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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ony_90212
    작성자 : 기뮤식의노예
    추천 : 7
    조회수 : 744
    IP : 121.148.***.8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6/03/28 13:51:55
    http://todayhumor.com/?pony_90212 모바일
    졸렬한 포니 번역)선셋 리셋 - 제 8장 황혼이 오면 노을은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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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장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제 5장 제 6장 제 7장 P1 제 7장 P2


    제 8장 : 황혼이 오면 노을은 지..나?



    순간이동 마법의 섬광이 잦아들었다. 셀레스티아는 이제 오랜 세월동안 가까이 갈 생각도 하지 않던 화산 앞에 서 있었다.


    유황의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물론 이 장소를 휩싸고 있는 사악한 분위기보단 덜 독했지만 말이다.. 아니, 이건 그냥 느낌탓일거다. 아마도..


    이퀘스트리아에 의심과 공포의 시절을 몰고 온 변신충들이 이퀘스트리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지도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변신충들은 그간 대적해온 강력한 존재들에 비하면 아주 위험한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트롯 시 공성전에서 감금되지 않은 변신충 소규모 무리 몇몇이 몇 세기 간 잡히지 않고 이퀘스트리아의 조화를 알음알음 유린해왔으므로,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매우 교묘하고 교활한 종족이었다.


    그 소규모 변신충 집단들의 목적은 각기 달랐지만, 다들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800년 전 이 화산에 감금된 그들의 여왕, 크리살리스 여왕을 구출하는 것. 어디에서 무슨 수상한 낌새가 있었다면, 그건 어김없이 변신충들이 그들의 여왕을 감옥에서 탈옥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다행히 모두 실패에 그쳤으므로 그들의 작전에 대한 정보는 셀레스티아와 요직에 있는 몇몇 포니만이 공유했고 혼란을 막기 위해 자료는 은폐되었다.


    그들의 군사력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변신충들이 야기하는 가장 큰 피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일단 변신충의 습격이 시작됐다 하면, 그 근방의 포니들이 장기간 상호 불신과 편집적인 집단 공포증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설령, 아침에 마시는 음료수 브랜드가 달라졌다거나, 직장에 출근할 때 평소완 다른 길을 통해 간다거나, 새 취미에 맛이 들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했다면 아무리 평소에 친한 친구였다고 하더라도 포니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던 것이 의심이라는 역병의 씨앗이 됐던 것이다.


    그 기간 동안 포니들끼리 자행되는 '사상 검증.'은 오히려 역병보다 질이 나빴다. 변신충들 중 강력한 놈들은 특유의 환영 마법으로 원판이 된 포니와 전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하게 변신할 수 있었다. 혈액 또한 보통 포니의 혈액과 똑같이 위장할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자력으로 변신충 사냥을 벌인 변방의 몇몇 어리석은 포니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지만..


    변신충을 감별하는 수단이 체계화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갈기털과 깃털 표본으로 변신충과 포니를 구분 지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갈수록 변신충들의 변신 마법 또한 진화해, 털이나 깃털을 뽑아도 뽑은 털에 걸린 변신 주문이 며칠 동안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 방법은 소용없게 되었다. 알게 되었더라도 그 변신충은 유유히 도주한지 오래였다.


    변신충들의 위협은 몇 년간 지속되었다. 포니의 신원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선 좀 더 정교한 유전자 샘플이 필요했다. 하지만 몇몇 포니들이 귀에 있는 털의 채집이나, 다리털을 밀거나, 혹은 얼굴에 마력 표식을 다는 등의 조치들을 한사코 거부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구별법이 나오기 전 까지 수백 필의 포니들이 다른 대다수의 포니들의 의심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다.


    이때만큼 루나의 공백이 아쉬웠던 적은 없었다. 루나였다면 그냥 다른 생명체의 무의식에 침투해 그 존재의 진짜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셀레스티아는 루나의 방법을 따라 해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모든 게 다 허사였다. 그 때 셀레스티아가 기댈만한 건 오로지 직접적인 수단 밖에는 없었다. 


    그로 인해서 개발된 방법이 방해장 구분법이다. 변신충들은 강력한 마력 방해장에 노출되면 변신 마법을 유지하지 못하고 본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건 그 포니가 변신충이 아니었을 시, 그 포니의 마력회로를 손상시키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었으므로 혐의가 충분한 포니들에게만 사용되었다. 


    이런 홍역을 겪느니, 차라리 변신충들이 대규모 군대를 모아 대놓고 쳐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셀레스티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었다. 변신충 군대의 공격으로 인한 팀벅투의 몰락 이후, 트롯이 변신충 군대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마자 조바심이 나 있던 셀레스티아는 일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곧바로 트롯으로 출격해 변신충 여왕과 그 군단원들에게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를 입힌 뒤 활화산 아래에 감금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셀레스티아가 서 있는 화산이 여왕의 감옥이었다.


    셀레스티아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굳은 마음을 먹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처음으로 한 일은 화산의 하부지역 정찰이었다. 탐지 마법으로 변신충들이 몰래 파둔 통로나 함정은 없는지 검사했다. 셀레스티아가 800년 전에 시전한 지하 탈출 방지용 알림 주문이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이 건재했지만 만약을 위해서였다.


    아래로 탈출한 흔적은 없었다. 그래서 공주는 위로 더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연기에 휩싸여 밖에선 모습을 잘 확인할 수 없는 화산의 정상으로 공주는 걸어갔다.


    공주는 경악에 휩싸였다. 몸소 막아놨던 화산의 정상 부분이 통째로 사라졌던 것이다!


    "!... 이럴 수가.."


    화산의 아귀 가장자리에 서서 셀레스티아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불가능해...!"


    분명 크리살리스는 이제 사랑을 취할 수가 없어 힘을 기를 수도 없고, 화산이 분화되지 않도록 내 이미 수를 썼거늘.. 어떻게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탈출한 지 얼마나 되었단 말인가?


    다른 할 일이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셀레스티아는 매 10년마다 2~3회 씩 변신충 감옥의 결계를 수선하는 일 만큼은 잊지 않았다. 이 일에 있어서는 셀레스티아는 다른 포니들을 일절 신뢰하지 않았다. 한때는 이 근방에 경비 초소를 지어놓고 경비병을 세워놓았지만, 거기에 변신충이 잠입해 여왕을 탈옥시키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변신충이 연관된 이상 다른 포니들을 쓰는 건 오히려 부작용이나 마찬가지였다.


    근처에서 돌덩이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 셀레스티아는 귀가 쫑긋 섰다. 공주는 재빨리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내려가 그 주변을 살폈다. 연기가 자욱해 시야를 가렸으므로, 공주는 뿔에 마력을 집중해 연기를 치워버렸다.


    연기는 금세 사라졌지만, 몇 초간 찾아도 성과는 없었다. 셀레스티아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겠지. 크리살리스가 탈출할 때 그리 허술하게 제 자취를 남기고 가진 않았을 테니..


    공주가 한창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눈앞의 땅이 갈라지더니 그 아래에서 녹색의 점액질로 된 변신충 고치가 드러났다.


    그 고치를 가르고 변신충 한 마리가 나타났다. 잠시 숨을 들이쉬더니 변신충은 공주를 쳐다보았다.


    "어라.. 여왕님의 예측보다 더 일찍 도착했네."


    이 말에 셀레스티아의 등골엔 한기가 일었다. 셀레스티아는 즉각 그 변신충에게로 뛰어들어 마비 주문을 걸었다. 순식간에 움직임이 봉쇄된 변신충을 보며 셀레스티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았지만, 셀레스티아는 잠시 자신을 억누르고 위풍당당하게 네 발로 서서 공중에 뜬 변신충에게 천천히 걸어가며 말을 걸었다.


    "질문 하나 하겠다. 크리살리스가 탈출한지 얼마나 지났지?"


    저 변신충에게서 정보를 쥐어짤 수 있기만 한다면 여왕이 숨기 전에 찾아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퀘스트리아에 또 한 번 변신충 난동이 벌어지는 일은 기필코 막아야 했다.


    "어... 그동안 계절이 한 네 번이나 다섯 번 정도는 바뀌었을려나? 세다가 깜빡했네... 아니, 뭘 그런 눈으로 쳐다봐? 네가 배가 한번 고파 봐. 숫자가 제대로 세지나... 어쩌면 그보다 더 지났을 수도.."


    공주는 미동 없이 변신충이 전해준 용납 못할 사실을 마음속으로 곱씹고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 긴 기간 동안 크리살리스가 공격 한 번 안 하고 넘어갈 리는 없단 말이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네놈의 여왕은 어디 갔으며, 그게 사실이라면 대체 네놈은 왜 여기에 남아있는거지?"


    변신충은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아차! 깜박했구나!" 희한하리만치 밝은 목소리로 변신충은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약 네가 여기에 올 때를 대비해서 여왕님이 내게 전언을 남기셨다. 날더러 여기 남아서 꼭 전해달라던데."


    "고하라. 당장!" 셀레스티아는 발로 저 벌레를 으깨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심호흡 한 번 한 뒤 목소리를 가다듬고 변신충은 입을 열었다.


    "여왕이 공주에게 하사하는 전언을 들으라. 네가 조공한 별실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내 특별히 이 아이를 여기에 남기고 가노라."


    공주는 멀뚱멀뚱 변신충을 쳐다보았다. 변신충의 목소리는 어느새 크리살리스 여왕의 목소리로 완벽하게 변조되어 있었다.


    "그리 성급하게 이퀘스트리아를 공격할 예정은 없으니 이른 걱정은 말려무나. 허나 이 여왕이 네게 빚을 갚을 기회만 노리며 몇 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는 사실만은 항상 각오해 둘 지어다. 네년이 내게 가한 폭력, 네년이 날 가둬놓은 이 끔찍한 장소.. 그래. 석상으로 변하는 것보다 더한 이 고통을 내가 쉽사리 잊을 줄 알았더냐? 너를 부숴버리겠다. 한 조각, 한 조각 파괴해 버리겠다. 언젠가 네가 가장 행복하고 또 안전하다고 생각돼는 때가 있거든.. 그 때가 네가 쌓아올린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는 날인 줄 알고 있어라. 네가 아끼는 자가 돌연 널 배신할 것이며, 그 때 비로소 이 여왕은 빛을 청산할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악의가 담긴 협박.. 공주의 동공이 팽창되었다. 변신충은 고개를 젖히고 웃기 시작한다.


    공주의 시야가 붉게 변했다. 이윽고 공주는 앞발을 들어 변신충의 골통을 짓밟아 부숴버렸다.


    ----------------------------------------------------------------------------------------


    갑자기 선셋이 쓰러져서 자기 자신도 심장이 완전 멎을 뻔 했음에도 불구하고, 샤이닝 아머는 제 여동생을 품에 껴안고 평정을 찾게끔 달래주고 있었다. 뒤에선 가퍼가 불안한 표정으로 샤이닝 아머와 기절한 공주를 연달아 쳐다보고 있었다.


    "저...트와일라잇.. 캐이댄스 공주님은 어디 있냐?" 8비트가 안절부절 질문했다.


    "...화장실이요..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몰래 나왔는데..."


    가퍼는 앞으로 나서 선셋의 축 처진 몸을 내려 보며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이럴 때일수록 우물쭈물해서는 안 돼. 빨리 증거를 인멸해야지. 캐이댄스 공주님에게는 선셋이 먼저 집에 갔다고 둘러대고, 왕족 살해 혐의로 지명수배가 떨어지기 전에 다들 위조 신분증을 하나씩 만든 다음에 그리폰스톤으로 열차를 타고 튀는 거야! 참고로 말해두는데, 내 가명은 '술취하무 뵈는거없소'로 바꿀 거야. 대충 북한우 반도 출생 포니라고 둘러댈 건데, 이러면 쌔보여서 그리폰들도 함부로 날 못 건드리겠지."


    정적과 팽팽한 긴장감이 다시 한 번 방 안을 감돌았다. 샤이닝 아머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공주를 쳐다보았다. 공주의 상태를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샤이닝 아머는 몸을 굽혔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우리 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가 기억이 나는구만. 진짜배기 친구를 알아보려면 그 친구 집에 가서 우연찮게 살마를 저질렀다고 한 뒤 암매장을 도와달라고 물어보라고 했네만은.. 설마 그 이야기의 참뜻을 이렇게 깨닫게 될 줄이야.." 포인덱스터가 주섬주섬 뒤에서 끼어들었다.


    공주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걸 확인한 샤이닝 아머는 허탈한 탄성을 내면서 말했다.


    "하...! 야 이 머저리들아. 기절한 것뿐이잖아!"


    샤이닝은 동생을 돌아보았다. 안심이 된 모양인지 몸에 바짝 들어갔던 힘을 슬슬 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샤이닝 아머는 뒤로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봐라. 니들 때문에 동생 놀란 거.. 이제 바보 같은 소리들 그만하고 선셋 소파로 옮기는 거나 도.. 어? 다 어디 갔어?!"


    ----------------------------------------------------------------------------

    선셋 쉬머는 천국에 와 있었다. 거대한 흰색 알리콘이 천사 같은 두 날개로 선셋을 포근하게 품어주고 있었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선셋."


    어머니의 말씀.. 선셋의 가슴은 자긍심으로 가득 찼다. 눈가에는 기쁨의 눈물이 가득 어렸다. 이건.. 언제나 선셋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선셋 쉬머의 주변이 갑자기 바뀌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대신, 선셋은 전체적으로 검붉은 색상에 암녹색으로 포인트를 준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루비로 장식된 새 왕관을 쓴 채로 여러 귀족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어머니는 그 옆에서 선셋을 흡족한 눈으로 쳐다보시고 계셨다.


    "내 딸, 선셋 쉬머 공주를 소개합니다!"


    쏟아지는 환호.. 선셋은 환호에 답해주며 앞에 깔린 붉은 카펫을 걸어갔다. 셀레스티아의 왕좌로 통하는 겹문이 열릴 때까지 쏟아지는 색지와 꽃잎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셀레스티아의 황금색 왕좌의 옆에는 대등한 또 하나의 왕좌. 선셋 쉬머의 큐티마크가 장식된 왕좌 하나가 그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게 오래전부터 선셋이 바래왔던 거였다. 이게 선셋에게 마땅한 마생이었다.


    선셋은 어머니의- 아니, 어머니와 자신의 공동 왕좌로 걸어갔다. 비로소 어머니와 힘을 합쳐 이퀘스트리아를 번영과 영광의 길로 이끌어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어...? 난 어쩌고.."





    난데없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 공주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봤었던 휘양 찬란한 벽, 장식, 바닥은 온대간데 없었고, 오직 한 보라색 유니콘 망아지가 억울한 눈빛으로 선셋을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


    선셋은 헉 소리를 내며 꿈에서 깨어났다. 심호흡을 하며 선셋은 혼란스러운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려있는 샤이닝의 가족사진이 제일 먼저 선셋의 눈에 띄었다. 정중앙에 어린 트와일라잇의 모습이 보였다.


    "...트와일라잇?"


    "죄송해요 공주님!"


    아래에서 희한하게 높게 변조된 오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셋은 아래를 내려 보았다. 사진에서 본 것과 같은 모습의 어린 망아지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선셋을 올려보고 있었다.


    "나 때문에 공주님이 쓰러졌다면... 히익! 나 벌 받는 거야?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제발 절 추방하지 말아주세요! 감옥에 넣지 말아주세요!"


    기절했다 깨어나니 어떤 망아지가 싹싹 빌고 있는 괴상한 상황이었다. 선셋은 일단 알아낼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알아내기로 마음을 먹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자세를 고쳐잡았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맞지?"


    유니콘 망아지는 제 이름이 호명되자 선셋이 머리를 한 대 세게 쥐어박은 것처럼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리고 목만 살짝 올려 한 쪽 눈으로 선셋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그..그런데요?"


    여전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제 선셋은 트와일라잇을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고, 또 한 가지는 원래 알리콘 공주였던 유니콘 망아지가 지금은 행여나 누가 해코지를 할 까봐 벽을 등지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렇게 겁을 먹어서는 질문을 해도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으니, 일단 달래줘야 될 것 같았다.


    의문을 해결하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트와일라잇부터 도와주자.


    "아~ 또 기절하고 말았네."


    일부로 자책하는 어조를 섞으며 선셋은 트와일라잇을 앞발굽으로 사뿐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옆자리에 트와일라잇을 앉히며 끊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미안. 많이 놀랐지? 몸집이 많이 분 것 같아서 좀 굶었더니 배가 고파서 기절했나봐. 안 그래도 어머니가 밥 좀 제대로 먹으라고 잔소리를 그렇게 하셨는데.. 나도 참 바보라니까. 헤헷."


    그 말을 믿은 듯, 망아지 트와일라잇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선셋은 거의 모든 정신력을 투자해 어머니의 인자한 표정을 흉내 내고 있었다. 속으로는 경악에 휩싸여 막-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내 바로 앞에 앉아있다아아! 도대체 왜에에에에에에?!'


    라고 괴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앞에 있는 트와일라잇은 결코 마력으로 만든 피조물이나 복제품이 아니었다. 이 트와일라잇은 선셋이 전에 만났던 트와일라잇과 마찬가지로 이 차원 내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진퉁이었다.


    거울 저편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진짜였다는 증거기도 했다.


    '하지만... 말이 안 돼!' 선셋은 속으로 소리쳤다.


    도대체 왜.. 왜 이렇게 어려진 거지?


    이 트와일라잇은 분명 진짜였지만, 원래대로라면 트와일라잇은 선셋과 동갑, 혹은 많아봐야 1~3살 터울이었다. 아직 젖살도 덜 빠진 초등학교 망아지가 아니라!


    선셋은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선셋이 망아지였을 시절 가르쳐준 진정하는 법을 떠올렸다. 조심스럽게 지금 해야 할 일 그 자체만 머릿속에 떠올리고 불필요한 감정들은 다른 곳으로 치워버렸다. 잠시 동안이나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끔 말이다.


    충분히 진정이 되자, 선셋은 망아지 트와일라잇을 쳐다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괜찮니? 깨어났을 때 보니까 엄청 겁을 먹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공주님.. 제가.. 큰 잘못 한 건... 아니죠?"


    트와일라잇은 마치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셋은 어머니의 인자한 웃음과 인자한 말투를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하려고 갖은 애를 쓰며 대답했다.


    "저런. 잘못이라니. 하긴, 너무 귀여운 것도 잘못이라면 잘못인가? 호호...호.."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트와일라잇의 어안이 벙벙한 시선뿐이었다.


    "근데...음... 네 오빤 지금 어디 갔어?"


    다시 트와일라잇은 바짝 굳어버렸다. 도대체 샤이닝 그 망할 놈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어떻게 어린 여동생에게 기절한 알리콘을 덜컥 맡겨두고 갈 생각을 했냐. 이 화상아! 트와일라잇과는 달리, 이건 명명백백한 큰 잘못 맞았다.


    "잘..모..모르겠어요. 캐이댄스 공주님이 화장실에서 날 부르더니 오빠를 불러와달라고 하시기에 오빤 날 여기 혼자 남겨놓고-"


    "됐어. 더 이야기 안 해도 돼."


    선셋은 트와일라잇의 말꼬리를 잘랐다. 점찍어놓은 수말이 사실 친한 친구의 오빠였다는 것도 충분히 속이 타는데, 굳이 더 어메이징한 일을 추가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다시, 선셋은 '왜 트와일라잇이 망아지인가.' 라는 의문에 생각의 중점을 두었다. 트와일라잇은 분명 알리콘 성마였으며, 절대 선셋의 환영 속의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선셋의 몸에 잠재된 우정의 마력이 저 망아지 트와일라잇과 공명한걸 보면 저 망아지도 분명 트와일라잇 스파클 본마가 맞았다.


    '끙..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골칫거리가 나타나는구만..' 선셋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급히 달려오는 발굽소리가 들려와 선셋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선셋! 괜찮아? 샤이닝 아머가-"


    캐이댄스였다. 걱정이 만연한 표정으로 급하게 내려왔지만, 선셋이 깨어있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셋은 이게 다 네가 쓸데없이 오망성을 조작하는 바람에 주문 부작용이 일어나 기절한 거라고 누명을 씌어 속인 것에 대한 앙갚음을 하고 싶었지만, 아까 트와일라잇에게 해둔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그럴 수는 없었다. 선셋은 한숨을 쉬며 캐이댄스의 말에 대답했다.


    "걱정 안 해 줘도 돼 캐이댄스. 그냥... 요새 밥을 안 먹어서 그랬나봐."


    "뭐? 식사를 건너 뛰어?! 선셋! 알리콘은 하루 세 끼를 꼭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고 이모님이 귀에 박히게 설명하셨잖아! 왜 말을 안 들어? 왜?"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리고 사랑의 알리콘은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실 그 셀레스티아가 점심시간마다 선셋을 꼼짝 못 하게 붙들고 거의 떠먹이듯 음식을 퍼 먹이고 있었으니 선셋 입장에서는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으나, 선셋은 입 안을 깨물고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대신 선셋은 곱게 들어주는 척 하며 트와일라잇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또 트와일라잇을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오늘 있었던 일로 겁을 많이 먹었을 테니까.


    트와일라잇은 꽤 진정이 된 것 같았다. 선셋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벽시계를 보았다. 11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가서 점심이나 먹자."


    라고 말하며 선셋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는 샤이닝 아머를 제외한 다른 포니들은 어째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어? 샤이니. 네 친구들 다 어디 갔어?"


    트와일라잇이 대신 질문을 받았다. "오빠 친구들 다 도망갔어요.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요."


    눈을 깜빡이며 선셋은 눈앞의 수말을 쳐다보았다. 비록 게임 안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위험한 걸 뻔히 알면서도 저 수말은 선셋을 구해주려고 했다. 연달아 떠오르는 샤이닝 아머의 따뜻한 체온, 그리고 입맞춤..


    물론 샤이닝 아머보다 더 키스를 잘 하는 남자를 못 만나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더 만족스럽고, 더 존중받는 것 같고, 더 달콤한.. 샤이닝 아머를 품에 안는 경험은 그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거, 딱 플레쉬 센트리 이야기가 나왔을 때 트와일라잇이 된 기분인걸.. '플레쉬가 내 소식을 물어봤다고?!'라면서 바보같이 얼굴을 붉히며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아무리 친구라지만 어떻게 아무 맥락 없이 처음 본 이질적으로 생겨먹은 외계생명체에게 반할 수 있는 건지 선셋은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작 나도 첫눈에 반한 상대에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주제에 말이지.. 자제를 좀 해야겠군..


    선셋은 옆에 앉은 망아지 트와일라잇을 힐끗 살핀 후,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며 뚱한 표정으로 비꼬았다.


    "샤이니. 아주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네." 


    곤란해지자 친구고 뭐고 버려두고 도망간다 라.. 정말 고등학생들은 이 세계나 저 세계나...


    "어..그...미..미안." 샤이닝 아머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다 도망가서 나 혼자 널 소파로 옮겨야했어.."


    "오빠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염동력으로 들어 올리면서 힘에 겨워하던데.. 공주님이 보기보다 무거웠나봐요." 트와일라잇이 끼어들었다.


    샤이닝 아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캐이댄스는 씨익 웃으며 트와일라잇을 내려 보았다.


    "글쎄~ 왜 그랬을까? 은근히 근육질인 얘라서 보기보다 무거웠던 게 아닐까?"


    선셋은 인상을 찌푸렸다. 뜻대로 안 되는군.. 샤이닝 아머에게 상처를 주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네 친구 세 필이 도망간 것 쯤 별로 신경 안 쓰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의미로 말한 거였는데..


    사실, 약간 화가 나기는 했었다. 거울 너머에서 선셋이 사귀었던 친구들과는 달리, 이 셋은 샤이닝 아머에게 뒤처리를 떠넘기고는 도망가 버렸다. 샤이닝 아머에겐 어려울 때 의지가 될 만한 굳센 친구 한 필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았다. 물론 그 친구는 선셋이 될 테고 말이다.


    캐이댄스는 가볍게 웃으며 다시 말을 시작했다.


    "뭐, 선셋이 쓰러졌을 때 엉뚱한 곳에 있어서 그랬는지 걔네들이 약간 이해가 되는 걸? 나라도 닷지 정션 같은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을 거야 아마."


    캐이댄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 그나저나.. 우리 점심 먹어야지? 집에서 먹을까? 어머님이 그러시던데 너희들이 지하에서 게임할 동안만 돌봐주면 된다고 하셨거든? 12시반 까지만 봐주면 될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 내려와보니 일은 다 끝난 거 같고.. 그러니까.. 에헤헤헤."


    선셋은 인상을 약간 쓰며 트와일라잇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지금 이퀘스트리아의 운명이나 다름없는 망아지를 돌보는 일을 농땡이 치면서 밥을 먹으러 가자라는 말을 태연스럽게 할 수 있는지.. 캐이댄스는 좋은 친구긴 했지만, 이퀘스트리아의 미래를 믿고 맡기기에는 아직은 약간 부족한 듯 했다.


    "그나저나 샤이닝, 네 부모님은 어디 가셨어?" 


    선셋은 물었다. 주말 늦은 아침에 나가셨으니 아마도 보통 일은 아니겠지.


    "천문학자 조합 회의에 나가셨어. 직업 특성상 밤에 일하시는데, 보고서는 보통 오전에 제출하시거든. 그래서 엄마랑 아빠가 음... 돈을 주고 가셨어. 어... 트와일리 맛있는 거 사주라고."


    밥은 결국 자기가 사겠다는 이야기로군.. 선셋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내 팔자도 폈는데, 인간세상에서처럼 빌붙을 필요는 없겠지.


    "넣어 둬. 밥은 캐이댄스랑 내가 쏠게. 나가자. 밥값은 왕궁 앞으로 달아두면 돼지 뭐.."


    --------------------------------------------------------------------------------------


    선셋은 트와일라잇을 등에 태우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샤이닝 아머는 선셋의 바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자꾸 다른 곳을 보려고 했지만, 결국 힐끗 힐끗 본능에 따라 선셋의 엉덩이를 훔쳐보고 있었다.


    캐이댄스는 히죽 웃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며 그런 샤이닝 아머를 관찰 중이었다. 


    하긴, 누굴 탓할 수 있으랴. 누구라도 풍만함과 건강미를 두루 갖춘 선셋의 매혹적인 엉덩이엔 눈길을 안 줄 순 없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좌우로 씰룩거리고 있는 그 모습은 키 큰 암말이 취향인 길거리의 모든 포니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다행히 샤이닝 아머도 그 쪽 취향인 것 같았다. 그것 뿐 만 아니라 선셋의 주도적인 성격에 맞춰줄 만큼 자존심도 굽혀줄 줄 알았다. 강한 여성.. 왜곡된 성욕... 까지는 아닌가? 어쨌든..


    캐이댄스는 아까 한 게임으로 선셋이 샤이닝 아머가 그저 귀엽기만 한 소심남만은 아님을 깨닫고, 앞으로 샤이닝 아머를 연애 상대로 충분히 존중해주기를 바랬다. 그러기만 한다면 얼핏 실패로 끝난 것 같은 이 계략도 약간의 성공 정도는 거두었다는 이야기니까.


    아니.. 뭐 어차피 앞으로 기회는 많을 테니 상관은 없으려나..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선셋 공주님과 직접 만나 신이 난 트와일라잇의 흥을 깨기는 싫었으니까. 물론 트와일라잇 본마에 관한 내용보단 제 오빠에 관한 내용을 더 많이 말해줬으면 하는 게 캐이댄스의 솔직한 생각이었지만..


    캐이댄스는 게임 내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진짜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던 게 퍽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 혀를 넣는 키스... 음~ 그게 또 진국이었-


    재빨리 캐이댄스는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거리 한복판에서 날개가 꼿꼿이 서면 그것만큼 망신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상 속 선셋의 품에 안긴 샤이닝 아머는 정말 귀여웠다. 그 누구라도 까악 하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하지만 영상 속 선셋은 정말 멋있었다. 그 누구라도 우러러봄직한 강력하고 완벽한, 그야말로 영웅담에서나 나올 법 한 공주의 형상이었다.


    내가 또 무슨 생각이람. 캐이댄스는 또 한 번 머릿속을 난잡하게 떠도는 선셋과 샤이닝 아머가 키스하는 장면을 고개를 흔들어 날려버리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캐이댄스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생각이 너무 멀리 나가기 전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저기 저.. 샤이닝, 네가 수학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인데.."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에게 말을 걸었다. 샤이닝의 집에서 수학을 배우는 척 하며 선셋을 함락시킬 다음 계획을 짜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샤이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선셋의 꼬리 쪽에만 정신이 팔려있을 뿐이었다.


    그렇담 쟤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겠군 그래..


    "선셋 쟤 엉덩이 예쁘지 않아?"


    최대한 주관적인 감상평처럼 안 들리게끔 노력하며 캐이댄스가 질문을 던졌다.


    샤이닝 아머는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른 대답은 없었다. 캐이댄스는 공공장소에서 공연히 꺼내기는 좀 쪽팔린 질문을 던져 샤이닝 아머를 도발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봐. 너 지금 선셋 엉덩이 더듬고 싶지? 막 앞발굽을 저 풍만한 엉덩이에 파묻고 마음대로 문질문질하고 싶지?"


    "어..그거...좋...."


    여전히 멍을 때리며 샤이닝 아머가 대답했다.


    "근데 말이야.. 그렇게 푹신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캐이댄스의 말이었다. "쟤 몸 좀 봐. 날개도 크고, 뿔도 길고, 완전 근육질이잖아? 솔직히 보기에만 좋지 촉감은 영 아닐걸? 완벽한 엉덩이하면 사랑의 공주인 이 몸 아니겠어?"


    이제야 약발이 드는 모양인지 샤이닝 아머는 선셋의 둔부에 고정된 시선을 돌려 캐이댄스를 째려보았다.


    "야! 그건 그냥 네 생각이고-"


    순간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자각한 샤이닝 아머는 입을 틀어막은 채로 굳고 말았다.


    캐이댄스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정해 샤이니. 상대 포니의 육체적 매력에 빠지는 것 또한 사랑의 일부니까. 그리고 선셋의 외적인 면보다 더 심오한 부분에 네가 푹 빠졌다는 걸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랬다면 왜 내가 너희들을 죽자 사자 이어주려고 하겠어?"


    "고...고맙- 고마워.."


    샤이닝 아머는 고개를 숙이며 얼굴에 홍조를 띄었다. 너무 귀여워서 그만 캐이댄스는 가성으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아유, 저렇게 귀여운 건 진짜 법으로 막아야하는 거 아냐?


    트와일라잇과 선셋이 앞에서 단란하게 이야기를 하는 걸 지켜보며 캐이댄스는 연애 조언을 몇 자 더 해주기로 했다.


    "실시간 RPG 계획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실패도 아니지. 선셋이 널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걸 확인했고, 네가 필요하다면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걸 선셋도 알게 되었으니까. 여성을 위해서 상상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각오가 된 남성, 이른바 상이남은 언제나 좋은 점수를 따기 마련이거든."


    "상이남.. 그런 말도 있었어? 처음 듣-"


    "어허! 공주님이 있다고 하면 있는 거지." 캐이댄스는 뚱한 표정으로 샤이닝의 말꼬리를 잘랐다.


    약간 엄격한 어조가 통했는지, 샤이닝은 별 토를 달지 않고 넘어갔다. "네.."


    "자 그럼, 이제 내가 3단계로 체계화시킨 연애 단계 중 1번째 단계가 지났군. 좀 이르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 2단계로 넘어갈 차례야. 주변마들의 보증 단계!"


    "보... 보증? 그건 가족도 서 주지 말랬는데.."


    순간 캐이댄스의 마음속엔 샤이닝을 세게 한 대 때리고 싶은 욕구와, 귀여울 정도로 순진한 샤이닝을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양립했다.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해 마음을 비운 뒤 캐이댄스는 운을 땠다.


    "으이구, 이 답답아... 내 말은, 네 주변마들이 네가 진짜 괜찮은 포니라고 선셋에게 보증을 해 줘야 앞으로의 관계가 완만하게 흘러간다는 말이라구. 근데 네 세 필의 친구들은 음... 너한테 별로 좋은 소리를 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신뢰도도 떨어지니까... 옳지. 쟤가 너의 유일한 희망이야."


    캐이댄스는 그 유일한 희망을 가리켰다.


    "?...선세-"


    "걔 말고 걔 등 위에 네 동생."


    또 샤이닝이 바보 같은(하지만 귀여운)소리를 하기 전에 캐이댄스는 일찌감치 말을 잘랐다.


    "자고로 동생들은 주변마들에게 오빠에 관한 이야기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쏟아내기 마련! 게다가 어린 망아지 입에서 나온 말을 설마 거짓말일까 의심하는 포니는 거의 없다구. 그러니까 앞으로 동생이 선셋에게 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절대로 방해하지 마."


    샤이닝 아머는 걱정스럽게 자기 동생을 쳐다보았다.


    "그..근데 있잖아. 트와일리가 혹시 내가 바보같아보일 말이라도 한다면.."


    캐이댄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필멸자가 능히 감당할 수 없는 깊은 격노의 아우라가 캐이댄스의 주변을 매섭게 감쌌다.


    "샤이닝 아머... 내가 본격적으로 연애 상담을 시작하기 전, 네가 한 같은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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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행마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 않고 트와일라잇은 선셋 공주님의 등 위에 올라탄 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선셋 공주님은 정말 트와일라잇이 평소에 상상했던 공주님의 모습이 현실로 나타난 것만 같은 분이었다. 똑똑하고 재미있으시지, 자상하고 친절하시지, 마력도 엄청 강력하시지.. 상상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공주님인데도 그다지 엄격한 분은 아니라는 사실이려나?


    공주님은 진짜 좋은 분이셨다! 진짜로!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트와일라잇의 이야기를 대충 들어주지도 않았고, 질문이 있으면 금방금방 대답해주셨다. 9등급 마법을 염동력 부리듯 쉽게 시전 강력한 마법사라는 건 두 말하면 입이 아팠다. 아마 공주님은 이 세상에서 마법 하나만 따지자면 따라올 포니들이 몇 없을 것이다!


    샤이닝 아머 오빠가 한 필 더 생긴 기분이었다. 성별이 다르고, 마법의 진수를 터득했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왕립 유니콘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고?"


    선셋은 어께너머로 트와일라잇을 돌아보며 물었다.


    꿈 이야기가 나오자 트와일라잇은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셋 공주님은 얼핏 철없는 망아지가 꾸는 귀여운 꿈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 걸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계셨다.


    "네."


    하지만 현실은 불가능하겠지.. 그 점 때문에 트와일라잇은 못내 슬펐다.


    "근데... 아마도 못 들어갈 것 같아요."


    트와일라잇을 실은 선셋의 등이 갑자기 격하게 한번 요동쳤다. 선셋은 걸음을 멈추고 트와일라잇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뭐라고?!"


    공주님이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트와일라잇은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그게요..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들었어요. 만약 들어가도 수업료가 너무 비싸서 엄마 아빠가 돈을 못 내주실거란 말이에요."


    트와일라잇의 집은 대체로 유복한 편이였지만, 캔틀롯 상류층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트와일라잇은 왕립 유니콘 학교에 입학한 얼마 되지 않는 비 캔틀롯 귀족 출신 유니콘들은 모두 그 뛰어난 마법 재능 때문에 특례 입학을 한 경우라는 걸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오빠가 계속 넌 네 나이 또래에 비해 발전 속도가 빠르다고 계속 말해주긴 했지만, 단순히 빠르기만 해선 이퀘스트리아에서 제일가는 명문 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다.


    "..원래 세상에서라면 수제자 자격으로 전액 삭감될 테지만.." 선셋 공주님은 트와일라잇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혼잣말로 하고 계셨다.


    선셋의 마력이 트와일라잇을 감쌌다. 트와일라잇은 공중에 떠서 공주님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선셋 공주님은 트와일라잇을 무슨 연구실 실험 대상인 것 마냥 훑어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가, 이제 결론이 난 듯 굳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선셋은 트와일라잇을 땅 위에 내려놓았다. 뭐야.. 결국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이랑 똑같잖아.. 선셋은 다시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고 트와일라잇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축 늘어트렸다.


    "..말씀하시려는 거 알겠어요.. 어차피 저 같은 건 노력해봤자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죠?"


    다시 한 번, 선셋은 트와일라잇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뭔가 중대한 결심을 한 듯 굳은 표정으로 트와일라잇을 쳐다보고는 3초간 뜸을 들인 뒤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짜로 걱정할 것 없으니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만약에 네가 셀레스티아 공주의 수제자로 발탁되지 못 하는 '기적'이라도 발생하면... 내가 대신 학비를 대서 널 입학시킬 테니까 마음 놔도 돼."


    세상이 그대로 멈춘 것만 같았다. 트와일라잇은 선셋 공주의 선언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비록 어리긴 했지만, 전 학기 등록금을 계산해보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 정도는 트와일라잇은 알 수 있었다! 그런 막대한 돈을 선뜻 내 주신다니..


    선셋 공주님은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입학시험은 봐야하는 거. 알고 있지?"


    그 순간 트와일라잇의 높은 꿈이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입학시험이 있었구나! 학교에 들어가면 뭘 할까 생각만 하느라, 또 다른 난관이 있다는 걸 깜박했다..


    시험은 어떻게 통과하지? 공주님이 돈을 내 주신다고 한들 트와일라잇이 통과할 리는 없는데..


    "하아.. 이번엔 또 뭐가 문젠데?"


    공주님의 목소리에 약간 짜증난 기색이 묻어와서 트와일라잇은 바짝 긴장하였다.


    트와일라잇은 고개를 아까보다 더 푹 숙이며 대답했다.


    "공주님.. 말씀은 고마워요. 근데.. 저 같은 포니때문에 돈을 낭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입학시험을 통과할 리가 없거든요.. 재능이 있는 유니콘만 통과할 수 있는데, 전 그런 재능도 없고.."


    공주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트와일라잇을 쳐다보았다.


    "정말 겸손한 태도는 어디 안 가는구나..."


    선셋은 한숨을 쉬며 이마 사이를 앞발굽으로 지그시 누르며 말을 이었다.


    "입학시험 그거 별 거 없어. 너만한 유니콘이라면 알아서 잘 통과할거야. 음.. 정 걱정된다면 내가 살짝 뭣좀 가르쳐줄 수 있는데."


    또 한 번, 알리콘의 진심어린 제의에 트와일라잇은 공주를 경외의 눈빛으로 올려보았다.


    "진짜요? 해 주실 거예요?"


    선셋은 어께를 으쓱하고 뒤에 있는 샤이니와 캐이댄스 공주 쪽을 쳐다보았다. 둘은 살짝 거리를 두고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너무 부담은 갖지 마. 뭘 하든 쟤보단 네가 더 잘 하겠지.."


    두 필의 마법 천재를 보며 캐이댄스가 어리둥절하게 말했다.


    "뭐야? 왜 둘 다 갑자기 날 보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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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와일라잇과 이야기를 나눈 지 5분 후, 아직도 선셋은 자신이 옳은 결정을 내렸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해보고 있었다. 여전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고칠 수 있긴 한 걸까?


    아니 왜 도대체 트와일라잇이 망아지인 거냐고! 우주의 기본 법칙부터가 엇나간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쨌든 선셋 쉬머는 트와일라잇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트와일라잇 곁에 가까이 붙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질질 짜는 트와일라잇을 달래주기 위해서였기도 했다. 과거든 지금이든 선셋은 쉽게 포기하는 망아지들을 절대 곱게 못 봐 넘기는 성격이었다. 비록 참견하는 방법이 독설 섞인 비난에서 격려와 조언으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어.. 진짜 밥을 여기에서 먹자고?"


    샤이닝 아머의 질문에 선셋은 하고 있던 생각을 멈추었다.


    다 온 건가? 선셋은 앞을 보았다.


    샤이닝 아머가 안절부절 못 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선셋이 도착한 레스토랑은 평민들이 감히 범접해서는 안 돼는 고급진 분위기를 가계 외벽애서부터 풀풀 풍기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길디드 트뤼플(금박 입힌 송로버섯)'. 캔틀롯 최고의 레스토랑. 예약 손님 한정 서비스를 엄수하는 곳으로 몇 년 전 가게 영업 방침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블루블러드 왕자를 쫒아낸 것을 레스토랑의 자랑이자 긍지로 여길 정도였다. 


    블루블러드 그 찐따 녀석은 가게에서 쫓겨난 울분을 애먼 셀레스티아에게 와서 풀었다. 반역죄를 물어 그놈들을 당장 추방해야 한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그 때 선셋은 셀레스티아 옆에 있었던 고로, 그 레스토랑이 이 법칙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이후로 선셋은 시간이 나면 이 레스토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셀레스티아의 수제자는 항상 빡센 일정을 소화해야 됐었으므로 시간이 절대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잠깐. 나 여기 와본 적 있어. 예약 안 하면 못 들어갈 텐데?"


    선셋은 빌딩의 외부를 살폈다. 대리석 기둥과 지붕에 나 있는 황금 돔. 고전 페가수스 양식의 건물에 어스 포니의 대리석 가공 기술을 접목했군. "그래서?"


    캐이댄스는 말없이 한 쪽 눈꼬리를 올려 진짜 들어갈거냐라는 눈빛을 선셋에게 보냈고, 선셋은 인상을 약간 찌푸린 뒤 의기양양하게 정문으로 향했다.


    "나만 믿고 따라와."


    선셋은 관목이 늘어선 통로를 지나 레스토랑의 입구로 걸어가 황금으로 만든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예약 손님 목록이 놓인 탁상 뒤에 지배마가 거드름을 잔뜩 피우며 서 있었다. 길디드 트리플은 공석이 있어도 예약을 안 하고 왔으면 얄짤없이 손님을 거절하는 걸 일종의 자랑으로 여기는 레스토랑이었다.


    "4마석 부탁해요."


    선셋의 말에 연갈색 털가죽과 윤기 나게 손질한 갈기를 가진 지배마가 독특한 억양으로 대답했다.


    "어떤 이름으로 예약하셨죠?"


    우와. 은근히 포니 깔보는 듯한 저 태도. 재수 없어라. 구 캔틀롯 억양은 아니고, 프랑스(prance)억양이겠군..


    트와일라잇이 선셋 옆으로 걸어 나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선셋 대신 대답했다.


    "죄송한데요.. 예약 안 하고 왔는데.."


    "그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트와일라잇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배마는 냉엄하게 딱 잘라 대답했다.


    선셋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저기요. 지배마님."


    지배마는 다시 선셋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선셋은 날개를 초고속으로 한번 폈다가 접었다. 순간 뿜어져 나온 날카로운 바람이 채찍처럼 지배마의 빗어 내린 갈기를 다 헝클어트렸고, 선셋은 아까완 달리 약간 위협조를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래도요?"




    ---




    2분 후, 선셋은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의 지배마를 따라 레스토랑 내부의 중앙에 있는 작은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 미리 식당 안에 있었던 캔틀롯 상위층 포니들이 일제히 선셋을 쳐다보더니 자기들끼리 수군대기 시작했다.


    선셋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내용을 엿들어보았다. 대부분 '저 분이 바로 새로 승천하신 공주님인가?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따위의 내용이었다.


    일행은 자리에 앉았다. 캐이댄스는 선셋의 반대편에 앉아 선셋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이거 직권 남용 아니야?"


    "농담도 참.." 캐이댄스가 따지자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선셋은 다른 두 포니를 돌아보았다.


    "모처럼만에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 좀 먹자는데 뭐 어때? 샤이니. 트와일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내 편 좀 들어주라."


    샤이닝은 잠시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다른 포니들은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옷들을 몸에 둘둘 감고 있었다.


    "저.. 선셋.. 우리 아무래도 다른 포니들처럼 옷이라도 좀 걸치고 오는 게.."


    선셋은 레스토랑에 다른 포니들을 곁눈질로 슬쩍 보았다. 이 레스토랑에 드레스 코드 같은 건 없었지만, 대부분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알았어도 체면 치례하느라 옷을 걸치고들 나왔을 거다. 식당에 꾀벗고 온 포니들은 선셋 일행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른 포니들이 지키고 다니는 규범을 고의로 무시함으로써 난 너희들과 달리 이런 걸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고 광고하며 다니는 것도 자기가 지닌 권력을 과시하는 방법 중 하나지.' 선셋은 이렇게 생각했다. 캔틀롯의 상류층에게 새로 온 공주에 대한 깊은 첫인상을 심어놓을 필요도 있을 것 같았고 말이다. 밥도 먹고, 인상도 심어주고.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 격 아닌가? 이건 인간 세상에서만 통하는 속담이긴 하지만.


    트와일라잇은 굵디굵은 메뉴판을 한장 한장 넘겨보고 있었다.


    "우와.. 여기 음식들 그냥 읽기도 어려워.. 읽으려면 발음 공부를 더 해야 될 것 같은데.."


    누구도 편을 들어주지 않자 선셋은 약간 기분이 상했다. 불만스럽게 눈을 옆으로 굴리며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선셋은 자기를 버린 두 포니에게 약간 푸념꺼리를 내뱉었다.


    "좋은 일 한번 하려고 했더니 다들 감사할 줄을 모르네.."


    "좋은 일? 과시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캐이댄스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선셋이 뜨끔해할 부분을 파고들었다. 예전 선셋 같았으면 화염구를 아슬아슬하게 빗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겠지만, 그 대신 선셋은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똑같이 장난스럽게 응수했다.


    "샤이닝 아머가 심장마비 걸릴 정도로 겁을 준 애가 그럴 말할 자격은 있나?"


    자기 이름이 나오자 샤이닝 아머는 메뉴판에서 시선을 때며 말했다. 


    "사실.. 널 걱정하느라 무서운 진 잘 모르겠던데.."


    그 즉시 선셋의 양 뺨이 화끈거렸다. 선셋은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렸다. 선셋의 망상이 또 한 번 선셋을 배신했다. 샤이닝 아머와 입술을 맞댔던 경험, 달콤한 타액을 나눴던 경험, 서로의 혀가 입안에서 어우러졌던 경험, 앞발로 샤이닝을 껴안고 있던 경험까지. 아아.. 이런 경험을 또 할 수만 있다면. 거기서 좀 더 진도를 뺄 수만 있었다면..


    아무리 긴박한 상황에서 함께 한 포니들은 그 때 분비된 아드레날린 때문에 평소보다 그 포니를 좀 더 매력적인 포니로 보게 되며 그건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감안해도, 선셋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샤이닝 아머를 원하고 있었다. 자기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뛰어든 그 모습도 멋있었다. 그런고로 선셋은 확신했다. 자기가 샤이닝 아머를 원하는 건 결코 단순히 순식간에 친구들을 모두 잃어버린 외로운 알리콘의 대체용 친구 찾기 따위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오랜만에 동일 종족의 생식기를 맛보고자 하는 그런 음흉한 의도 '만' 있던 건 결코 아니라는 것.


    '또 좆 생각만 존나게 한다... 의자 쿠션 흥건해지기 전에 이만 끊어야겠다.'


    인간 세상이었다면 바지 때문에 티가 안 날 테지만 말이다. 선셋은 아래에 통풍이 잘 되게끔 둔부 쪽 자세를 약간 고쳐 잡은 후 메뉴판으로 관심을 돌렸다. 어디 먹을 만한 게 뭐가 있는지 볼까..


    제일 앞 페이지에는 여러 문화권을 막론한 요리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었다. 신선도 보존 주문의 발전 덕분에 냉동 보관 관련 전공 지식을 쌓은 유니콘만 고용하면 이퀘스트리아 어떤 곳에서든 세계 각국에서 수입된 이국적인 음식과 식재료들을 부패할 걱정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길디드 트뤼플 레스토랑은 이 점을 십분 이용해 세계 각국의 독특한 고급 요리들을 원재료 맛의 손실 없이 내놓는 걸 자랑거리로 삼는 레스토랑이었다.


    그 말인즉슨 아무리 메뉴판이 인간의 전화번호부 수준으로 굵었다 한들 뭘 시켜도 평타 이상은 친다는 의미였다. 3년간 인간 세상의 음식에 너무 익숙해졌으므로 다시 이 세상의 음식명을 기억해내려면 약간 고생을 할 테지만 말이다. 인간 세상의 스테이크에 해당하는 음식은 일단 이퀘스트리아에는 없었다.


    인간 세상에서는 없는 돈을 쪼개 효율적으로 소모해야 됐었다. 그러므로 선셋은 인간 나라의 비정상적인 유통구조 탓에 유난히도 쌌던 육류를 입에 댈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몇 번은 억지로 먹었지만 희한하게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빠져드는 맛이었다. 아아.. 육즙이 흐르는 햄버거의 그 맛.. 귀리 버거도 물론 괜찮았지만 고기는 고기 특유의 고유의 맛이 있었다. 


    문득 골똘히 메뉴판을 보는 망아지 트와일라잇이 눈에 띄어 선셋은 잡식성 동물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생각을 잠시 거두었다. 하긴, 처음 보는 음식들이 거의 사전 수준으로 수록된 책인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까..


    "뭐 맛잇어 보이는 거라도 있어? 트와일라잇?"


    메뉴판에서 시선을 때지도 않고 트와일라잇은 대답했다.


    "전체적인 재료와 가격 대 성능비, 시각적 만족감까지 고려하면.. 음. 그냥 퀘사딜라 하나 먹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희한한 선택이군. 선셋은 한 쪽 눈꼬리를 올렸지만 별 말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전에 자기가 뭘 먹었던가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선셋의 경험 상 영장류와 기제류의 미뢰는 서로 구조가 판이하게 달랐다. 인간은 맛있게 먹는 음식을 포니는 입에도 못 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인간의 음식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선셋의 눈에는 지금 메뉴판에 나와 있는 음식 태반이 먹을 것도 없이 화사하게 치장된 푸성귀로만 보였다. 물론 이렇게 되리란 건 인간 세상에서 3년을 보낸 뒤 이퀘스트리아로 건너올 결심을 했을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고, 막상 다시 먹어보면 또 잘 먹을게 뻔했지만 그래도 속이 약간 쓰려왔다.


    문득, 캐이댄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페투치니 알프레도, 구운 감자, 가든 샐러드 두 접시, 당근찜 한 접시. 디저트로는 초콜릿 무스. 이렇게 시킬게."


    샤이닝 아머는 뜨악한 표정으로 캐이댄스를 바라보았다. 알리콘의 식욕이 왕성하다는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선셋은 한숨을 쉬며 트와일라잇이 보고 있는 메뉴판 페이지를 곁눈으로 본 뒤에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음.. 난 콩 샐러드, 건초 쌈, 퀘사딜라 하나하고, 사이드메뉴로 오크라 튀긴 것. 디저트로는.. 아! 빵 푸딩이 좋겠네. 트와일라잇. 우리 나눠먹자. 알았지?"


    트와일라잇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선셋은 말을 마쳤다.


    선셋을 돌아보며 트와일라잇은 방긋 웃었다. 이런 둘의 모습을 캐이댄스가 희한하단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석연치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망아지들하곤 별로 안 친한 줄 알았더니.."


    선셋의 볼이 한번 화끈거렸다. 트와일라잇을 한 번 힐끔 살피며 캐이댄스의 말에 대답했다.


    "그..그게... 트와일라잇은 예외야 예외."


    "아 맞다! 오빠! 선셋 공주님이 나 마법 가르쳐주신댔다?"


    트와일라잇의 깜짝 선언에 메뉴판을 보고 있던 샤이닝 아머는 버럭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이제야 알겠다는 듯 캐이댄스는 요사스런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음~ 우리 선셋, 앞으로 트와일라잇 가르쳐주러 샤이닝 집에 자주 들리겠구나? 맞지?"


    캐이댄스의 말에 감춰진 의미는 뻔했다. 선셋은 괜스레 샤이닝 아머를 째려보며 말했다.


    "으윽...! 넌 빨리 음식 안 고르고 뭐 해! 웨이터 오고 있잖아!"


    1분 후, 웨이터는 상당히 긴 주문서를 받고 나서 주문한 음료를 내려놓고 난 뒤 물러갔다. 결국 샤이닝 아머는 일종의 과일 덮밥 한 그릇밖에 시키지 못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캐이댄스는 트와일라잇과 함께 제 오빠에 대한 여러 가지 바보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셋은 그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반쯤 삐딱하게 듣기는 했지만, 트와일라잇이 자기 오빠를 상당히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대견했다.


    그러는 게 좋았다. 만약 선셋과 샤이닝 아머가 해어질 때를 대비해서라도 말이다.


    그래도 의지할 포니가 한 필 정돈 있다는 이야기니까.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이건 절대 곱게 끝날 리가 없다. 그런 예감이 문득 들었다.


    그 귀여운 웃음을 짓는 얼굴이 실연의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지게 만드는 게 중죄라고 해도 말이다.


    캐이댄스와 트와일라잇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니 둘의 이야기도 끝난 모양이었다. 둘 사이에 끼어드는 대신 선셋은 전부터 궁금하던 의문을 하나 해소하기로 했다.


    선셋은 아까 한 복잡한 생각은 치워버린 뒤 샤이닝 아머를 쳐다보며 물었다.


    "샤이니.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왕립 유니콘 학교에는 안 다닌 거야?"


    샤이닝 아머는 몇 초간 트와일라잇을 쳐다보다가, 곧 다시 선셋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집에 돈이 없었거든."


    다시 캐이댄스와 이야기하는 동생을 돌아보며 샤이닝은 말을 이었다.


    "근데 트와일라잇은 괜찮을 거야. 요새 우리 부모님이 저축해두신 게 꽤 되고, 엄마 친구가 엄마를 출판사 편집자 자리에 꽂아줬으니까."


    "괜찮다니. 뭐가?" 트와일라잇이 불쑥 물었다. 샤이닝 아머는 그 자세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 순간 웨이터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와 트와일라잇의 관심을 돌렸으므로 샤이닝 아머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인간 세계와는 달리 샐러드는 이퀘스트리아에서는 전채 요리가 아닌 주 요리였고, 선셋은 또 한 번 때 아닌 문화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이퀘스트리아는 남성이 거시기를 뻔히 드러내놓고 다니는 곳이라던가, 선셋이 길거리를 나다닐 때 바람 불 때마다 아랫도리가 어쩐지 휑하다는 사실에 비해선 극히 사소한 차이점이었다. 물론 3년간 인간 세상에서 활동한 건 아직 확실한 사실은 아니-


    '아니. 확실해.' 선셋의 시선은 트와일라잇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지난 3년간의 경험이 거짓이 아니라는 훌륭한 증거가 바로 여기 있지 않은가..


    음식은 염동력으로 서빙 되었다. 90%는 선셋과 캐이댄스의 음식이었던지라 둘은 멋쩍은 미소를 교환했다. 점심값은 현역 사랑의 공주인(그리고 정식으로 왕궁에서 막대한 지원금을 받고 있는)캐이댄스에게 떠넘길 예정이었지만, 이렇게 끝내기에는 어쩐지 아쉬웠다. 아무렴, 샤이닝 아머가 정말 죽을 정도로 겁을 먹게 만든 포니인데 그 정도로 넘어가기엔 좀 섭섭하지.


    "캐이댄스. 마법 연습하자. 지금부로 식사할 때 발굽이랑 날개를 아예 쓰지 말고 염동력으로만 먹어."


    캐이댄스는 인상을 구겼긴 했지만 선셋의 말을 따라 샐러드 그릇에 얼굴을 처박는 대신 포크를 마력으로 집어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불안하긴 했지만 상당한 발전이었다. 이번엔 포크가 흔들리는 수준이 겨우 강도 7.0의 지진이 일어난 수준이었으니까.


    선셋은 샐러드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포니의 몸으로 먹은 샐러드는 인간의 몸으로 먹은 것 보다 몇 배는 더 맛있어서 선셋은 어쩐지 행복했다.


    선셋은 음식을 한 입 가득 씹으며 트와일라잇을 내려 보았다. 트와일라잇은 온 몸에 힘을 주며 녹은 치즈가 가득 든 퀘사딜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내가 아까 캐이댄스에게 한 말 때문에 저러나..


    "좀.. 도와줄까?"


    조심스럽게 선셋은 물었다. 만약 트와일라잇이 캐이댄스와 같은, 그러니까 잠재 마력은 넘치지만 막상 그걸 통제할 실력이 없는 포니라면, 섣불리 뿔을 다루는 건 결국 쪽팔린 사고로 이어질 게 뻔했다.


    하지만 트와일라잇은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이제 트와일라잇의 뿔끝에선 자그마한 섬광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아뇨! 혼자 할 수 있어요!"


    트와일라잇의 대답과 동시에 보라색 빛이 퀘사딜라를 감쌌다. 퀘사딜라는 몇 초간 공중을 맴돌다가 갓 염동력을 시전한 트와일라잇의 얼굴에 힘차게 날아가 처박혔다.


    트와일라잇은 새파랗게 겁에 질려 바닥을 대굴대굴 구르며 외쳤다.


    "끼야아아아악! 오빠! 공주님! 도와줘요! 퀘사딜라가 날 먹으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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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별 말 없이 조용했다. 캐이댄스는 어떻게든 선셋과 대화를 이어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선셋의 머릿속은 이미 다른 생각들로 바빴으므로 대답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귀여운 트와일라잇, 매력적인 샤이닝아머에 대한 캐이댄스의 말을 겉귀로 흘렸고 단답으로 넘겼다.


    트와일라잇과 같이 시간을 보낸 결과... 선셋은 저 유니콘 망아지가 진짜 트와일라잇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똑같이 똑똑하고,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낮추는 경향이 있었고, 정직하고 착한 포니였으니까. 비록 나이는 원래 트와일라잇과 달랐지만 트와일라잇 고유의 편집증적인 기벽도 그대로였거니와, 선셋의 세포 하나하나마다 흐르는 우정의 마법이 트와일라잇과 공명한 것을 볼 때 이 사실은 확실했다. 트와일라잇은 진짜 그 트와일라잇이 맞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가설들을 몇 개 세워봤지만 전부 설득력이 떨어졌다. 선셋이 세운 첫 번째 가설은 거울의 차원 통로를 지나갈 때마다 거울 양 편의 세상에서는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간다는 가설이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트와일라잇이 선셋과 동갑이었던 이유는 선셋이 두 번 차원문을 건너갔을 때 차원문 바깥세상에서 약 10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가설은 구멍이 많았다. 일단 선셋이 왕관을 훔쳐 인간 세계로 넘어왔을 때 여전히 가을 무도회 준비가 한창이었던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가설대로라면 이미 오랜 세월 전에 끝나있어야 했었다. 일지 또한 그랬다. 셀레스티아는 선셋이 거울 너머로 넘어온 그 순간부터 연달아 선셋에게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냈었다. 아무리 선셋을 걱정하는 어머니라지만 10년 동안 답장도 하지 않는 제자한테 이 정도로 공을 들일 것 같진 않았다.


    선셋은 이제 자신을 좀먹어오는 불안감의 이유가 무엇인지 약간이나마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지금 트와일라잇의 나이 문제에 가린 진정한 문제가 비로소 선셋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어...? 난 어쩌고.."


    마치 자신의 원래 자리를 뺏어간 선셋을 힐난하는 듯한 트와일라잇의 모습..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공주의 얼굴은 공포로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트와일라잇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선셋이 알리콘이 돼서 시간축에 끼어들었는데 말이다. 과연 셀레스티아에게 충분한 지도와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내 주변에 있다가 나쁜 물이라도 드는 거 아닐까? 선셋이 바람직한 롤 모델이 아니라는 건 선셋 본마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젠장. 왜 이리 복잡한 거야? 인간 세계에서 이퀘스트리아로 돌아가면 삶이 좀 더 단순해질 줄 알았더니!'


    잠깐.. 인간 세상...! 선셋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문제에 관한 해결책은 어찌 보면 간단했다. 선셋이 원래 시간축대로 인간 세상으로 떠나버리면 트와일라잇의 미래를 가로막을 장애물도 사라지는 것이다.


    "선셋 쉬머. 태양 궁정으로 즉시 따라오도록."


    갑자기 걸걸한 목소리의 수말이 선셋을 불러, 선셋은 하고 있던 생각에서 벗어났다.


    "실례하겠습니다. 캐이댄스 공주님.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다른 지시사항이 있을 때까지 방에서 대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선셋은 멍하게 성 대문 도개교 앞에 서 있는 경비병들을 쳐다보았다. 4필의 이퀘스트리아 제식 경비병 복장을 한 페가수스들과 유니콘들, 공중을 날며 사주경계를 하고 있는 또 다른 4필의 페가수스들까지.. 이걸 둘러보고 있을 때 장교처럼 보이는 포니 한 필이 선셋의 앞으로 나왔다.


    하드 라인. 경비대 대장. 저명한 군마 가문 출생으로 밑바닥 계급으로 시작해 고위 장교자리까지 다다른 사나이. 물론 캔틀롯에서 그의 정치적 입지는 한없이 낮았지만 그가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여긴 포니에 한해 그의 위세는 언제나 당당했다.


    고귀한 태생도 아닌 주제에 선셋이 공주의 과도한 예쁨을 받는 것을 하드 라인은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선셋이 알리콘으로 승천한 건 그 늙은 꼰대에겐 꽤나 배 아픈 일이였을 것이다. 실제로 한동안 선셋은 궁에서 하드 라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말이다. 다른 장난감 병정들처럼 선셋 공주의 발굽에 입을 맞추는 건 그의 그 드세디 드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겠지.


    그렇다고 선셋이 하드 라인을 아주 경멸하는 건 아니었다. 저 유니콘은 한정된 재능만으로도 자기가 바라볼 수 있는 곳 그 이상의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니 그 점은 충분히 높게 사 줄만 했다. 


    하지만 경비대 대장 자리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미 호위해야할 대상인 셀레스티아 공주 자체가 누구에게 호위를 받을 정도로 나약한 포니가 아닌데. 사실 경비병들보단 알리콘들이 이퀘스트리아를 수호한다는 게 더 맞는 말이었고, 결국 공주들이 있는 한 아무리 좋게 쳐줘도 경비병들은 도어맨, 일정 알림표, 총알받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죠? 하드 라인 대장?"


    하지만 선셋은 가능한 한 상냥한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경비 직책을 맡고 있는 자에게 굳이 시비를 틀어봤자 나중에 질 책임만 늘어난다는 건 인간세상에서 배워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포니 말 못 알아먹나 이 괴물아?"


    하드 라인은 침을 탁 뱉으며 말을 이었다.


    "경비병들 중앙에 서라! 당장!"


    일어난 모든 일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선셋은 뒷걸음질을 쳤다. 공격적인 언사도 모자라서 침까지 뱉어? 선셋의 이성은 한 순간 증발해버렸다. 똑같이 모욕적인 말로 응수를 해 주려는 찰나.


    "잠깐만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캐이댄스가 선셋의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발굽을 한 번 구르며 경비병들을 째려보며 말이다.


    "제군들!"


    하드 라인은 도개교를 감아올리는 장치 쪽에 있는 병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저 분홍 포니 아가씨를 방으로 데려가도록! 내 지시나 셀레스티아 공주님 지시 없이는 절대 내보내주지 마라! 그리고 거기 괴물! 당장 날 따라와라!"


    선셋은 하드 라인을 잡아 먹을 것처럼 노려봤다. 저 꼰대가 아무리 날 별로 안 좋아했다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싫어한 적은 없었는데!


    "지금 네가 안락한 이 직장에 미련이 없어져서 지금 이러는 모양이지? 어디 두고 봐. 어머니랑 이야기만 끝나면 추운 북방으로 강제로 전근 가서 이등병 생활부터 다시 해야 될 테니까!"


    하드 라인은 오히려 콧방귀를 뀌며 응수했다. "그럴 일은 없다. 오히려 봉급이 오른다면 모를까."




    셀레스티아의 왕좌로 끌려가는 동안 선셋은 발을 굴러 발을 딛는 자리마다 산산조각내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러 참고 있었다. 마음만 같아선 한달음에 셀레스티아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앞의 경비병에게 부딪힐 때마다 하드 라인은 날이 선 어조로 천천히 가라고 선셋에게 주의를 주었다.


    '침착하자 선셋.. 이 일만 참으면 저깟 놈들 쯤 불명예 제대시킬 수 있으니..'


    차기 공주는 속으로 이렇게 뇌까렸다. 명백한 정치적 보복이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다른 포니를 이딴 식으로 대우하는 포니는 경비병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샤이닝 아머가 이런 병신들이 있는 곳에 자원해서 들어간다니.. 선셋은 이를 부득 갈았다. 샤이닝 아머는 이런 장애마 집단엔 너무나 과분한 포니었다. 물론.. 선셋 공주의 명에 순순히 복종하는 샤이닝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안 그려봤던 것은 아니지만..


    '내 자리를 데워두도록.' 선셋은 상상 속의 샤이닝 아머에게 자신의 침대를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내 명령을 따른다면 특별히 힘을 써서 일병으로 진급시켜 주겠어.'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뒤에서 경비병이 엉덩이를 떠미는 바람에 선셋의 망상은 상상조각났다. 선셋은 화들짝 주변을 둘러보았다. 궁궐 관리마들이 다들 선셋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중엔 최근 친근한 인사를 나누었던 선셋의 방 청소를 맡는 하녀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어색하게 선셋의 눈치를 살피며 두런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하녀들은 지들끼리 그 자리에 박혀 수군거리다가 선셋이 가까이 다가가자 도망가 버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다들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곤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야? 대체.."


    이제 선셋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드 라인은 뒤로 홱 돌아섰다. 너무 급하게 돈 모양인지 한 쪽 다리를 삐끗한 것 같지만 본마는 별로 괘념치 않는 듯 했다.


    "조용! 한 번만 더 그 더러운 주둥이를 놀렸다간 이빨이 아파올 정도로 고삐를 단단히 메 줄 테니 그리 알고 있어라!"


    대가리를 박살내고 싶었지만 선셋은 꾹 참았다. 귀를 축 내리고 입을 꼭 닫으며 순순히 하드 라인의 뒤를 따라갔다.


    마침내 셀레스티아의 왕좌.. 선셋의 입은 떡 하고 벌어질 뻔 했다.


    좌우의 상석엔 이퀘스트리아의 각 정당에서 나온 50필의 포니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선셋이 통로에 길게 깔린 양탄자 위를 걸어올 때 어머니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왕좌 위에 앉아있었다. 이 자리에는 단순히 귀족들만 모인 게 아닌, 고위 장교나 언론마들, 각 기관의 대변인 등등의 각기 다른 계층의 방청객들도 한가득 이었다. 거기에 삼엄하게 경계를 하고 있는 경비병들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밀어터질 지경이었다. 공중에는 페가수스 12필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왕좌 근처에는 유니콘들이 일렬횡대로 서서 셀레스티아를 호위하고 있었다.


    선셋을 둘러싼 포니들에게선 공포, 적대감, 그 두 가지밖에는 읽을 수 없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선셋의 패배로 가을 무도회가 끝났을 때, 학교 학생들의 공공연한 사생활이 SNS에 누설되어 선셋이 누명을 썼을 때, 캔틀롯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선셋을 향해 일제히 손가락질을 할 때와 똑같은 감각이었다. 이 기묘한 일치감에 선셋은 어머니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셀레스티아에게 불려가는 건 이전에도 항상 있었던 일이지만, 공개석상에서 호출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셋 쉬머. 네가 변신충의 첩자라는 증거가 입수되었다."


    셀레스티아 공주는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운을 땠다.


    "제 3차 변신충 전쟁 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5분 동안 변론할 기회를 주겠다. 그동안 네가 변신충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거나... 혹은 진짜 선셋 쉬머는 어디 있는지 실토하도록 하라."


    선셋은 가슴 한 구석이 아득하지는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왕좌 앞에서, 50필의 귀족과 경비병을 포함한 여러 포니들에게 둘러싸인 채..



    "네?!"


    ---------------------------------------------------------------------------------------------------------------



    9시 출근, 9시 퇴근이라 맘잡고 번역할 여유가 잘 안나네요; 시즌 프리미어도 아직 못 봤네 ㅠㅠ


    어쨌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다음 화는 6천 단어 가량이니 이것보다 빨리 번역되긴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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