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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제 5장 제 6장
제 7장 : 포니를 찾으려면..
선셋은 캔틀롯의 높은 성 위에 서서 아래에 깔린 구름조각들을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활공 연습에서도 공중에 떠 있기보단 땅에서 구른 더 많았던 주제에, 고공에서 날갯짓을 하는 법을 배우자니 아직 일러도 한창 이르다는 확신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어... 이걸 진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선셋은 셀레스티아를 돌아보며 질문을 계속했다.
"근데 캐이댄스는 어쩌고요? 걔한텐 마법 안 가르쳐주세요?"
옆에 선 셀레스티아는 염려하는 표정을 지으며 성 쪽을 돌아보았다.
"나도 그래서 캐이댄스에게 먼저 물어봤다만, 오늘은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차라리 선셋 널 도와달라고 하곤 가 버리더구나. 도대체 뭐가 그리 바쁜 건지.."
선셋은 짜증 섞인 신음 소리를 흘렸다. 차라리 스스로 머리를 한 대 쳐서 기절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버려둬요. 사랑의 공주 일로 바쁜가보죠 뭐.."
캐이댄스가 바쁜 이유는 뻔했다. 아까도 그것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르지 않았던가..
"잠깐.. 걔가 사랑의 공주라면.. 난 무슨 공주가 되는 거죠 어머니?"
셀레스티아의 두 눈이 별안간 휘둥그레졌다.
"!!.. 잡담할 시간 없단다. 바람이 그치기 전에 뛰어내리도록!"
그러더니 셀레스티아는 선셋을 대뜸 성 아래로 밀어버렸다.
너무 불시에 밀어버린 탓인지,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 한 선셋은 땅바닥으로 한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한 가지 : 바로 목이 째져라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셀레스티아는 성의 난간 위에 서서 확성 마법을 자기 목에 걸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날개를 움직이거라! 세차게 움직여야 몸이 뜨는 거란다!"
어머니의 목소리, 아래에 깔린 구름으로 만든 안전그물, 순간 겁에 질린 자신을 호되게 질타하며 극복하고 싶은 의지, 이 모든 게 선셋으로 하여금 다시 정신줄을 잡게 하였다. 선셋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낙하 속도가 아까보다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선셋은 날개를 파닥거렸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대로 선셋은 날개를 세차게 파닥였다.
마치 로데오를 하고 있는 애플잭이 된 기분이었다. 선셋은 두 날개를 위로 쭉 뻗었다. 몸도 날개를 따라 위로 쏠렸다.
두 번째 날갯짓,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세 번째 날갯짓. 선셋의 몸이 공중제비를 돌기 시작했다. 방향감각이 혼잡해져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추락하고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았다.
선셋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선셋의 조잡한 날갯짓을 비웃기라도 하듯 중력이란 놈은 선셋을 아래로 세차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진정하자 선셋! 아래에 조각구름으로 안전그물도 짜 놨-'
하지만 선셋의 날개에서 일어난 새 찬 바람이 선셋이 의지할 유일한 위안거리를 조각조각 날려버렸다.
선셋의 날개는 굳어버렸다. 더 이상 이성적인 생각을 할 겨를 따윈 없었다.
'이런 썅! 이런 썅! 이런 썅! 이런 썅! 이런 썅!'
속으로 계속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선셋은 목청이 터지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을 몇 십 초 동안 연달아 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락 중이었다. 얼마나 떨어져야 땅에 부딪히게 되는 걸까?
아니.. 떨어지는 것 치곤 주변이 너무 잠잠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친 선셋은 질끈 감았던 두 눈을 떠 보았다.
어머니의 황금색 마력에 휩싸여 공중에 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웬걸, 눈앞에 보이는 건 충격에 눌려 바닥에 납작하게 깔린 잡초들과 선셋 모양으로 새로 생긴 땅에 뚫린 구멍뿐이었다.
안... 죽었네? 믿기가 어려웠다.
"선셋! 선셋!! 괜찮니?!"
위에서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다. 움직일 수 있겠니? 키비츠가 긴급한 전갈이 왔다고 하기에 신경을 못 쓰고 그만-"
성질이 난 선셋은 곧바로 네 다리로 일어서며 앞발을 한번 쾅 구르며 외쳤다.
"방금 캔틀롯 정상에서 바닥까지 직방으로 추락한 거 안 보여요? 이게 괜찮아 보이죠? 지금!!"
얼마나 심하게 발을 굴렀는지 지진이 일어날 지경이었고, 셀레스티아는 거의 중심을 잃을 뻔 했다. 태양의 공주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래선 안 돼지.. 선셋은 간신히 화를 참으며 진정하기로 했다.
"근데요...."
희한하게도 어디가 아프거나 어긋난 것 같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깃털 하나 털끝 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
"사실은.. 괜찮네요? 이..이런 게 정상인가요?"
"페가수스의 마력은 비행 시 속력을 내는 것뿐만이 아닌, 추락의 충격으로부터 페가수스를 보호해주기도 한단다. 하아... 무사해서 정말 천만다행이구나."
어머니의 설명을 듣고 나서 선셋은 다시 땅바닥에 난 구멍을 쳐다보았다.
"근데 정작 날지는 못하고, 추락만 더럽게 했네요.."
걱정스러운 얼굴이 두 필의 알리콘의 얼굴에 감돌았다. 일단 살아남은 건 다행이지만, 아무 곳도 안 다친 건 분명 이상했다.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게 아닐는지..
"의사에게 한번 가보자꾸나." 잠시간의 정적 후에 셀레스티아가 말을 꺼냈다.
"저번에 다섯 필의 다른 포니들에게 검사를 받았는데도 다들 한 소리로 건강한 포니의 표본 그 자체라는 말 밖에는 안 했던 것 같은데요." 선셋은 약간 인상을 쓰며 공주의 말에 대답했다.
"그 의사들보다 더 실력이 출중한 의사들을 데려올 테니 허튼 소리 말고 따라오거라! 당장!"
어머니의 겁에 질린 두 눈을 보니 더는 대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선셋은 얌전히 셀레스티아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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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까지 선셋의 시간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만 흘러갔다.
이퀘스트리아 최고의 유니콘, 어스, 페가수스 포니 전문의 세 필과 셀레스티아 전문 주치의가 선셋을 며칠 동안 주도면밀하게 진찰한 뒤 검진 결과를 내기 시작했고, 그 동안 선셋은 할 일이 없어 따분해 죽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셋은 무료하게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던 주문들을 연습하면서, 캐이댄스가 자기에게 마법 수업을 받으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곁눈으로 캐이댄스가 '데이트 참고 자료'로 가져온 책들을 훑어보기도 했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캐릭터나 한 번 만들어볼까..
선셋은 샤이닝이 추천한 대로 소서리스 캐릭터를 만들기로 했다. 비록 소서리스 캐릭터가 그 게임 내에서 실제로 알리콘 승천이 가능한 직업이라는 걸 알고 나니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캐릭터를 짠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왜 캐이댄스가 캐릭터의 이름을 현실과 다르게 하라고 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며칠간 캐릭터의 그럴싸한 과거사를 지어낸 결과, '선 버스트 공주'라는 캐릭터가 창조되었다.
캐릭터의 뒷배경은 선셋의 과거의 각색판이었다. 비록 인간 시절의 기억은 잘라낸 반 토막이긴 했지만..
그 기억도 쓰고 싶긴 했다. 쉽사리 잊기가 어렵기도 했었고 말이다.
선셋은 성 밖에 있는 킹 툿의 악기 상점에 찾아갔다. 그것도 벌써 세 번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곳엔 인간 세상에서 선셋이 쓰던 사양과 거의 비슷한 천 비트짜리 일렉기타가 선셋을 조롱하듯 벽에 걸려 있었다.
물론 지금의 선셋이 맘만 먹었다 하면 저 기타를 얻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이퀘스트리아의 공주의 이름만 대면 국고에서 천 비트 따윈 금방 인출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돈은 모두 캐이댄스와 만나기로 한 카페의 주인장 같은 선량한 일반 시민들이 하루하루 일을 해 내준 소중한 혈세였다. 그런 포니들의 돈을 그저 환각 속에서 배운 음악 지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보겠다는 순전히 말도 안 돼는 이유로 갈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선셋은 그런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게 진짜라고 쳐 봐. 그럼 다음엔 뭘 어쩌려고?'
선셋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연주를 할 수 있다 쳐도 같이 연주를 할 포니는 주변에 없었다. 밴드원 없이 일렉기타를 독주하는 건 꽤 쓸쓸한 일이 될 터였다.
그래서 예비 공주님 선셋 쉬머는 악기 용품 가게에서 고개를 돌린 뒤 캐이댄스와 만나기로 한 시나몬 차이브라는 찻집으로 걸어가 캐이댄스와 둘이서 찜해 둔 자리에 앉았다. 선셋이 캔틀롯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이 아담한 찻집은 캐이댄스와 밖에서 만날 때의 지정 약속장소였다. 물론 차맛은 성 안의 차맛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성 밖에서 마음 놓고 이야기를 할 만한 곳은 여기만한데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3년 동안 인간 학교에서 한 경험은 선셋으로 하여금 금요일 학교 끝나고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건 친구 없는 녀석들이나 하는 거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물론 캐이댄스가 알리콘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식의 부정적인 평판이 안 따라온다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친구의 '가오'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로 같이 다녀 줄 필요가 있다고 선셋은 생각했다.
그 때, 분홍색 알리콘이 거리 모퉁이에서 보이더니, 선셋을 보고 빠른 걸음을 걸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그랬듯 캐이댄스는 자리에 앉아 웨이터에게 주문을 했다. 웃으면서 하는 고맙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며칠에 걸쳐 선셋에게 염동력 수업을 들은 덕에 캐이댄스는 메뉴판을 무난하게 마법으로 들을 정도의 경지에 다다랐다. 여전히 마력을 쓸데없이 많이 부여하고는 있었지만, 전처럼 종이가 아예 엉망진창 구겨지거나, 어디로 총알처럼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으니 별 상관은 없었다.
캐이댄스는 메뉴판을 내려놓았고 주문을 받은 웨이터는 그걸 다시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리고 캐이댄스는 선셋을 쳐다보았다. 아까의 신이 난 표정이 순식간에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런.."
선셋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
"또 그 표정 짓는다."
킹 툿의 악기 상점 쪽을 힐끗 쳐다보며 캐이댄스는 말을 이었다.
"너 오늘 또 저 악기점 기타를 쳐다보면서 자괴감에 빠져 있었구나? 그치?"
캐이댄스가 선셋의 속을 단번에 예리하게 꿰뚫었으므로 선셋은 기분이 다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자괴감이라니, 누가?"
도리어 큰 소리를 내며 선셋은 대답했다.
"그냥.. 저걸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던 것뿐이야. 되게 비싸잖아 저거."
자기가 합당하게 번 돈으로 지불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캐이댄스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됐다. 또 이야기를 해 봤자..."
그 동안 웨이터가 주문한 차를 싣고 나왔고, 캐이댄스는 차를 한 모금 홀짝거렸다. 그리고 아까보다 약간 밝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캐이댄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선셋은 안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말인데.. 내일 준비는 잘 돼가?"
"난 아직도 모르겠다. 그걸 데이트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차피 다른 수말 네 필이랑 같이 노는 건데 그걸 진정한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선셋은 건조한 어조로 대꾸했다.
불편한 진실을 말했건만, 캐이댄스의 표정은 한 치의 일그러짐도 없었다. 그저 계속 웃는 낯으로 이렇게 이야기할 뿐이었다.
"아. 걔네들? 후후후.. 별 문젯거리는 되지 않을걸."
선셋을 눈을 한 번 옆으로 굴리며 입을 열었다.
"캐이댄스. 네가 신경써주는건 고마운데, 연애란 건 보통 서로를 먼저 알아가는 것부터 차근차근히 시작하는 거 아냐? 어..그.. 그러니까.. 뭘...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샤이닝 아머에 대한 상상이 선셋의 머릿속을 맹렬히 침범하기 시작했다.
상상 속에서 선셋과 샤이닝 아머는 이미 서로를 찐득한 시선으로 몇 분간 쳐다본 뒤에 맹렬히 포옹을 나누고 화끈한 키스를 한 다음 선셋이 샤이닝 아머를 확 밀쳐서 침대에 눕히고 힘차게 올라탄 지 오래 - 그만! 빌어먹을 놈의 상상력 같으니! 더 이상 그렇게 안 놀겠다고 다짐을 했는데도 이래? 그리고 밀쳐서 침대에 눕힐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포니가 인간처럼 직립 보행을 할 리도 없는데!
"벌써부터 마음속으론 진도 다 뺀 주제에 뭘.. 봐봐. 너 지금 얼굴 새빨개졌다."
또 한 번 선셋의 속마음을 꿰뚫어본 캐이댄스는 요사스런 여우같은 웃음을 지었다.
"척 봐도 오히려 급한 쪽은 너 같거든? 그러니 이 인연의 첫 번째 단계를 사고 없이 무사히 이어주는 게 바로 사랑의 공주가 하는 일이다 이 말씀! 게다가 열정은 언젠가는 식어버리기 마련. 질질 끄는 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라구. 쇠도 달아오를 때 치라는 말이 있잖아?"
샤이닝 아머가 선셋 아래에 깔려 몸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장면을 힘들게 기억의 저편으로 날려버린 후 선셋은 캐이댄스를 노려보았다.
"그냥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응?"
캐이댄스는 잠시 인중을 문지르더니 짐짓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검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어? 이모님의 표정에 아무 근심이 없으신 걸 보니 분명 좋게 나왔겠지?"
굳이 건강 문제를 비밀로 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선셋은 사실대로 대답하기로 했다. 사실 선셋은 검사 결과가 좋은 건지 100%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하자면 그래. 여기 찔리고 저기 찔리고 나니까 의사들이랑 어머니께서 난 정말 완벽하고 강력한 알리콘이라고 말씀해 주시더라."
"뻐기는 성격은 자제중인거 아니었어?" 캐이댄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완벽하고 강한 알리콘 어쩌고는 내 입에서 나온 소리 아니거든 캐이댄스? 어차피 난 그거 별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 안 해."
캐이댄스는 미심쩍게 한 쪽 눈꼬리를 올렸고, 선셋은 한숨을 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좋아.. 세 종족 중 의식적으로 마법을 제어하는 건 유니콘뿐이고, 그 외에 두 종족들은 반쯤 무의식적으로 마법을 제어한다는 건 너도 익히 잘 아는 사실일거야. 그중 페가수스를 예를 들어 설명해줄게. 보통 페가수스가 날갯짓을 하거나 구름 위에 올라탈 땐 몸이 알아서 자동적으로 거기에 맞는 마력 량을 제어해 주지? 구름 위에 올라타자마자 구름을 물 분자단위로 분해해 버리거나 씨발 무슨 날갯짓할 때마다 폭풍을 일으킬 정도로 과도하게 마력을 가하지는 않고."
아직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어 캐이댄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지."
"근데 나는 그렇게 잘 안 된다 이 말이지."
건조한 어조로 선셋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때 그 일 이후로 내 마력 감각의 의식과 무의식이 뒤엉켜버렸어. 아니... 그건 틀린 말이로군.. 의식과 무의식이 너무 호흡이 잘 맞아서 오히려 탈이라고 해야 되나.. 내가 만약 어스 포니나 페가수스 태생이라면 이런 문제를 안 겪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유니콘으로 태어나서 의식적으로 쓰는 마법에만 너무 익숙해진 탓에.. 이런 무의식적으로 나가는 마력을 잘 제어할 수가 없겠더라고."
캐이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근데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여전히 캐이댄스가 못 알아듣자 선셋은 짜증 섞인 소리를 냈다.
"끙... 저기, 캐이댄스. 내가 유니콘 시절에 얼마나 강력했는지 기억나지?"
독심술이나, 혹은 선셋이 몰래 배워 알고 있는 금지된 흑마법들을 동원하지 않아도, 자신이 수 없이 당한 괴롭힘을 캐이댄스가 절대로 잊지 않고 있으리라는 걸 선셋은 알 수 있었다.
"어.. 분명 넌 이퀘스트리아에서 제일 강력한 유니콘 중 한 필이었지.. 내가 보기에도."
"그리고 알리콘으로 승천하면서 내 몸에는 세 종족의 마력과 함께 그보다 더 한 양의 마력이 부여되었어. 그건 너 때랑 비슷할 거야. 하지만 넌 변이가 페가수스와 유니콘 쪽에 치중되다 보니까 마력이 그렇게 무의식으로 날뛸 일은 없었겠지. 페가수스 쪽은 원래 익숙한데다가, 유니콘 쪽은 아주 어린 망아지가 아닌 이상, 무의식적인 본능으로 사고를 칠 거리가 없는 그런 마력이니까. 하지만 너와 달리 난 페가수스, 어스 포니의 넘쳐흐르는 마력을 아주 주체를 못 할 지경이야. 원래는 무의식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건데 그게 난 안된다고. 날갯짓을 할 때마다 폭풍이 일어나고 발굽을 세게 한 번 구를 때마다 지진이 일어날 정도니까."
그것 때문에 선셋은 언제나 겁이 났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게 됐는데 정작 제어할 수가 없으면 주변의 누군가가 거기에 휩쓸려 다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조화의 마력이 흘러넘치는 몸통 때문에 오히려 불화거리가 생기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이렇게 골머리를 앓느니 선셋은 차라리 다시 유니콘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캐이댄스는 어께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그거야... 하다보면 되지 않을까? 음... 될 때 까지 하는 게 바로 선셋 쉬머란 포니잖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새 비행 연습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셀 수도 없이 땅에 얼굴을 처박았던 고통스러운 기억과, 며칠 전에 있었던 캔틀롯 정상에서 땅까지 추락했던 지금 생각해도 오싹한 체험, 제대로 제어가 안 되는 날씨와 바람 관련 마력 때문에 애통이 터졌던 여러 가지 기억들이 선셋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전히 날개를 저을 때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던데..."
그래서 활공도 거의 불가능했고 말이다. 선셋에게 있어서 하늘을 나는 건 성난 황소의 등에 올라타는 것과도 같았다. 아무리 나비의 날갯짓처럼 한들한들 날아보려고 한들, 언제나 폭풍 같은 결과가 몰아닥칠 뿐이었다.
"아우.. 그래도 너무 신경 쓰지 마. 내가 뿔 못 다루는 거랑 비슷하네 뭐.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선셋 너라면 분명 잘 해낼 테니 마음 편하게 가져."
캐이댄스는 찻잔을 내려 보며 그 곳에 마력을 집중했다. 푸른색 마력이 찻잔을 감싸 서서히 위로 들어 올리더니 곧-
와지직!
-찻잔은 조각조각 박살났고, 찻잔을 채웠던 연갈색 차는 탁자 위로 쏟아졌다.
"어머!"
선셋은 살짝 웃으며 수리 주문으로 깨진 찻잔을 복원했다. 그리고 쏟아진 차를 최대한 마력으로 모아 순간이동 주문으로 찻잔에 다시 넣었다.
"최소한 넌 실력이 늘기라도 하지.."
문득 끔찍한 생각이 떠올라 선셋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아직 생물은 마력으로 건들지 마.. 알았지?"
선셋의 수리 마법이 끝나고 난 후 캐이댄스는 웨이터에게 리필을 부탁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망아지를 낳는다면 과연 어떻게 생겼을 것 같아?"
또 이 이야기냐.. 선셋은 피로한 눈빛으로 캐이댄스를 쏘아보았다.
"방금 샤이닝 아머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분명 서로 합의 봤던 것 같은데?"
"난 샤이닝 아머와 네 미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게 아냐. 네 알리콘 이론에 입각한 네 장래 후손의 모습을 추측해보자는 거지. 완전 다른 이야기니까, 제발, 네 적극적인 모습을 좀 보여줘봐. 응?"
"캐이댄스-"
"하아... 선셋. 지난 5일 동안 널 지켜봐왔지만, 왜 네가 계속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이모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네가 나 없는 동안 방에서 기초적인 마법 정도만 깨작거린다고 하시고, 또 평소 같으면 비행 강사부터 알아볼 얘가 그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하셨어. 그리고 아까 음악점에 걸려 있는 얼마 비싸지도 않은 기타를 취미용으로 살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이고만 있었지. 답지 않게 왜 그래 진짜? 진취적인 모습의 선셋 쉬머는 다 어디로 간 거야? 무슨 삶의 의욕을 다 잃어버린 좀비도 아니고.."
"거 참 미안하게 됐네요! 갑자기 뿅 하고 알리콘이 됐는데, 적응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알아? 최소한 너도 같은 일을 겪어봤으면 이해 정돈 해줘야할 거 아냐!"
선셋은 날개를 활짝 펴며 날카롭게 말했고, 캐이댄스는 또 한 번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그래. 새로 바뀐 게 많아서 많이 혼란스럽기야 하겠지. 하지만 난 굳이 부정적인 부분엔 너무 과도하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 당장 내가 도와줘야 할 새로 생긴 사촌의 모습만 봐도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활동사진인걸 뭐..."
캐이댄스의 끝도 모를 사랑 섞인 참견 덕에 선셋은 대꾸할 기력도 잃어버리고 의자에 축 늘어졌다.
선셋은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선셋 본마보다 더 선셋의 연애생활이나 삶 전반에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를 가진 건 아마 전 이퀘스트리아를 통틀어 선셋밖에는 없을 것이다.
"...알았어. 내가 졌다. 그러니까 데이트 이야기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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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당근이랑 프레첼 등 간식이랑 음료수들은 다 준비했고, 지하실의 탁자도 이상 없음. 엄마 아빠는 밤늦게까지 나가계신다고 했으니, 부모님이 갑자기 들이닥쳐 창피한 일이 생길 변수도 없음.."
샤이닝 아머는 여동생이 방 안을 오락가락거리며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읊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와.. 누군지는 몰라도 이 검사표 진짜 잘 짰네."
캐이댄스가 짜준 표에 맞추어 트와일라잇의 엄중한 검사가 끝났고, 샤이닝 아머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선셋이 샤이닝의 집에 온다는 걸 알아챈 뒤로 트와일라잇은 지금 선셋을 너무 과도하게 신경 쓰고 있었다. 샤이닝 아머가 선셋 쉬머랑 그저 약간 더 친해지기 위해 초대했다고 말을 해도 트와일라잇은 그 말뜻을 제대로 오해한 듯 했다. 소위 '참고 자료'라는 걸 옆에 끼고 눈치 없이 뛰어든 걸 보면 말이다.
숙제 제출하듯 암말의 관심을 끄는 법에 대한 참고 자료들을 내 침대 위에다 툭 던져놓지만 않으면 참 귀엽겠는데 말이야.. 하지만 동생이 신경써주는 걸 굳이 거절하기도 뭐했으므로 샤이닝 아머는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다만 그 참고 자료가 워낙 어이가 없는 거라서 문제였지만.
동생은 이 책을 '금세기 가장 유명한 로맨스 소설'이니 참고하라고 했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피를 빠는 박쥐 포니 하나가 날이 샐 때까지 아름다운 암말 하나를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는 걸 로맨틱하다고 정의할 수 있는 거냐고. 상식 있는 포니라면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지. 스토커라고..
동생은 이 책을 '금세기 가장 유명한 로맨스 소설'이니 참고하라고 했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피를 빠는 박쥐 포니 하나가 날이 샐 때까지 아름다운 암말 하나를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는 걸 로맨틱하다고 정의할 수 있는 거냐고. 상식 있는 포니라면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지. 스토커라고..
책 제목을 보아하니 그냥 자기랑 이름이 같아서 무작정 뽑아온 것일지도 모른... 아니.. 천하의 트와일라잇이 책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안 보고 막 뽑아왔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냥 적당히 맞장구나 쳐 주고 보내자.. 샤이닝 아머는 생각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트와일라잇. 야. 진짜 큰 도움이 됐다." 샤이닝 아머는 동생을 내려 보며 지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곧 우리 트와일리랑 놀아주실 언니가 오실 텐데, 그것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트와일라잇의 표정이 일순간 창백해졌다. 샤이닝 아머는 자기가 뭘 잘못 말했나 싶었다.
"뭣?! 안 돼! 나도 오빠랑 오빠 친구들이랑 공주님이랑 같이 게임 할 거야! 나 없을 때 무슨 사고라도 나면 오빠 혼자서 어쩌려구? 내가 꼭 있어야 한다니까!"
트와일라잇이 와락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검사표를 한 쪽 발굽으로 집어 올리며 샤이닝 아머는 트와일라잇의 등을 어루만져주며 입을 열었다.
"아-안심해. 다 괜찮을 테니 진정해 트와일리.. 자.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따라 해봐. 숨을 깊게, 천천히 들이마시고. 쭉 내뱉고. 후. 하. 후. 하."
트와일라잇은 샤이닝을 따라 심호흡을 했고, 트와일라잇이 약간 안정이 된 걸 본 샤이닝은 따스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음.. 그나저나 선셋 만나는 나보다 네가 더 걱정이 태산인 것 같네. 왜 그래 트와일리?"
트와일라잇은 죄책감 가득한 눈으로 큰오빠를 쳐다보았다.
"사실.. 선셋 공주님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거든.."
"엉?"
"..왕립 유니콘 학교에 입학하고 싶은데 좀 도와주시라고..."
슬픈 목소리로 트와일라잇은 말했다.
"오빠에게 선셋 공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떻게든 오빠랑 선셋 공주님이랑 이어지게 만들려고 연구를 했던 것도 다 이것 때문이었어. 거기는 날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아온 명문 귀족 자제들이 입학하기 전부터 각종 예습 및 준비를 철저하게 해 오는 곳인데, 날 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 어쩌면 내가 거기 입학할 유일한 방법은 마맥을 동원하는 방법밖에는 없을지도 몰라."
이런 것 때문에 샤이닝 아머는 가끔씩은 트와일라잇이 그저 평범한 망아지이기를 바랬다. 비록 명석한 두뇌 덕에 또래보다 2배는 더 아는 것이 많을지는 모르나, 정작 삶의 경험이 부족한 까닭에 정보를 구분해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떨어졌던 것이다.
보통 엄마 아빠가 하는 것처럼 벌써부터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주는 대신, 샤이닝은 트와일라잇의 호흡이 잦아들어 완전히 안정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우선, 넌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망아지야. 너 정도의 머리만 있으면 그 학교에 입학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고."
샤이닝 아머는 트와일라잇의 뿔을 가볍게 누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근데도 꼭 공주님을 만나고 싶다면 음... 게임이 끝난 후에 슬쩍 와서 인사하는 건 어떨까? 공주님에게 인사할 말도 생각해두면서. 어때?"
트와일라잇이 입을 열어 대답하려는 찰나 현관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갈게!"
오빠의 말에 다시 기운을 차린 망아지는 재빠르게 현관으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선셋 공주니...엥?"
샤이닝 아머는 현관 쪽을 보고 신음을 흘렸다. 현관문 앞에서 얼이 빠진 여동생의 앞에는 옆에 등자 가방을 맨 분홍색 알리콘, 캐이댄스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바로 샤이닝 아머 여동생, 트와일리구나."
캐이댄스는 트와일라잇과 시선을 맞추며 질문을 던졌다.
"아..네.. 트와일라잇 스파클 이에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지만 트와일라잇은 바르게 대답했다. 어머니가 누가 뭘 물어보거든 바로 대답해주라고 몇 년간 예절교육을 시킨 덕분이었다.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캐이댄스의 이마자락에는 약간 주름이 일었다. 하지만 그 주름은 샤이닝 아머가 순간 헛것을 봤나 착각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만나서 반가워 트와일라잇. 난 미 아모레 카덴자라고 해. 친한 사이끼리는 그냥 캐이댄스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구. 어때? 우리 친하게 지내볼까?"
트와일라잇이 할 말을 잊은 것 같아, 샤이닝 아머는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 캐이댄스. 왔어?"
샤이닝은 시계를 힐끗 보며 말했다.
"너 좀 일찍 왔다?"
캐이댄스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하하. 미안. 미안. 준비가 잘 돼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만."
다시 트와일라잇을 쳐다보며 캐이댄스는 말을 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네 귀여운 여동생을 돌봐줄 생각을 하니 너무 기대돼서 가만히 못 있겠더라구."
멍하게 있던 트와일라잇이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잠깐.. 오빠랑.. 캐이댄스 공주님이랑 그럼..."
헉! 하는 소리를 내며 트와일라잇은 소리 질렀다.
"다른 공주님과도 아는 사이였어?!"
"전에 같은 학교 다닌다고 했잖아 트와일라잇.." 샤이닝 아머는 뚱한 어조로 대답했다. "오늘 여기 왜 왔냐면 보모 아르바이트 때문에 온 거고."
캐이댄스는 약간 불만스럽게 눈을 옆으로 굴렸다. 물론 샤이닝 아머와 캐이댄스는 아직 친구라고 하기엔 애매한 사이인 건 맞지만, 사실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를 전부터 약간 관심 있게 지켜보고는 있었다. 벅이 지난 주 샤이닝 아머를 갑자기 심하게 괴롭힌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으니까.
만일 캐이댄스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하긴.. 이미 선셋이 벅에게 공주가 화나면 어떻게 되는지 본때를 보여줘도 너무 단단히 보여줬으므로, 캐이댄스는 이제 그건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에서 빠져나온 캐이댄스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지는 걸 파악한 샤이닝 아머가 일찌감치 화재를 돌리기 위해 캐이댄스가 매고 온 가방을 보며 입을 열었다.
"뭐 가지고 왔어?"
"롤플레잉용 오망성."
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며 캐이댄스는 대답했다. 트와일라잇은 캐이댄스의 뒤를 졸졸 따라오며 사뭇 거대한 수수께끼(?)를 풀듯 심각한 얼굴로 깊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 그리고 너희 부모님이 서명할 근로 동의서. 쓰잘데기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모님의 직속 변호사가 만약 일을 할 거면 적법한 절차 내에서 하는 게 좋다고 하면서 근무 시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왕가가 아닌 나한테 있다고 어쩌고저쩌고, 어찌나 잔소리가 많던지... 심지어 공인인증 마법까지 걸어주더라니까? 복잡해서 정말.."
캐이댄스는 불만을 토로하면서 한 쪽 날개를 피며 매고 왔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샤이닝 아머는 제발 트와일라잇이 '공주님. 왜 마법 안 써요?' 따위의 질문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전에 샤이닝이 같은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공주는 아주 심각할 정도로 정색을 하며 부끄러워했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아빠한테 가져다주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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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캐이댄스와 남아있던 트와일라잇은 호기심어린 눈을 하며 캐이댄스를 올려보았다.
"공주님도 알리콘이에요? 알리콘은 대체 몇 필이나 있는거에요?"
"다 해서 네 필."
캐이댄스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가 퍼뜩 입을 가로막았다. 중대한 비밀을 이런 식으로 어이없이 발설하다니.. 내가 지금 제정신이야?
"어험.. 달 위의 암말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말이지.. 네 생각은 어때?"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의 여동생이 명석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망아지일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진지한 얼굴로 콧등에 주름을 가득 잡으며 생각에 잠긴 모습도 너무나 귀여워서 캐이댄스는 당장 트와일라잇을 꼭 껴안아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달 위의 암말은 그냥 전설이죠. 그저 옛날 포니들이 달의 모습을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구요."
마치 캐이댄스를 타이르듯 트와일라잇은 책에서 본 내용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공주님도 셀레스티아 공주님 수제잔가요?"
"그..그게..."
캐이댄스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트와일라잇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이럴 수가! 만약 공주님이랑 선셋 공주님이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수제자라면.. 그건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알리콘만 가르친다는 이야긴가요? 그렇죠?!"
"어...."
"으아.. 안돼... 알리콘이 아니면 셀레스티아 공주님에게 수업도 못 받는다니!"
트와일라잇은 이제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지금껏 한 공부, 연구, 계획, 다 헛고생이었어! 끝났어! 내 마생도 다 끝이야!"
눈앞의 망아지가 거품을 물고 발작할 지경에 이르자 캐이댄스는 재빨리 앞발로 트와일라잇을 붙잡고 자신을 강제로 올려보게 했다.
"트와일라잇. 진정해. 진정하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어 봐."
공주는 약간 인상을 쓰며 가슴에 발굽을 올리고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자. 천천히 내뱉고.."
트와일라잇은 캐이댄스를 따라 심호흡을 했다. 캐이댄스는 트와일라잇이 진정할 때까지 몇 초 기다린 뒤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두 눈을 감고... 나쁜 생각들을 모두 머리를 감싸고 있는 큰 먹구름이라고 생각해 봐."
"저기요. '생각'이란 건 말이죠. 결코 물질적인 형태를 취할 수 없는-"
"트와일라잇!"
"네. 네. 알았어요. 먹구름이라고 치죠 뭐."
"그럼 그 못된 구름을 크게 숨을 훅 하고 불어서 다 날려버리자. 다시는 트와일라잇을 못 괴롭히도록. 알았지?"
캐이댄스는 트와일라잇을 내려놓았다. 트와일라잇의 심호흡이 끝나자 공주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
나아졌다는 듯 "웅.." 하는 소리를 내며 트와일라잇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캐이댄스는 고개를 아래로 기울여 트와일라잇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끼리만 하는 이야긴데, 지금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내게 마법을 가르쳐주시긴 하시지만, 그것도 몇 년 후면 끝날 예정이야. 그리고 걱정 마.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알리콘만 가르치시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너도 꾸준히 공부만 한다면... 입학할 때 쯤 공주님의 수제자가 될 수도 있을지도?"
트와일라잇의 얼굴에 입이 찢어질 듯 한 미소가 걸렸다. 눈도 반짝 뜨였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캐이댄스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진짜에요? 진짜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절 직접 가르쳐 주실 수도 있다는 거죠? 그죠?"
가성 수준으로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트와일라잇은 아주 들떠있었다.
위에서 굵직한 남성의 웃음소리가 들려와 캐이댄스는 그 쪽을 바라보았다. 연청색 털가죽, 암청색 갈기와 함께 노란 달 모양 큐티 마크를 단 수말 한 필이 샤이닝 아머와 함께 위 층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저런 트와일라잇. 아직 그런 말을 하기엔 좀 이르지 않니?"
트와일라잇과 샤이닝의 아버지 되시는 분인가 보군.. 그 수말은 캐이댄스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여 예를 갖추며 말했다.
"캐이댄스 공주님. 오늘 저희 애의 보모를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유니콘은 위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얘가 갑자기 불안해하기 시작하면 애아빠인 저도 잘 달랠 수가 없는데 대단하시네요. 지금까지 트와일라잇을 맡아준 보모들도 얘가 이러기만 하면 네 발 들고 나갔는데.."
"아. 별 거 아닌데요 뭘.. 그리고 예의 차리실 거 없어요. 고개 드세요. 오늘은 제가 피고용마잖아요. 에헤.. "
"그럼 아까 인사치례는 우리 딸을 잘 달래준것에 대한 보너스라고 생각하시구요. 허허허... 그나저나 근로 계약서를 읽어봤습니다만.. 수당을 제대로 적으신 거 맞는 건가요?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네. 따님이 워낙 귀여워서 적용된 특별 할인가랍니다. 그리고 이런 과분한 대접을 받았는데 당연히 싸게 해 드려야죠.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일당은 하루에 1비트구요. 대금은 즉시 지불 부탁드릴게요."
캐이댄스는 앞발굽을 내밀어 동전 한 개를 받아 날갯죽지 아래에 넣어놓았다.
서명된 계약서를 캐이댄스가 막 입으로 받고 있을 때, 트와일라잇의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소개가 늦었죠? 나이트 라이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공주님."
입에 계약서를 물고 있었던지라 캐이댄스는 나이트 라이트에게 자신의 본 이름 -미 아모라 카덴자-을 말해주기 어려웠다. 그래서 계약서를 배낭에 집어넣었지만, 이미 나이트 라이트는 위층으로 사라진 이후였다. 캐이댄스와 샤이닝과 트와일라잇만 남겨두고 말이다.
"어... 이제.. 뭘 하지?"
샤이닝 아머가 머뭇머뭇 묻자, 캐이댄스는 인상을 약간 쓰면서 대답했다.
"왜 또 뻘쭘해하고 그래? 안 잡아먹어. 긴장 풀어."
그리고 캐이댄스는 배낭에서 오망성 모양의 판을 꺼내 샤이닝 아머에게 내밀었다.
그걸 본 트와일라잇은 신이 난 소리를 내며 끼어들었다.
"우와! 이거 실시간 액션 롤플레잉의 오망성 맞죠? 엇... 잠깐... 왜 갑자기 오빠에게 이런 걸 주시는 거죠?"
"오늘 있을 게임 세션용으로.." 샤이닝 아머가 호기심 가득한 트와일라잇을 내려 보며 말을 덧붙였다.
캐이댄스는 트와일라잇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 있을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게 풀리게 만들 일종의 도구라고나 할까? 시나리오는 이미 써 놨어. 주문을 발동시키기만 돼."
오망성을 받아들고 샤이닝 아머는 약간 표정을 구겼다.
"잠깐. 던전 마스터는 평소대로 가퍼가 맡는 거 아니였어? 걔 시나리오를 이 오망성으로 현실감 있게 플레이하면 진짜 괜찮을 거 같은데.."
감히 사랑의 공주의 완벽한 로맨스 성립 계획에 망발을 늘어놓다니? 캐이댄스는 갈고리눈을 뜨고 샤이닝 아머를 노려보았다.
"첫 게임 끝나면 가퍼에게 게임 마스터를 맡겨도 상관없어. 하지만 선셋과 샤이닝 너한테 초점이 맞춰지는 시나리오를 하고 싶다면, 그리고 선셋과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다면 순순히 내 말 들어 잔 말 따윈 집어 치우고!"
"히익! 아-알겠습니다! 공주님!" 샤이닝 아머는 질겁하며 새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선셋의 미래의 행복을 위한 포석도 놓아졌겠다. 캐이댄스는 활짝 웃었다.
"옳지!"
그리고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를 다시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너 어디 아파 샤이니? 춥지도 않은데 왜 몸을 떨고 있어?"
"괘..괜찮아욧!"
샤이닝 아머는 완전히 뻣뻣하게 차렷 자세를 하면서 복창으로 대답했다. "너..너무 괜찮아서 날아갈 지경이네! 에-에헤헤헤!"
샤이닝 아머의 괴이쩍은 행동에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를 잠깐 동안 멍하게 쳐다봤다. 암말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건 처음 볼 때는 무지 귀엽긴 했지만, 그냥 통상적인 대화를 하는데도 계속 저 모양이라면 귀엽기는커녕 짜증만 날 게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일만 잘 풀리면 선셋은 앞으로 샤이닝의 저런 모습을 별로 안 겪어도 된다는 점이었다. 아니, 오히려 선셋이라면 샤이닝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강아지 같아서 귀엽다고 할지도..
샤이닝과는 이제 됐다 싶어 캐이댄스는 샤이닝의 여동생에게 주의를 돌리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트와일라잇. 언니에게 네 방좀 보여줄래?"
망아지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성마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그건 캐이댄스가 여러 차례의 보모 경험으로 얻은 지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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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다 올리려고 했지만, 너무 오래 시간을 지체해서 기다리다 지친 분이 많을 것 같고, 게다가 14000단어라는 분량은 한 번에 몰아보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분량이므로 파트 1 파트 2로 분할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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