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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첫 번째 밤, 광대패 속의 여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58683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두 번째 밤, 절지당(絶指堂).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60495
임금은 늦은 시각까지 어전회의로 골머리를 썩었다.
회의록과 갖은 서신들의 종이 냄새, 조금은 퀴퀴한 먹물 냄새 따위가 코를 간지럽힌다. 평소보다 더욱 열의를 갖추고 회의를 한다. 그것이 용안에 드러나 깊게 잡히는 미간의 주름이 그것을 대변한다. 임금이 몰두하는 만큼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간다.
임금이 정사를 돌보지 아니하면 그만큼 나라가 굴러가지 않았다.
분명 임금이 매일같이 하는 일과들은 나라가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원동력이 된다.
임금이 하루라도 쉬는 날에는 하루만큼 나랏일이 정체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에게 전해지는 소식들이나 임금의 명으로 이행되는 일들이 꼭 임금의 의도대로 움직여진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별 이득을 취할 길이 없어 보이는 일들은 그저 임금의 말을 따르고 임금에게 바른 현실을 고하지만,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할 길이 보인다면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그것을 취하고 거짓된 일을 고하는 것이다.
백성들의 고혈을 빨 수 있다면 그 썩어진 살 속에 굳은 어혈마저 빨아먹을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임금이었다.
어전회의를 마무리 지은 임금은 그대로 자신의 침전을 향한다.
오늘도 그 신비스러운 여인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녀에게 자신이 하루 동안 고민하여 내어놓은 답을 전하고, 그에 맞는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생각한 바는 여인의 의도와 일치하는가.
자신의 걸음걸이마저 재촉하는 임금의 모습에서 많은 감정들이 묻어난다.
“전하, 금일도 강녕 하시었사옵니까?”
속히 침전으로 발걸음 하던 임금을 멈춰 세우는 인사.
재촉하던 걸음이 멎어 머쓱해진 임금은 자세를 고쳐 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위엄을 갖추어야 하는 자리의 사람이 행하는 하나의 ‘태’ 라고 할 것이다. 감히 임금의 걸음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는가. 그것도 인경이 울리고 난 이후의 야심한 밤에.
“중전이 아닌가, 밤바람이 차거늘 어인일로 애써 과인을 찾으셨소.”
“전하, 신첩(臣妾)이 무슨 책잡힐 일이라도 한 것이옵니까?”
예를 몹시도 중하게 갖추고 한 이야기였지만 중전의 강경한 태도가 그녀의 목소리에서 물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에 대해 임금은 짐짓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눈치로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중전을 대한다.
“허허, 그게 무슨 소리요. 어찌 그런 생각을 하는 게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지 않고서야……. 전하, 신첩에게 어리석어 알지 못했던 불경함이 있다면 전하께오서 명해주소서. 어떠한 것이라도 고쳐 보겠으나 그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목숨을 끊어 전하께 사죄를 드릴 것이옵니다!”
더욱 더 절절하고 강경한 태도로 일관되는 중전의 기세는 그 고개가 더욱 굽어졌으나, 목소리에서 흘러드는 그 의지가 하늘로 치솟을 듯 끝이 없었다. 이처럼 임금의 앞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실로 중전이기 때문이다.
“어허,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여봐라, 바람이 차니 속히 중전을 중궁전으로 들게 하라.”
“전하…! 전하…!!”
짐짓 중전의 걱정에 귀히 여기며 하명하는 모양새였으나, 그 의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이를 모르는 척 따를 뿐, 그 의미는 크던 작던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일이었다. 현 임금은 중전을 대하기 몹시 꺼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리하기에 내치지도 못하고, 그저 간간히 중궁전에 들어 따뜻한 안부를 묻고 생활에 부족함이 없게 수시로 마음 써 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임금이었지만 중궁전에서 잠을 청하는 일은 없었다는 일이다.
침소에 마음이 먼저 가 닿았던 임금은 비로소 그 보체(寶體)가 마음이 있는 곳으로 당도할 수 있었다. 바삐 곤룡포를 벗고 대비를 끝낸 임금은 시녀들을 물리고 침소에 자리했다.
마침내 침소에 자리하고 나니 임금은 여태껏 서두름을 보였던 자기 자신의 모습들이 늦게나마 눈에 밟히는 탓에 부끄러워졌다. 신통하게 궁궐 내의 모습들을 지켜보던 그 여인이 이 모습도 눈에 담아버린 것은 아닐까 싶으니 그 부끄러움이 더욱 거세게 몰려왔다.
막을 수 없는 시간이 몰려와 가을을 이끌고 온 산맥을 지천에 붉은 빛으로 물들이듯, 거센 일조치(一朝恥 *일시적인 부끄러움)가 임금의 용안(龍顔) 또한 붉게 물들이는 것이었다.
“전하, 별고 없으셨는지요.”
갑작스레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임금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돌아간 대들보 위에는 임금이 기다리던 여인이 두 다리를 꼬아놓은 채 올라 앉아 있었다. 꼬아진 다리를 앞뒤로 휘휘 저으며 미소 짓는다. 퍽 장난스러운 모양새가 앙증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허어, 이제는 과인을 놀래주기도 하는 것이냐.”
“전하도 놀랄 줄 아시는 군요. 소녀는 깜짝 놀랐사옵니다.”
여전히 장난기 다분한 모양새로 이야기하는 여인은, 그대로 대들보 위에서 내려왔다.
꽤 높은 침전의 대들보에서 냅다 떨어질 법 했건만, 여인은 마치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스르르 내려앉는 새의 깃털마냥 임금의 앞에 천천히 내려와 앉았다.
너무도 가볍게 임금의 앞으로 내려앉은 여인은 그대로 일어나 임금의 옆자리에 앉았다.
임금이 자리를 권하지도 않았건만 여인은 너무나 쉽게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든다.
“이전의 그 이야기 말이다.”
“손가락 자르는 마을의 이야기 말씀이시군요.”
“너는 내가 마을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냐?”
호기심으로 가득 차올라 보이는 여인의 눈망울은 임금에게 무언의 재촉을 보내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뜻이 전해지는 듯하다.
“그 장지뱀 요물이 무당 행세로 사람들의 이목을 속였다고 하나, 강제한 것은 없었고 그저 따른 것은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 천인공노할 짓들을 그저 마을을 위한 풍습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보전과 이득을 위해 그 극형에 처해야 마땅할 잔악한 짓을 행한 것들이 바로 그 마을 놈들이니 말이다.”
돌리는 말을 두지 않고 당언한 임금의 모습에 여인은 짐짓 궁금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여전히 그 순수해 보이는 눈망울을 하고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무엇을 느끼셨사옵니까?”
“기탄없이 말한다면 무당과 촌장이 잘못된 다스림을 행하였으나 결국 그 잘못은 마을 놈들에게 있다는 말이지 않느냐. 믿지 않을 수 있었건만 그놈들을 믿어 죄를 지었으니 마을 놈들의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냔 말이다.”
여인은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그 시선을 보여주지 않게 되었지만 임금에게는 그 모습이 그 말을 더욱 경청하겠다는 의도를 내보이는 듯 느껴져 왔다. 그래서 계속 말을 이어간다.
“허나 나는 그에 대해 동의를 하지 못하겠구나. 그러하다면 짐이 어떠한 다스림을 행하던 간에 백성들의 처지와 모든 모습들은 오롯이 그들의 잘잘못에 걸려 있다는 말이 아니냐.”
이야기를 이어가던 임금의 낯에 수심이 드리운다. 자신의 입으로 내뱉었으나 스스로에게 매우 불편한 말이었던 탓이다. 그 수심이 임금의 기력을 붙들고 수렁으로 끌어내리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 있어 짐은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후훗….”
임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온 여인의 웃음.
다소곳이 입을 가리고 웃는 여인의 모습에 임금은 그동안 가져왔던 상념에서 벗어났고, 다시 현실감을 되찾았다. 입을 가리고 있는 여인의 손에, 그 붉은 손톱이 인상 깊게 눈에 든다.
“소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시고 여기까지 당도해 주셨으니, 소녀는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리고 깊이 고개를 숙여 임금에게 가벼이 예를 표하는 여인.
다시 고개가 제자리를 찾은 순간, 그녀는 임금과 그 존재를 마주했다.
여인의 존재감이 임금의 가슴속에 들어와 한껏 자리한다.
그로 인해 그 속내가 빠듯해지는 느낌마저 받는 임금은 그 깊은 고동을 느끼기에 이른다.
여인은 그저 임금의 넋이라도 바라볼 셈인지.
“그럼 넓으신 아량을 베푸시어, 소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주시지요.”
아직 실낱같은 빛줄기도 보이지 않아 컴컴하기 그지없는 이른 새벽이었다.
최 대감의 집에서 새벽빛보다도 먼저 어둠을 찢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집 곳곳에서 노비들이 뛰어나와 비명의 주인을 찾았다.
그날은 햇볕보다도 먼저 횃불들이 집안을 밝혔다.
“억울합니다요! 정말로 억울합니다요!”
“네놈이 진정 실성을 한 것이로구나!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네 앞에 깔려있거늘 어디서 되도 않는 거짓을 고하는 게야!”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온통 머리를 조아리고 마당바닥에 찧어댄 탓에 흙으로 그 머리통이 범벅이 된 사내. 그 사내는 머리를 바닥에 사정없이 찧으며 피가 나도록 빌고 빈다. 눈물 콧물을 질질 짜내며 싹싹 비는 사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동정심으로 눈물이 나 두 눈을 뜨지 못하게 할 정도 절절한 울음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결코 그에게 동정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유인 즉, 그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기 때문이다.
“이 호미에 머리를 찍혀 죽은 석동이 놈 옆에 네가 서있지 않았느냐! 거기다 이 호미 또한 네놈의 것이렷다! 네놈이 이 호미를 들고 석동이를 내려찍어대는 모습을 여기 있는 자들이 모두 보았는데도 어디서 발뺌이냐 이노옴!!!”
“아니옵니다!! 쇤네는 결코 기억이 나질 않사옵니다! 쇤네는 자고 있었사옵니다! 참말이옵니다!!”
“그걸 변명이라고 늘어놓는 게냐 이놈!! 네놈이 나를 정녕 병신으로 아는구나!!!”
최 대감은 있는 대로 역정이 나서 길길이 뛰어 대었다. 심기가 불편할 적마다 푸들푸들 떨려대는 최 대감의 뺨은 지금 이 순간, 쥐가 난 다리가 펄떡이듯 격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그에 따라 뺨에 난 사마귀 또한 위 아래로 오르내린다.
부들부들 떨려오는 주먹을 하늘에 이리저리 휘두르며 갖은 노기를 전부 쏟아내는 최 대감.
새벽에 몸서리 쳐질 정도로 살벌한 짓을 벌여놓은 사내를 목전에 두고도 노비들은 최 대감의 심기를 거스를까 싶어, 감히 목소리를 높이기는커녕 어디 함부로 내어놓지도 못하는 중이었다.
“네놈 같은 짐승 놈이 우리 집안에서 굴러 나왔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 집안을 무엇으로 보겠느냔 말이다 이 은혜도 모르는 짐승 놈아!!!”
그저 인륜에 얽힌 의기(義氣) 같은 올바른 마음에서가 아닌, 자신의 자존심과 이득만을 생각하여 나오는 분노였기에 그에게 동조하는 이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이윽고 분노의 불씨는 다른 노비들에게까지 번져갔고, 왜 이런 사달이 나기까지 알아채지 못했냐는 질책을 모든 노비들이 받아 냈다. 뺨을 맞아 입술이 터진 노비도 있었고 코를 맞아 코피가 터져버린 노비도 있었다.
독하면 더 독했지 여자 노비라고 해서 피해가는 법은 없었다. 머리칼이 쥐어 뜯겨 산발이 되고 땜통이 생긴 노비도 있었으며, 가슴 섶이 쥐어 뜯겨나가 젖가슴이 온통 드러난 까닭에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주저앉아 우는 이도 생겼다.
그러나 대감의 화는 끝나는 법이 없었고, 기어코 삼대독자 외아들이 나와서 뜯어 말리자 겨우 그 화를 누그러뜨렸다.
사람을 죽인 죄로 울며 빌어대던 사내는 결국 반나절 만에 포도청으로 끌려갔다.
“아버님, 소자 이러시다 건강을 해치실까 매우 두렵사옵니다.”
최 대감의 삼대독자 최 금도.
살인 사건을 마주하고 놀라서 쓰러진 어머니를 간병하다 죄 없는 노비들에게 치도곤을 안기는 아버지를 말리는 것이 너무 늦고 말았다. 그럼에도 노비들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독기마저 보이는 듯한, 최 대감의 그 괴악망측한 성미를 거둬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제 아무리 독한 최 대감도 아들의 말이라면 껌뻑 죽고 들어갔으며, 아들이 말이라도 걸어올 적에는 길길이 날뛰던 와중에도 더 없이 자애로운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금도는 남들이 천자문을 갓 뗄 무렵에, 이미 글공부 스승들과 같은 책을 두고 대등하게 논쟁을 거듭했던 수재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를 가르친 모든 이가, 정이품의 대감자리에 앉아 있는 아비의 힘이 없어도 과거만 본다면 귀한 요직에 덜컥 붙어낼 수 있을 정도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그 재능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거기다 삼대독자이니 어찌 애지중지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떤 금덩이보다도 귀한 자식이다.
“걱정 말거라! 이 아비는 네가 하루 빨리 상감마마의 눈에 들어 궁궐을 출입하며 나랏일을 도맡아 하는 모습을 볼 때 까지는 눈을 감지 않을 것이니라.”
“하오면 저에게 쏟는 그 애정의 티끌만큼이라도 노비들에게 덕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들이 가엾지 않사옵니까.”
“허허허허! 어찌 우리 금도는 머리도 명석한 것이 마음씨마저 고울꼬! 우리 집안의 복덩이야!”
그렇게 흡족해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최 대감의 눈가에는, 평소 미간에만 잡히던 주름이 한가득 자글자글하게 잡혔다.
최 대감은 날이 저물 무렵, 노비를 시켜 떠온 약수를 가지고 눈을 씻고 귀를 씻었다.
새벽녘부터 못 볼 것을 보고 못 들을 일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깨끗이 눈과 귀를 씻고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하나의 의식 같은 행위를 치른 후, 아들 금도의 문안인사를 받고 흡족해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크게 웃음을 지으며 흡족해하는 와중에도 그 옆에 앓아 누워있는 부인에게는 한사코 잔소리를 금하지 않았다.
어찌 그깟 일로 앓아 누우며, 그래서야 어디 정이품의 지아비를 보필할 수 있고 장차 큰일을 해낼 아들을 뒷바라지 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였다.
그저 부인은 끙끙 앓는 소리를 대답 대신에 들려줄 뿐.
“끄으으… 끄으으으…….”
최 대감은 야심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갑자기 꽤 묵직한 요의를 느낀 탓에 저도 모르게 일어난 것이다. 바로 옆에서는 여전히 그의 부인이 앓는 소리를 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최 대감은 그 모습이 못마땅한 듯 혀를 한 번 찬 뒤,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모르고 자다가 일어나며 뒤늦게 깨달은 것은, 이불 밖으로 나오자 몸이 싸늘할 정도로 시원한 것이 자신의 신체가 온통 젖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불을 다시 들춰 확인해보니, 온통 부인이 흘린 식은땀이었고 그 땀에 이부자리는 물론 자신의 옷마저 적셔졌다는 것이었다.
땀에 온몸이 절여졌다는 불쾌감과 부인의 상상이상으로 앓는 모습에서 받는 불안감이 최 대감에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게 하였다.
불편할 만큼 두방망이질 하는 박동 속에서도 최 대감의 요의는 견딜 수 없이 깊어져갔다.
앓는 부인을 뒤로하고 우선 요의를 해결하기 위해 측간으로 향한다.
듣는 이도 없건만 부인의 애처로이 앓는 소리는 멎지 않았다.
스걱 스걱 스걱
측간에 가기 위해 사랑채를 나와 대청마루에 자리하고 신을 신던 와중에 소리가 들려온다.
신을 신기 위해 걸터앉은 대청마루에서 알 수 없는 한기가 둔부를 타고 휘감듯 올라오고 있다. 버선을 신었건만 어찌하여 발끝이 서늘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은 오므려져 주먹을 꼭 쥐고 있다.
무언가 거칠게 썰려나가는 소리가 이질적으로 들려온다.
“무… 무슨…….”
떨려올 정도로 꼭 쥔 주먹의 안은 온통 땀으로 질척인다.
머지않아 이마에도 싸늘한 땀이 온통 질척이며 배어나온다. 마당의 한 구석에서 누군가 칼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가 온통 시커멓게 물들어 있는 밤인 탓에, 그나마 있는 달빛에 의존하여 조금씩 안력을 돋워내었다.
대수롭지 않은 척 말을 꺼내며 누구인지 확인하려 했으나, 생각과는 달리 입은 떨어질 줄 모르고 딱 붙어서 요지부동이었다.
그나마 겨우 흘러나온 의미모를 말의 조각들은 마치 바람 새는 소리를 닮아 사람 말소리인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비명이라도 지르면 누군가 달려와 주지 않을까.
분명 집 안에 모든 식솔들과 노비들은 달려 나올 것이다.
대감은 그렇게 수없이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 없는 마음 속 외침일 뿐이었고, 실상으로는 입술 한 쪽 들썩이기도 힘들 정도로 몸이 얼어붙어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눈이 조금씩 그 희미한 달빛의 밝기에도 적응하기에 이르렀다. 서서히 주변의 모습들도 눈에 익어가기 시작했고, 희미하게 보이던 모습도 점차 그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 왔다.
차라리 아니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대청마루에서 조금 떨어진 담벼락 아래에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칼질을 해대고 있었다.
최 대감은 이 소리를 알고 있다.
주로 푸줏간에서 듣던 그 소리.
대감의 뺨이 심하게 경련하며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피가 채 빠지지 않은 고기를.
써는 소리다.
그때, 두 개의 안광이 번뜩이며 최 대감을 향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그 후, 최 대감의 정신이 돌아온 것은 해가 중천에 뜨기 전의 시각이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최 대감은 화들짝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으며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봐 자신이 안전한지를 확인했다. 한참동안이나 주변을 살핀 최 대감은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간신히 물이 담긴 사발을 받아 냉수를 꿀꺽꿀꺽 목에 넘겼다.
시원한 냉수가 위장에 가득 들어차자, 조금은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가다듬어지는 듯 했다. 냉수에서 은은한 향기와 단맛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꿀을 조금 탄 물인 모양이었다. 그 달착지근한 맛이 조금이나마 마음을 편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최 대감은 자신의 옆에서 그 자신을 간병하고 있던 여자 노비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어제 밤에, 내가 어찌 된 것이냐.”
노비는 대감이 다 마신 물 사발을 받아들고는 조심스럽게 쟁반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받아 왔는지 청심환을 꺼내어 대감에게 건네어 주었다. 청심환 특유의 알싸하게 시원한 내음이 코를 자극해온다.
청심환을 받아 씹으며 노비의 이야기를 듣는다.
“저, 대감마님께오서… 비명을 지르시는 것을 듣고… 집안사람들이 모두 뛰어 나갔습니다……. 헌데…”
노비는 말을 잇지 못하는 모양으로 벌벌 떨기만 했다.
최 대감은 차분하게 청심환을 씹어 넘긴 후, 노비를 재촉했다. 하지만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청심환을 먹은 지경이기 때문에 평소와 같은 역정은 내지 않았다. 그러나 노비는 그 무서운 대감 앞에서 결코 마음을 놓지 못했다.
“어서 말하지 못하겠느냐?”
“저… 저어…….”
눈물이 나올 듯, 울상이 되어서 말을 더듬을 뿐 제대로 된 한 마디도 내어놓지 못하는 노비는 마치 사냥꾼에게 붙들려 죽어나갈 시간만을 기다리는 토끼와 같은 모양새로 벌벌 떨어대었다. 그 불 같이 화를 쏟아내던 대감도 현재로서는 몸을 추스르기에 버거운 상황인지라 노비에게 더 이상 재촉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노비의 말을 들은 대감의 가슴 속에서는 그 불길이 다시 거세게 살아났다.
물론 그것이 분노는 아니었다.
“금도 도련님이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작은 새 지저귀는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이토록 조용하고 화창한 날에 최 대감은 하늘이 무너지고 온 지천에 천둥벼락이 내려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통이 벼락에 지져져 시커멓게 타오르는 느낌을 받았고, 그의 뒷목을 억센 팔을 가진 도깨비 따위가 두터운 쇠사슬로 휘감아 조르는 듯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비명으로 이어졌다.
물론 최 대감이 전날 밤에 기절하며 내질렀던 비명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아아아악!!!! 금도야!!! 으아아아아악!!!!!!”
거의 미쳐버린 사람처럼 발작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최 대감.
그 비명소리가 반나절 이상이나 이어졌다.
최 대감의 주변은 노비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나마 아침이 돼서야 정신을 가다듬었던 최 대감의 부인은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이제는 앓는 소리도 못 낼 정도로 드러누워 버렸다.
그토록 절절한 오열과 비명을 끊임없이 쏟아내던 최 대감이 있는 와중에도 부인은 정신을 가누지 못해 그저 눈을 감고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목도 다 쉬어버려 귀퉁이 깨진 퉁소가 바람소리를 내듯 휘휘 가냘픈 말도 아닌 소리를 쏟아낼 뿐이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었다.
전날 최 대감이 보았던 고기 써는 소리는 그의 삼대독자 금도의 시체를 써는 소리였던 것이다. 잘게 잘려진 육편 따위로 화해버린 아들의 모습에 최 대감은 당장 실성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절규하였다. 귀하디귀한 독자가 요절한 것도 슬펐지만, 그 죽은 모습이 너무도 참담하고 괴이한 까닭에 그 비통함이 더욱 무겁다.
“… 대체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했다는 말이냐!! 본 자가 없느냐!!!”
간신히 포도대장과 포졸들, 그리고 관아에서 파견을 나온 조사원들까지 대동하고서야 최 대감은 노비들을 앞마당에 모조리 불러다 앉혀 놓고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노비들은 감히 입을 떼지 못하고 그저 벌벌 떨기만 했다.
그것이 잔혹한 죽음을 맞이한 시체를 보아서인지, 어떤 치도곤을 당할지 몰라서인지, 혹여 누명이나 쓰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일지는 그들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저 억센 겨울바람에 몸을 떨며 부대끼는 앙상한 대추나무 가지를 보는 듯하다.
“어서 나오지 못하겠느냐!!”
“바른대로 고하거라 어서!”
포도청의 포졸들이 대뜸 윽박지르고 고함을 친다.
얼마 전까지도 비통한 슬픔에 제 몸조차 가누지 못했던 최 대감은 현재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몸을 일으키고 그 분기탱천하여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대감, 그러니까 어제도 노비가 노비를 죽이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은 도령께서… 음, 유명을 달리 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여보시오 포도대장! 내 그놈을 꼭 잡게 해주시오! 이대로는 나 죽어서도 두 눈 감지 못하오!!!”
최 대감의 분기는 곧 울음으로, 다시 분노로 산란하게 뒤바뀌어 그를 대하는 이도 혼이 쏙 빠지게 만들었다.
포졸들은 잘게 육편으로 썰려나간 금도의 신체들을 주워 모으다 토악질을 삼키길 수 십 번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최 대감과 이야기를 나누던 포도대장의 코도 마비가 될 정도로 진득한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그것을 주워 모으는 포졸들은 오죽 할 것인가.
개중에는 측간에 간다는 이유로 빠져나와 토악질을 하고 눈물을 쏙 빼는 자도 있었으니, 그 참혹함으로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비들은 그저 그 살풍경을 앞에 두고 그 몸을 바들바들 떨어대니 장소와는 그 모습이 어울리는 일이다.
“대감마님…!!”
길길이 뛰며 그 한을 토해내던 최 대감과 그를 대하던 포도대장의 앞으로 한 노비가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늙고 추레한 노비였는데, 그 나이가 많은 터라 노비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존중을 받는 노비였다. 그 턱에 난 수염이 크고 작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자라고 있었는데, 그의 턱에 두 줄로 아로새겨진 흉터들 탓이었다. 그 흉터가 네 치는 될 법한 큰 칼자국이었다.
“오, 그래.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포도대장은 노비가 말을 걸어 이 상황을 모면하게 해주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고 반가울 따름이었다. 노비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라도 해준다면 더욱 고마운 일이었을 터.
“홍년이 짓이옵니다!”
“호, 홍년이?”
포도대장은 그 의문이 두 눈의 앞에까지 한 자락 드리워졌으나 그 고개만은 계속 말을 이어가라는 듯 조악거렸다. 그러다 포도대장은 최 대감의 낯을 살폈는데, 그 휘둥그레진 두 눈이 황소 따위의 끔뻑이는 눈을 보는 듯 보였다.
그 나이 많은 노비의 뒤로 다른 노비들이 일제히 나서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호, 홍년이… 무슨 말이냐!”
“홍년이가 칼을 들고 도련님을 마구 난자질하는 꼴을 저희 모두가 보았습니다!!”
“호, 홍년이 귀신!!”
“홍년이가 귀신이 돼서 나타났습니다!!!”
“쇤네들이 나왔을 때는 그년 귀신이 요사스레 웃다가 사라져 버렸습니다요!!”
최 대감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그 뺨이 또 푸들푸들 떨려온다.
그 뺨의 사마귀가 제자리에서 뛰는 벼룩마냥 오르락내리락 한다. 포도대장과 조사원들은 모두 최 대감의 기색을 살핀다. 최 대감은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
“이게 다 무슨 소리 입니까 대감! 홍년이는 누구입니까!”
바들바들 그 손을 떨어대던 최 대감은 두 손을 맞잡고 떨림을 멎게 하느라 애를 썼다.
허나 그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던 그의 동공마저 주체하지 못하고 요동치고 있었으니 그의 감정은 도저히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최 대감은 결국 작년에 있었던 사달을 토해내고야 만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홍년이라는 몸종이 있었다.
최 대감의 그 포악한 성미에 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하인들이 태반이었으나, 그 굴레를 벗을 수 없는 노비들은 오죽하랴. 그만 두고 싶어도 최 대감의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이, 보이지 않는 사슬로 온통 묶여 살아가는 게 그들 노비의 삶이었다. 죽지도 못해 삶을 연명하던 노비들 사이에 살살하고 귀여운 계집아이 하나가 들어왔으니 적어도 같은 노비들에게서만큼은 이쁨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홍년이.
한 다섯 해까지 함께 살았으니 가엾게 여겨도 좋았으련만.
작년 여름, 홍년이가 열 살이 된 해에 사달이 난 것이다.
최 대감의 생신이었고, 수 없이 많은 잔칫상을 내어가다 바닥에 곶감 하나가 떨어진 것을 모르고 노비들이 오가던 중이었다. 홍년이는 그 곶감을 눈여겨 보아두었다가 잔치가 끝난 뒤 아직도 곶감이 마당 구석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집어든 것이다.
그것이 최 대감의 눈에 들어가 버렸고, 감히 주인의 잔칫상에 함부로 손을 댔다며 홍년이를 흠씬 두들겨버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뺨을 냅다 후려쳤고, 입안이 온통 터져나가며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던 홍년이는 두려움에 실금을 해버렸다.
그러자 명망 높은 양가의 마당 한가운데에서 실금을 했다며 다듬잇방망이로 냅다 후려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노비들은 채 말리지도 못하고 바라보는 사이, 핏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홍년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홍년이의 입에서는 피거품이 울컥이며, 채 씹다가 넘기지 못한 곶감 조각들이 함께 새어나왔다.
아무리 노비라고는 하나 함부로 살해를 했다 하면 처벌을 면할 수 없었기에 최 대감은 홍년이를 길바닥에 내다 버린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포도대장은 우선 금도의 조각난 시체들을 검시해보겠다고는 했으나, 진실로 귀신이 얽힌 일이라면 포도청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더 높은 조정에 이야기를 하거나 용한 무당을 불러 굿이라도 하라며 조언하고 떠나버렸다.
그나마 마당 구석에 널려있던 금도의 시신 조각들은 바닥에 깊게 스며든 피 웅덩이의 자국만을 남긴 채 포졸들의 손에 들려 떠나버렸고, 최 대감은 홀로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넋을 잃고 피 웅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도가 죽은 자리는.
그날 곶감이 떨어져 있던 자리였다.
최 대감은 고심했으나 조정에는 알리지 못했다.
그는 지체 높은 양반이어서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이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집에 있던 몸종을 죽여 원귀가 나타나 아들이 죽었다는 더 없이 창피한 추문이 조정에 흘러든다면 가문의 씻을 수 없는 망신임과 동시에 그의 명예가 바닥으로 끝없이 실추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용하기로 소문이 자자해 찾는 이가 끊이질 않는다는 무당들을 사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대감의 요구에 응하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인들은 원귀 얘기를 듣자 전부 도망을 해 버렸기에 노비들을 시켜 무당들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으나, 해가 다 저물어가는 때에서야 겨우 돌아온 노비들은 전부 자기들의 몸만 이끌고 돌아왔을 뿐이었다. 노비들의 말로는 아무리 애걸복걸을 해 보아도 무당들이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노비들에게 날이 곧 저물 터이니 다시 가서 힘으로라도 무당을 끌고 오라고 이야기 했지만, 노비들은 그저 바닥에 납죽 엎드려 머리를 조아릴 뿐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최 대감은 노비들에게 식칼이나 호미, 낫 등의 날붙이들을 들게 하고 사랑채를 에워싸 지키게 명했다.
기름을 아끼지 않고 횃불을 사방에 켜 두어 온 집안을 밝혔으며, 사랑채의 어느 방향을 바라보아도 노비들이 빈틈없이 서 있게끔 만들었다.
그제야 더는 대비할 것이 없겠다 싶었던 대감은 잠자리에 들었다.
대감의 옆에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멀건 죽 한 숟갈도 넘기지 못해 온통 쇠약해진 부인이 앓아 누워 있었다.
날이 밝았을 때, 의원이 찾아와 탕약을 짓고 침을 놓았으나 차도는 없었고 그나마 탕약은 목에 넘기지도 못했던 것이다.
전 날에는 앓는 소리라도 내었으나 이제는 숨소리만 가늘게 들릴 뿐, 마치 자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밤이었다.
최 대감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가, 무언가 움직이는 탓에 깨어났다.
자신의 다리를 누군가 툭툭 치고 있는 것이다.
일어나 정신이 깨고 나서야 뒤늦게 놀라 고개를 들고 자신의 하체를 살핀다.
낯익은 버선발이 바동바동 움직이며 최 대감의 다리를 건드리고 있었다.
최 대감은 그 다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부인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팔다리를 휘젓고 있었고, 그 행사에 최 대감의 다리를 연신 건드린 것이었다. 그렇게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으나 말은 하지 못했다.
그 실낱같은 숨통조차 트이지 못했던 탓이다.
부인의 가슴팍에 누군가 올라타고 있었다.
그 위에 올라타 부인의 목을 억세게 쥐고는 사정없이 조르고 있는 한 여자.
머리가 산발을 하고 늘어뜨린 채, 고통에 눈알이 뽑혀나갈 듯 뜨여있는 그 눈을 마주보며 뭔가를 중얼대고 있는 한 여자. 부인의 면전에 얼굴을 대고 속삭이며 그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대감이 흠칫 놀라 이불 밖으로 몸을 피하자, 그 머리가 산발한 여자는 대감을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이 산발을 한 머리칼 탓에 온통 그림자가 져 보이지는 않았으나, 희미하게 보이는 그 누런 안광만은 확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림자 져 시커먼 그 여자를 바라보며 한 가지 깨달았던 것은, 사랑채 밖을 환하게 밝히고 있던 횃불들이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소름끼치는 정적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부인의 사지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그 발버둥을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진 부인은 두 눈도 감지 못한 채, 시퍼렇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맥없이 고개를 가누지 못해 옆으로 기울었다.
최 대감을 향해 고개가 기울었다.
교살당한 부인의 시퍼런 낯짝이 최 대감을 마주하고 있었다.
고통에 차 두 눈도 감지 못하고 크게 뜨인 채 굳어버린 그 눈이 최 대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줄기의 숨도 들이쉬지 못해 크게 벌어지기만 한 그 큰 입이 최 대감을 향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 대감은 비명을 지르며 사랑채에서 도망나왔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나 좀 살려라!!!!”
최 대감의 공포에 젖은 외침이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집안은 온통 어두웠고, 지천에 두었던 횃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청마루에서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 사방을 향해 소리 지르는 최 대감은 이미 혼비백산하여 그 정신이 올바르게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어윽…!!”
돌부리를 차 버린 발가락이 아찔한 고통을 정수리까지 전해 주었고, 그에 엇갈린 다리가 대감의 몸을 바닥에 나동그라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흙바닥에 코를 박았는데, 아득해질 정도로 역겨운 쇠 비린내가 그의 코를 찔러왔다.
최 대감은 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한 악취에 손을 휘저어 무엇이든 면전에서 치우려 했다. 그러나 손에 얽혀드는 것은 마당에 깔린 흙 뿐 이었다.
손에 쥐어지는 흙이 기분 나쁠 정도로 끈적인다.
주변을 둘러보자 최 대감은 비로소 그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이 죽어 온 피를 쏟아낸 바로 그 자리였던 것이다.
피는 나중에 해가 뜨고 모두 말라붙었지만, 그 말라붙은 피가 흙에 배어들어 지금 최 대감의 손에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악!!!!”
최 대감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아등바등 기듯이 물러났다.
사랑하는 아들의 핏덩어리였으나 공포에 젖어 든 지금 이때에는 그저 두려움을 끌어내는 낚싯바늘에 불과했다. 어째서 이토록 소리를 지르는데 그 많던 노비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가. 혼자서 마당에 나뒹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고 다시 주변을 살핀다.
사랑채 뒤편에서 노비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여기다 여기야!! 살려다오!!! 부인이 죽었다!!! 살려다오!!!!”
그러나 노비들의 걷는 모양새가 퍽 이상했다.
날이 저물 무렵부터 들고 있던 낫이나 식칼 따위를 들고 걸어오는데, 그때와는 다르게 왠지 그 기세가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 어서… 어서 나를… 지, 지켜다오!!”
온 집안의 노비들이 사랑채의 뒤편에서 쏟아지듯 걸어 나오고 있다.
여태 그 곳에서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인지 최 대감은 알 길이 없었지만 지금으로써는 노비들의 사이에서 목숨 보전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였던 탓에 나머지의 일들은 머리에 들지도 않았다.
“히히힛.”
노비 중 과도를 들고 있던 여자 노비가 실성한 듯 웃음을 흘렸다.
최 대감은 그 모습에 여태 느끼지 못했던 살벌한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온 몸이 오스스 소름이 끼치며 손발 끝이 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현기증이 온 정신을 흩어 놓는다.
최 대감은 운신하기는커녕 가누기도 힘든 자신의 떨리는 몸을 이끌고 조금씩 기어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애썼다.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으나, 결국 바닥을 기는 최 대감보다는 빠르다.
“대감 나리.”
“히히히, 나리.”
“대감, 히히힉!”
저마다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최 대감을 부른다.
가까워지며 점점 선명히 보이는 그들의 웃음.
노비들의 눈은 반 쯤 까뒤집혀 돌아가 있었고, 그 웃음은 진정 일생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깊고 격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보다 진한 웃음을 짓던 사람이 있었던가.
기괴하게 보이는 지경으로 그 입이 양 옆으로 찢어지고, 웃느라 휘어진 눈꼬리를 만들고 있음에도 부릅떠진 그 눈은 살기가 흉흉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몹시도 두렵거나 견디기 힘든 일이 일어날 때 마다 버릇처럼 떨려오던 뺨.
최 대감의 뺨은 쥐가 날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대감.”
“대감. 대감.”
“대감.”
“대감. 대감. 대감.”
두려움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오줌을 지려버린 최 대감을 향해, 끊임없이 그를 반복해 부르며 흉상하고 엄슬한 쇠붙이들을 쥐고 다가섰다.
어느새 최 대감을 에워싸고서 끊임없이 그를 부르는 노비들.
그들 뒤에 머리가 산발한 여자가 맨발로 사랑채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머리칼로 어두워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분명 그 누런 이는 달빛에 반사되어 환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여자는 분명히 최 대감을 향해 웃고 있었다.
최 대감의 멈추지 않고 떨리던 뺨이, 이제는 경련을 일으키고 한 없이 당겨진다.
“그리하여 최 대감의 일가는 전부 몰살을 면치 못하게 되었사옵니다.”
“허, 최 대감마저 죽고 만 것인가.”
임금은 절지당의 이야기와 달리 부담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절지당의 이야기를 하던 때와는 달리 다소 심신이 편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마치 먼 나라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듣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후에, 노비들은 양반일가를 살해한 죄로 모두가 능지처참을 면치 못했사옵니다.”
다소 의외라는 듯, 임금은 놀란 눈치였다. 의문이 눈에 벌써 비치고 있었으니 여인은 그 눈초리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짐은 이 이야기가 권선징악의 지어낸 지괴(志怪) 따위인 줄 알았는데, 어이하여 그들이 능지처참을 당했단 말이냐.”
“지괴 같은 꾸며진 이야기라고 여기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당연하지 않느냐. 내가 일평생 살며 일국의 정이품 벼슬아치가 그런 참사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느니라.”
너무나 당당한 임금의 답변에 여인은 다소곳한 실소를 흘린다.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임금은 앉은 자세를 고쳐 앉고, 다소 근엄한 얼굴을 한 채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인은 유한 모습을 잃지 않고, 그저 무심히 대답할 뿐이다.
“전하께서 태어나실 그 무렵보다도 더 오랜 옛날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사옵니다. 야화인 까닭에 진실이 아닐 수도 있사오나, 그렇다하여 거짓된 이야기라 단정 짓기도 힘든 일이지요.”
“귀신이 들어 사람들이 미쳐나가 사람을 해친 기사(奇事) 일진데, 어찌 천출 노비라고 하나 그들 모두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짐짓 여인은 흥미를 느낀다는 듯 임금을 보았다.
물론 자신보다도 더 예전에 있었던 왕조의 일이라면 모를 수 있으나, 너무 잔혹한 처사라 여겨져 의문을 거두지 못하는 임금. 물론 국법대로 하자면 감히 천출 노비가 양반 일가를 전부 해쳤다는 사실이 용서받기 힘든 악행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뭔가 찜찜하고 영 불쾌한 마지막이다.
“전하.”
조용히 임금을 부르는 여인.
임금은 여인의 부름에 눈썹이 휘어진다.
“홍년이는 죽지 않았사옵니다.”
그 한마디가 임금의 머리를 크게 울리는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임금이 이야기를 들으며 여겨왔던 모든 생각들이 전부 부정되는 순간이었다.
“홍년이가 어떻게 살아있었단 말이냐?”
“홍년이는 죽어 그 시체를 거리에 버렸다고 했는데, 포도청에서는 계집아이의 시체가 길바닥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날아든 일이 없기에 조사를 하였다 하옵니다. 결국 알아낸 사실은 홍년이는 사실 그날 숨이 실낱같이 붙어있었고 지나가던 고운 마음씨의 다른 양반이 그 아이를 거두어 잘 키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임금은 그제야 왜 노비들이 능지처참 같은 극형을 피할 수 없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처음부터 원귀 같은 것은 없었다.
홍년이의 귀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귀가 없었다니. 아무리 제 주인이 못 살게 굴었기로서니 어찌 자기들끼리 살인을 저질러가면서 원귀의 소행인 양 일을 꾸밀 수가 있단 말이냐! 어찌 그리 독할 수가 있단 말이냐?”
“원귀가 없지는 않았지요.”
마치 선문답을 하는 듯, 계속해서 알기 힘든 말들을 먼저 풀어내는 여인의 이야기에 임금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임금은 여인의 말을 기다린다.
“육신이 산 사람이라 하나,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원한이 들어차 귀신같은 짓을 하게 만들었으니 그 자들을 원귀로 만든 것과 다르지 않사옵니다. 멀쩡한 사람을 원귀로 만들었는데 그 사무치는 원한을 어찌 못 살게 굴었다는 말 정도로 이루 설명할 수 있겠사옵니까.”
짐짓 임금을 가르치려 드는 듯, 단호히 이야기하는 여인의 태도에 임금은 기실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여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사람이 이유 없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독하고 흉한 원한을 품고 그 흉계를 위해 동료마저 해친단 말인가. 어찌 그 흉계가 일가족 몰살이라는 잔혹한 결말임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단 말인가.
여인은 자세히 이야기 해 주지는 않았지만, 이야기 처음에도 얼핏 들었던 것을 보면 최 대감의 노비 괴롭힘은 그 정도가 심했던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전하.”
“그래… 수고가 많았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는 임금.
바로 떠날 법도 한데 여인은 그러지 않고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임금이 무언가 이야기를 해 올 것이라는 걸 감지한 모양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이 길지는 않았으나, 그 동안에 임금은 말을 정리하느라 생각에 골몰했기에, 기다리는 동안 여인이 임금을 향해 지었던 미소를 볼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현실이 바뀌는가?”
임금은 기탄없이 자신의 걱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여인의 이야기는 잘 듣고, 느끼는 바도 많았으나 이런 이야기들이 뚜렷하게 뭔가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 같지는 않았던 탓이다. 자신이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생각하고 느낀다 하여 조정이 바뀌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많은 것이 바뀌고 있사옵니다. 그저, 전하 자신을 믿고 근심 없이 기다려 주시옵소서.”
의미 모를 여인의 말에 되묻고 싶어 고개를 돌렸으나, 여인은 더 이상 임금의 옆에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홀연히 자취를 감춘 여인의 기묘한 능력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맥없이 흐트러진 임금은 여인이 앉아 있던 자리로 기울어져 눕는다.
조금 전까지 여인이 앉아 있었던 그 자리에는 전에도 맡은 적이 있었던 향기가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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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1화, 2화 역시 재미있게 봐 주신 분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ㅎㅎ
매일 지난 글들을 살펴보고, 덧글이 달려 있으면 막 기분 좋아서 보고 또 보고 했었네요 ㅎㅎㅎㅎ
덧글과 추천이 굉장한 힘이 됩니다 ㅜㅜ 으헹 기분좋아요 ㅜㅜㅜㅜ
긴 글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덕분에 베오베도 입성해보고 정말 감사합니다 ㅜㅠㅜㅠㅜㅠ
사실 언급은 안했지만 일주일에 한 편씩 올리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생활이 있다 보니까 오늘 한 3시간 지각한 것 같습니다 ㅡㅜ
여인이 임금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들에 따른 현실의 이야기들도 같이 진행할 계획이라 부디 꼬이지 않고 복잡해지지 않고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ㅎㅎㅎ
부디 이번 편도 재미나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구요 ㅎㅎ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요!!!ㅎㅎ!!!
출처 | 본인, 작성자, 윈스턴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첫 번째 밤, 광대패 속의 여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58683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두 번째 밤, 절지당(絶指堂).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60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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