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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89719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42
    조회수 : 2823
    IP : 198.211.***.107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6/08/01 21:17:45
    http://todayhumor.com/?panic_89719 모바일
    [오컬트학] 방이 지저분하면
    방이 지저분하면

    도쿄에 거주한지 7년 째 되는 서른 살.
    처음 살던 곳은 회사랑 너무 멀어서, 좀 더 가까운 맨션으로 이사했다.
    채광이 나쁘고 좁은 원룸이었는데, 거기서 지내다가 우울병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회사에는 어째저째 가긴 하는데 잠도 못 자고, 식욕도 없었다.
    취침 시간이 평균 3시간인 상태가 이사하고부터 1년이나 이어져서
    얼굴도 말이 아니었는지, 가끔 상사가 지나가며 한 마디 할 정도였다.
    사회인이지만 업무 외에는 거의 히키코모리 기질이라서
    방 청소도 제대로 안 했다.
    그런데 그때는 정도가 지나쳤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쓰레기 버리는 것조차 귀찮아서 구석에 쓰레기를 산처럼 쌓아뒀다.
    컵, 식기는 설겆이가 왠걸.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시골에서 부모님이 무슨 일이 있어서 왔다가 겸사 겸사 얼굴 보자고 들리셨다.
    그리고 내 꼬라지를 보시더니 비명을 지르셨다.
    우리 엄마는 집 안의 물건 배치에 따른 풍수같은 거나 오컬트틱한 걸 신경 쓰는 타입이라
    바로 자칭 영능력자라고 하는 (평판은 좋은) 전파상 아줌마에게 전화로 말하기 시작했다.
    휴대 전화로 뭘 알 수 있다고 저러는 거야, 또...
    하는 생각만 하면서 잠자코 있었더니, 엄마가 전화를 바꿔줬다.

    그 아줌마는 만난 적도 없는데다 대화한 적도 없었지만, 일단 받으라고 해서 받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 드립니다"뭐 그런 이야기를 대충 한 뒤에
    "그래, 네가 ○○씨 아들이구나"라고 인사하더니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일은 익숙해졌니?" "여자친구는 생겼니?" "쓰레기는 잘 내다 버리니?"...
    대체 뭘 알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질문이었다.

    그래서 엄마 앞에선 별로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웃으면서 "솔로 복귀한지 좀 되었다"는 등
    "네.." "뭐 대충은요"라는 식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방은 잘 안 치우는 거 아니냐길래 제가 좀 게을러서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책상 위에 컵 몇 개 있니?"라고 물었다.
    마시다 만 컵이랑, 며칠 전에 쓴 컵이랑.. 부모님한테 대접하느라 꺼낸 패트병 차가 있다고 했더니
    "세면대에 칫솔은 몇 개?"냐고 해서
    버리기 직전의 칫솔..아니 그냥 내어둔 채로 둔 칫솔과 새 칫솔 두 개가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싱크대에 설겆이 안 하고 둔 식기는 몇 개냐해서 답했더니
    대부분 두 개였다.

    이럭 저럭 대화를 한 후 엄마에게 휴대 전화를 돌려줬더니
    엄마도 뭐라뭐라 대화를 하다가 또 바꿔보라고 했는지 아줌마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줌마 말에 따르면
    "지금 상태는 우울병 같긴 한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방에서 나오면 해결될 거야"
    라는 수수께끼 같은 소릴 하더니
    "일단 꼼꼼히 청소는 꼭 하도록 해. 환기도 좀 자주 하고"
    그런 충고를 했다.
    당시 내 상태가 좀 심각했던지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까지는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걱정스런 표정으로 엄마가 돌아간 지라
    다음 날부터는 시킨 대로 청소와 쓰레기 버리기는 좀 신경 써서 하고,
    환기도 자주 하려고 노력했다.

    두 달 정도 뒤에 비슷하게 회사랑 가까운 곳에 이사하게 되었는데
    이사갈 때까지도 불면증에 식욕 부진으로 고생 좀 했다.
    청소나 환기를 해서인지 약간 편해지긴 했으니까
    귀찮지만 시킨 대로 이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실행했다.

    새 집은 채광도 나쁜 편이 아니고,
    비슷하게 방이 좁긴 했지만 뭔가 편하달까..
    집 안의 공기가 앞에 살던 곳보다는 훨 좋은 것 같았다.
    막상 이사하고 보니 전에 살던 방이 숨막히고 답답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이사를 끝낸 2, 3일 후부터 갑자기 잠이 잘 오더니 식욕도 돌아왔다.
    안색도 좋아졌는지, 회사에서도
    "요즘 좀 건강해보이는데? 한동안 안색이 말이 아니더만. 정말 그때 아팠었구나"
    라는 소릴 두 세 명이 할 정도로 좋아진 것 같았다.
    당연히 나 스스로 느끼기에도 상태가 좋았고,
    전의 집에서 살던 약 2년 간 정말 상태가 안 좋았다는 걸 실감했다.

    지금까지 읽으신 분은 이미 예상하던 바겠지만
    이사한 후 몸 상태가 좋아지고 며칠 안 되어서 엄마 편으로 아줌마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줌마 말이 전의 집에는 옛날에 죽은(자살?) 여자가 눌러 앉아서
    그 여자가 날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컵과 식기, 칫솔 이런 걸 꺼내둔 채로 둔 것도 그 여자 것이었다는 거다.
    당연히 갑자기 믿기는 좀 어려웠고, 아직도 약간은 부풀린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말을 듣던 당시에는 좀 소름이 끼쳤다.
    아줌마는 그 여자는 방에서 나올 수 없으니까 이사하면 된다는 걸 알아챘다고 한다.

    엄마를 통해 들은 말이라서 세세한 부분까지는 맞지 않겠지만
    방을 더럽게 쓰는 건 일반적으로 귀신에 씌인 사람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고
    기력과 체력이 마비되면서 주변에서 보기엔 좀 게으른 사람으로 보인다고 한다.
    방도 엉망진창으로 더럽게 하고.
    그런데 내 경우는 그 여자 스스로 자기가 내 반려라고 생각해서
    청소와 설겆이, 쓰레기 버리는 것까지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휴대 전화로 통화하면서 그 아줌마는 그 부분까지 알아챘ㄷ바고 한다.
    당연히 그 여자는 귀신인지라 집안일을 할 수도 없고,
    식기와 쓰레기가 가득 차는 바람에 내가 어느 정도 정돈하긴 했지만..
    그래서 나더러 피곤해도 집안일을 제대로 하라고 한 거고,
    그 여자가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없앰으로서
    귀신의 집착을 끊어내자는 작전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듣다보니 다 들어맞는 것 같아서 좀 기분이 그랬지만,
    내다보고 그런 신통한 것 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이었기 때문에
    그런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오컬트 관련된 이야기에 흥미는 있지만 귀신의 존재는 안 믿는 편이라
    좀 냉정하게 말한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엔 꽤나 소름 끼쳐 했었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395434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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