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잘 읽어보시라 했거늘...
본문-'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 하는 사람 있을 수 있다.'의 논지는
이윤성 교수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가 아니라, 본문에 제시된 내용만으로 이 교수를 남성우월론자 혹은 여성비하론자로 볼 수 없다.
기사에 난 팩트만 봐서는 이 교수가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당하지 못하다.
까려면 제대로 까라... 팩트없이 또는 불충분한 팩트만 가지고 여론을 몰아가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입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나타나 귀족노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비판해야 하듯'이라거나
'귀족노조를 비판하는 말은 틀리지 않은데... 전반적인 노동자운동에 대한 배척이 더 큰 문제'라...
저는 펠라군드 님의 이 사고방식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야한 옷과 성폭행빈도수에는 100%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근거해 제 글에 딴지를 거는 님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울 나라에 귀족노조란 없습니다. 귀족노조에 대한 비판... 분명히 틀린 시각이요 관점입니다.
최고의 귀족노조로 뽑히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 얼마전에 귀족노조로 몰린 철도노동자들... 분명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많이 받습니다.
저도 제가 그정도 연봉을 받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받는 임금은 자신들의 노동시간과 노동기술에 대한 비교적 정당한 댓가에 불과합니다. 더 받아야 하는데 못받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노동자들이 그들보다 더 적게 받고, 혹은 더 많이 착취당하고 있기에 이들이 귀족노조라 불릴 뿐입니다.
이들을 귀족노조라 부르며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해법은 이들보다 약자인 중소기업 노동자, 계약직노동자, 시간제노동자, 아르바이트, 지입차주와 같은 영세사업자들의 임금과 처우를 개선하는 것,
정당한 댓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돌려주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귀족노조를 비판하는 말... 무슨 비판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부분 틀린 말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갑시다.
님은 이교수의 말 “그런 얘길 했냐 안 했냐고 묻는다면 안 했다 소리는 안 하겠다. 다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한 사람이 잘못된 건 맞지만
무조건 피해자는 아무런 조심을 안 해도 되고 가해자만 비난해야 할 게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말했다” 에 대해
'도대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한 사람이 잘못된 걸 인정하면서 성폭행사건을 다룰 때 이런 전제가 왜 필요하냐구요?'라 물으셨습니다.
제 주장을 다시 돌아보죠.
1. 남자는 야한 옷에 자극을 받는다.
2. 보통 남자는 야한 옷에 자극을 받아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 사회적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야한 옷 입어도 성폭행 안한다.)
3. 성폭행범은 상대방을 존중하지도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도 못하는 짐승이다.(야한 옷 입든 말든 성폭행 한다.)
여기에 대해 님들이 문제삼는 것은 이것입니다.
1. 야한 옷과 성폭행빈도수는 통계적으로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
마치 야한 옷과 성폭행빈도수에 상관이 없으니 어디든 누구 앞에서든 야한 옷을 입고 다녀도 문제가 없다.
어떻게 보면 야한 옷과 성폭행빈도수에 상관관계가 있다면 야한 옷을 입는 사람이 성폭행을 유발한다고 할까봐 초조해 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렸듯이 야한 옷과 성폭행빈도수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해서 야한 옷이 성폭행을 유발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폭행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수많은 남자들이 야한 옷과 상관없이 여자들을 존중하고 사회적 규범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성폭행이 일어나는 것은 성폭행범이 상대를 존중하지도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도 않기 때문이며 무슨 이유로든 성폭행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남자가 아니라 이미 성폭행을 저지를 준비가 된 성폭행범들이 성폭행을 저지르니 야한 옷과 성폭행빈도수에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어차피 저지를 놈들 아닙니까?
이미 성폭행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는 성폭행범들인데 야한 옷에 자극을 받지 않을까요?
이놈들은 어차피 저지를 놈들인데 눈 앞에서 야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든 말든 상관안해! 그러고 있을까요?
보통사람은 몰라도 이미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에게는 야한 옷이 직접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는 건가요?
그걸 조심하라는 말이 그다지도 거슬리는 건가요?
이 교수는 법의학자 입니다. 법의학자의 관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성폭행범 자극하지 마라. 조심해라. 이게 문제입니까?
양성평등원에 가서 야한 옷과 성폭행빈도수에는 상관이 없다를 진리로 믿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발언을 하는게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선 동의합니다.
일설에는 이솝이 신전에 가서 신이 없다고 깝죽거리다 맞아 죽었다지요? 누울 자릴 보고 누우라고 그는 정치적 감이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옹졸하고, 자신들의 생각, 믿음에 갇혀 살며 그와 다른 생각들은 결코 이해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다고...
물론 이 교수가 전 정권과 현 정권에서 활동한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람은 아닐꺼라 생각합니다. 저도 저만의 색안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제단하기 전에 색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색안경은 님 말씀대로 동네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에서나 낄 일입니다.
야한 옷과 성폭행빈도수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는 관점을 가진 분들에게는 제 생각이 말도 않되는 궤변처럼 여겨지나 봅니다.
따져보면 거의 같은 입장과 관점에 서서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런데도 자신들만의 금과옥조, 자신들만의 진리가 있으니... 자신들의 관점에서는 제 생각이 너무나도 틀린 생각처럼 여겨지겠죠.
우리는 보통 자신의 관점에서 가-부, 선-악을 결정하고 자신과 다른 것은 무조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게 흑백논리 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성이 있고 논리가 있습니다.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말고 딱히 의지할 만한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주장과 논지에 대해 자신의 관점으로 먼저 제단하기 보다 그 주장과 논지가 맞는지 논리적으로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무턱대고 주홍글씨를 수놓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