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친구가 저도 한번 써보라고 해서 써보는 첫 공포 글입니다.
포토툰만 하다가 이런거 하려니 잘 안되네요 ^^;
이상한 점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ㅎㅎ
질투
방 안 가득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걸을때마다 뜨겁고 끈적거리는 피가 원망하듯 내 발을 붙잡았다.
살아서도 나를 방해하더니 죽어서까지 나를 잡으려 하는건가.
실소가 터졌다.
그래. 분명 너는 나를, 그리고 나는 너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서 중요했던건 너와 나의 사랑이 아니었다.
어울림이었지.
남부럽지 않은, 아니 우월에 가까운 인생을 살았다.
나라는 존재. 이 얼마나 완벽한 인간인가.
외모, 지성, 남들에게 보여지는 성격.
무엇하나 모자라지 않고 오히려 넘치도록 완벽했다.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한 부모님을 찬양했다.
잠깐. 찬양? 아니지, 아니야. 오히려 경멸한다.
저따위의 유전자 조합에서 나라는 존재가 태어난다는건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을뿐이고,
신이 선물한 가장 완벽한 조각이 저들의 태를 잠시 빌렸을 뿐이다.
나와는 맞지 않는 레벨로 계속 같이 살아가길 원하는 작태가,
늘상 계속되는 나에 대한 칭찬들이
점점 눈꼴시려 지고 있었다.
사사건건 밥을 먹여주느니 일을 도와주느니 하며 같이 붙어있고 싶어하는것도
진절 머리가 난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는다.
잘 났다고 꼴값하고 행동거지를 경망스럽게 하여
- 얼굴만, 혹은 머리만 잘났고 성격은 병신같은 놈 -
따위의 저주를 듣게되는 오점을 남길 수 없다.
세상엔 완벽이란 것은 없다.
물론. 내가 태어나기 전 까지의 이야기지만.
완벽이란 단어는 오로지 나를 지칭하는 말이어야 한다.
나는 거울을 본 적이 없다.
빛의 반사 따위를 통해 나를 나타내는 물체는 '나'를 제대로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은 맥락으로 나를 찍은 사진 한번, 그림 한번 본적이 없다.
상대는 오로지 직접 만나는 것으로 나를 판단해야 하며 내가 들리는 거리에서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겉으로 봤을땐 아무 이상도 없는 완벽한 인간이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조건들덕에 내 옆엔 속 깊은 이야기 나눌 친구 하나 없었다.
당연히 나와 어울리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거라 여겼다.
스스로가 완벽하기 때문에 성에 차는 것이 있을리 없으니.
당연히 사랑이라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진.
나에게 높은 곳이란, 너무나 올라가기 쉽고 재미없는 쓰레기같은 가치였기 때문에
가장 낮은곳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사회 복지 기관을 전전했다.
그곳에선 하찮은 육신를 가진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상관 없이
적어도 따뜻한 감성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곳을 다니느라 딱히 특정 위치에 정 줄 일도, 줄 생각도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자주 다니게 됐던 복지관에서 중대한 사건이 하나 생겼다.
귀를 찢는 듯한 천둥소리와 번개라는것이 내리치는 비오는 오후.
다들 좀비와 같은 발소리로 걸어다니던 눅눅했던 어느날.
누군가 기분 전환차 돌아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해보는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다들 무료하고 고된 일상에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흔쾌히 찬성들을 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첫 이야기는 한 소년의 다리 재활을 돕고 있다는 복지사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난 딱히 그런 쓸데없는 이야깃거리엔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동떨어져 앉아
멍하니 고개를 천장쪽으로 향하고 의자에 눕듯 걸터 있었지만.
어쨌든 나의 관심과는 상관 없이 그들의 이야기는 점점 깊이를 더해갔고
두번째 주자의 귀신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갑자기 사방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도를 넘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멍하니 있어서 무슨 상황인지 몰랐는데 두번째 이야기의 절정 타이밍에
복지관 위로 번개가 내리쳐 정전이 됐던 것이었다.
....불이 꺼진게 그렇게 호들갑을 떨일인가?
난 그냥 니들을 보면 항상 깜깜한데?
한심한 생각으로 혀를 차며 다시 의자에 기대려 하는 찰나
누군가 불안 가득한 손으로 손으로 내 팔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무...무서워요...'
이건 나도 놀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기댄다는 이질적인 감각.
철저한 약자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
그런 복잡한 감각과 함께 전해지는 떨림.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
'암흑속에서 목소리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그건 내 처음이자 마지막 연인이 될 여자와의 만남이었다.
복지관에서 '천사'라는 별명으로 통하던 여자.
모두에게 웃음과 행복을 안겨주던 여자.
그리고 완벽한 나.
우리는 그 일을 계기로 간간히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동안 왜 사귀지 않았었나 싶을 정도로 급속하게 깊은 사이로 발전했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판단할때의 엄격한 잣대를
그녀 앞에선 들이대지 않았다.
왜냐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오직 사랑을 위해 내미는 따스한 손.
한숨과 회한이 아닌 격려와 칭찬으로 가득한 숨결.
누구보다도 뜨겁고 열정적이지만 그 열기로 인해 다가오는 이들에게
상처주지 않을 줄 아는 따뜻한 가슴.
모든것이 훌륭했다.
아니. 이런 칭찬은 너무 심플하군.
모든 것이 마치 나와 같았다.
다만 한가지 이상했던건 그녀를 생각할때마다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것 같은 통증이 든다는 것.
사랑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던데..
이런게 사랑이 아닌가 싶다.
그녀와 해보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놀이 동산을 간다거나, 나만을 위한 서점을 간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거나, 첫 키스를 한다거나 하는 모든것들이 말이다.
내가 트레이드 마크 삼아 항상 들고 다니는 특이 취향의 지팡이를
처음 칭찬 해준 것도 그녀였다.
그녀와 있을때는 '나'를 생각 하는것을 멈출 수 있었다.
간간히 느껴지는 칼로 찌르는 듯한 가슴의 통증만 제외 한다면
모든것이 꿈과 같은 몽롱한 일상이었다.
술을 마셔본적이 없어 그런 감각은 모르겠다만
취한다는것이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잘 지낼것 같았던 우리.
하지만 위기는 정말 아무런 예고 없이 다가왔다.
'오빠는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거 같아. '
사귄지 200일쯤 되었을 무렵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가끔 질투가 날때가 있어.'
질투?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질투라는 가당치 않은 단어가 나오다니.
약간 놀랐다.
'내가 널 사랑하는걸 알잖아.'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오빠는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는거 같아.
마치 또 다른 연인처럼?'
그렇게 말하더니 그녀는 까르르 웃기 시작한다.
장난처럼 한 말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약하게나마 표현 되었던 나의 본성을 무의식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생각을 길게 이끌어가진 못했다.
왜냐면 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는듯 평소의 통증의
수십 배는 되는듯 한 급작스런 격통과 함께 쓰러졌기 때문이다.
- 폐암 말기입니다. 이 정도면 분명 통증이 있으셨을텐데..
병원에선 도저히 손쓸 도리가 없군요.
의사의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서 한 말이 좀 더 충격적이었다.
- 중요한건 아니긴 한데.. 암 형태가 정말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이건 마치 환자 본인 얼굴 같군요. 뭔가 본인이 본인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달까요.
나의 완벽한 생도 여기서 끝나는건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왜 나에게? 저 하찮은 것 들도 다 웃으며 지내는데 왜 하필 나에게?
내가 무슨 죄를 지었지? 무엇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거지? 내가 왜? 왜? 왜!
수천 수만번의 고뇌와 번민에 몸부림 쳤다.
그렇게 식음을 전폐하고 모든것을 포기한채 방 구석에서 겨우 숨만 쉬며 있던 어느날.
뇌리에 어떠한 대화가 번개처럼 스쳐갔다.
'오빠는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거 같아. 가끔 질투가 날때가 있어.'
'내가 널 사랑하는걸 알잖아.'
그래. 그런거였어. 그거였구나. 그게 내 죄였어.
살아 숨쉬는건 아무것도 없는 듯이 불빛 하나 없고 고요한 집 안.
안방 쪽에서 작은 숨소리 하나. 그리고 거친 숨소리 하나가 정적을 깨고 있었다.
지금 내 손엔 나의 연인에게 사죄하기 위한 도구가 들려있었고
바닥엔 흩뿌려진 피와 함께 여자가 죽어가고 있었다.
'오빠.... 왜....'
여자가 힘겨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
계속적인 사죄를 이어 나가려 했지만 이유조차 모르게 보내는건 예의가 아니지.
손을 더듬어 여자의 얼굴을 찾아 매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너도 알고있겠지만 나는 완벽한 사람이다. 세상 모든것이 나를 충족 시키지 못한 반면
'나'는 나를 충족시켜줄 모든것이었어. 그리고 나는 '나'를 가장 사랑했지.
거기까지 말을 마친 남자는 잠시 벽에 기댄후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 그러다 널 만나게 됐고 사랑하게 되면서 우선 순위가 바뀌었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불을 붙이려 했지만,
쓰지 않던 근육들을 무리하게 썼는지 라이터를 쥔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왼손으로 불을 켜고 담배를 한모금 깊게 빨았다.
머리가 핑 하고 돈다.
이런 상황엔 담배 한개 정도는 피워줘야 더 멋있을것 같아,
고민하다 한갑 사봤지만 역시 몸에 안 좋은건 완벽한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건가.
다만 담배를 피면 흰 연기가 나온다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한번 보고 싶었다.
'맞아... 우린 서로 사랑했잖아...'
여자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하아. 잠시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는건가.
어둠속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여자의 입을 찾았다.
얼굴엔 눈물인지 뭔지 모를 액체들로 범벅이라 기분이 나빴지만
금새 그 작고 아름다운 입술을 찾을 수 있었다.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 그래. 넌 그 입술로 나를 찬양 했고, 그 입술로 나를 원했고,
지금처럼 그 입술로 영원하자 말하며 사랑을 노래했고
서서히 오른손을 들었다.
- 날 파멸시켰지.
그 말과 동시에 오른손에 들고 있던 도끼로 그녀를 내리 찍었다.
방 안 가득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걸을때마다 뜨겁고 끈적거리는 피가 원망하듯 내 발을 붙잡았다.
살아서도 나를 방해하더니 죽어서까지 나를 잡으려 하는건가.
실소가 터졌다.
그래. 분명 너는 나를, 그리고 나는 너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서 중요했던건 너와 나의 사랑이 아니었다.
어울림이었지.
난 널 사랑하면 안됐다.
왜냐면 나는 처음부터 나를 사랑했으니까.
여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할때마다 내가 나를 질투 했다는걸 몰랐다.
찌르는듯한 통증으로 나에게 경고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알았다.
나는 너를 만나며 외도를 하고 있었던거지..
내가 질투심에 미쳐 나를 죽일때가 되서야 그걸 알다니,
나도 참 나에게 너무 무심했다.
이제 다 정리하고 다시 나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너무 늦었다.
나에게 사죄 할 수많은 방법에 대해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이것보다 좋은건 없는것 같다.
외투 안쪽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온몸이 떨려왔다.
사과라는건 언제나 고달픈 법.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봤다.
-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건 내가 사랑했던 내 모습 그대로
세상을 끝내는거라 생각한다. 병으로 쇠약해지는 꼴을 보여줄 순 없으니까.
그렇게 말을 마친후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병에 있는걸 모두 마셨다.
복지관은 말도 안되는 엄청난 이슈로 인해 뜨겁다 못해 화상을 입을 지경이었다.
마침 놀러왔던 간호사 둘이 안면이 있던 복지사의 끔찍한 죽음과
진상을 듣고 신이난듯 입을 놀리고 있었다.
"야! 너 그 이야기 들었어?"
"당연히 들었지. 지금 그 이야기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
"그 미친새끼.. 생긴것도 이상한게 눈까지 안보이는놈을
그렇게 잘 챙겨줬더니 애를 그지경으로 만들어?"
"그러게 말이야. 둘다 못생기긴 했지만 서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유서에 '나는 나에게 사과한다'고 써놨다며? 싸이코새끼 아냐?"
"야! 하는짓 보면 몰라?"
"하긴 그건 그렇다 얘."
그때 두사람의 말을 끊고 홀쭉한 간호사에게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이슈를 말하는데 전화가 무엇이 중할까.
"전화 안받아?"
"남자친구 전환데, 나중에 받아도 돼. 지금 그게 중요하니?"
"야! 그러다 다른 남자랑 있는줄 알고 질투하면 어떻게 해."
그 말에 홀쭉한 간호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괜찮아~ 얘는 자기애가 엄청나서 내가 감히 자기말고 누굴 만날거라고 생각도 안할껄?
자기가 엄청 대단한 사람인줄 착각한다니까. 깔깔"
그런 친구의 행동을 한심하듯 쳐다보며 되물었다.
"얘가 뭘 모르네? 남자들도 질투 많이 하는거 몰라?"
그 말에 홀쭉한 간호사가 계속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끊어버리며
비웃듯 친구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바보야. 나르시스트는 질투 안해. 스스로에게 질투한다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