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등골브레이커다. 엄마와 아빠가 벌어온 돈, 그들이 허리 굽혀 일해 얻은 노동의 결실을 착취한다. 그 영향인지,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고 나는 뱃살만 피둥피둥 쪄가는 돼지 꼴이 돼가고 있다. 오늘도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아빠가 가진 집에서 나는 게임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집에 앉아서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선 게임만 했던 것 같다. 나는 컴퓨터 부팅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내가 세상에 값어치 있었던 때를 떠올린다.

26살, 대학을 간신히 졸업했지만, 지방대 생이라 그런지 몰라도 면접에서는 번번히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다. 아니, 면접까지만 가도 다행이었다. 서류를 넣은 데는 셀 수조차 없었다. 눈높이를 낮춰라, 중소기업도 희망이 있다. 뭐, 뉴스나 신문에서 떠들어대는 그런 말들, 그 시점에선 내가 진짜로 믿었는지 혹은 믿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정말로 눈높이를 낮췄고 아주 조그만 회사에 첫 출근했다.

직급이 분리된 것도 아닌, 단순 사무직. 실제로 하는 일은 아침에 이사님 뒷수발, 재롱떨기, 밤에는 노래방에서 분위기 띄우기, 그러면서 야근은 사람 죽일 듯이 많았다. 으아, 도저히 못 버티겠다 생각하면서도 레드불, 핫윙스 다 먹으며 버텼고 간신히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사장은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조금 기다려달라고 그러는데, 내가 돈 벌자고 취직했지 회사에 젊음을 바치기 위해 취직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그렇게 힘들면 그따위 회식 좀 그만하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마땅히 갈 데도 없었고 6개월을 일했다. 그동안 월급은 할부라도 끊은 양, 주별로 나누어져 들어오기도 했고, 그것마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고 그랬다.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어 일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월급은 두 달 치가 밀린 상태였다. 그걸 받는 데 다시 3개월이 걸렸다.

등신같이 노동부 신고 같은 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꽤 소심한 편이니까. 그 일이 벌써3년 전 일이다. 그 이후로 다시 구직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뭐 이렇다.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오직 우리 엄마와 아빠만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받아주고, 그래서 나는 등골브레이커 짓을 할 수밖에 없다.

한창 게임 속에서5:5한타가 벌어지려고 하는 그 순간, 시계 용도로만 쓰이고 있는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아, 뭐야. 나는 빨리 끊어지길 기다리며 r – q – w 콤보를 넣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뚝, 그럼 그렇지. 이 게임 우리가 이길 수 있잖아. 저 새끼들 피가 내 기술에 저렇게 다는데, 못 이길 이유가 뭐란 말이야! 그 순간 끊어진 줄 알았던 핸드폰이 울렸고 나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게임 상의 캐릭터가 죽고 말았다. 모니터가 회색으로 변했다. 게임 상의 캐릭터가 죽어서 부활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는 방해꾼에 대한 악감정을 담아서 말이다.

“여보세요.”

“야, 민규! 나 기억하냐? 잘 지냈어? 와, 오랜만이다.”

이게 누구지, 머릿속을 떠올려봤다. 내 이름을 아는 걸 보니 내 지인인 것 같긴 한데, 목소리가 뭔가 낯이 익은 것 같으면서도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확실한 건 번호도 저장된 게 아닌 걸 보면 가까운 사람은 아닐 것이었다.

“죄송한데 누구시죠?”

“야, 실망이구만. 내가 그렇게 회사 생활 잘 챙겨줬구만. 나 박대리야.”

“아!”

박대리, 전 회사 시절 내 선배였다. 말을 잘하고 똑똑한 친구라고 사장이 늘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입사하고 딱 3개월, 그는 미래가 없는 회사에 더 이상 못 있겠다며 퇴직했다.

“아는 무슨, 그래, 요새 뭐하고 지내?”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아빠 엄마 등골을 흡혈귀마냥 빨아먹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대답을 잠시 망설이는데 그가 다시 말했다.

“혹시 아직 구직 중이면 내일 면접 볼 생각 있어? 사실 우리 협력 업체 중에 괜찮은 회사 하나 있는데, 이력서 오늘 보내고 내일 오전에 면접 보면 돼. 거기가 지금 신생이라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어서, 하하. 그럼 면접 준비 잘하고. 사무실 위치는 내가 문자로 보낼 테니까. 잘 돼서 다시 보자. 거기 내가 관리하는 업체니까. 아 다시 급한 일이 생겨서 내일 면접보고 나서 연락줘.”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뚝 끊어졌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았는데 기회가 사라졌다. 나는 인터넷에 그가 보내준 업체 정보를 검색했다. 신생이라고 하는데 제법 유명한 업체인 듯, 떠오르는 강소 기업이라고 사장 인터뷰가 올라가있는 신문도 있었다. 대박이다. 결코 허접한 업체가 아니었다.

박대리, 지금은 직책이 어떤지 모르지만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다. 이 은혜는 깊이 간직할 것을 다짐했다. 자기소개서랑 이력서를 문자에 남겨진 주소로 보냈고 이제 남겨진 일은 면접 준비였다.

요즘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유행하고, 어떤 대답이 잘 먹히는지 연구를 해야했다. 가능하면 회사의 업무와 연관 시킬 수 있는 거면 더 좋았다. 유비무환이니까. 아, 그런데 방금 하던 게임만 한 번 더 하고 말이다.

끝이다.  결국 나는 게임을 평소처럼 새벽까지 하고 말았다. 아침에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부랴부랴 셔츠에 양복을 챙겨입었다. 배가 너무 볼록하게 튀어나와 셔츠사이로 삐져나왔다. 거울을 보니 볼품없었다. 어쩌다 이런 아저씨가 되었을까. 그나마 알람을 맞춰놓아 제 시간에 일어나 준비를 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무실은 서울 역세권에 있었다.  으리으리하게 번쩍이는 빌딩으로 들어가니 내 자신이 굉장히 초라하고 볼품없이 느껴졌다. 면접 대기실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이는 내가 가장 많은 것 같았다. 꽉 쥐고 있는 손에 땀이 가득찼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어 나는 두 명의 인원과 함께 면접실로 들어섰다. 여러가지 질문이 이어지고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지적인 이미지의 면접관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민규 씨는 XX상사에서 근무 후, 3년간 경력이 없는데 그동안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요?”

아뿔싸, 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3년간 내가 뭘 했는지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면접관이 원하는 질문은3년간 내가 해왔던 경력이나 미래를 위한 활동 등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버섯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내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버섯 농장이요? 하하, 어디 쪽이시죠? 그런 내용은 못 보긴 했는데 흥미있네요.”

“그게······ 소환사의 협곡에서요.”

그 순간 풉, 같이 들어온 면접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나에게 질문을 던진 면접관은 무슨 소리인지 당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앉아있었다. 간신히 옆에 같이 들어온 또 다른 사람이 귀뜸을 해주자 그제서야 면접관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고 귀까지 새빨갰다.

“재치있는 대답이시네요. 잘 알겠습니다.”

그 질문을 끝으로 더 이상 나에겐 아무런 질문도 없었다. 나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고개를 주억거리고 끝날 때는 그저 허리를 숙여 나오는 것말고는 할 수 없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 그게 나다. 애써 주어진 기회마저도 이렇게 놓쳐버리는 새끼다. 그까짓 게임 조금만 더 하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이 꼴이 났다. 한심하고, 또 한심했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소주 두 병, 그리고 라면을 샀다. 면접을 보기 전에 분명 만 원이 있었는데,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들어오기 전 편의점에 들리니, 손에는 겨우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만 들려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박 대리가 면접 잘 봤냐고 문자가 와있었다. 나는 핸드폰 전원을 껐다. 배가 고팠다. 등골브레이커답게 다시 밥이나 축내며 살아야겠다. 라면만 먹으면 배가 덜 차니 밥솥을 봤다. 밥이 없었다. 나는 쌀통을 다시 뒤졌다. 으아, 이게 뭐야. 쌀통 안에 검은 점박이마냥 쌀벌레가 가득 들어차있었다. 깜짝 놀라 나는 쌀을 통째로 버리려다가 멈칫했다.

생각해보면 저것들도 살자고 저러는 게,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냥 라면에 소주만 들이켰다. 쌀 대야에 쌀을 옮겨담아 방에 뒀다. 내일 아침에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끊임없이 쌀벌레를 응시했다. 쌀벌레, 쌀을 좀먹는 벌레, 나는 엄마가 해준 밥을 좀먹는 벌레, 나도 그럼 쌀벌레가 아닐까.

두 병이 빌 때쯤 간만에 움직였던 몸과 눈이 쉬고 싶다고 비명을 질렀다. 그래, 자자. 차라리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웬지 모르게 가벼웠다. 하지만 평소 침대에서 고개를 들면 보이던 볼록 나온 배와 팔과 그리고 다리가 없었다. 내 밑으론 새하얀 쌀들이 넓게 깔려있었다. 마치 바다같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검은색 쌀벌레가 가득했다. 으악! 나는 그제서야 내 신세를 깨달았다. 내가 쌀벌레가 되고 만 것이었다. 방금 비명을 지른 것 같은데 당연한 것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 항상 밥을 차렸다. 어제는 아들이 오랜만에 면접을 본다고 했는데, 잘 봤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며 새벽녘 밥을 지으러 눈을 떴다. 쌀통을 바라보니 쌀이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어제까진 오늘 먹을 분량의 쌀이 있었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아들이 자는 방을 보니 문이 열려있었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섰다. 먹다 남은 라면 그릇과 소주 병은 바닥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져있는데,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 바닥에 쌀대야가 있었다. 엄마는 쌀대야를 집어올렸다. 그 쌀 위로 검은 쌀벌레가 가득했다. 그래서 아들이 버리려고 했구나, 엄마는 생각하며 쌀벌레 들어간 대야를 싱크대에 놓았다. 쌀벌레가 들어갔어도, 물에 불리고 씻어 먹으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엄마는 싱크대 물을 켰다. 쌀벌레가 가득한 쌀사이로 물이 스며드는 것을 보며 다른 음식들을 준비하려 냉장고를 열었다.

“그나저나 새벽녘부터 이 녀석 어디 간 거지? 면접은 잘 봤으려나?”

어느새 쌀대야엔 물이 한가득 넘쳐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