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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박형진, 사랑
풀여치 한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대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이화은, 여행에 대한 짧은 보고서
사는 일이 그냥
숨쉬는 일이라는
이 낡은
생각의 역사(驛舍)에
방금 도착했다
평생이 걸렸다
박인환, 얼굴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길을 걷고 살면 무엇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눈매을 닮은
한마리의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엇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에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담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잊혀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한소운, 유배지에서의 편지
그가 그랬던 것처럼 몇 자 적는다
바람과 파도가 울어
그 가락을 짚는 빗줄기 너머로
세월에 기대인 세연정
그가 바라보았던 땅 끝을
오늘 내가 바라본다
사람에 지치면 말없는 것이 그리운 법이다
그토록 지키려 했던 절개
머리칼 향기 뿌리는 소나무에게 다시 묻는다
등이 휘도록 서울 쪽을 바라보아도
다섯 친구 서울에는 없다
늘 그랬던 것처럼 편지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저 땅 끝을 지나 뻥 뚫린 큰길 육교 지하도
미치도록 달려 나갈 그곳
뚝, 울음 그친 하늘에
헛발 내딛는 저 무지개
눈물 속에 한사람 흔들리며 가고
오늘밤 이 가슴은 섬 하나로 벅차다
심언주, 문신
새들은 날아가면서
공중에 타이핑된다
새해 무슨 예언 같기도 한
아직 풀지 못한 퀴즈의 힌트 같기도 한데
뭐라고 썼는지 알 듯 말 듯하다
더 높이 날아간 새는
태양 한가운데
흑점으로 박힌다
모래를 파내어
물길을 만들고
종이를 파내느라 닳은 부리는
종이에 박혀 글씨가 된다
새들이 밤을 파내는 동안
하늘에서는 노랗게 오이꽃이 핀다
새는 배경이 원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배경을 상처 내면서
무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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