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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곤강, 외갓집
엄마에게 손목 잡혀
꿈에 본 외갓집 가던 날
기인 기인 여름해 허둥 지둥 저물어
가도 가도 산과 길과 물뿐
별떼 총총 못물에 잠기고
덤굴 속 반딧불 흩날려
여호 우는 숲 저 쪽에
흰 달 눈섭을 그릴 무렵
박넝쿨 덮인 초가 마당엔
집보다 더 큰 호두나무 서고
날 보고 웃는 할아버지 얼굴은
시드른 귤처럼 주름졌다
강은교, 하관(下棺)
웃고 있네
눈도 감고 피도 식어서
피도 식고 뼈도 삭아서
그러나
아프지 않아서 웃고 있네
띵띵 불어 버린 심장이나
쥐 이빨도 안 들어가는 손톱이나
무덤 속에서도 자라는 머리칼
또는
그림자 때문에
아직 부서지지는 않네. 우리는
흔들릴 테다. 우리는
누군가 홀로 모래밭으로 가서
모래나 될 걸
모래나 되어 어느 날
당신 살 밖의
또 살이나 될 걸 하지만
아무도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네
무덤 속이든지 꿈속이든지
쥐 이빨도 안 들어가는
손톱 속이든지
살아 있는 것은 언제나
다시 물이 되고 바람이 될 때까지
살아서
하늘은 아직도 하늘
햇빛은 억만년을 햇빛으로
흐르고 있네. 우리는
잠들지 못할 거네. 우리는
김소월, 무덤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붉으스름한 언덕, 여기저기
돌무더기도 움직이며, 달빛에
소리만 남은 노래 서러워 엉겨라
옛 조상(祖上)들의 기록(記錄)을 묻어둔 그곳
나는 두루 찾노라, 그곳에서
형적 없는 노래 흘러 퍼져
그림자 가득한 언덕으로 여기저기
그 누구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내 넋을 잡아끌어 헤내는 부르는 소리
임강빈, 겨울 잔디
겨울 잔디를 밟는다
발밑에
낯선 소리가 따라 붙는다
밟힐수록 쓰러질 줄 모르던
잔디의 힘
넉넉했던 그 힘
지금은
상상마저 땅에 묶어놓고 있다
웃자란
나와 당신의 비애(悲哀)
또는 그렇게 자라버린
우리들의 환희가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연민의 눈을 뜨고 있다
우리가 해야만 하는
우리가 풀어야 하는
이 세상일을
겨울 잔디는
오직 암시뿐이다
이형기, 나뭇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뭇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세기 전의 해적선이 바다를 누빈다
나뭇잎만큼 많은 돛을 달고
그 어떤 격랑도 지울 수 없는
벌레 먹은 항적(抗跡)
나뭇잎을 다시 들여다보면
나무가 뿌리채
그 밑바닥에 침몰해 있다
파들파들 떨리는 단말마의
손짓
잎사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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