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몸서리 치며 깬다. 아직 정신이 덜 돌아왔는지 멍한 눈으로 여기저길 둘러본다. 그리고는 그제야 깨달았는지 혼자 묻는다. 여긴 어디지? 물론 당신 혼자 밖에 없는 방안에서는 그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없다. 아직은.
하얀 방, 창문도 없고 문 하나, 책상 하나, 침대 하나, 그리고 그 침대 위 당신. 방안은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이 장소가 너무도 낯설다. 익숙치 않은 정도가 아니고, 그냥 아예 생판 모르는 곳이다.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던 당신은, 잠시 생각에 빠진다. 아무래도 차근차근 과거를 떠올려 이곳이 어딘지 유추해보려는 것이겠지. 그러나 당신은 곧 더욱 당황하고 만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서다. 어제 일도, 그제 일도, 그보다 더 먼 과거들마저 하나도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당신은 제일 무서운 사실만 떠올릴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이 누군질 모르겠다는 사실. 당신은 당황을 넘어 일순 공포마저 느낀다.
잠시 시간은 지나, 간신히 마음을 다 잡은 당신은 일단 주변을 둘러보려는 듯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당신은 일어서지 못한다. 의아함을 느낀 당신은 다시 시도를 하지만, 다리가 도통 움직이질 않는다. 뭐지, 뭘까, 당신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었다.
드러난 다리는, 양쪽 다 두꺼운 깁스로 감싸여 있었다.
그 깁스를 보는 순간 당신은 다시 당황에 빠진다. 이거 왜 이래? 물론 당신은 왜 그런지 알 길이 없다. 결과는 이미 거기 있지만, 과정에 대한 것이 생각나질 않는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당연한 것이겠지.
당신이 한참을 다리와 이 장소에 대한 의문으로 방황하는 사이, 예고도 없이 방문이 열린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당신이 방문을 바라보자, 그녀가 밝은 얼굴로 들어온다. 그리고 당신을 보고 더 활짝 웃는다. 일어났어요? 당신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당신은 쉽사리 답하진 못한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처음 이 방을 둘러보았을때 만큼이나 낯선 기분을 받았기에 그렇다. 당신은 결국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누구세요, 라고.
그녀는 그 말에 잠시 멈칫, 거리다가 묻는다. 제가 누구인지 모르시겠어요? 당신은 대답한다. 지금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걸요, 아무 것도 떠오르질 않아요. 그녀가 재차 묻는다. 아무 것도요? 당신은 대답한다. 아무 것도요.
저런,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안되었다는 듯, 슬픈 어조로 대답한다. 그런 것치고는 밝은 표정이었지만, 당신이 그 사실을 궁금해하기도 전에 그녀는 당신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럴 수도 있겠죠, 큰 사고였으니까요. 그리고는 웃는다. 하지만 걱정마세요, 당신의 아내인 제가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순간 알아듣지 못했던 당신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의 말을 곱씹어보다가 반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