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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죽어……’
‘…’
‘…’
‘…’
‘죽여!!!’
누군가의 소리에 지훈은 눈을 떴다. 그리고, 다급하게 달려가는 분홍색 간호복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선생님! 306호 환자가 깨어났어요!!”
‘우우…’
지훈은 자신의 입에 마스크를 발견하고, 자기 몸과 자신이 누워있는 병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팔에는 주사바늘이 꽂혀있었고, 주사 바늘은 머리 위에 있는 수액통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옆에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심장박동과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가 요란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침상의 머리쪽에는 통에 담긴 물이 보글보글 거리고 있었으며, 그 통과 연결된 마스크가 자신의 입에 씌어져 있었다.
지훈은 멍한채 그것들을 바라보다 차츰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맞다… 나 신장 이식 수술 받았지… 근데 수술이 잘 안 된건가?’
곧이어, 의사가 다급하게 들어와서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306호 환자분 깨어 나셨군요. 다행입니다. 위험한 순간이 왔었어요.”
“그래……요?”
“오늘은 00월 00일입니다. 수술 이후, 무려 2주간 코마(coma)상태에 있었어요.”
“코…마?”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아… 그렇군…요”
“놀라지도 않으시는 걸 보니, 정신이 많이 몽롱한 상태인 것 같군요. 일단 쉬십시오. 안정이 우선입니다. 기력이 회복되었다고 판단될 때 더 얘기를 나누지요. 좀 중요한 얘기입니다. 일단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진통제를 처방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이 올 수도 있으니 그리 놀라지 마세요.”
“이봐 김간호사, 306호 환자분한테 일단 진통제를 투여하도록 하지.”
의사가 그렇게 말을 하고 나가자, 간호사는 자신의 팔과 연결된 고무 호수관에 주사기를 꽂아 약을 투여했다. 시원한 무언가가 자신의 팔을 통해 전신으로 흘러 들었다. 지훈은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쭉 흘러내리듯 잠이 쏟아졌다. 그리고 간호사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
지훈은 하루 정도 지나자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온 것을 느꼈다. 아침, 병실에 의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연결되어 있던 기계로부터 수치들을 확인하고, 거즈로 덮었던 수술 부위를 포함해서 지훈의 몸을 체크했다. 수술 부위에 소독약을 바르고 다시 거즈로 덮었다. 그리고 나서 의사가 지훈의 앞에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행입니다. 수치가 대체적으로 정상범위 안에 들어왔군요. 위험했었습니다.”
“어떤 것이…?”
“신장을 이식하기 전에 했던 혈액검사, 조직검사에는 99.8% 이상 일치한다고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수치상으로는 이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왜 수술후 의식불명이 된거죠?”
“저희 병원도 열심히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다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술 과정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의료원측 과실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어떤 정황도 없구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식받은 신장에서 과도한 아드레날린 분비가 이루어지면서, 면역기능이 저하됨을 관찰했습니다. 따라서 접합부위가 아물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출혈이 일어나는 상황이 발생했지요. 그 이후 부터 환자분의 의식이 되돌아오지 않았구요.
저희 의료진이 응급처방을 하긴 했습니다. 헌데, 이 모든 과정이 아주 기이합니다. 조직검사에서는 99.8%였는데, 수술 후 신체가 거부반응이 일어나니…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신장이 모든 것을 거부하는 느낌이였습니다. 그래서 기이하다는 겁니다. 여튼 아주 진땀 뺐습니다. 다행히 눈을 뜬 환자분 얼굴을 보니 한시름 놓겠군요.
의식이 돌아왔으니, 의료원 입장에서도, 환자분 입장에서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저희가 사죄하는 의미로 2주간의 특실 사용은 의료비용에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허허허”
“저로서도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의식도 돌아왔으니 말이죠. 신장에서 더 이상의 거부반응은 없던가요? 혹시라도 퇴원 후에 뭔가 발생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수치상으로도 정상이고, 육안으로도 안정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방금거즈를 다시 씌우면서 접합부위를 보았는데, 딱지가 앉아 있더군요. 신기하죠? 2주 동안 생기지 않던 딱지가 생기다니.. 이제는 새살이 조금씩 올라올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물론 추후에 뭔가 일어날 것을 염려하신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후에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았던 수술들은 김지훈 환자분의 수치와 비슷해요. 만약, 만에 하나라도 합병증이 생기더라도 저희 의료진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저희 병원은 신생의료원이라 더욱 성실히 진료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그렇군요…”
그러고는 의사는 간호사를 향해 전문의료용어로 뭔가 지시하며, 곧장 병실을 옮겨도 되겠다는 말을 했다. 그 이후로 지훈은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
신생병원의 일반 병실은 사람이 적었다. 6인실에 지훈 외에 두 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둘 다 지훈의 침대 건너 편에 있었다. 창가쪽에 자리를 잡고 있던 젊은 여자와 병실 문에 가까운 지훈의 앞침상에 있는 조금 나이든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지훈에게 말을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걸어왔다.
“이제 바깥 날씨가 좋군, 산책이나 가볼까나.. 아.. 총각~”
“…”
아저씨는 지훈의 침상 앞에 있던 환자정보를 보았다.
“아, 총각~~이름이.. 김지훈이구만~”
“저 말씀이세요?”
“그래요. 이 병실에 총각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당신 밖에 더 있겠소?”
“무슨 일이신가요?”
“나랑 산책갈 수 있겠소? 몸을 보아하니, 조금 무리일 것도 같긴한데…”
“몸이 약간 찌뿌둥하긴 하네요. 같이 가실까요?”
이름 모를 아저씨는 지훈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최대한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지훈은 이를 알았지만, 아저씨가 왠지 모르게 싫었다. 별로 같이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자신의 몸을 위해 나가고 싶기도 하고, 같은 병실을 쓰기도 하니 예의상으로 아저씨와의 동행을 허락했다.
아저씨가 먼저 슬슬 걸어 나갔고, 뒤이어 지훈은 일어나서 수액통을 바퀴가 달린 수액통 거치대에 걸었다. 창가에서 항상 밖을 보던 여자 환자가 지훈을 향해 힐끔 쳐다 보았고, 지훈은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지훈은 그 시선으로 우리의 대화와 행동을 유심히 듣으며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
밖은 바람이 잔잔하게 불고 있었다. 지훈은 오른쪽 뺨으로 불어오는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아저씨를 뒤따르고 있었다. 아저씨는 벤치의 왼쪽 끝에 가서 앉았다. 지훈은 비어있는 자리 중 끝에 앉았다.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후~~ 역시 피지말라고 할 때 피는 담배가 꿀맛이야~ 그렇지 않은가? 허허허”
‘뭐지? 환자가 담배를 피다니… 그래도 되는 건가? 그건 그렇고 담배 냄새가 아주 역하군…’
지훈의 표정이 자신도 모르게 잠시 찌푸려 졌다가 금세 되돌아 왔다. 자신도 담배를 피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아저씨에서 풍겨 오는 담배 냄새가 역했다.
“아저씨~ 담배 피면 주변에게 피해주지 않나요? 그것도 그렇고 아저씨 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병이 낫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될텐데… 아 저도 흡연자여서 아저씨 심정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당분간 끊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저씨라니? 하하하 아 내 소개도 안했군. 난 조성일이라고 하네. 형님이라고 불러줘~ 허허허~”
지훈은 성일의 뻔뻔함이 맘에 들지 않았다. 거의 처음보는데 형님으로 불러달라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더 나빠졌다.
“아…네…”
“그나저나 지훈 동생을 이렇게 밖에 부른건, 우리 병실에 있던 「그 여자」 때문일세.”
“네?”
“그 여자 말이야. 창가에 있는 환자말일세. 최연희라는 여자인데.. 도통 말이 없어… 말동무도 하고 싶어서 말을 몇 번 걸어봤는데, 그때마다 말대꾸도 없이 서슬퍼런 눈으로 날 보더군. 째려 보던 눈이 장난이 아냐.
또 한번 말을 걸었네만 그 여자가 물건을 휙 던지며 비명을 지르며 ‘지랄발광’을 하더군. 그 이후로는 말을 절대 걸지 않아.. 휴… 여튼 그땐 정말 큰 일 나는 줄 알았어..”
“아저씨가 뭔가 잘못한 건 없구요?”
성일의 눈에서 불이 났다.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 기분 나빴으리라.
“아이구~ 그냥 말동무하려고 말 걸었는 것 밖에 없네! 어디 조카같은 딸래미를 어떻게 하려는 수작이였으면, 나는 벌써 감옥에 있겠지!!”
단호한 표정으로 일순간 변했던 성일이 이내 표정을 풀었다.
“아참 그 이후로, 혼잣말로 뭔가 궁시렁 궁시렁 하던데, 뭐라고 하더라…”
“뭐라고 하던가요?”
“그게 뭐 고로쇠이니, 뭐니 하던거 같더구만…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던데… “
“고로쇠? 흠… 그래요? 고로쇠 수액 말하는 건가? 그게 이상한가요?”
“한두번이면 상관없지. 근데 그 단어를 너무 자주하니깐… 휴… 자네도 말 함부러 걸었다가, 된 통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게나. 이 말 하려고 이렇게 불렀네. 그 여자 멀리하는게 좋을 거야.. 쩝..”
그는 대화하느라 거의 다 타버려 짧아진 담배의 끝자락을 빨아당겼다. 그러고는 불씨를 끄고, 담배 꽁초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지훈은 속으로 ‘누가 누구한테 조언질이야.. 확때리고 싶네!’라는 생각이 배에서 올라왔다. 그러고는 약간 섬뜩하지만, 그런 생각에 동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
그날 저녁, 성일은 진통제와 수면제를 처방받고 일찍 잠들었다. 성일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지훈은 그 소음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가뜩이나 아픈 수술 부위가 저 소음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지훈은 코골이에 부아가 치밀어 올라, 기어코 성일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점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 입을 찢어버리던지 코를 찢어버리던지 하고 싶다. 저기에 양말이라도 처박아 버릴까?’
지훈은 폭력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왜 이럴까? 이런 거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생각이 폭력적으로 흘러가지? 얼른 자야겠다. 자면 괜찮아질꺼야.’
지훈은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몇 시간이 흐르고 고요한 새벽이 찾아왔다. 지훈은 수술한 부위에 아픔을 느끼고 깨어났다. 몸은 가위가 눌린것 마냥 움직이지 않는다. 눈을 감은 채로 간호사를 불러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수술 부위가 계속해서 쿡쿡 쑤셔온다.
‘가위 눌렸는건가? 아, 아퍼라… 간호사를 불러야되는데… 근데, 잠깐.. 응? 코골이 소리가 안나네.. 코골이를 그쳤나보군…’
지훈은 아저씨를 확인해보려, 눈을 뜨자 자신의 앞에 검은 그림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 그림자에서 나온 손이 자신의 배를 주물럭거렸다. 손은 배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그곳에서는 검붉은 액체가 울컥울컥 솟아오르고 있었다.
‘헉!!!!!’
지훈은 꼼짝할 수 없었다. 심지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창에서 밖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 빛으로 그림자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확인 할 수 있었다.
최연희, 그녀였다.
‘제발.. 이게 가위라고 말해줘!’
지훈은 눈알을 돌려, 연희의 자리에 아무도 없음을 보았다. 다시 한 번 눈알을 굴려, 그림자 너머에 있는 성일을 발견했다.
입에 양말을 처박은 채,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고 있는 성일…
그때 앞에 있던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안 죽일거라면, 내 신장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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