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그곳엔 한 아저씨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책을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상했다.
아저씨는 나를 보고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야 눈을 떴구나. 슬슬 깨울까 했단다.”
그러곤 슬쩍 웃었다.
이상한 아저씨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나? 음. 그래. 뭐라 말해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이야기꾼이란다.”
“이야기꾼..”
“그래. 네가 여기에 있는 것도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온거야. 오늘은.. 그래.”
“미운오리새끼. 이 이야기를 들려줄께.”
“이야기.. 정말 오랜만이네요.”
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더 다행이고.”
아저씨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탁,하고 불이 꺼졌다.
옆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었다.
그곳엔 분수가 아닌 강이 있었다.
오리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큰 오리 두마리였다.
“옛날 옛적, 서로 깊게 사랑하는 두 오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오리는 서로를 사랑해선 안됐어요. 뭐 일단 나이가 안됐죠. 게다가 가족에서의 반대가 심했죠.”
“그야말로 눈물겨운 금단의 사랑이었습니다.”
점차 불이 꺼지며 두 오리가 사라졌다.
잘 어울려 보였다.
“이제 두 오리는 사랑의 도피를 합니다. 멀리멀리 날아가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서 보금자리를 꾸리죠.”
불이 켜진 곳엔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다.
그래도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알을 갖게 됩니다. 어린 그들은 부모가 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둥지엔 알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알이 깨지고, 이윽고 우리들의 주인공 오리가 나타납니다. 아들 오리였죠.”
둥지엔 작은 오리가 있었다.
“처음은 행복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오리 사이에 문제가 생겨납니다.”
어미 오리는 웃고 있었지만, 아빠 오리는 왜인지 전혀 웃는 표정이 아니었다.
굳이 얘기하자면 그건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이 아들 오리가 자신과 너무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죠. 오똑한 부리도, 황갈색 눈동자도 뭐도.”
“그래서 아빠 오리는 점점 황폐해져만 갔습니다. 의심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기도 했죠.”
아빠 오리는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술에 풀게 되었습니다. 마시고 마셨죠. 그리고 아빠오린 집에 돌아와 횡포를 부립니다.”
“그리고 그 우리들의 주인공인 아들 오리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런 어미 오리는 가정이 파탄난 것을 아들 오리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그래서 어미 오리도 아들 오리를 미워하게 됩니다.”
아들 오리는 당하고 있었다.
아빠 오리는 부리로 쪼고, 어미 오리는 날개로 툭툭 쳤다.
“아들 오리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죠.”
“그렇게 지내다 동생 오리가 태어났습니다.”
알이 한 개 탁,하며 튀어나왔다.
그리곤 작은 오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작아서 귀여운 오리였다.
“아들 오리는 동생 오리와 친하게 지냈어요. 항상 같이 있어줬죠.”
“하지만 여전히 부모 오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똑같이 의심하고, 덮어 씌우고.”
“어느 날 아들 오리는 동생 오리가 맞는 걸 봤습니다.”
아빠 오리가 동생 오리를 때리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달려왔다.
아들 오리였다.
“아들 오리는 필사적으로 막았어요.”
“그 날, 아들 오리는 평소보다도 몇 배는 더 맞았습니다.”
정말 끝도 없이 맞았다.
점점 불이 꺼졌다.
“그리고 동생 오리 옆에서 아들 오리는 죽어버렸습니다.”
끝, 하고 아저씨는 자리에 앉았다.
“이 이야기 어떤 것 같니?”
아저씨는 차를 한모금 마시며 나를 바라봤다.
“너무해요.”
그리고 허무해요, 라고 나는 덧붙였다.
“그렇다면 넌 잘 들은거란다. 원래 이야기란 그런 거야.”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허무해도 상관없어요.”
“그래. 잘 아는구나. 허무해도 상관없어.”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그럼 어디로 가면 나갈 수 있을까요? 이제 슬슬 걱정할 것 같아요.”
“뭐.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겠죠.."
아저씨는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떠나기 전에 악수 한 번만 부탁해도 될까?”
“네. 물론이죠.”
나는 아저씨의 손을 잡았다.
“아. 그리고 아까 ‘미운 오리 새끼’ 말인데요.”
“그거 원래 마지막엔 알고 보니 백조였단 얘기죠?”
아저씨는 조금 허를 찔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누구에게 들었나 보구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해주셨던 이야기에요.”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어요."
“그래.”
아저씨는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밝게 웃었다.
“그럼, 잘 가렴.”
갑자기 세찬 빛이 몸을 감쌌다.
그리고 점점 세상이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던 아저씨의 얼굴마저 안 보이게 되었을 때
새하얗고 새파란 하늘만이 있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작고 여린 그 아이는.
내 동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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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미운 오리 새끼’는 백조였을까.”
남자는 흔들던 손을 내렸다.
“사실은 오리였네”
“하지만 백조이기도 했지.”
“자네들의 아이라는 점에선 오리였겠지.”
“하지만 자네들에겐 과분한 아이였어.”
남자는 입가에 조소를 띄웠다.
시선의 끝엔 남녀가 있었다.
그는 무언가 성내고 있었고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공허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둘 다 무언가 내뱉었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거 아는가? 자네들만 아니었다면 저 아이는 ‘무언가’가 되었을 것이네.”
“그래. 자네들 같은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비운의 주인공들이 비운의 주인공을 만들어 내는군. 정말, 끔찍한 일이야."
남자는 의자에 앉아 그들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그도, 그녀도 조용해졌다.
“왜 여기 있는지 이젠 궁금하지 않겠지?”
“자네들의 ‘실패’가 무엇인지, 알겠나?”
“자네들이 한 ‘실패’를 보니 어떤 기분인가?”
그들은 아무말 없이, 단지 떨고 있었다.
“원래는 죄에 걸맞은 벌을 주려고 했지만..”
“자네들을 마지막까지 생각했던 그 아이 덕이라고 생각하게.”
그리곤 남자는 품 안에서 총을 꺼냈다.
그들은 그 모습에 얼어붙었다.
남자는 총알 두 발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를 겨냥했다.
“자네들에겐 정말 영광인 일이네. 잊지 말게나.”
“절대로, 잊지 말게나.”
남자는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