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도덕인가 윤리 과목 선생님이 잠깐 바뀐 적이 있었습니다. 방학 보충 같은 건 아니고 2학기 기말쯤이었던 것 같아요. 당연히 수업 분위기도 좀 풀리고 도덕 쪽 과목이니만큼 빡세게 진도를 나가지는 않았어요.
새로 오신 선생님은 어렴풋한 기억에 키가 큰 편은 아니었던 여자 선생님이셨습니다. 아마 20대 후반 정도?
여느날처럼 우리는 떠들고 있었는데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무서운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면 수업을 강행하셨는데 하루는 "그럴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운을 떼시는 말이, 본인은 귀신을 자주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본 귀신 이야기를 비 오는 날마다 몇 개 해주셨습니다. 2m 가까이 되는 복도창 너머에서 교실을 들여다보던 뿔테안경녀 이야기, 학생 때 엎드려 자다 일어났을 때 자기 자리 주변을 뱅뱅 돌던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 등등 서너개는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저희가 들었을 때의 그 소름을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선생님이 성인이 되어 자취하셨을 때의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아마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오신 모양이지요.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엄청 싸게 나온 집을 구하게 됐다고 합니다. 집주인은 할머니였다고 했나... 집을 대강 살펴봤는데 딱히 흠이 있는 집이 아니었다고 해요. 누가 계약할새라 얼른 계약하고 바로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셨습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집에 대한 묘사는 선생님 이야기와 차이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일단 머릿속 이미지를 이야기하자면, 말 그대로 옛날 집입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멘트로 대충 발라놓은 바닥에 수챗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부엌겸 마당겸 세수할 겸 연탄불도 갈고 그런 공간이지요. 화장실은 밖에 있습니다.
이쪽으로 당겨서 여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안방입니다. 방 지대 자체가 좀 높고 문지방도 높은 집입니다.
선생님은 그곳에서 이불을 깔고 주무시는데 벽쪽으로 머리맡을 두고 발에서 저-만치에 나무문을 두고 주무셨다고 해요.
이것저것 섞인 묘사일 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무문이 발치에 있었고 벽쪽으로 머리를 두고 주무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집에 들어온 이후부터 잠만 자려고 하면 시선이 느껴지더랍니다. 누가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대요. 찜찜한 기분에 눈을 떠보면 빈 방에 누가 있겠습니까. 자기 하나죠. 아직 집이 낯설어서 그런가보다, 적응이 안 돼서 그런가보다 하며 익숙해지려고 노력하셨대요.
그런데 이상하게 시선은 날이갈수록 분명해지더랍니다. 뚜렷해지는 느낌에 소름이 돋아서 잠을 못 자고 일어났는데 방안을 둘러보다보니 나무문이 눈에 띄더랍니다. 전엔 미처 의식하지 못했는데 나무문의 나무무늬가 사람 얼굴처럼 보이더랍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뭔지는 아시겠죠? 나무결과 나무 옹이 무늬가 꼭 부리부리한 사람의 큰 눈처럼 보였대요. "아, 저것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나." 하고 선생님은 나름대로 이유를 찾았으니 괜찮겠지 하셨대요.
그렇지만 자는 자기를 뚫어져라 보는 듯한 시선은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사그라들지를 않더래요.
원래 감이 남달랐던 선생님은 이 집에 뭐가 있긴 있구나 싶었지만 애써 구한 집인데 나갈 수도 없어서 원인만 확실히 파악하면 제거해서 대강 살거나 그냥 익숙해지려고 노력을 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귀신보다 사는 게 무섭군요.
갈수록 소름이 돋아서 대학교 친구도 데려와서 재우고 친해진 친구네 집에 가서 자기도 하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죠.
그리고 어느날. 그 날은 그 집에서 혼자 자게 됐대요. 오늘도 시선이 느껴지는데
발밑. 발밑에서 시선이 느껴졌대요. 그곳엔 묘한 무늬가 있는 나무문만 있잖아요. 거기서 자기를 노려보고 있단 확신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이불을 슬며시 내리고 문을 봤습니다. 그런데 전엔 그냥 나무무늬라고 생각 했던 게 뚜렷하게 사람 얼굴처럼 보이더래요.
너무 무서워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습니다. 진짜 무서우면 몸이 굳는다고 하잖아요. 선생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불 안에 숨어만 있었습니다.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혹시 기분탓에 잘못 봤을 수도 있고 날 샐때까지 이러고만 있을 수도 없어, 다시 확인해야 겠다는 생각에, 발치 쪽의 나무문을 보려고 이불을 확 제치고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선생님 눈 앞에 귀신이 일본 갑옷을 입은 무사의 얼굴이 뻥 뚫린 눈으로 죽일 듯이 선생님을 노려보고 있었대요. 바로 얼굴 앞에요. 눈알이 없어도 시커먼 구멍에서 나오는 시선이 너무나 강력했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문에서 빠져나온 듯한 그의 목이 쭉 늘어난 채 얼굴에 연결되어 있었대요.
선생님은 그 후로 기절... 하셨는지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부터만 생각이 나신대요.
다들 이래서 나가는구나, 이래서 값이 쌌구나 하고 그날로 짐을 챙겨 이사 준비를 해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셨대요.
그 집에서 산 기간이 2달을 채 채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시선도 시선이지만 그 정도면 사람을 해코지 할 수 있는 귀신이었기 때문에 이사했대요.
출처
변변찮은 필력이라 죄송합니다. 이야기는 모두 진실입니다. 선생님이 지어내신 것만 아니라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