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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알 수 없는 19세기 조선의 야담집인 청구야담(靑邱野談)에서는 모인(毛人)이라는 기묘한 생명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조선의 정조 임금이 즉위한 지 6년이 되는 임인년(壬寅年 1782년)과 7년이 되는 계묘년(癸卯年 1783년) 사이, 경상도 안찰사(按察使 지방의 높은 행정관)인 김모씨는 현재 경상남도 함양(咸陽)에 도착해 그곳 관사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안찰사가 머물던 방의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이윽고 무언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안찰사는 그것이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 “너는 사람인가, 귀신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안찰사의 질문을 받은 존재는 “나는 귀신이 아니고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고, 이에 안찰사는 “사람이라면 밤중에 왜 나를 찾아왔는가?”라고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물체는 “조용히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다만 불을 밝히지는 말아주십시오. 나리께서 제 모습을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의아함을 느낀 안찰사가 “그대는 대체 어떤 모습이기에 불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건가?”라고 물었고, 그 물체는 “저는 온 몸에 털이 잔뜩 났습니다.”하고 말하며 자신의 사연을 털어 놓았습니다.
“저는 원래 경상도 상주(尙州) 출신으로 우주서(禹注書)에서 역사 기록을 쓰던 정7품 벼슬의 관리였습니다. 중종 임금(中宗 1506~1544년) 임금 시절에 조광조(趙光祖 1482~1519년)와 그 무리들이 죽거나 귀양을 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저도 연루되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달아나다가 지리산(현재 경상남도에 있는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산 속을 여러 날 헤매면서 배가 고팠고,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나무 열매와 물가에 난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5~6개월이 지나자, 몸에 점점 털이 수북해지더니 어느새 걸음걸이가 나는 듯이 빨라져서 높이가 천길이나 되는 절벽이라도 가뿐히 뛰어넘었고, 한 순간에 10여리의 거리를 달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도저히 하지 못하고 원숭이나 되어야 가능한 일인데 말입지요.
하지만 제가 생각을 해보니 걱정이 들었습니다. 저의 모습은 털이 수북해서 누가 보면 꼭 괴수로 오해하기에 딱 좋아서, 도저히 지리산의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행여 풀이나 나무를 베러 오는 사람이 지리산에 나타나면 반드시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산을 내려가면, 깊은 동굴 속에서 예전에 공부했던 학문이나 시를 외우면서 홀로 떠돌다가 제 신세를 돌아보니, 너무나 한심해서 저절로 눈물이 흐르고 고향을 생각하니 가족들이 모두 죽은 후라서 돌아갈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지리산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사나운 호랑이도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저 포수가 오면 행여 그들이 저를 괴수로 오해하여 총을 쏠까봐 그것만이 두려웠습니다. 낮이면 사람이 나타날까봐 숨고, 밤이 되면 모습을 드러내서 산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지요. 다만 바깥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통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제 모습이 워낙 괴상하여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가 난감했지요.
그런데 안찰사 나리께서 오시니, 제가 궁금해서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혹시 지금 조광조 선생의 자손은 남아 있으며, 그 분은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셨습니까? 아신다면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모인의 질문에 안찰사는 자신이 아는 대로 대답했습니다.
“조광조 선생은 인조 임금 시절에 역모의 누명을 벗으셨고, 문묘(文廟)와 서원(書院)에 그 초상화가 모셔졌으며, 그 자손들도 다행히 살아남아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네. 헌데 그대는 기묘사화 시절의 일들을 아직도 기억하는가?”
안찰사의 질문에 모인은 자기가 기억하는 대로 기묘사화 시절의 일들을 털어 놓았는데, 그 말이 전혀 막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안찰사가 모인한테 “그대가 지리산으로 도망쳤을 때, 나이가 몇 세였나?”라고 묻자 모인은 “35세였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안찰사는 “이제 기묘사화로부터 거의 300여 년이 지났으니, 그대의 나이는 대략 400세에 가깝군!”하며 놀라워했습니다.
모인과 계속 대화를 나누던 안찰사는 “혹시 그대는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소?”라고 물어보았는데, 모인은 고개를 저으며 “저는 이미 세상의 음식은 먹을 생각이 들지 않고, 다만 과일만 먹으면 됩니다. 지리산에서도 그렇게 과일을 모아서 먹고 사는데, 호랑이가 덤벼들어도 맨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서 모두 잡을 만큼 건강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인은 안찰사한테 인사를 올린 다음, 방을 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중에 안찰사는 모인과의 대화를 기억해 두었다가, 죽기 직전 가족들한테 “내가 그때 함양에서 털이 난 모남(毛男)을 만난 적이 있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timur122556/1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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