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신다.
이불을 젖히고 허물처럼 싸 맨
내 옷을 한 겹씩 벗겨낸다.
- 뱀 처럼 요망한 년.
당신 말은 틀렸다.
내겐 뱀이 없다.
당신 눈에 뱀이 산다.
난 당신 눈꺼플에 물려 죽었다.
깜빡일 때 마다 푸른 독을 뿜던 당신의 홍채.
낙수로 돌을 뚫는다 했던가?
당신이 계속 노려보면
눈빛으로 뼈를 부술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신 코에 삭풍이 분다.
난 당신 콧바람에 얼어 죽었다.
킁킁댈 때 마다 허연 서리를 내뿜던 당신 숨.
얼린 새끼 쥐 한마리 생명값이 400원이라 했던가?
당신이 계속 코를 벌렁대면
숨결로 살을 얼려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신 입에 날이 달렸다.
난 당신 혓바닥에 저미어 죽었다.
검은 구덩이를 드나들때마다 예리하게 갈리는 날.
세치 혀만큼 무서운 게 없다 했던가?
당신이 계속 핥아대면
내 몸으로 사시미를 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의 눈 코 입
또 날 만지던 손길
작은 손톱까지 다
당신의 모든 부위가 섬짓하다.
당신이 나를 눌러 엎어지면
압축기 사이 끼인 빈 깡통이 된 기분이었고,
당신 위에 내가 올라타 앉으면
깨진 유리 조각들을 잔뜩 박아 넣은
콘크리트 담 위에 뒹구는 느낌이었다.
나는 당신 위에서 아래에서,
물려서 얼어서 베여서,
매일 매 순간, 죽었다.
나는 자라지 말았어야 했나보다.
여물기 전 내 육체는 당신에게 고결했는데.
당신은 눈에 나를 담았고
당신 코로 내 볼을 부볐고
당신 입에서 나는 소리는 날 웃게 했었다.
그런 당신이 언제부터 날.
그런 당신이 무엇때문에.
내 유년의 당신은 따스했는데.
욕망은 불현듯 당신을 사로잡은걸까?
아님, 본래 당신 안에 있던 욕망이
여무는 내 몸 보며 서서히 커져간걸까?
나의 눈 코 입
또 온 몸을 때타월로 벅벅 밀고
성긴 손톱으로 피부겹을 긁어내며
당신이 방에 들어올 긴 밤을 생각한다.
내겐 더 이상 여력이 없다.
욕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끈을 줍다가
당신이 떨구고 잊었을 면도날을 발견한다.
나는 면도날을 삼켜 온 장기가
난자당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알 수 없는 짜릿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당신 눈 아래에서 삼키리라.
당신 코에 피 냄새를 풍기리라.
그리하여, 당신 입에서 절규를 듣게 되리라.
나는 당신이 가장 아끼는 장난감일테니.
나는 입 안에 면도날을 품고 욕실 문을 연다.
한 겹 허물 걸치지 않은 허연 육체 그대로.
누워 담배를 피우던 당신 눈에 뱀이 기어오른다.
- 바로 들어와라.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나는 기꺼운 맘으로 당신을 따른다.
당신은 내 머리채를 잡아 그것을 내 입에 욱여넣는다.
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아
삼키지 못한 면도날이 아직 입 안에 있다.
내 존재가 시작된 통로에서
존재의 종말을 맛본다.
당신 위에 불뚝 솟은 나의 고향.
정액과 타액이 흐르던 땅 깊숙히
면도날을 박아 씹는다.
본래 내가 보려던 건
당신 피 맛이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다.
사람 손에 길러진 서커스 사자가
처음 산 것의 피 맛을 보았을 때 처럼,
말뚝에 매여 자란 코끼리가
우연히 제 힘으로 그것을 뽑아낼 수 있음을
깨달았을 때 처럼,
나는 미쳐 날 뛰었다.
분노가 불현듯 나를 사로잡은걸까?
본래 내 안에 있던 분노를 서서히 키워온걸까?
자지를 붙잡고 자지러지는 당신 뒤를 덮쳐
브라를 당신 목에 둘러 맨다.
조를수록 쪼그라드는 당신이 느껴진다.
당신이 쪼그라들수록 내 온 몸 신경이 조여온다.
당신이 내게 오르가즘을 선사할 줄 꿈에도 몰랐는데.
당신 눈에 뱀이 동면을 취한다.
당신 코에 삭풍이 미풍이 된다.
당신 입에 날이 녹슨다.
나는 축 늘어진 당신을 내려다본다.
다락 창고를 열어 쓸만한 물건들을 찾아본다.
톱과 망치, 하우스비닐과 마스크, 장갑,
먼지 앉은 커다란 캐리어.
당신은 이제 부위로 불리운다.
몸에서 몸과 손.
몸과 손에서, 몸과 손과 팔뚝.
몸과 손과 팔뚝에서, 몸과 손과 팔뚝과 발.
몸조차 몸을 나누는 것들과
속의 여러 부위로 명칭이 갈리고,
불어난 부위들이 가방을 가득 채운다.
붉은 방 한가운데 가장이 든 가방 하나 우뚝 섰다.
그 안에 모든 당신이 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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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30 01: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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