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우리의 주적(主敵)인가, 아닌가.
해묵은 주적 논란이 또 불거졌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19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주적 개념을 놓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공방을 벌이면서다.
① 국방백서에 ‘북한=주적’ 명시? “거짓”
유 후보는 “국방백서에 북한이 주적이라고 나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올해 1월 발간한 2016년 국방백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장병들의 정신교육 자료에도 ‘적’으로 표현할 뿐 주적이라는 용어는 없다. 김정은 정권과 이를 호위하는 북한 군은 우리의 적이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 것이다.
과거 주적 표현은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남북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등장했다. 당시 박 대표는 “서울이 여기서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만다”고 위협했고, 국방부는 1995년 발간한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는 문구를 넣어 대북 경계심을 강화했다.
이후 2000년까지 국방백서에 국방목표로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 함은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뿐만 아니라…”라는 표현이 유지됐다. 하지만 참여정부 들어 발간한 2004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대량살상무기, 군사력의 전방배치 등 직접적 군사위협”이라고 표기하면서 주적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2006년 국방백서에서는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 바뀌었다가, 이명박정부 때 발간된 2008년 국방백서는 “북한의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거치면서 ‘위협’이 다시 ‘적’으로 달라졌다. 당시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기술한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주적이 있다면 부차적인 적도 있어야 하는데, 북한이 주적이면 중국과 러시아는 부차적인 적이라는 뜻인가”라며 “냉전 시대 ‘주적’ 개념을 언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북한은 우리의 적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통합해야 할 같은 민족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는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② 역대 대통령이 주적 표현 써왔다? “거짓”
유 후보는 토론에서 문 후보가 주적 규정에 대해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고 하자 “군통수권자가 주적이라고 말을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이 북한을 주적이라고 콕 집어 말한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5월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국민원로회의에서 “우리 군이 지난 10년 동안 주적 개념을 정립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달 전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실제 정부는 주적 개념 부활을 검토했지만, 국론분열과 파장을 우려해 이듬해 초 발간된 2010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을 끝내 담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북한은 통일의 대상이자 한국의 안보위협이라는 이중성이 있지만 군사적으로 한국의 주적”이라고 언급했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 북한을 주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2001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대만 베트남 이스라엘 독일 등 8개국의 국방백서 등 주요 발간물을 조사한 결과 주적 용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없었다. 1998년 서독 국방백서는 ‘동독 및 소련을 군사적 위협’, 2006년 중국 국방백서는 ‘대만을 대만독립 분열세력’으로 각각 표현했다. 2002년 대만 국방백서는 ‘중국을 심각한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③ 주적 표현은 국방부가 할 일…”사실”문재인 후보는 유승민 후보가 ‘주적’ 표현을 빌미로 물고 늘어지자 “대통령이 되면 남북간 문제를 풀어가야 될 입장이다”며 “국방부가 할 일이 있고, 대통령이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응수했다. 국방백서에 나오는 표현은 국방부의 소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년마다 국방백서를 발간하는데, 정책실 기본정책과의 사무관이 목차의 얼개를 짜면 각 부서가 해당내용을 집필한다. 이후 군비통제차장(국장급)의 최종 검토를 거쳐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시시콜콜 관여하지 않는다. 개념적인 수준의 국가안보전략지침을 하달할 뿐 국방백서를 이 잡듯 뒤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교부가 발간하는 외교백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주적 표현처럼 사회적으로 논란이 커지는 핵심 표현은 청와대와 협의를 거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방백서 발간은 국방부의 몫이라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총평 : 유승민 후보의 “국방백서에 주적 나온다” “군 통수권자가 주적이라고 못하는 게 말이 되는가”는 주장은 거짓에 가깝다.
김광수 기자
rollings@
hankookilbo.
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