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일기 쓰기를 싫어했습니다
나를 뒤돌아보는게 끔찍하게도 싫었습니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부끄러웠던 일, 싫었던 일, 치욕스러웠던 일은 잊을 수는 없어도 다시 상기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공부할 때도 복습은 안했어요
수업은 수업, 내 공부 스케쥴은 내 스케쥴대로 했습니다
어쨌든 내용은 그게 그거니까요
더 나이가 들어서는 가계부 쓰는게 싫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쓸데없이 돈을 막 썼나 자괴감을 갖는게 너무 스트레스 받았거든요
1년쯤 쓰다가 때려쳤다지요
이런 제가 정확히 두달전, 1월 말부터 운동일지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부터 그냥 푸념이나 기분 정도를 끄적이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제대로 꼬치꼬치 자세하게 적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계기는 코치님한테 제대로 운동 안한다고 왕창 야단맞고 운동할 때 생각 좀 해라 공부 좀 해라 구박을 왕창 받은 후였습니다
도대체 운동을 공부를 하라니 어떻게 하란 말인가 싶어서 처음엔 시내 대형 서점에 가서 책을 뒤졌습니다 저는 뭐든 글로 배우는 스타일이라 어떤 취미활동든 시작할 때 책으로 섭렵한 후에 실행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세군데 서점을 뒤져도 마땅한 책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방법이 없어서 렛슨 시간에 지적사항 위주로 운동일지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코치님은 절대 칭찬같은 거 안하는 스타일에다가 지적은 사소한 거까지 악착같이 잊지않고 끊임없이 잔소리 하는 타입이라 제 운동일지는 내가 얼마나 운동을 못하는지 깨알같이 기록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못하는지 안되는 건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지적당한 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못하는 거 다시 생각하기 싫어서 일기도, 복습도, 가계부도 안쓰던 사람에게 얼마나 속쓰고 괴로운 시간이었을지 상상은 되실런지요.
그래도 짬짬이 꺼내서 하루에도 몇번씩 다시 읽고 생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 해보고 자세 연습해보고 할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고 했습니다
기록한지 한달 쯤 되었을 때도 같은 버릇, 안 고쳐지는 것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때면 영영 나는 제대로 안되는 걸까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코치님은 내가 못 고치는 부분을 끊임없이 교정해주려고 매번 애쓰셨고 늘 다른 방법으로 내가 알아듣고 몸으로 제대로 할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엄청난 잔소리와 더불어... ㅠㅠ
제 운동일지에는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드디어 오늘...
27개월동안 그렇게도 속 썩이던 그 문제의 감을 잡았습니다
해결된 건 아닌데,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그 문제가 아, 이건가 하는 삘이 왔다고 해야할까요? 드디고 고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요
운동일지를 기록한지 정확히 두 달만에...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효과가 온 것 같아요
이 게시판에도 운동기록, 식사기록 하는 분들이 많으시죠?
기록을 안해보신 분들은 그 기록들이 그냥 자랑이나 과시처럼만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나는 열심히 하는데 살이 왜 안빨질까, 왜 운동이 제대로 안될까 고민스러우신 분들은 일지를 기록해보세요
가급적 깨알같이, 1차원적으로, 원색적으로 솔직하게 적어보세요
생각하고 있던 나와 완전히 다른 나와 내 생활을 보게 될 겁니다
괴롭고 아픈 시간이고 기록이 되겠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 게시판에 질문하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를 보게 될거라는 점,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왜 이렇게 많은 분들이 꾸준히 운동일지, 식사일지를 쓰는지, 이게 바로 그 증거입니다
두달간 뼈아픈 운동일지를 꼼꼼히 작성하고 드디어 한줄기 햇살을 만난 기쁨에 다른 분들께도 그 기쁨 누려보시라고 살짝 오지랍 떨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