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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0497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4
    조회수 : 653
    IP : 49.244.***.111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6/09/06 12:45:37
    http://todayhumor.com/?panic_90497 모바일
    [공포 심리] ROOM - 3. 끝
    옵션
    • 창작글
    ========================================================================================
    2화 : ROOM - 2. 똑똑똑 http://cafe.naver.com/sichunji/697
    (이미 올린 글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이유로 부득이 카페링크를 겁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오유 공게에 올린 글은
    베스트에 올라갈 경우 수정이 안되더군요.) 그리고 오유에 필터링 된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또한 부득이 *표시
    를 하였습니다. 수정되지 않은 원글은 링크를 타고 가면 있습니다.

    경고 : 이 글은 극사실적인 공포, 두려움, 고통의 반복적 묘사로 인해 읽는 분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하지만, 마지막 회까지 함께 하신다면 새로운 방식의
    글 읽는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부족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 아카스_네팔 드림
    =========================================================================================



                                          ROOM   
                                    

                                                                      Akash-nepal

    3. 끝



    똑...똑...똑

    분명 캐비닛 뒤쪽 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아니 자세히는 벽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 니라 벽에 붙어있는 캐비닛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무덤덤하게 천천히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활짝 열려있는 캐비닛을 울리며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온통 비정상적인 것들밖에 없는 방안이지만 새로운 공포는 다시 온 몸의 털을 곤두서게 하고 있었다. 동시에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났다.

    "쉬이이익 척!"
    "철컥!"
    "과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누구야?

    순 간 소리가 뚝 끊겼다. 그리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캐비닛 앞에서 얼음처럼 굳어있는 몸이 점점 돌로 변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이미 공포와 호기심이 범벅이 되어 불같이 화끈거리며 의식을 자극하고 있었다. 등줄기에 땀이 몇 줄기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아까부터 방안이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바닥에 붙어버린 것 같은 발걸음을 떼어 내어 한 걸음 앞으로 옮기려는 찰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쾅! 쾅! 쾅!

    이번에는 캐비닛이 부서질 듯 두드리는 소리.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가리를 벌린 채 나를 향해 열려 있는 캐비닛 안의 옷걸이와 혁대가 왈칵왈칵 흔들리고 있었다.

    아...저 소리가... 나를 부르고 있구나. 어쩔 수 없다. 난 저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소리는 점점 더 포악한 소리로 날 못살게 굴 테니까.  

    처...ㄹ...컥.
    열려 있는 캐비닛 문을 닫고, 양팔을 벌려 캐비닛 양쪽 모서리를 꽉 움켜잡았다.
    철판이 부서져라 두들기던 소리가 딱 멈췄다.
    드르륵.....드르륵....캐비닛이 벽면과 틈을 만들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캐비닛이었지만 마치 바닥에 본드 칠을 해 놓은 것처럼 움직임이 둔했다. 등짝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끄응......!

    벽 면에 붙어 있던 캐비닛 모서리를 오른손으로 잡고 온몸의 힘을 왼쪽으로 몰아붙여 용을 쓰길 몇 차례, 드디어 녀석을 벽에서 완전히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이제 서서히 몸을 세우고 캐비닛 뒤쪽을 확인할 순간이다. 하지만 이미 캐비닛 모서리를 쥔 오른손에서 이상한 감촉이 왔다. 지금 무엇인가 내 오른손을 잡고 있다.

    으아아악!

    반사적으로 손을 빼고 뒤로 벌렁 나자빠져 바닥에 넘어졌을 때 나는 비로소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통해 기분 나쁜 감촉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바닥에 넘어진 채로 사시나무 떨 듯 떨며 뒷걸음질 치면서도 제멋대로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캐비닛 뒤에는 전신거울이 붙어 있었고... 거울 속엔 산발을 한 여자가 나에게 손을 내뻗고 있었던 것이다.

    "날 꺼내줘. 도와줘..."

    목소리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너....너는..? 니가 왜..아니 이게 어떻게 이럴 수가....?

    말이 자리를 못 잡고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거울속의 여자는 바로 나의 누나였다.
    거울 속에서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버둥거리는 여자의 모습을 보다가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거울이 향하고 있는 방안 어느 구석에도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역시 거울 속에 있었다.

    "날 좀 꺼내줘. 날 좀 도와줘..."
    너....너...왜 거기에 있어? 어?
    "니가 날 여기에 넣었잖아...그러니까 니가 날 꺼내 줘야 돼. 어서..."
    뭐..뭐라고? 내가 왜? 근데 어떻게 해달라는 거야? 어떻게 하면 되냐고?

    순 간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봤자 거울속이지만 마치 그 손은 거울을 뚫고 나오려는 듯 가득 벌린 손가락 끝을 나를 향해 뻗고 있었다. 문득 아까 캐비닛을 잡았던 오른손을 타고 전해져 왔던 감촉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몰래 거울 면을 향해, 팔을 조심스레 뻗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이 거울에 닿으려는 찰나 그녀의 손이 내손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고 그 순간 난 나도 모르게 내 손에 잡힌 그것을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거울 안은 텅 비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왔구나"

    이번에는 거울이 아닌 밖에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헉..니...니가 왜 여기 있어?
    "니가 만들어준 집이니까."
    뭐라고? 웃기는 소리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도대체? 근데 여기 어디야? 엉?
    "어차피 넌 여기에 올 운명이었어. 오랫동안 니가 오길 기다렸지..."
    웃기지마! 내가 왜? 그런데..너...여기 있었단 말이야? 거..거울 속에?
    "아니. 여기도 있다가 저기도 있다가 하지. 이 방안이라면 어디든지."
    그런데 왜 꺼내달라고 했어? 도와 달라면서?
    "그건 이번에만 그런 거야..."
    아니 무슨 말이야 그게!

    도무지 알 듯 말 듯한 소리를 늘어놓는 그녀 앞에서 난 나오는 대로 짜증을 쏟아냈다.
    이란성쌍둥이.
    그 렇다. 그녀는 몇 초 차이로 내 인생 바로 앞에서 지독히도 나를 괴롭혀 왔던 인간이다. 대부분의 쌍둥이가 그렇듯 그녀는 나에게 '누나'가 아닌 '야'나 '너'였고, 우리는 다른 자식들처럼 장난치고 싸우고 화내고 울고 웃고 하면서 나이를 먹으며 자랐다. 화목하지 못했던 집안 분위기를 어린 나이에도 알았던지 우리는 틈만 나면 밖으로 나돌았다. 이상할 정도로 우리는 취향이 서로 비슷했는데 예를 들면 흙장난하는 거 좋아하고, 물이라면 질겁을 하는 것도 닮았고, 강아지 고양이 같은 동물을 유독 좋아해서 항상 동네 개들 꼬랑지를 쫓아다니던 것도 닮았었다. 집에 정붙이지 못하고 어떡하든 밖에서 시간을 때우고 해가 지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집 대문을 빼곰히 비집고 들어오다가 어머니한테 야단을 맞으며 저녁밥상을 대하던 기억도 아마 같을 것이다. 마음의 반쪽을 나눠 가진 것 같은 그 느낌, 서로를 의지하다 못해 함께 있어야 마음이 편했던 그 시절도 철이 들면서 점점 금이 갔다. 흔하디흔한 드라마 스토리처럼 말이다.
    그녀에게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국민학교 일학년인가 이 학년 때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질을 하다가 누나가 뒤로 자빠진 사건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부리나케 마당으로 나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고, 어머니는 누나를 가운데 태우고 같이 병원으로 갔었다. 그 후로 그런 일은 때때로 반복되었고 난 그런 누나가 점점 싫어졌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런 누나'가 아니라, 그런 일이 있고나서부터 점점 삐뚤어지는 누나의 모습이 싫었다는 것이다. 누나의 발작은 자라면서 점점 더 심해졌고 어찌어찌해서 중학교는 마쳤지만 고등학교 3년은 결국 마치지 못하고 어느 날 집을 나간 것으로 그녀의 험난한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사고 친 당신 자식 경찰서에 있으니 찾아오라는 경찰의 연락이 그녀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초반은 그렇게 그나마 양호했다. 일하던 술집 돈 떼먹고 달아나다 잡힌다든가,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며 돈 뜯을 상대를 물색하다가 뒤통수 맞아 경찰서 신세를 진다든가 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가끔씩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살아 있음을 알리던 그녀가 소식이 완전 두절 된 지 이삼년 째 되던 어느 날, 경찰과 병원으로부터 동시에 연락이 왔다.
    성치 않은 몸뚱이로 고등학교도 못나와 시작한 사회생활은 그녀의 병을 점점 더 깊게 만들었고, 결국 마지막 배터리가 소진되듯 발작에 발작을 거듭하다가 쓰러져 있는 것을 순찰하던 경찰이 병원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그게 벌써 6년 전이다. 어머니와 내가 병원을 찾아가 보호자 동의 도장을 찍고 그녀를 병원에 보낸 것이 말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난 내 맘속에서 그녀를 박박 지우면서 세상을 살아왔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지금까지 살아 왔던 것이다.

    "아니야...그게 아니라니까... 난 니가 생각하는 그런 병으로 고생한 것이 아니야. 이 방안에서 내가 뭘 했겠니? 난 날 들여다보기만 했지. 5년인가? 아니 6년인가? 암튼 니가 나를 이곳에 보낸 그날부터 난 이곳에만 있었어. 물론 처음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분노하는 것밖에.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은 느낌이 어떤 건지 알기나 해?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말이야.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이 좀 가라앉을 때면 나를 돌아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지. 마치 명상하듯 말이야. 그러길 벌써 오년이야. 그래서...그래서 알게 되었지. 내 문제는 병 때문이 아니라는 걸."

    마치 내 생각을 꿰뚫어 보듯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기는커녕,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너도 말했었지? 악몽을 꾼다고? 너무나 사실 같아서 괴롭다고 말이야. 어쩌면 지금의 상황도 언젠가 니가 꾸었었던 꿈일지도 몰라. 아마 확실히 그럴걸?"
    그 래서 니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좋아...니가 그 많고 많은 사고를 치고 허구한 날 집으로 걸려오던 전화들...애써 달래고 달래서 집으로 데리고 오면 며칠 안가서 없는 돈 다 깨먹고 온 집안 들쑤셔 놓고 다시 나가버리던 그 모든 게 병 때문이 아니라고 해. 좋아 그럼 뭣 때문인데? 또 무슨 핑계를 댈 거야? 

    태평스럽게 늘어놓는 그녀의 말에 욱하고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핑계?...너도 나와 같아. 다만 보이는 것이 다를 뿐이지. 넌 운이 억수로 좋았던 거고, 난 운이 지질이도 나빠 이곳에 있을 뿐...하..하...하하하! 하하하!"

    그녀의 웃음소리가 방안의 공기를 통해 퍼져 나갔다.

    "으하하하! 하하하학학..하하하하!"

    데굴데굴 구르면서 한참을 웃는 그녀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녀 생각이 옳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그만해! 이 미*년아! 무슨 지랄이야 이게!
    "으하하하!....으....으.....흐....흑..."
    너...진짜 미쳤구나..너?..
    " 부끄럽지? 이러는 내가 부끄럽지? 어디 가서 누나있다는 말도 안한다며? 어디 가서 콱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지? 누나라는 존재가 인생에 가장 큰 암덩어리라고 머릿속에 박아놓고 살고 있지 너? 그런데....그런데 그거 한번 생각해 봤니? 내가 얼마나 억울할지...내가 원해서 이렇게 됐냐고 시발! 어...? 그거 한 번 생각해 봤어? 세상에 모든 새끼들이 날 손가락질 하고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때의 엿 같은 기분 생각해봤냐고? 아아아아악! 내 인생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냐고 이 새끼야! 내가 받은 것의 백분의 일만 너한테 줘도 넌 죽어 이 새끼야 알아? 아냐고! 아아악!"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속사포처럼 토해내는 절규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바탕 난리를 친 후 그녀는 기진맥진 했던지 한참을 꼼짝을 않고 그렇게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그만해. 그만하라고!

    가만히 있던 그녀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벽을 찾아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가까스로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만하라고? 흐흐...이제 시작인데? 이제 뜨거워질 거야. 벌써...서서히 뜨거워지지? 흐흐...이리와 거기 멀뚱히 서있지 말고...옆에 앉아봐...재미있을걸?"

    정 말 방안 공기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군데군데 방안 곳곳에서는 칙칙 소리를 내며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서서히 숨쉬기가 답답해져 왔다. 어쩐지 아까부터 덥더라니.... 방이 서서히 달궈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넌 알고 있지? 왜이래 이거?
    "니가 내 옆에 앉을 때까지 아무 말도 안할 꺼다."

    별 수 없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숨쉬기가 답답하니 말싸움도 귀찮아졌고 결국 그녀가 기대앉은 옆에 자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보일러가 고장 난 한증막 같은 이 상황을 그녀는 익숙한 듯 가만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미친 듯 발광하던 그녀의 모습과 너무나 딴판이었다. 밀폐된 방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라 턱까지 숨이 차는 데도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평온했다.

    "저기 앞을 봐."

    그녀는 그네가 있는 맞은편 벽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있어?
    "벽에.."

    그네 사이로 벽이 보였다. 피식거리는 수증기소리 사이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비오기 직전 하늘에서 구릉거리는 천둥소리 같은 기척이 약하게 맞은편 벽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벽 에 칠해놓은 하얀색 페인트가 가루가 되어 비처럼 한꺼번에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어 페인트아래 감춰져 있던 거대한 철판이 드러났다. 역시 이 방은 철판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 그 철판이 밖에서부터 달궈지고 있는 것이다.

    허헉!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어떻게 좀 해 보라구!
    "넌 왜 그렇게 호들갑이니? 괜찮아...그래...이번에는 어디까지 올지 한 번 보자. 쓸데없는 짓이긴 하지만 말이야. 역시....오늘도 똑같군.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무슨 말이야? 그게? 헉?

    맞은편 벽이 서서히 일그러지며 선명한 알파벳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T...."
    "O...."
    "P...."

    그녀가 한마디씩 끊어 중얼거릴 때마다 철판으로 만든 넓은 벽이 마치 습기 먹은 페인트가 일어나듯 융기하며 글자 하나씩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만들어진 글자는 'TOP' 세 글자였다..

    탑? TOP...저게 무슨 의미....

    하 지만 난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맞은편 벽이 갑자기 종잇장 구겨지듯이 찌그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천정 모서리부터 서서히 찌그러지면서 벽 가운데 선명한TOP라는 글자들을 집어 삼키더니 철판의 벽은 방을 찌그러뜨리며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어어어...저거봐? 어어 어떡해야 돼? 어떻게 되는 거야?
    "가만히 지켜봐. 바보들이지만 죽이려고 저러는 건 아니니까..."
     
    끼이이이이....광과과과광....끼이익

    영 화에서나 보던 CG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압착기에 눌려 점점 휴지조각으로 변해가는 폐차장의 차 안처럼, 방은 제멋대로 찌그러지면서 맞은편 벽에서부터 우리가 앉아 있는 쪽을 향해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거인이 발걸음을 쿵쿵거리며 옮기듯이 방은 기괴한 박자를 타며 원래의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천정의 창문은 쇠창살이 빠지며 이미 사라졌고, 아까부터 계속 흔들거리던 그네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천정의 형광등이 우수수 방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박살이 나고 있었다.

    어아아악! 누...누나 우리 이제 죽는 거야? 아악!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왜 '너'가 아닌 '누나'였는지는 모르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 비겁하게도 난 옆에 있는 그녀에게 기대려 했던 것 같다. 모질게 살면서 항상 다짐했던 말이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라'였건만.

    과아아아앙. 과아아아앙.
    철컥. 철컥.
    괘종시계와 문이 요란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있을 테지만 육중하고도 기괴한 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구과과과광...

    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어쩔 수 없이 이것이 끝일 테니까 발버둥 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만약 이 방밖에 누가 있더라도 그 누구도 우리를 구해줄 의사가 없음을, 지금은 절망조차도 사치임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손을 내미는 것뿐. 나는 나도 몰래 왼손을 그녀의 오른손에 포갰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
    .
    .
    .
    .
    .
    .

    슬그머니 손을 다시 뺀 것은 심장을 조여오던 소리가 멈춘 후였다. 천천히 실눈을 떴을 때 확인한 것은 맞은편 벽이 형편없이 찌그러진 채 이삼 미터 앞까지 와 있다는 것이었다.

    "야...너도 무서우니까 어린애가 되는구나. 하하..."
    우끼지마! 그런데 .. 이거 어떻게 할 수 없어? 이러다 쪄죽겠어. 헉..헉.
    "걱정 마. 이제 서서히 가라앉을 테니..."

    애써 숨을 가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공간마저 좁아져 버린 방안의 온도는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점점 치솟고 있었다. 줄어든 공간만큼 숨이 턱턱 막히는 공기의 밀도도 더 높아졌다. 칙칙 거리며 솟구치는 수증기가 숨을 고를 때마다 코로 입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
     
    "...왜...왜 이러지? 지금쯤이면 온도가 떨어져야 하는데?...호..혹시.."
    왜 뭐가? 뭐가 잘못된 거야?

    그녀의 표정에 당황스러운 빛이 가득했다.

    "뭔가..잘못된 것 같아.."
    뭐....뭐라고?
    "니가...니가 오면서 뭔가...틀어졌어. 헉...헉.."
    ...

    더 이상 숨쉬기가 어려웠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너한테 줄 것이 있는데. 어...어떡하니? 허..헉..."

    나의 왼손에 그녀의 오른손이 와 포개졌다. 꺼져가는 의식을 붙잡고 난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물...물을...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모든 것이 끝이 났다.


    <계속>
    아카스_네팔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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