복숭아나무들이 긴 목책을 이루어
푸른 잎들이 오래도록 너를 읽고 있는 곳에
꽃잎 진 내 청춘의 감옥
복숭아나무 그 긴 목책 속에
나희덕, 담배꽃을 본 것은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을 보았다
분홍 화관처럼 핀 그 꽃을
잎을 위해서
꽃 피우기도 전에 잘려진 꽃대들
잎그늘 아래 시들어가던
비명소리 이제껏 듣지 못하고 살았다
툭, 툭, 목을 칠 때마다 흰 피가 흘러
담뱃잎은 그리도 쓰고 매운가
담배꽃 한줌 비벼서 말아 피우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족두리도 풀지 않은 꽃을 바라만 보았다
주인이 버리고 간 어느 밭고랑에서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하지(夏至)도 지난 여름날
뙤약볕 아래 드문드문 피어있는
버려지지 않고는 피어날 수 없는 꽃을
정한아, 애인
한밤을 펜과 씨름하다
책상에 엎어졌습니다
거기에는 책상의 이데아도 질료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나
책상의 나직한 고동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 속에 세월을 묻고 가슴에 열쇠를 꽂은
숨소리가 나직한 늙은 책상은
내가 사춘기에 칼로 그은 상처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를 구원해준 책상
나를 잠재워준 책상
내가 후려갈기고 긋고 할퀴고 물어뜯고 종국에
머리를 박아대던 책상
책상은 나를
제 다리 밑에 숨겨줍니다
거기서 손가락 빨며 눈 빨개지도록 웁니다
박상순, 단풍 숲에서의 짧은 키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너는 비행기를 타고 산맥을 넘었다
여러 해 동안 너는
밤의 열기
가볍고도 유쾌한 사랑
그러나 나는 아직
체리향이 든 해열제를 먹고 누워 있는
키 작은 아이
단풍 숲에서의 짧은 만남이 오기도 전에
내 안에서 솟아오른 불길이
산맥을 넘어
너의 입술을 모두 태워버린다
임곤택, 스프링클러
당신은 수천수만의 유선형인데
어떤 생애도 거머쥐지 않고 화살의 궤적처럼
지나가는 물의 몸인데
질투와 폭로와 추락과, 달콤하고 축축한
통속의 일화(逸話)
지상에 가까울수록 당신은 무척 바쁘다
어느 단단한 것 위에 당신은 누울까
무심히 주고받는
당신 없는 하루는 너무 길어요 따위의 말들
독한 취기에 며칠 깨어나지 못했네
십 년 이십 년 전의 일처럼 몸을 일으켰네
지팡이가 꽃이 되는 마술
물의 춤과 혼신과 물의 패전을 한 귀로 흘렸네
젊은 꼽추의 주머니 가득 해 질 때
가슴을 드러낸 붉은 마리아
나무의 발을 씻는, 몸 뻗어 나무의 정(情)을 열어젖히는
저녁 습기가
당신의 뜻으로 와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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