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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89527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41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3/02 20:28:16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527 모바일
    [BGM] 풍경을 지운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1.jpg

    이재훈

     

     

     

    눈을 밟는다

    눈이 시린 풍경을

    꾹꾹 밟는다

    그러나 눈은

    온전히 밟혀지지 않고

    자꾸만 발등 위로

    심지어 무릎까지

    올라온다

    제 존재를

    떠올리려 한다

    덮어야 할

    밟혀야 할 운명을

    내 발걸음에 의탁한 채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눈이 떠올라

    내 발목을 쥐고

    너도 나처럼

    떠올라라

    떠올라라

    머리 위까지

    눈이 날린다







    2.jpg

    윤강로들꽃 이름

     

     

     

    들꽃 이름 외우기를 그만 두었다

    꽃 이름을 외우니

    꽃이 사라졌다

    숨은 듯 선명하게 고운 들꽃

    소리 없이 배시시 웃는 들꽃

    발돋움할 줄 모르는 낮은 키의 목숨

    들꽃처럼

    이름을 지워도 아름다운

    그런 사람 어딨니







    3.jpg

    박선우꽃의 파일을 해킹하다

     

     

     

    몇 페이지의 텍스트를 저장하고 있는가에

    벌은 온몸으로 후각을 동원하고

    패스워드를 찾느라 온종일 붕붕거린다

    아무래도 대갓집 규수 같은 목단이라면

    천개의 비밀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몇 마일을 날아왔을 벌이 꽃과 접속을 끝내고

    꽃의 텍스트를 읽느라 정신이 없다

    꽃에게도 이렇게 많은 공개할 수 없는

    파일이 있다는 것그 파일 속에는

    천기를 누설할 수 없는 꽃의 비밀들이

    문서화된 텍스트를 읽어내느라

    텍스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안이 궁금해 기다리는 바람

    세상이 시끄러울 것 같은 예감으로

    제각기 촉각을 세우고 있는 새와 바람

    밖이 시끄럽든 말든 벌은

    무차별 꽃을 해킹하고 있다







    4.jpg

    박완호풍경을 지운다

     

     

     

    검붉게 타던 플라타너스 잎들이

    겨우 며칠을 못 넘겨 땅으로 곤두박칠친다

    끝에 남은 몇 개의 흔적을

    아이들 서넛이그 고통과 적막을 달래듯

    기어올라 가지를 흔든다 우수수

    마른 골격이 드러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한 시대를 버팅겨 온 힘에 대한

    배반이다 풍경이 지워지고

    빈 손가락구부러진 틈 사이

    먼발치로 솟구쳤던 나무와 그 위에 허위로 쌓인

    발걸음이 무너진다

     

    나무는 이제 꿈꾸지 않는다

    몸통에 배어 있던 소리와 향기가 빠져나가고

    뿌리에 스며 있던 희망과 절망이 뽑힌다

    지금거품의 세월

    아이들이 깔깔대며 사라진 뒤삶이 그렇게 얼어붙듯

    나무들이 서 있다







    5.jpg

    박명숙초저녁

     

     

     

    풋잠과 풋잠 사이 핀을 뽑듯달이 졌다

    치마꼬리 펄럭엄마도 지워졌다

    지워져아무 일 없는 천치 같은 초저녁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20/03/03 10:14:57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단,비공감수가 추천수의 1/3 초과시 해당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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