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로 대피소로 가본다. 분명 먹을거나 침구류도 구비 되어있다고 하니 한동안 머무르며 재정비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어.(데드 엔딩 루트 / 골을 앞에두고)(1표)
2. 일단 읍내를 좀 둘러볼까... 먹을 것도 좀 충당하고 생존자도 찾아보자. 혼자 걷는길은 너무 외로워.(연명 루트)(5표)
3. 지방치곤 제법 눈에 띄게 큰 병원이 있네? 혹시 모르니까 찾아가 볼까.쓸만한 약들이라도 좀 챙기면... 지금까지야 건강하지만 감기라도 걸리면 힘들어질테니.(배드 엔딩 루트 / 혼자는 너무 외롭잖아요)(2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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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방은 전염이 좀 더뎠던 걸까. 얼마 전 목격한 좀비에 비해 아직 경직도도 낮고 반응도 빠르다. 멀리서 카트렉이 덜컹거리는 소리에도 움찔움찔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달려오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군. 일단 민가 한군데에 짐을 숨겨두고 천천히 걸어 마을 중심지로 이동했다.
여기저기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낡은 건물들이 보이는데 마을의 정 중앙에 딱 한군데 신식 건물이 보인다. 밝은 연두색으로 도장하고 노란색 난간이 애교있게 튀어나와 있는 마을회관이었다. 깨끗하게 관리 됬었던 듯 눈에 띄는 얼룩도 없이 손질 되어있지만 아니나 다를까 가까이 접근할 수록 바람에 실려오는 냄새가 강해진다. 저기가 원인이겠구나. 거리를 두고 빙 돌아보니 건물 뒤편은 아예 제대로 칠해지지도 않았다. 도장 도중에 사태가 터진 듯 하다.
적신 마스크를 코에 눌러두고 재빨리 이탈한다. 그나마 마을에서 상점이랄 만한 곳은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 정도. 그러나 놀랍게도 마트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매대에 빈 공간이 눈에 띈다. 애초에 안 차 있었다기보단 듬성듬성 가져간 듯한...
"사람이 있구나...!"
환희가 차오른다. 찾아다녀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를 상황에 이곳저곳 돌아다니기엔 조금 불안하다. 들어낸 양으로 봤을때 대규모로 옮길 수단이 있는건 아닌 듯하니 필연적으로 가까운 시간 내로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짐을 가져다 마트 계산대 밑에 두고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좀비로 보이면 어쩌지...
새삼 벽에 붙어있는 전신거울을 보자 거지꼴이 따로없다. 세탁을 제대로 못해서 꾀죄죄한 옷에 얼굴은 신경쓴답시고 물티슈로 조금 닦았지만 지저분하긴 매한가지. 잔뜩 구겨지고 여기저기 검댕이 뭍은 저지는 이제 연두색이 아니라 국방색이래도 믿겠다. 일단 갈아입던 옷을 두벌 다 꺼내어 근처에 있는 물탱크로 갔다. 마트에서 세제와 빨랫비누를 꺼내다가 비누로 군데군데 심한 때를 벗기고 세제를 대야에 담은 물에 풀어 헹궈낸 옷을 담궈두었다.
제대로 하는건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 입고있는 것 보단 낫겠지. 속옷은 조금 꺼림칙한 마음에 손빨래만 간단히 해서 창고 안쪽에 널었다. 옷은 반나절 쯤 담궈뒀다가 물기를 짜내고 널었다.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굳이 평소보다 몇배는 공을 들여 몸을 씻고 구석구석 닦아낸다. 아무래도 첫 조우부터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던 거다. 새삼 내 몰골이 창피스럽기도 했고.
일하는 중간에 간단히 소시지 두어개를 먹긴 했지만 요근래 최고로 몸을 움직이니 배가 금새 꺼졌다. 일단 씻는걸 마치고 오랜만에 기름기 있는 게 먹고 싶었다. 구석에 있던 휴대용 가스버너에 사은품 박스에 들어있던 팬을 올리고 햄 통조림 하나를 따서 수저로 대강대강 퍼서 굽는다. 밥이 없는게 아쉬운데... 햇반을 데울수도 없고. 그래, 먹는김에 확실하게 먹자. 냄비를 가져다 쌀 한포대를 뜯어 밥을 짓기로 한다.
캠핑을 할때 굳이 밥까지 해가며 비박한 적은 없어서 냄비밥을 해본건 처음이었는데, 다행히 조금 되긴 해도 제대로 밥이 됬다. 갓 지은 흰 쌀밥에 스팸과 김치를 얹어서 먹으니 턱이 찌잉하고 울릴만큼 맛있다!! 그동안 생라면이니 과자니 하는거에 가끔가다 라면이나 끓여먹는 정도였으니. 예전에 먹었던 것과는 맛이 조금 다른가 싶었지만 밥을 마지막으로 먹은게 지난번 편의점 때였다. 없어봐야 소중함을 아는거다. 배가 빵빵해질 정도로 먹어치우고 대강 설거지를 마치자 해가 진다. 마음이 따사로워지는 기분이야...
곧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기에 세탁이니 식사니 사람같은 일을 했더니 마치 이런 일이 없던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이제 올이 좀 빠지기 시작하는 접이식 칫솔 대신 고급형이라며 칠천원이나 하는 걸 새로 땄다. 과연 비싼값을 하는지 칫솔모가 따갑지도 않고 좋았다. 칫솔질 까지 마치고 나니 더이상 할 일이 없군. 잠들어버리면 오인할 수도 있고 혹시 습격을 당할지도... 일단 구석매대 의자에 앉고선 자리를 뒤적여보다가 선반 아래에 꿍쳐져 있던 낡은 패션잡지를 발견했다. 적어도 발간한지 일년은 넘어보였다.
설렁설렁 페이지를 넘겨보니 녹색 아이섀도에 과장되게 입술을 강조한 립라인이 눈에 띈다. 쿨톤이네 웜톤이네 하는 피부색 표도 보인다. 클라이밍을 시작하면서부터 화장품보다 등반용품, 하이힐보단 등반화를 샀다. 내가 여자이지 않았던 시절의 패션과 화장은 남자만큼도 모른다. 제법 재미있긴 했다.
지금봐도 저게 왜 저만한 가격을 하는지 의문스러운 발음도 잘 안되는 해외 메이커의 블라우스니 구두니 베스트니 하는걸 보고 있자니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다. 마놀로 블라닉의 기묘한 스틸레토, 둥근 앞코가 인상적인 소녀스러운 디자인의 로퍼... 현실성이 지나치게 부족한 형형색색의 옷가지들은 보다가 웃음이 나기도 했다. 군데군데 보니 접힌 페이지들도 꽤 많았다. 어딘가의 립스틱들, 파운데이션, 아이섀도우... 가격에 볼펜똥이 묻어있을 정도로 강조표시를 해뒀지만 몇가지는 고심끝에 포기한 듯 엑스표시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페이지의 한 구석에, "첫째 등록금" 이라고 써있다. 갑작스럽게 콧잔등이 시큰해지더니 아무 생각도 안했는데 눈물샘이 터졌다. 기껏 씻었는데 울면 안되는데..
"엄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한마디가 다시 나를 자극했다. 삐뚤빼뚤 하도 써서 몽톡해진 볼펜 끄트머리로 써놓은 한마디.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또 엄마를 본 것이다. 소리가 크게 날까봐 입으로 손을 막았다가 한 구석에 보이는 휴식실로 들어가 베게에 얼굴를 묻고 소리죽여 울었다. 아, 정말로 엄마 아빠가 보고싶다. 당장 살기 바빠서 일부러라도 이런 생각 안했는데. 새삼 내 몸이 편해지고 씻느니 먹느니 하는 일들이 다 끝나고 나서야 이러다니, 비겁하다. 온전히 내 몸이 만족하고 더 필요한게 사랑뿐이니 이제사 가족생각이 나냐며 내 몸에 타산적이라고 화를 내고 싶었다. 그래도 눈물은 그칠줄을 모르고 쏟아졌다.
깜빡 졸았던 걸까. 눈을 떠보니 해는 아주 져서 사방이 어둡다. 눈이 부었을까 얼굴을 대강 훑고 조심스럽게 휴식실 문을 열었다.
부스럭, 부스럭 하는 소리. 문틈새로 보이는 인기척. 어둠에 눈을 적응시키자 좀비 특유의 이지를 상실한 듯한 삐걱거림과는 명백히 다른 움직임이 보인다. 사람이다. 적어도 둘, 셋은 되보이는 사람들이 바구니에 선반의 물건을 골라담고 있다.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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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품 : 의류 한벌, 양말 두켤레, 식료품 1인기준 3일치, 설탕/소금 0.5kg, 후추 2/3통, 각종 생활용품 약간, 과도 및 포크수저 한자루, 알콜 소독젤(5/9), 비상약품 일습, 각종 부식류 2끼분, 물 1.5L 두통.
1. 조그맣게 소리를 내어 부른다. 지금 아니면 언제 만나게 될지 몰라. 일단 접촉해야해. 어차피 좀비는 소리를 내지 않으니 사람인걸 알거야.
2. 이 밤중에 지금까지 조용하던 휴식실에서 소리가 들리면 놀랠거야. 작업을 끝마치고 나갈때 합류해서 조용히 만나자.
3. 일단 이번 접촉은 포기한다. 내가 있는걸 눈치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에 나서는건 너무 의심스러워. 다음 기회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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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너무 정확하게 맞히셔서 소름...;; 전 제가 쓴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