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이였어요.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날.
빼빼로 줄 사람도 없고 받을 일도 없는 남자 둘이서 술 한잔 하기로 했어요.
메뉴는 긴거. 빼빼로 처럼 길고 얇은거. 그리고 색깔도 갈색 ㅋㅋ
지글지글 양꼬치 ㅋㅋㅋ
아 맛있어.ㅋㅋ
보고있나 커플들?
우린 치아건강에 해로운 초코릿 발린 빼빼로 따윈 먹지 않아. 서로에게 권하지도 않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고기.고기를 먹어.
잠깐의 위꼴사입니다.
한병 두병 술도 비어가고 적당한 술기운에 기분좋게 이제 집으로 ㄱㄱ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맞은편에 앉은 여자 두명이서 엄청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어요.
여기서 그 여자의 목적지인 ㅁㅁ역을 우연찮게 듣게 되었고 이 시끄러움이 우리집 가기 전까진 계속 되겠구나 싶었죠.
그러다가 제 일행도 환승해서 떠나가고 그 여자분 일행도 떠나면서 이제 지하철은 조용하게 되었어요.
그 여자분은 이내 기둥에 기대어 잠들었고 나도 이어폰끼고 음악들으면서 집에 빨리 가서 어제 다운만 받고 못본 '응답하라'나 봐야지 싶었죠.
어느덧 지하철은 ㅁㅁ역에 도착했는데 여자분이 안깨고 계속 자더라고요.
깨울까 싶었는데 사람들 많은데 말걸면 작업거는거 같기도 하고 괜한 오지랖이다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우리집 앞 역에 올 동안 안일어나는거에요.
지하철도 거의 막차시간이고 이대로 가다간 종점까지 졸면서 갈 기세.
우리집이 지하철역 사이에 있어서 다음역에 내려서 걸어야지 생각하며 오지랖 한번 떨어서 툭툭 건들여서 깨웠죠.
"여기 ㅇㅇ역인데 ㅁㅁ역간다고 안하셨어요?"
"우우우ㅇ웅@%$^"
뭐 횡설수설하면서 안내린다고 하더니 잠깐 정신이 돌아왔는지 같이 내리게 되었어요.
알고보니 맨정신이 아니였고 술먹어서 정신이 혼미했던거 같네요.
이제 착한일 한번 했다고 히히거리면서 계단올라가는데 뒤를 돌아보니 올라오는게 안보이는거에요.
여기 지하철은 가운데가 선로라서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려면 밖으로 나와서 들어가야되는데 말이에요.
다시 계단내려가보니 기둥에 기대서 잠든상태.ㅋㅋㅋㅋ
또 한번 깨우고 올라가서 개찰구로 카드찍어서 나왔는데
이번엔 카드불량인지 지갑에서 하나하나 찍으면서 계속 못나옴 ㅋㅋㅋ
지갑속에 있는 모든 카드 다 찍어봐도 인식불량.ㅋㅋㅋㅋ
결국엔 개찰구 무단통과해서 나오고 반대방향 개찰구도 무단통과 ㅋㅋㅋㅋㅋㅋㅋ
술버릇 참 ㅋㅋㅋㅋ
비틀비틀거리는게 신경쓰여서 다시 카드찍고 저도 따라가봤죠. 걷기도 귀찮고 다시 집 앞 역으로 한코스 타고 가자.
그분은 정신이 멍한지 폰 떨어뜨리고 난리.ㅋㅋㅋ
이제 반대방향 지하철이 오고, 각각 맞은 편에 앉았죠.
나는 한코스만 되돌아가서 집에가서 발씻고 응답하라 보면 되고
그분도 몇분 더 걸릴뿐 집에 무사히 들어갈수 있는 상황.
근데 이대로 끝나면 이야기거리도 안되죠.ㅋㅋ
앉은지 30초정도 지났을까..
여자분 입에서 뭔가 흘러나오더라고요.
마치 이런느낌. 막 영화에서 장풍 한대맞고 입에서 피흘리듯이 물이 주르륵..
아따.ㅋㅋㅋ 이젠 침까지 흘리네 싶었는데 갑자기 볼이 팽팽해지더니......
오늘 저녁에 먹은걸 다 보여주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삽시간에 지하철은 모세의 기적을 일으키고
주변사람들은 싹 빠져나가고 나만 남더라고요 ㅋㅋㅋ
여태 20여년 살면서 내가 토한적은 많지만 남이 하는건 첨보는데...
이야~ ㅋㅋㅋㅋㅋ
그것도 정면에서 ㅋㅋㅋㅋㅋㅋ
멘붕이였지만 술을 먹어선지 저 스스로 이상한 책임감 같은게 들면서
아! 이여자 내가 책임지고 집까지 데려가야겠구나 싶었어요.
진짜 생판 남인데 묘했어요.
다행히 사고범위는 좁아서 피해본사람은 없었고
사고범위와는 멀리 떨어져서 그냥 앉아있던 사람들에게 휴지와 물티슈를 지원받고
다가가서 사건 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어요.
아마 그때 현장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을꺼에요.
둘이 모르는 사람 같은데 왠 남자가 막 팔다리에 묻은거 닦아주고있고 ㅋㅋㅋㅋㅋ
여튼 제가 안했으면 다음날 지하철 민폐녀로 사진올라갔겠죠.
세세하게 신발도 닦아주고 머리카락.ㅠㅠ 도 닦아주고..
다음에 탈 사람들을 위해 바닥에 흘러내린 잔해들도 싹싹 긁어모아서 나름 정리끝.
그때 그 분은 친구랑 전화중이였던거 같은데 차마 얼굴을 못드는것 같더라고요.
아무리 술이 취했더라도 뭔가 심각한 상황인걸 인지해선지 친구에게 민망해서 고개를 못든다고 하더라고요.
의도치않게 계속 이야기를 엿듣게 됨.
이제 다시 그분이 내릴 ㅁㅁ역.ㅋㅋ
나도 일단 내려야되고 그분도 내리고..
후.ㅋㅋㅋㅋ
손에 묻은 밥알 한톨을 보니 내가 왜 이랬을까 싶었죠.ㅋㅋㅋㅋ
왜왜!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서 이걸 만지고 있지? 싶었죠.ㅋㅋㅋㅋ
쓰레기 싹 버리고 돌아보니 죄송하다고 고개를 연신 숙이네요.ㅋㅋㅋ
그때 나름 기분 풀리고 평생중에 제일 착한일 한거 같아서 스스로 대견했죠.
내머리 한번 스담스담하고 싶었음.
근데 아직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거 같지는 않아서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어요.
이미 이렇게 된거 마무리로 깔끔하게 집까지 데려다 주는게 좋죠 ㅋㅋ
화장실에서 씻게 하고 지하철역에 나와서 집 방향 물어보니 10분정도 걷는데요.
데려다준다니깐 한사코 괜찮아요를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안괜찮을듯. 비틀비틀.
제2차 방류사건이 일어날지도..
걸어가는 동안 말없이 뚜벅뚜벅 앞만 보고 걸어갔어요.
그분은 부끄러워서 땅만 보고 걷고
전 점점 멀어지는 집과의 거리를 생각하며 택시비계산에 열중이였어요.ㅋㅋㅋㅋㅋ
딱히 할말도 없고.ㅋㅋㅋㅋ
암튼 5분쯤 걸으니 아파트단지 도착.
이왕가는거 아파트입구까지 서비스.ㅋㅋㅋ
아 미친 오지랖.. 술먹으면 이상하게 친절해짐.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듣고
고맙다고 밥 한번 산다고 연락처를 묻네요.
ㅋㅋㅋ 그래 이고생했는데 밥 한번 먹자 싶어서 일단 연락처를 주고 서로 빠이빠이.
다음날 점심때가 되니 연락이 오더군요.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문자.
시간될때 연락주면 밥사준다고 하는데.
하. 연락할까요 말까요?ㅋㅋㅋ
이게 고민이라서 고민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