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잡상인은 열차 안의 예술가가 아닐까. 그들은 지하철 승객이라는 적대적인 관중을 향해 아름다운 연기를 펼친다. 그 연기가 매출로 연결되는 성공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밤엔 출근길 잡상인의 말을 떠올리며 잠들지 않나. 어떤 아침엔 낯선 잡상인이 등장해서 신기한 무언가를 멋진 화술로 팔아주길 바라지 않나.
지하철 잡상인을 신고하는 앱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잡상인을 코 앞에 두고 전화를 해서 신고하는 것은 매정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플레이스토어에서 그 앱을 순위에서 밀어내려 지하철 잡상인 체험 게임을 내놓은 적도 있었다. 지하철 잡상인이 없이 잠잠한 지하철에선 결국 동물팡이나 할 것 아닌가. 그들의 연기를 좀 더 촉촉한 마음으로 지켜보기를 권한다. 그럴 가치가 있는 공연이 제법 있다. 몇 년전 어떤 예술가는 잡상인을 연기하며 지하철에서 퍼포먼스를 한 적도 있다. 예술과 잡상인의 퍼포먼스 사이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니다.
어느 지하철 잡상인은 천자문을 팔았다. 한석봉의 필체로 그려졌다 주장하며 한 자 한 자에 실린 정성을 말했다. 그래봤자 수 만 장은 인쇄되었을 것이다. 지하철의 흔한 품목은 아니다. 대개 총판에서 중국제 공산품을 떼다가 팔지 않나. 할아버지는 천자문만을 팔았다. 어쨌거나 소소한 일일 뿐이다. 지구상에 없는 야구팀의 모자를 꾹 눌러쓴 초라한 연기자다. 나는 내성 발톱 모양으로 챙을 구부린 그들이 세상의 평화를 아주 조금은 지키고 있다고 믿는다.
일상을 지키다 보면 출근 시간이 같아지고, 객차안에는 익숙한 얼굴이 생긴다. 선호하는 자리가 생기고, 선호하는 손잡이가 있다. 로맨스가 뽐뽐 피어날 만도 하지만, 그 공간에서는 아무도 친해지지 않는다. 각자의 목표를 지키며 평행선만 그어간다. 그 목표는 출근시간에 늦지 않는 것. 혹은 미뤄둔 화장을 완성하는 것. 그 선을 침범 당하는 것은 현대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다.
나는 제일 앞칸에 타는 것을 좋아한다. 그 공간에서는 일상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지하철 기관사가 닫히지 않은 문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내미는 것이 보인다. 공휴일이 아닌데도 픽시 자전거를 싣는 학생, 초대형 유모차를 끌고 오는 맘, 그리고 사지를 절단시킨 사체 훼손범도 첫 칸을 이용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나는 사자성어를 읊으며 천자문을 파는 그를 석봉 할아버지라 불렀다. 석봉 할아버지의 영업도 항상 앞칸에서 시작한다. 미미는 할아버지가 탄 다음역에서 내린다. 그 사이에 석봉 할아버지의 영업 멘트는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나는 미미에게 말했다.
“딱 그렇지 않니. 한석봉이 배운 것은 스파르타식 글쓰기 직업 교육이잖아. 글자쓰는 재주 하나 가지고 궁궐에 간거야. 치밀한 정치게임의 판에 어수룩한 촌놈이 들어가 글자만 잘쓰는거지. 세상 물정 다 안다는 에다드 스타크 아저씨도 큰 코 다쳤는데. 글쓰는 재주만 가지고 어떡하겠어. 지금이야 캘리그래퍼로 존경받으며 소주 이름도 쓰지. 술집 갈 때 마다 공짜술을 마실 수도 있겠어. 그런데 그땐 사람됨이 용렬하다. 행색이 궁하다고 디스를 많이 받았나봐. 한마디로 촌티난다는 거겠지.”
“글자를 잘쓴다는 것만으론 지금도 인정받기 어렵지. 한석봉처럼 수백 년 이름이 전해지는게 쉽나.” 미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글씨가 좋았던 거야. 중국 사신들이 너무 좋아해.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손오공 그림 받아가듯 가보로 모시는 거야. 꼬장꼬장한 성리학자들도 맘에는 안들지만, 중국 사신에게 접대를 할 때면 꼭 부르는 거지.”
“글 상무였네. 그 아저씨.” 그렇게 말하며 미미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 잠깐 생각하는 듯 했다.
그 때 구로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복면을 쓴 괴한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손에는 사제 권총이 들려있었다. 기관차에서는 총성이 들렸고, 지하철문이 닫혔다. 기관사도 제압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 상황을 누가 알까. 다음 객차 승객들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괴한들은 복면을 벗었다. 복면 벗은 괴한들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상관없어 보였다. 고래고래 외국어로 떠들 땐 오랜 시간 정성들여 기른 것이 틀림없는 수염이 좌우로 흔들렸다. 그들의 외모와 외친 소리는 잘 보고 들었지만, 종교적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생략하겠다. 최소한 여혐은 아니었다. 그들의 외침은 지하철 안의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지 않고 죽여 버리겠다는 그런 메시지인 것 같았다. 극동의 복잡한 출근 열차 안에서 처음 저지른 테러가 만족스러워 보였다. 언젠가 벌어질 법한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자리 그 순간에 내가 있었다.
사실 그들이 한국 지하철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기관사가 객차 문을 잠그고 사람들을 가둬서 일어난 대형 사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란 것이었다. 한국 지하철의 가장 쓸만한 기능이 있다면 승객들이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총성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뒷 객차의 승객들이 문을 열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조용히 나오는 것이 좋았을 텐데, 테러범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기차는 정신없이 출발했고 나와 미미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앉아 있으니 소리지르는 괴한들의 모습이 잘 보였다. 차고 있는 조끼에는 다이나마이트같은 원통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내 시선을 따라간 미미는 내 팔을 꽉 움켜 쥐었다. 아팠지만, 아프단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매일같은 출근길. 석봉 할아버지가 천자문을 팔고, 무심한 사람들이 짜증을 감춘 침묵을 지키며 스마트폰에 코박고 지나던 이 출근길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조명이 꺼졌다. 지하철이 서서히 감속되었다.
어둠속에서 무언가 번쩍거리며 다가왔다. 번쩍이는 궤적은 무협지적인 장중함과 UFC적인 경쾌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규칙적인 칼놀림이었다. 석봉 할아버지가 괴한들을 상대로 혼자 싸우고 있었다. 상상도 못한 아름다운 칼놀림이었다. 총성이 모두 멈추고 지하철 전등이 다시 켜지자 나는 실눈으로 풍경을 살펴 보았다. 괴한들은 모두 쓰러져 잠든 듯이 누워 있었다.
오늘 출근은 어쩌나하는 생각이 든 것은, 우리를 실은 앰블란스가 빨간불에 막혔을 때였다. 회사에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장황한 문장이 필요하다.
“출근길에는 앰뷸런스도 별 수 없네.” 미미가 짜증내며 말했다.
“사건이 터지면 멀쩡한 사람들도 앰블란스에 태운다니깐.” 나는 병원에 가서 정신적인 충격에 따른 진단서를 받아야 지각에 대한 면피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을 했다. 석봉의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 칼 질은 한 것은, 글쓰기 공부에 대한 압박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삶에 필요한 지식들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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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인디 게임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테트리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게임입니다.
덧2.
사실, 지하철 잡상인 게임과 한석봉 어머니 칼질하는 게임도 만든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