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먹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새벽에 끄적여봅니다.
지난 6년간 애정을 쏟았던 커뮤니티에서 신고를 당하고 차단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착잡합니다.
저는 문화를 연구하는 학생입니다.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니 아직 병아리 연구자지요.
인터넷 커뮤니티와 관련된 페이퍼도 몇 차례 썼고, 그 중에는 오유의 '저격글' 문화에 관한 것도 있었습니다.
제 주요한 관심사는 한국의 근대이고, 권위주의적 사회에 관한 계보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논문 주제도 천안함의 집단기억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틀을 잡아가는 단계지만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분야가 분야이니만큼, 저희 과, 혹은 인접 학과에서는 메르스 갤러리에 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일베가 지난 몇 년간 그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혐오의 사회학에 있어서 이보다 좋은 대상이 있을까요.
서설이 길었습니다. 메르스 갤러리에 관해서는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것이기에 부연하지는 않을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메르스 갤러리에 대해 (오유 회원님들이 보시기엔) 호의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내용에 대해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예요.
페이스북 메갈리아 페이지(메르스 갤 페이지)는 잠시 구독하다가 불편해서 끊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활동에 대해 구태여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남자입니다. 장교로 전역했고요. 한국에서는 손꼽는 학교의 대학원에 재학 중입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주류의 상징자본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혜택받는 존재겠죠, 이 곳에서 저는.
그런 제가 보기에도, 한국 사회, 나아가 전세계 절대다수의 주류사회는 남성편의적으로 건설되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한국의 경우 이 경향이 훨씬 심하지요.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메르스 갤러리와 무슨 상관일까요? 일베로 대표되는 '여성혐오'의 거울로서 메르스 갤러리가 등장했죠.
여성혐오는 남성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자행됩니다. 농담이라면서, 정색하는 사람은 바보로 만들죠.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거나 직장상사가 성적인 농담을 던진다는 얘기에 공분하면서도 그 범인은 멀리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나, 혹은 우리집단 외부의 적으로 인식하는 그 사람은 대부분 남자인 나, 남자인 내 지인, 남자인 내 가족입니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여성혐오'는 결코 일베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뿌리깊습니다. 일베는 차라리 결과에 가깝죠.
그 같은 풍토에서 자라난 우리 모두는 여성혐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씩 모두 나눠가지고 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지난 십수년의 세월 속에서 이 같은 풍토는 인터넷에 똑같이 전이되어 왔습니다.
'김치녀'를 외치는 일베를 싫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만, '~녀'가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좌파 운동을 하는 집단 안에서도 공공연하게 '여자가 무슨 대표냐' 하는 말들이 당연하게 떠돌아요.
예원과 이태임은 촬영장에서 일어난 개인적인 일이었고, 장동민은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방송이었습니다.
결과는 많이 다르네요. 예원과 이태임은 방송활동 자체에 위기가 왔지만, 장동민은 사과 한 번으로 툭 털고 지나갔습니다.
루저녀 이도경이 자신이 발언한 시점에서 몇 년간 대외활동이 어려웠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대접은 합당한가요?
한국 여자들 몸매 볼품없다는 말을 누군가 했다고 하면, 잠시 구설수에 오르기는 하겠지만 이내 잊어버릴 겁니다.
이런 예들은 언급하기조차 귀찮을 정도로 너무 많습니다. 물론, 실생활에서 여성들이 받는 대접은 훨씬 형편없죠.
적어도 남자들은 데이트폭력 때문에 사망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고, 여자가 무서워서 밤길 다니는 게 힘들진 않거든요.
물론, 오유에 있는 회원들이 모두 여성에 대해 차별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껏 오유에서 베오베/베스트에 갔던 여성으로서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글에는 심심한 위로와 평등한 시선들이 많이 보였거든요.
그런 오유의 모습을 꾸준히 봐왔기 때문에 메르스 갤러리의 '흉내내기'에도 동일하게 혐오를 표시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저도 그런 메르스 갤러리의 내용이 싫고요. '여혐'이 싫다면, '남혐'도 싫다는 입장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하지만, 메르스 갤러리가 하나의 '축제'가 되고 있다는 점은 한 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여성들 중에도 여전히 그와 같은 혐오의 발언들이 싫은 분이 당연히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주변 분들을 보면 메르스 갤러리의 글들에 대해서 눈팅도 열심히 하고 통쾌해해요.
이 분들이 평소 남성을 혐오하기 때문에 그럴까요? 전혀 아니죠.
여성혐오에서 주어와 목적어만 바뀐 그 글들이 즐거울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굳이 '축제'라는 말을 끌어다 쓰는 것도 그 때문인데요, '남성혐오'가 아니라,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의 카니발인 거죠.
카니발은 오늘날 축제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금기에 대한 해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좀 더 유연한 사회체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지요.
메르스 갤러리는 일종의 카니발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카니발은 언젠가 끝나죠.
그 사실 때문에 저는 오히려 메르스 갤러리 이후가 더 무섭습니다.
그런 카타르시스가 주는 자극 때문에, 길고 지리한 여성운동으로 연결되지는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유 안에서도 메르스 갤러리가 '남성혐오'로 비치는 것에 대해서 재고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저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성혐오가 아니라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라고.
왜냐고요. 그들이 생산하는 콘텐츠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이미 있는 자료들이죠.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었을뿐.
우리가 그들을 '남성혐오'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새로이 생산되는 혐오의 지속성이 필요합니다.
이들의 운동방식이 파괴적으로만 흐르는 것에 대해서 염려할 단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메르스 갤러리 현상을 보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일베를 비롯한 남성위주의 이용자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입니다.
지난 10년 간 그토록 여성들이 점잖게 김유식에게 요구해도 전혀 개선되지 않던 혐오단어 사용금지가 3일만에 이루어졌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죠. 갤 내부에서는 화력으로 당할 수 없으니 밖에서 비웃습니다.
주변의 여성운동 하시는 분들이나, 학자들께서도 주의깊게 이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흥미롭거든요.
그토록 이성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는 콧방귀도 끼지 않던 이들이 거울을 보여주니 흥분해서 달려듭니다.
제 경우 그네들의 글이 불편하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보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은 매우 강고하고, 앞으로 몇 십년이 지나도 개선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은 강자예요. 강자의 사회에 대해 조롱하고 풍자하는 것은 약자가 쟁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승리입니다.
강자가 약자를 조롱하는 것은 힘의 불균형에 의한 부조리이고요.
만약 여전히 저들의 존재가 고까우시다면, 한국사회에서 성별이 갖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제게는 오유에 등장하는 메르스갤러리에 대한 비판이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남성과 여성은 전혀 평등하지 않습니다.
p.s.
여시에 메르스 갤러리 글이 올라온다고 여시가 메르스 갤러리를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은 좀 위험하다고 봅니다.
어찌되었든, 여시도 여성의 일부죠. 메르스 갤러리를 하게 된 여성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여시와 메르스 갤러리의 커넥션을 전제로 상정해놓고 이야기하는 건 음모론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