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양성평등 문제가 나오면 이를 성별 간의 대결, 즉 남vs여의 싸움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남성을 압제자, 여성을 피해자로 보는 관점들이죠. 이러한 오해가 쌓이다 보니 하다하다 못해 이젠 메르스 갤러리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혐오행위와 분탕질을 '여성인권 신장을 위한 성전'으로 왜곡하는 사례들까지 보이더군요.
허나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남성은 결코 여성운동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함께 걸어나가야 할 동료라고 보는 쪽이 맞겠죠. 왜냐? 이유는 간단합니다. 페미니즘의 적은 가부장제이고, 가부장제는 남녀 모두를 상처입히기 때문입니다.
가부장제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누리는 권리가 1, 져야 할 의무가 1이라고 칩시다. 남녀가 각각 1의 권리와 1의 의무를 지는 것이 평등사회라면 가부장제는 권리도 의무도 남성에게 몰빵하는 시스템입니다. 남성의 입장에선 권리가 늘어나나 의무 역시 늘어나고, 여성의 입장에선 의무는 적으나 권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결국 한쪽은 과중한 의무에 짓눌리고 한쪽은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죠. 승자요? 그런 거 없습니다.
물론 의무의 과중보다는 권리의 부재가 눈에 띄기 마련이고, 때문에 초기에는 페미니스트들 역시 여성의 박탈된 권리를 되찾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각종 차별조항들이 폐지되고 권익이 상향되면서 깨닫게 된 부분은 남성 역시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 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을 봅시다. 비슷한 경제규모의 국가에 비해 여성의 행복지수가 떨어지죠. 그렇다면 남성의 행복지수는 높을까요? 아닙니다. 남성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불행한 삶을 삽니다. 성인(특히 경제활동을 할 나이의) 남성의 자살율이 천원돌파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지요.
여성이 직업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남성은 직업활동을 강요받습니다. 맞벌이 부부 중 여자가 파트타임인 경우는 있어도 남자가 파트타임인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분명이 두 독립된 개체가 만나서 가정을 꾸렸는데 가정의 생존은 주로 남성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남자가 일하고 여자는 살림한다는 기본적인 도식은 경제난과 함께 깨졌지만 그렇다고 그 짐이 균등하게 나눠지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자가 살림이라도 할 경우? 주변의 시선은 직장생활하는 여자가 받는 시선에 비할 바가 안될 정도로 가혹하죠.
흔히 자기주장이 강한 여자는 눈치를 받는다고들 하죠? 자기주장이 약한 남자 역시 그 못지않게 눈치받습니다. 남자라고 누구나 나서기 좋아하고 적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근력과 체구를 제외한 남녀의 차이는 미세합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게 두려운 남자가 많습니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취미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남자가 되어가지고!'라는 비난이 직빵으로 날아옵니다. 성격이 소심해도, 몸이 약해도, 무대공포증이 있어도 얄짤없습니다. 무조건 앞장서야 하고 나서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나약하다'는 낙인과 함께 사회생활에 있어 심대한 애로사항이 꽃피기 시작합니다.
나약하다. 이게 참 잔인한 말입니다. 개인의 특수성이고 아픔이고 뭐고 간에 싸그리 다 무시해버리죠. 여자가 심적인 고통을 토로하면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줍니다. 남자가 심적 고통을 토로하면 '남자가 뭘 그런 걸 가지고'라는 반응이 50% 이상입니다. 여자가 팔을 부딪혀서 아프다고 하면 대체로 걱정해줍니다. 남자가 아프다고 하면? 비웃지나 않으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가부장제 하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이기에, 더 많은 권리를 누리기에 당연히 더 많은 짐을 지고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남자가 그런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꼼짝없이 소외되고 매도당하며 반푼이 취급을 당하고 살아야합니다. 게다가 더더욱 환장하는 것이 아픔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 자체가 '나약'한 행위로 규정되기에 대부분의 남자들은 남자이기에 겪는 고통들에 대해 어디에 하소연조차 하지 못합니다. 혼자서 삭이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냐?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유치한 논쟁이야말로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요는 모든 인간은 남성과 여성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개인이라는 점입니다. 각자의 고유한 특질을 지니고 있는 개인. 그렇기에 그 특질을 무시하고 한쪽에 몰빵을 줘버리는 가부장제는 양 성 모두에게 폭력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남성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여성 역시 남성의 의무를 분담해야만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을 위해. 나 자신과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남자와 여자라는 틀로부터 해방되어 각자의 개성을 인정받고 살기 위해 말입니다.
남녀가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질투하고, 서로 자신이 더 힘들다며 싸우기 시작하면 무엇 하나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노와 증오를 퍼붓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남혐을 '여혐혐'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 본질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시스템에 가야 할 분노를 내 옆의 또다른 피해자에게 돌리는 행위이며, 결국 피해자 사이의 감정의 골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어차피 가부장제 하에서는 그 어느 쪽도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본래 '적'을 찾는 것은 쉽고,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쪽이 옳은 길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감정 싸움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