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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ony_89115
    작성자 : 기뮤식의노예
    추천 : 7
    조회수 : 813
    IP : 1.249.***.249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6/01/25 23:16:34
    http://todayhumor.com/?pony_89115 모바일
    졸렬한 포니 번역)선셋 리셋 - 제4장 : 범생이와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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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장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 범생이와의 조우


    상실감, 혼란감에 빠진 채 선셋은 서서히 잠에서 깼다. 깨기 전 꾼 꿈은.. 아주 심란한 꿈이었다. 오래전 선셋이 바라는 대로 알리콘이 되는 꿈이었는데 보란 듯이 셀레스티아에게 자랑하는 대신, 꿈속의 선셋은 자기가 저지른 모든 잘못을 고백하고 셀레스티아에게 자신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셀레스티아는 오히려 선셋을 친딸처럼 안아주었다. 공주의 이런 사랑은 이퀘스트리아를 떠나기 전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는데 말이다.


    꿈은 꿈이었나보다. 진짜 셀레스티아였다면 선셋을 처벌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래서 선셋은 더욱 가슴이 아팠다.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선셋은 깔아뭉갠 가슴이 아파오기 전에 눈을 질끈 감고 등을 돌려 누웠다. 이제 선셋의 캔틀롯 고등학교에서 가장 큰 가슴(TV에서 보는 여자들 것보단 한참 작긴 했지만.)은 오히려 장애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예전에 막 나갔을 때는 가슴=지위인 인간 사회의 특성을 사용하여 여러 인간 남성을 후리고 마음대로 이용하며 다녔었지만, 이제 선셋은 좋은 사람이 되기로 작정했다. 무슨 몸 파는 창녀가 되려는 게 아니라!


    갑자기 등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등에 돋아난 팔을 깔아뭉개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선셋은 두 눈을 떴다. 이상했다. 여긴 분명 셀레스티아 교장선생님 집의 방은 아니었다. 아니, 이퀘스트리아에서 본 적이 분명 있는 곳이었다.


    잠깐.. 무슨 일이 있는지 다 기억났다. 어제- 파닥!!


    몇 초 후, 바닥으로 추락한 선셋은 신음을 흘리며 비척비척 일어났다. 전처럼 문 열고 들어오는 알리콘은 없는지 방문을 잠시 살폈다. 혼자인 걸 확인한 후 선셋은 활짝 펼친 날개를 돌아보며 상한 곳은 없는지 살피며 투덜거렸다.


    "젠장..내가 이 더럽게 귀찮기만 한 걸 왜 간절히 원했었는지.."


    이제 일어났고 잠도 다 깼지만, 선셋은 오늘 무슨 일을 할지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인간 세상-혹은 셀레스티아 말대로 환각-에서는 기상하자마자 학교에 갈 준비를 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약간 허전했다.


    이퀘스트리아에선 유니콘 학교에서 재학 중일 때엔 셀레스티아가 내려준 지침과 학습 목표에 따라 혼자서 공부해왔지만, 이제 그 지침도 목표도 없었다. 그냥 학교로 걸어 들어간다 한들 생길 리도 없었고 말이다.


    .....이런 썅!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선셋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느긋하게 이퀘스트리아의 다시 찾은 마생을 즐길 여유 따윈 없었다. 당장 씻고 준비를 한 다음,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공부하는 교실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셀레스티아에게 당장 데려가 선셋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럼 트와일라잇은 예정대로 공주가 될 수 있을 테고 선셋은....


    사실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선셋도 몰랐다. 트와일라잇은 분명 스승이 필요할 테고, 선셋은 셀레스티아와 트와일라잇이 잘 시간을 보내게끔 자리를 내어 주면 되...나?


    아이러니했다. 처음에 선셋이 트와일라잇에게 질투와 분노를 느꼈던 것은 트와일라잇이 선셋의 자리를 '뺏었'다고 오해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오히려 다시 비켜줄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역사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이것 말고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셀레스티아가 트와일라잇에게만 집중하게 만들려면, 원래 선셋이 그랬던 것처럼, 차원문을 타고 3년간 잠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 선셋은 점점 불안해져가고 있었다.


    어쨌든 미래에 대한 계획을 계속 짜려면 일단 트와일라잇부터 찾아야 했다.


    좋아.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하자. 옷 입고, 아침 먹고, 커피 한 잔 마시자.


    그리고 트와일라잇을 찾는 거다.


    기운을 차린 선셋은 옷장을 열었다. 격식 차린 자리에 입고 나가는 3개의 가운과, 시내 나들이에 입고 나가는 캐주얼한 드레스 하나가 있었다. 생각보다 옷이 몇 벌 없어서 선셋은 깜짝 놀랐다.


    '아 맞다... 여기는 이퀘스트리아였지. 망할.' 선셋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뺨을 한 대 때렸다. 인간과는 다르게 포니들은 옷을 입지 않았다. 실크와 양모로 된 옷을 입고 하루 종일 다니는 건 포니 식으로 말하자면 '나 돈이 썩어남.'이라고 광고를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니면 '나 중요한 포니요.'라고 유세를 떠는 것이거나..


    선셋은 옷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사실 선셋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아를 표출하려면 뛰어난 마법 실력 하나면 됐던 것이다.


    선셋은 잠시 옷장을 들여다보며 옷을 입고 갈까 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포니 사회에서 알리콘이 꼭 과시용으로 옷을 입어야 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뿔과 날개를 동시에 달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조아려라 미천한 필멸자들아!'라고 외치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선셋은 염동력으로 옷장 문을 잡고 있었다. 뿔에 마력을 집중할 때 웅웅거리를 소리를 다시 듣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 인간 세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닫힌 문을 마법으로 열려다가 면상을 부딪히고 거하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던 때가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인 것 같았다.


    창가를 타고 바람이 불어왔다. 싱그러운 바람은 선셋의 꼬리 아래에 있는.... 어.... 암말들이라면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는 그 부분을 간지럽혔다. 속옷을 입고 다녔던 근 3년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싸늘함이었다.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선셋은 재빨리 비싸디 비싼 외출용 드레스를 마력으로 쥐고 단추를 모두 푼 뒤 바닥에 앉아 허겁지겁 자기 몸을 끼워 넣기 시작했다.


    걸치기는 걸쳤으되 단추가 잠기지 않았다. 아예 옷의 단추와 단추 넣는 곳 끼리 맞물리지도 않았다. 옷소매가 꽉 끼어 엄청 불편했다는 건 말할 수도 없고... 선셋의 꼬리 쪽이 여전히 휑한 걸로 미루어보아 이 옷이 엉덩이도 못 가릴 정도로 작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씨.. 뭐야 이거?"


    작은 옷을 다시 벗느라 생고생을 한 선셋은 그 옷을 바닥에 내려놓고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인간 세상에서 살이라도 더 찐 건가?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무리 보석을 내다 팔거나 학생들에게 돈을 갈취했어도 선셋은 언제나 자금난에 허덕였고, 과식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선셋은 거울 쪽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포니로 돌아온 자신의 모습을 선셋은 잠자코 보게 되었다. 트와일라잇의 왕관을 훔쳐 달아날 때와 비슷하게, 정신없이 일들이 흘러가는 바람에 여유 있게 자기 모습을 살필 겨를 따윈 없었다.


    좀.. 커졌나?


    이런 생각이 들자 선셋은 방에 걸려있는 옛날 사진을 염동력으로 꺼내왔다. 그 사진에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셀레스티아 옆에서 구김이 하나도 없는 파티 가운을 입고 서 있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기억은 많이 바래졌지만, 이건 선셋의 17살생일 파티때 일어난 일이었다는 걸 선셋은 어렵사리 회상해낼 수 있었다.


    선셋에게 있어선 그 땐 특별히 의미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손님들이라고 해 봐야 셀레스티아 공주를 보러 온 정중하디 정중해빠진 손님들뿐이었고.. 하지만 사진에 찍힌 두 포니의 모습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17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이 작은 소동이 끝나서 정말 다행이구나.'


    그 글귀를 보자 선셋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그 때 분명 선셋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 자리를 연 거였지만, 선셋이 만난 포니들은 위에서도 설명했다시피 각기 높은 자리를 한 자리씩 꿰찬 거드름을 피우는 손님뿐이었다. 하긴,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이었나..


    어쨌든 이 사진은 비교용으로 딱 좋을 것 같았다.


    옷장에 외출용 드레스를 넣고 그 때 입었던 가운을 꺼내 몸에 맞춰보며 선셋은 얼굴을 찌푸리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로써 사실은 확고해졌다.


    확실히 몸집이 불었다.


    매우 불었다.


    그것도 단순히 분 것뿐만은 아니었다.


    드레스랑 지금의 선셋의 몸 크기를 비교 해 볼 때, 선셋은 예전보다 아무리 못해도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커졌다. 하지만 가녀리고 호리호리해지는 대신에 제법 탄탄한 몸매를 지니게 되었다.


    공부벌레 유니콘 시절, 그리고 예전 인간 일진 시절에는 꿈도 꿀 수도 없었던 양의 근육이 선셋이 힘을 주자 힘세고 강하게 팽창되었다. 아주 근육질이라고 말하기까진 아직 좀 뭐한 근육이지만, 딱 보기 좋을 만큼 균형 있는 모양세였으며,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힘 만으로만 따지자면 이퀘스트리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일거라고 선셋은 자신할 수 있었다.


    날개를 펴 보았다. 똑같이 크고 또 탄탄했다. 하지만 셀레스티아나 트와일라잇과 비교할 때 알리콘이 이정도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은 정상인 것 같았다. 있다가 캐이댄스의 날개와도 비교를 해봐야겠다고 선셋은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둥짝도 자랐군..


    선셋은 염증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거울에 엉덩이를 내밀고 한 번 흔들어보았다. 엉덩이는 탄력 있게 살짝 출렁거렸다.


    '제길.. 인간 세상에서 달고 있던 가슴이 다 여기로 갔나..'


    선셋은 인상을 쓰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엉덩이를 노려보았다. 보기 흉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고 아주 자연스러운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 정도의 볼륨이라면 거리의 수말들이 넋을 놓고 쳐다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선셋의 키도 꽤 커졌으니.. 무슨 육감적인 슈퍼모델이 지나가는 양 선셋을 훑어보는 거리 포니들의 시선이 벌써부터 느껴져서 선셋은 부담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선셋이 마음이 놓였던 건 셀레스티아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자신의 존재감은 희석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스승님이랑 비슷한 높이로 키가 자랐었다면.. 으...


    이대로 가다가 문틀이란 문틀에 계속 뿔이랑 머리가 걸리고, 작은 포니들을 못 보고 지나가다 발이 걸려 넘어져서 커다란 엉덩이로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심한 지진이라도 일으키는 건 아닐까.. 하고 선셋이 상상하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 선셋은 화들짝 그 생각에서 깨어났다.


    "나가요!"


    선셋은 문까지 달려가 발굽으로 문을 열...려다가 속으로 자신의 멍청함을 또 한 번 호되게 자책한 뒤 뿔에 마력을 집중해 문고리를 열었다. 이번엔 두통도 없었다. 뿔에 마력이 흐르는 이 감각을 다시 찾게 된 것 하나만큼은 끝내줬다.


    문을 열자 그 앞에는 캐이댄스가 있었다. 선셋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캐이댄스를 보았다. 얜 날 먼저 제 발로 찾아오고 그런 얘는 아니었는데.. 하긴, 선셋에게서 '캔틀롯에 사는 공주 치곤' 약간 부족한 마법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친절하게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별로 거리낄 것은 없으려나..


    "어..캐이댄스?" 선셋은 캐이댄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캐이댄스도 잠시 선셋을 멍하게 쳐다보다 주춤주춤 말을 꺼냈다.


    "그런 건 아니고.."


    캐이댄스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지금은 좀 괜찮나 해서. 아참! 아침 먹으러 같이 안 갈래?"


    선셋은 어질러진 방 안을 잠시 돌아보았다. 캐이댄스도 그 안을 슬쩍 들여다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선셋. 옷은 왜 꺼낸 거야?"


    "그게..."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선셋은 캐이댄스를 황급히 방 밖으로 밀어냈다.


    "미안.. 그냥 예전 옷들을 좀 입어보느라-"


    그리고 문을 꽝 닫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입어보지는 못했고, 아! 새로 몇 벌 사야겠네. 아니면 또 한 번 급속 성장할 때까지 잠시 미뤄둬야 하려나?"


    선셋은 급히 정리를 마치고 침실 밖으로 나왔다. 캐이댄스가 영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선셋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


    캐이댄스는 유심히 선셋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이제야 몸집이 불어난 걸 알아챘단 말이야?"


    캐이댄스는 한 쪽 눈매를 매섭게 올리고 추궁을 계속했다.


    "엊그저께만 해도 난 유니콘이던 널 계속 내려 보고 있었잖아. 그래도 몰랐었단 말야?"


    죄책감과 창피함이 선셋의 마음속을 감쌌다. 


    "그...그...그게..."


    오만하기 그지없었던 과거의 선셋은 자기보다 못 한 포니를 콧대를 바짝 드는 캔틀롯식 방식으로 내려다보며 멸시하길 좋아했었다. 주변 포니들의 행동 따윈 깡그리 무시하면서 말이다.


    거기에 더해서 그 때 선셋은 캐이댄스가 눈에만 보여도 재수 없어 하며 만난 기억을 지워버리기에 바빴고, 캐이댄스도 캐이댄스 나름대로 자신을 괴롭히는 선셋의 시야에서 벗어나길 원했으니, 지금 캐이댄스가 의아해한들 그건 캐이댄스의 잘못은 아니었고 오롯이 선셋의 잘못이었다.


    "많은 일을 겪는 바람에 잊어버려서 그런 거구나?"


    캐이댄스의 말에는 진심으로 선셋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캐이댄스라면 그럴 만 했다.


    "이모님이 말해주셨어. 거울에서 엄청난 경험을 하고 왔다고. 그 정도로 엄청난 경험을 하고 왔으면 사소한 건 까먹을 만도 하지."


    선셋은 몸을 움찔거렸다. "잠깐.. 스승님이 너에게도 말해줬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캐이댄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한다면 일단 사과할게. 하지만.."


    캐이댄스의 표정엔 다시 선셋을 염려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이모님은 널 진심으로 걱정하고 계셔. 나한테 네 친구로서 네가 잘못돼지 않도록 잘 돌봐달라는 부탁까지 하셨는걸.. 물론 이모님이 부탁 안 해도 할 거긴 하지만."


    선셋의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는 잘 몰랐지만 말이다. 다른 포니가 시켜서 억지로 친구가 되는 게 가능키나 한 일이던가?


    "고...고마워..."


    깔깔깔 웃으며 캐이댄스는 연회장으로 걸어가는 선셋의 뒤를 따랐다.


    "자 그럼, 말 한 대로 돌봐주기를 시작해 볼까?"


    캐이댄스는 잠시 곰곰이 질문을 생각 중이었다.


    "음.. 거기에서 얼마나 있었던 거야? 이모님이 아주 자세하게 설명은 안 해 주셔서.."


    "그냥 허상이라고만 설명한 줄로 알았더니.."


    선셋은 약간 모르겠다는 투로 말했다. 공주가 캐이댄스에게는 뭘 좀 다르게 말했나? 아무리 은근히 말을 돌리는 데 재간이 있는 스승님이었지만, 이런 건 절대 스승님 스타일이 아니었다. 


    캐이댄스는 어께를 으쓱이며 말했다. "물론 그런 말씀도 하셨지만, 네가 그렇게 진짜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굳이 뭐라 할 이유는 없지."


    "...3년 동안 그 곳에 있었어."


    얼굴을 찌푸리며 선셋은 대답했다. 어쩐지 그 때 셀레스티아와 같은 뉘앙스가 캐이댄스의 말에서 풍겨 나왔던 것이다.


    "흠..."


    캐이댄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너 이제.. 음..20대인가? 뭐 정신 연령으로 치자면 그러겠지? 신체 나이는 전혀 안 먹었겠지만."


    나이 이야기가 나오자 선셋은 짜증 섞인 '끙' 소리를 냈다. 인간의 연령과 적정 학교 학년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었던 나머지 선셋의 원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신입생으로 덜컥 입학해버렸던 게 생각이 났던 것이다.


    "딱 스물 하나야 지금.."


    물론 지금 스물 하나라고 한들 셀레스티아가 음주를 허락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너 거기서 귀여운 인간 남성 많이 만나고 다녔겠다 그럼?" 캐이댄스가 여우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선셋은 발을 헛디뎌 이마를 거의 복도에 깔린 호화스런 카펫 위에 부딪힐 뻔 했다.


    "캐-캐이댄스!!"


    선셋은 거의 고함을 지르며 뒤로 돌아 바보 같은 질문을 한 캐이댄스를 노려보았다. 어제 셀레스티아에게 필요할 때 몸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느꼈던 역겨운 감정이 또 떠올랐던 건 덤이었다.


    "그것들은 포니도 뭣도 아니었다고!"


    실제로 존재했던 일도 아니었.. 하아... 선셋이 겪은 모든 게 다 허상이었다는 셀레스티아의 말을 선셋은 반쯤 부인하고 있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셀레스티아의 말대로 제발 허상이기를 선셋은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만약에 이게 진짜로 일어난 일이었다면.. 으.. 거시기만 달려있으면 누구하고든 자는 헤픈 암말이라는 소리를 선셋은 절대로 듣기 싫었다.


    캐이댄스는 몸을 바짝 움츠렸다. "아.. 기분 상할 이야기였다면 미안.."


    갑자기 캐이댄스가 움츠리는 모습에 선셋은 숨이 턱 막혔다.


    "아..아니.. 괜찮아.. 갑자기 소리 지른 내가 나빴지 뭐.."


    캐이댄스에게 겁을 주어 쫒아버리는 건 이젠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아냐. 내가 좀 무례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 솔직히 말해줄까? 난 오히려 네 그 불같은 성격이랑 열정이 은근히 맘에 들더라? 딱 너답기도 하고 말야."


    분홍색 알리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선셋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것들이야말로 선셋의 가장 큰 결점이 아니던가? "아니 난-"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캐이댄스는 날개를 활짝 펴 선셋의 말을 막았다. 선셋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캐이댄스가 눈에 힘을 팍 주고 선셋을 째려보고 있었다.


    "네가 네 성격대로 행동하는 것 가지고 일일이 사과하지 마. 왜 그래 진짜? 전에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도 아니면서.."


    그 말에 선셋은 몸을 한 번 더 움찔했다.


    "야! 그래도 전에 내가 너한테 한 짓이 있는데 아직도 그런 말이 나와?!"


    그것 외에도 거울 너머에서 벌인 갖은 악행들도 추가해야겠지만, 캐이댄스가 그것까지 아주 잘 알 리는 없었을 테니까.


    "그거야 단지 네가 이모님이랑 둘이서 잘 살아오다, 갑자기 이모님이 어디선가 뚝 떨어진 다른 포니를 총애하다보니, 그 포니가 이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지나 않을까 겁을 먹어서 너도 모르게 저지른 행동일 뿐이지."


    캐이댄스는 오히려 동정하는 눈빛으로 선셋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랑은 가끔 다른 포니로 하여금 정신 나간 짓을 저지르게 만들기도 하거든.. 나도 겪은 일이 있다 보니 그 사실을 일찍 깨닫게 되더라고. 사랑은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야. 사랑을 갈구하면 갈구할수록, 그 포니는 자기 본성과는 반대로 여러 가지 일을 벌이기 십상이지."


    한숨을 쉰 뒤에 캐이댄스는 말을 이었다.


    "난 믿어. 네가 진짜 나쁜 포니라서 날 괴롭힌 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 때 일은 신경 쓰지 마. 너 때문에 절대 큰 상처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화사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랑의 공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니까 성질이 나는 일이 있으면, 마음껏 짜증을 내고 또 소리를 질러도 좋아. 그걸로 해소가 될 일이라면 그래도 괜찮아. 너무 소극적으로 묵혀두려고 하지만 말고. 그러다간 진짜 최악의 형태로 분출이 될 수도 있으니까..."


    선셋은 긴가민가 하는 눈으로 캐이댄스를 바라보았다.


    "난 모르겠다. 네가 과연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물론 진심이야. 네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져 보라구 선셋."


    얼굴을 약간 찌푸리며 선셋은 입을 열었다.


    "뭐 그렇다면야.. 그나저나 아까 네가 한 말 말인데, 사랑이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했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은 틀렸어."


    선셋의 경험 상, 사랑에 관련된 마법들은 그 사용 효과를 예측하기가 어렵고 또 위험했다. 때론 오싹한 결과를 자아내기도 했다. 선셋은 이퀘스트리아가 포니들이 거의 종교 수준으로 추앙하는 도덕적 덕목에 버금가는 수준 그 이상으로 자유 의지를 추앙하는 나라로 발전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안 그랬으면 이런 말도 맘 놓고 못 했겠지.


    "...뭐니 뭐니 해도 제일 강력한 힘은 우정 아니겠어?"


    "방금 내 말에 동의한 거야? 고마워." 캐이댄스는 씨익 웃으며 말을 받았다.


    "어... 이야기 제대로 듣긴 한 거야? 난 우정이랬지 사랑이라곤 한 적 없는데."


    캐이댄스는 이제 입가가 찢어지도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정이 결국 플라토닉한 사랑 아냐? 안 그래?"


    못 당하겠군.. 선셋은 약간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잘났어 정말.. 아침이나 먹으러 가자." 


    선셋은 빠르게 발걸음을 때기 시작했고, 캐이댄스도 선셋을 따라 속력을 올렸다.


    "저.. 선셋? 왜 그나저나 가랑이 사이에 꼬리를 집어넣고 있는 거야?"


    정곡을 찌른 질문에 선셋은 그만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 했다. 선셋은 잠시 자신의 둔부 쪽을 찡그린 표정으로 돌아보다가 곧 캐이댄스를 쳐다보며 답변했다.


    "컬쳐 쇼크 때문이라고 해 두지.."


    --------------------------------------------------------------------------------


    연회장에 막 도착했을 때 선셋은 중대 결심을 했다. 반드시 이퀘스트리아 포니 체형에 맞는 속옷을 개발하고 말겠노라고..


    사실 선셋도 처음 인간으로 변신했을 땐 가끔 속옷을 안 입고 다니기도 했고 또 불편하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노팬티로 청바지를 입고 며칠 다녀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3년간 이게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그 부분을 거의 드러내고 다니는 포니의 문화가 지금 더 적응이 안 되고 불편하기까지 했다. 몇 년 만에 사람.. 아니, 포니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다니.. 세상 일 참 모를 일이었다.


    셀레스티아가 찾아오자 선셋은(비록 이럴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또 한 번 바짝 긴장했다. 다행히 셀레스티아는 오늘 선셋의 즉위식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캐이댄스가 아침을 먹다가 대뜸 한 질문 탓에 즉위식보다 더 껄끄러운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고 말았다. 바로 선셋의 눈으로 관찰한 '인간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셀레스티아는 선셋 개마에게 벌어진 질문을 일절 피하며, 그 '가상 속의' 문명에 대해서만 질문을 던졌다.


    이야기에 따라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흠. 요약해 보자꾸나."


    공주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깔끔히 먹어치우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세계에서는 집이나, 심지어 다들 들고 다니는 작디작은 휴대용 기계를 통해서도 필요한 지식을 단 몇 초 만에 검색할 수 있는 일종의 마법 도서관이 존재한다는 이야긴데.. 근데 이런 훌륭한 기술을 진리를 연구하는데 쓰지 않고, 오히려 성공, 재산 불리기 같은 속세적 야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나, 혹은 비디오 게임을 어떻게 공략하느냐 같은 찰나의 유희를 위한 지식을 검색하는 데에만 낭비한다는 거니?"


    선셋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예. 거기 사는 인간들이 저랑 성격들이 거의 판박이더라고요. 대부분 빠르고 쉬운 성공법이나 권력을 쥐는 법에만 관심을 가지죠. 아이러니하죠? 스승님?"


    "이제 넌 나와 동등한 입장이니 굳이 스승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만.."


    공주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잠시 말꼬리를 흐렸다.


    "...네 좋을 대로 하려무나. 사실 네가 원한다면 날 어머ㄴ...."


    셀레스티아는 잠시 캐이댄스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어흠!.. 흠... 그럼 캐이댄스. 선셋이 아까 해 준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사랑의 공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술을 땠다.


    "그.. 데이팅 웹사이트라고 했던가? *29가지의 기준으로 포니를 판별해 다른 짝이랑 맺어준다고?"

    (참조 : http://www.thefreelibrary.com/TEST+YOUR+RELATIONSHIP%3A+THE+29+dimension+test+that+would+have+saved...-a0127135452)


    미심쩍게 한 쪽 눈매를 세우며 캐이댄스는 계속 말했다.


    "...어떻게 그런 얄팍한 기준으로 로맨스가 성립될 수 있는 거람?"


    그 답변으로 선셋도 한 쪽 눈매를 날카롭게 세웠다.


    "농담해? 지금?"


    사실 인간들의 소위 '관계 형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보다 더 얄팍한 이유로도 성립됐었다. 선셋에게 '성격은 지랄 맞은데 일단 가슴은 큼.' 혹은 '얼굴도 예쁘장한 얘가 대주기는 또 쉽게 대줌.'이라는 소문만으로 좋다고 달라붙는 남자 혹은 여자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외계생명체의 문명을 말해주고 있는데, 고작 신경을 쓴다는 게-"


    "그건 그저 허상 속의 문명일 뿐."


    셀레스티아는 근엄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필시 네가 교훈을 얻을 수 있게끔 거울이 일부러 가상의 부조리한 세계를 보여준 게 분명하다. 그 세계의 종족들은 지식은 풍부했지만, 그걸 올바르게 쓰는 지혜 자체는 부족했었지. 그건 마치-"


    "예전 제 모습과 똑같다는 거죠? ....알아요."


    공주가 설명을 끝마치기도 전에 선셋이 끼어들었다.


    "물론 제가 예전에 제 마법을 힘이나 제 자만심을 충족하는 데에 악용하기는 했죠.. 그 땐 제가 세상 모든 걸 다 가질 만한 자격이 있다고 착각 질이나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알겠어요. 진정한 마법과 진정한 힘은 친절, 관용, 웃음, 의리, 정직에서 온다는 걸요."


    공주는 입을 떡 벌렸고, 선셋은 웃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냈다. 선셋이 공주의 예상치를 뛰어넘어버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은 공주의 모습을 보는 것은 선셋이 예전에 즐기던 놀이 중 하나였다.


    셀레스티아가 정신을 차리고 그런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기 전에 선셋은 빨리 그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자. 전 학교나 가 봐야겠네요. 갑자기 이렇게 된 이상 거기서 서류 정리할게 많을 것 같아서요."


    자리에서 폴짝 뛰어 내려오며 선셋은 말했다.


    "저도 가봐야겠어요 이모님. 식사 맛있었어요."


    캐이댄스도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처.. 천만의 말씀을 케이댄....-잠깐 기다리거라!"


    공주는 이제야 충격에서 헤어 나온 것 같았다.


    "학교에 가겠다고? 섣부른 소릴 하는구나! 알리콘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그러지 말고 푹 쉬도록 해라."


    인간 셀레스티아 교장이 선셋에게 잔소리를 하던 때가 연상되어 선셋은 약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스승님. 전 괜찮다고요! 아 물론 어젠 제가 좀 해롱대긴 했지만, 오늘은 어떤 줄 알아요? 캔틀롯을 한 바퀴 돌고도 땀 한 방울 안 흘릴 수 있을 정도로 완전 멀쩡하다구요!"


    어스 포니의 강력한 마력이 이제 선셋의 몸 안에 흐르게 되었으므로, 선셋의 이 말은 이제 허세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주는 여전히 엄격한 목소리로 선셋을 타일렀다.


    "네 입으로 괜찮다고 말한들, 그게 네가 정녕 괜찮다는 뜻이 되는 것은 아니잖니."


    공주는 약간 누그러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최소한 의사에게 검진이라도 받고 나가거라. 여타 다른 포니들에 비해 네 승천은 이질적인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차후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으니 말이다."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담긴 셀레스티아의 말에 선셋도 자신의 뜻을 약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공주가 권위로 찍어 누르는 거야 무시할 수 있었고, 화를 내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셋은 공주의 걱정을 무시하면서 까지 자기 뜻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알았어요.. 검진인지 뭔지 하죠 뭐.. 어쨌든 학교는 갈 테니까, 그런 줄 알고 계세요. 아셨죠?"


    -----------------------------------------------------------------------------


    3시가 거의 다 되서야 선셋은 유니콘 학교에 올 수 있었다. 


    셀레스티아의 고집에 못 이겨 승낙하긴 했지만, 유니콘, 페가수스, 어스 포니 각기 세 종족의 전문의가 선셋을 이리 저리 건드려가며 검사하는 건 영 익숙해지지 않을 경험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단 모든 분야에서 정상 진단을 받았다는 거였다. 아니, 정상이다 뿐인가? 진찰하는 의사들이 말하길, 선셋만큼 각 종족의 능력에서 정점을 달리는 포니는 여태껏 찾아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거 왕궁 경비병 신체검사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었다!


    이게 다 친구들의 훔쳐온 마법 덕분이었다. 그렇다. 선셋이 훔쳐 온 그 마법들 말이다. 특히 애플잭과 레인보우 대쉬에게서 이어받은 듯한 신체 능력이 두드러졌다. 체력과 근력, 빠른 속도와 튼튼한 날개, 그 둘의 포니일 적 모습은 본적이 없지만, 선셋은 그 둘이 아마 이퀘스트리아에선 각각 어스 포니와 페가수스일거라고 어렵잖게 짐작이 가능했다.


    "우...우..우와 세상에! 저거 진짜 선셋 쉬머 맞아?"


    복도 근처에서 어떤 수말이 친구들과 수군대는 소리에 선셋은 잠깐 그 쪽을 돌아보았다. 삼삼오오 모인 포니들은 선셋이 쳐다보자마자 재빨리 흩어져 도망갔다.


    이상했다. 물론 이퀘스트리아에서도 선셋은 꽤 불량아였긴 했지만 이 정도로 얘들이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악명을 떨친 것은 아니었다. 이건 마치 선셋이 인간 세상에서 학교를 휘어잡았을 때 캔틀롯 고등학교의 학생들의 반응과 비슷하지 않은가..


    "알리콘이 됐어? 아니 왜? 쟤가 뭘 한 게 있다고?"


    다른 곳에서 어떤 암말이 자기 일행에게 하는 말이었다. 선셋이 그 곳을 돌아보자 다들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설마, 셀레스티아의 친자식이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학교 강사중 한 명이 다른 강사에게 속삭이는 말이었다.


    그 다음으로 그들이 보인 반응은 그것보다도 더 최악이었다. 그 강사들이 선셋을 보며 마지못해 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사를 따라 학생들도 서서히 절을 하기 시작했고, 선셋은 얼어붙은 채로 모든 포니들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며칠 전... 아니, 몇 년 전만 해도 선셋은 이런 반응을 즐겼을 것이다. 아니, 이것도 모자라 자신의 발굽에 다들 입을 맞추라고 명령까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선셋은 이 모든 게 오히려 너무나도 불편하고....



    창피했고...



    자격 없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날개를 달고 왔다는 이유로 학교의 유니콘들이 이럴 정도라면...




    -선셋이 지명하자, 보라색 털가죽을 가진 유니콘은 공주에게 가까이 다가와 바닥에 눈을 깔고 사뭇 순종적인 태도로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분부를 내려주세요 선셋 공주님.-




    선셋은 눈을 질끈 감고 트와일라잇의 환영을 지워버렸다. 트와일라잇의 이런 태도 따윈 보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예를 갖추는 포니들을 최대한 안 보려고 노력하며, 선셋은 기억을 뒤져 교무실이 어디 있는지 되짚어 보았다. 그 안까지 들어간 후 선셋은 누가 들어올세라 교무실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어떤 청록색 안경을 낀 유니콘 암말 한필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탁상 뒤의 의자에 앉아 선셋을 쳐다보았다.


    "네. 네. 포니 곤란하게 막 알리콘이 되어 버리더라고요. 참 나.."


    그 암말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선셋은 날개를 펴며 빠르게 그 암말의 말을 막아버렸다. 다행히 이번엔 날개가 생각한대로 잘 움직여주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란 학생을 찾는데 학생 명단을 좀 확인해주세요."


    간단명료한 명령에 그 암말은 잠시 두 눈을 끔뻑거렸다.


    "아... 알았..... 알겠습니다. 공주님!"


    그 암말은 황급히 근처 문서 보관함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보고 있자니 그 포니에게 부담만 더 줄 것 같아, 선셋은 어디 앉아있을 곳을 찾아 교무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이퀘스트리아 최고 명문 학교 치곤 교무실은 꽤 작고 아담했다. 집무실은 약 세 필의 포니가 책상을 놓고 일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고, 출구를 제외한 다른 문은 교장실, 교감실 등 여러 학교 임원들이 일하는 방과 연결된 문이었고, 그 문 옆에는 교장과 면담약속이 있는 포니들이 앉아있을 수 있도록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이를테면 여기에 앉아있는 파란 털가죽과 은색 갈기를 단 묘하게 낮이 익은 망아지와, (선셋이 전에 쓰러트린 바가 있는) 대즐링즈의 사이렌, 아리아 블레이즈와 어쩐지 배색(?)이 같은, 난잡하게 갈기를 묶은 망아지처럼 말이다. 둘 다 잘 쳐줘봐야 10살 터울을 갓 넘긴 망아지들이었다.


    선셋은 그 둘에게로 다가가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문제가 있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교장 선생님처럼 말이다.


    "너희들 여기 무엇 때문에 온 거야?"


    아리아 블레이즈와 같은 머리색 아니 갈기 색을 공유하는 포니가 고개를 휙 쳐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제 옆에 있는 얘가 스냅 교수님의 연금술 교실에 숨어들어가 성적을 막 제 맘대로 고치려고 하는 거 있죠? 제가 막았어요!"


    "웃기네! 그러는 지는 모든 포니들의 성적을 제 맘대로 고치려고 한 주제에!"


    어쩐지 낮이 익은 파란색 망아지는, 어쩐지 귀에 익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모든 포니는 다 평등해야 되는 거야! A나 B나 C, D 같은 걸로 포니를 차별하는 건 결코 옮지 않은 거라구!"


    이렇게 외치는 연분홍색 망아지의 말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제법 한이 서려있는 것 같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파란색 망아지는 분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


    "뭐래? 이 세상에 평등한 게 어딨다고 그래? 결국엔 내가 가장 잘났는데! 두고 봐. 난 전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유니콘이 되고 말 테니까!"


    위대하고 강력한... 문득 누군가가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말이 선셋의 머릿속을 스쳤다. 선셋은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거만하고 싸가지 없는 인간 한 명을 분명 알고 있었다. 


    턱이 떡 벌어지는 것 같았다. 선셋은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겨우 용기를 내 물었다.


    "잠깐.. 너 트릭시야?! 맞지?"


    그 유니콘이 옆에 있는 유니콘보다 고개를 더더욱 당당하게 쳐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봤지? 심지어 공주님도 내 이름을 아시는데! 내가 얼마나 크게 될 유니콘인지 확실히 알겠지?"


    선셋은 여전히 멍하게 망아지 트릭시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셀레스티아 교장의 사례를 생각해볼 때, 거울 반대편의 세계에 다른 생명체의 모습을 한 또 다른 한 필의 포니가 있다는 사실을 선셋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도 거울 저 편과 이퀘스트리아가 완벽하게 평행을 이루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셀레스티아 교장에겐 분명 루나라는 이름의 꽤 씩씩한 성격의 동생이 있었지만, 스승님에게는 동생이 없었으니까..


    아주 잠시 동안, 선셋은 저 망아지를 데려다가 자기가 3년 동안 헛것을 보지 않았다는 증거로 셀레스티아에게 이 망아지를 들이밀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러면 안 될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망아지 납치는 중범죄이다. 둘째. 이번 이유는 좀 복잡했으므로, 선셋도 이 이유를 생각해내는데 약간 머리를 굴려야 했다. 거울 저편의 세계가 진짜라는 사실을 트릭시 하나만으로 증명하기엔 증거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망할.. 오히려 셀레스티아가 선셋이 곁눈질로 본 트릭시라는 망아지의 형상을 이용해 인간 모습으로 형체를 다듬은 환영을 보게 되었노라고 우기면 아직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트릭시가 진짜 동일인물.. 아니 마물이였냐면 그것도 아직 확실치 않았다. 말버릇은 분명 비슷했지만, 3인칭으로 자신을 지칭하고 있지도 않고, 인간 세상에서 만났을 때보다 나이도 한창 어렸다.


    그리고 아리아 블레이즈 닮은 유니콘 망아지.. 사이렌들은 바다에 살던 포니 형태의 괴물들이었지, 절대로 유니콘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사이렌들은 진작 인간 세계로 추방당한지 못해도 900년은 넘었을 것이므로 이것도 기각...


    선셋은 이렇게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가, 누군가가 앞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 생각에서 깨어났다. 그 곳을 보니 회색 털가죽과 검은 갈기를 단 남성 유니콘 하나가 선셋을 경악에 찬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뜨악! 알리콘이다!' 따위의 말을 하기 전에 선셋은 자기가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다.


    "아. 신경 쓰지 마요. 교장선생님."


    선셋은 앞발굽을 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교장 선생 이름이 뭐였더라.. 모르면 뭐 어때.


    "그냥 서류 작업 차 온 거니까, 전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얘들 훈계나 잘 시키세요."


    교장은 고개를 흔들고 잠시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알겠습니다."


    그리고 망아지 두 필을 인상을 쓰며 쳐다보았다.


    "트릭시 루라문. 스타라이트 글리머. 교장실로 들어와라."


    두 망아지는 교장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고, 선셋은 저 망아지들과 나중에 만나볼까도 생각했지만, 선셋은 어린 아이들과는 별로 잘 어울리지 못했다. 오히려 괜스레 다가갔다가 선셋이 저도 모르게 화를 내거나 해서 겁을 줄 소지가 다분했으므로, 선셋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었듯 성격은 좀 같을 수도 있으나, 그게 꼭 동일인물/동일마물 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나 인간 트와일라잇과는 달리 트와일라잇 공주라면 성질 좀 난다고 망아지들에게 마법을 함부로 쓰지는 않을 테지.. 


    "선셋 공주님?"


    선셋의 이름에 따라온 '공주님'이라는 말만 들어도 선셋은 경기를 일으킬 것 같았다. 아직 공주는 아니니 그렇게 부를 필요는 없다고 선셋은 정정해주고 싶었으나... 아직 공주도 아닌 포니에게 학생 개마정보를 순순히 보여줄 리는 없었으므로 선셋은 일단은 그 직위를 미리 이용해먹기로 했다.


    "네."


    상념에 빠져있던 정신을 똑바로 차리며, 선셋은 교무실 직원한테 다가갔다.


    "제가 말한 학생은 찾았어요?"


    트와일라잇과 만나면 먼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지금쯤 나이가... 한... 열다섯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원래 세상에서 트와일라잇과 선셋의 나이 차는 별로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3년 전의 과거니 그만큼 차이가 날지도..


    교무실 직원은 안절부절 쓰고 있던 독서용 안경을 바로잡았다.


    "그...그게 말인데요...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란 이름의 학생은 찾을 수가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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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시간 동안 다시 명단을 확인하고, 학교 기록도 확인해보고, 보라색 털가죽에 우등생인 학생은 모두 확인을 해 보았지만,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위치에 대한 실마리는 일절 찾을 수가 없었다.


    트와일라잇을 찾는 데에 실패한 후, 정말 그 모든 게 환각이었나 하는 의혹이 선셋의 마음속을 감쌌다. 


    혼란스럽고 또 두려웠다. 친구들이랑 나눈 그 모든 우정, 사랑, 모든 게 다 가짜라니... 선셋이 동경하던 포니가 선셋의 환상 속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고, 선셋은 그게 죽도록 싫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선셋은 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선셋은 마음을 좀 달랠 겸, 전에 인간 세상에서 이퀘스트리아에 돌아오면 꼭 하고 싶었던 일 한 가지를 하기로 했다. 바로 캔틀롯 시내 산책이었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거리를 돌아다니며, 예전의 기억을 되살림과 동시에 선셋이 미처 몰랐던 곳을 정처 없이 보고 다녔다. 희한하게도 인간 세상의 캔틀롯과 이퀘스트리아의 캔틀롯은 닮은 구석이라곤 한 군대도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걸어다는 결과... 선셋은 길을 잃은 듯 했다.


    100% 잃어버린 건 아니었다. 캔틀롯 시내에선 어디에서든 태양빛의 후광을 업은 왕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 방향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하지만... 꿀꿀한 기분이 풀릴 때 까진 다시 그 곳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만약 우거지상으로 들어갔다간 캐이댄스와 셀레스티아가 대번에 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선셋을 바라볼 게 뻔하니까.. 물론 캐이댄스의 관심과 걱정은 감당할 순 있었지만, 셀레스티아가 선셋을 걱정해주는 건 진짜.. 여전히 선셋의 심장에 매우 좋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정녕 어디란 말인가.. 별로 화려하지도 않고, 흥미로워 보이는 곳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 동안 자신의 마법 실력만 믿으며, 셀레스티아의 총애를 받고 속물처럼 산 것의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더 나쁜 건, 배도 살살 고파져 왔다는 거다.


    '젠장.. *Yelp도 못 쓰지 여기선.. 최소한 GPS라도 있었으면..'


    (*미국의 전 지역 식당, 숙소 등을 포함한 지리정보, 생활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및 어플리케이션)


    원래 선셋은 더 이상 인간의 기술 없이는 살 수가 없는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에 누군가가 다른 학생들의 치부를 SNS로 까발렸는데 선셋이 대신 누명을 쓰게 된 '미스 익명'사태 덕분에 인간의 기술에 대한 염증이 생긴 이후론 약간 경각심을 가지고 보게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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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선셋은 더 이상 인간의 기술 없이는 살 수가 없는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전에 누군가가 다른 학생들의 치부를 SNS로 까발렸는데 선셋이 대신 누명을 쓰게 된 '미스 익명'사태 덕분에 인간의 기술에 대한 염증이 생긴 이후론 약간 경각심을 가지고 보게 됐지만..

    (*2014 년 크리스마스 특집 코믹스의 내용입니다.)




    다리를 좀 쉬기 위해, 선셋은 평소 인간 때 하던 것처럼 엉덩이부터 먼저 대고 벤치에 앉았다. 뒷다리가 땅에 닿을 때 까지 등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주변을 지나가던 행마들이 선셋을 놀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고, 몇몇은 선셋의 날개에 특히 더 주목하고 있었다.


    선셋은 이게 다 이상하게(포니들 기준으로) 의자에 앉아서 그런 거지, 절대 알리콘이 되서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애써 자신을 설득했다.


    잘 되지 않았지만..


    산책을 해서 트와일라잇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마음에서 덜어낼 수 있었지만, 오히려 더 최악이었다. 트와일라잇의 생각이 빠진 자리엔 답답한 감정만이 그 자리를 채워나갔으니까. 마생의 대부분(인간 세상의 삶을 포함해서)을 캔틀롯에서 살아왔지만, 아직도 여기는 낯설기만 했고, 친구라고 해 봐야, 친구취급하기도 어려운 거대한 포니 한 필과, '어제' 비로소 친해진, 그동안 죽도록 괴롭혔던 분홍색 포니 한 필 뿐이었다.


    캔틀롯에서 보낸 그 모든 시간들이 전부 헛된 시간인 것 같았다.


    -친구를 좀 사귀어보렴, 선셋.


    셀레스티아가 예전에 한 말이 선셋의 뼈에 사무쳐왔다.


    "왜 그 때 스승님 말씀을 안 들어서.." 혼잣말로 선셋은 중얼거렸다.


    물론 귀족들이랑 그 애새끼들의 거드름은 못 봐줄 정도였지만, 캔틀롯의 수많은 포니들이 다 그 모양 그 꼴이라는 건 아니었다. 근처 동물 보호 센터같은 봉사단체에 자원 봉사하러 가는 등 그런 노력을 했더라면, 혹은 공부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선을 좀 돌려보았다면, 선셋을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캔틀롯에도 있었을 텐데..


    "오올~ 애들아 이것좀 봐라?"


    전형적인 잘난 척 하는 마초의 굵은 목소리가 선셋의 귓가를 때렸다. 인간 세상에서 힘겨운 경험을 하며 배운 교훈에 따르면, 저 대사는 보통, 혼자 있는 사람에게 여럿이 뭉친 녀석들이 엉큼한 수작을 부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찔끔찔끔 숨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앙?"


    선셋은 자신의 뒤를 홱 돌아보았다. 껄렁거리기 좋아하는 껄렁패들 대신, 새로운 알리콘의 등장에 신기해하며 선셋을 보는 행마들뿐이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이 행성에서 가장 강력한 알리콘이라는 존재에게 대놓고 추근거릴 정도로 멍청한 포니는 없을 텐데도 말이다.


    "도...돌려줘! 벅!"


    선셋은 소리가 들려온 근처에 있는 후미진 골목을 쳐다보았다. 재킷을 맞춰 입은 세 필의 포니가 아무것도 안 입고 있는 흰 털가죽에 파란 갈기를 단 유니콘 한 필을 둘러싸고 있었다.


    도대체 상의를 갖춰 입을 정신머리를 가진 놈들이 왜 거시기는 안 가리고 나왔...이퀘스트리아였지.. 선셋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뺨을 세차게 한 대 때렸다.


    '벅'이라고 불렸던 금발 갈기에 연보라색의 털가죽을 가진 덩치 큰 어스 포니는 유니콘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보이는 오블리엣 & 오우거라고 적혀진 긴 상자를 앞발굽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상자를 땅바닥에다가 휙 던지더니, 단단한 앞발굽으로 그걸 자근자근 밟아버리곤, 히죽거리며 일당을 돌아본 뒤 이렇게 말했다.


    "어이쿠! 발을 헛디뎠네? 어쩌나 이거?"


    "어..야! 금방 산거란 말야!"


    선셋은 날카롭게 그 3마조를 쳐다보며 인간이었을 때는 신체 구조 때문에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던 분에 찬 콧김을 '푸륵'하고 내뱉었다. 벤치에서 내려와 네 발굽으로 단단히 땅을 디뎠다. 아까까지만 해도 선셋을 좀먹고 있었던 자괴감과 죄책감, 우울함 대신, 불의에 대한 불같은 분노가 선셋을 감쌌다.


    "야. 샤이니."


    벅은 덩치 작은 유니콘 수말을 내려다보며 양 입술을 땠다.


    "전에 약속 하나 했었지? 내 숙제를 대신 해 주고, 그걸 네가 도와줬다는 걸 안 들키게만 하면, 널 가만 놔두겠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거만한 미소를 지르며 벅은 '샤이니'라고 불린 유니콘을 윽박지르고 있었고, 샤이니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주섬주섬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그래서 1교시 전에 숙제해서 갖다 줬잖아!"


    그 때 골목 입구에 들어선 선셋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갑자기 끼어들어 날개를 활짝 펴고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겠지만.. 포니들이 연신 굽실거리기만 하는 건 이제 신물이 난데다가, 연달은 실패에 분풀이할 거리도 필요했으므로, 선셋은 개마적 감정을 담아 저 세 악한을 약간만 손을 봐 주기로 했다.


    "그랬지. 근데 어쩌냐? 새로운 규칙이 하나 더 생겼거든?"


    한편 골목 중앙에선 벅이 샤이니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샤이니는 보드 게임 상자 위에 쓰러졌고, 상자는 아까보다 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몸을 살짝 굽히며 어스포니는 말을 이었다.


    "몇 주 전에 새로 전학 온 알리콘 공주 알고 있지? 걔 내가 찜해놨어. 근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걔랑 너랑 이야기를 다 하고 자빠졌데? 난 말이야.... 내 미래의 여친에게 너 같이 수준 떨어지는 덕후자식이 꼬이는 꼴은 절대 못 보겠거든?"


    선셋의 앞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추잡한 짓거리는 과거에 선셋이 캐이댄스를 괴롭혔던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런 괴롭힘에도 캐이댄스는 선셋을 용서해주었고, 선셋은 그 보답이라기엔 뭣하지만, 저런 양아치가 캐이댄스에게 꼬이기 전에 친구로서 자기가 대신 치워줘야겠다고 작심을 했다.


    그래서 저 세 후레자식 놈들을 물리적으로 약간 교정해주는게 좋겠다고 선셋은 생각했다. 학교 여왕 시절, 선셋은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른 적은 별로 없었지만 그건 그냥 흔하게 쓰지 않았던 것뿐이지, 폭력은 선셋이 꺼려하는 방법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알리콘이 되었다고 저 셋을 맘 놓고 후드려깔 수 있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고, 알리콘 공주가 나타나면 다들 고개부터 조아리는 탓에 대놓고 때리기도 뻘줌해질 게 뻔하므로, 선셋은 정체를 드러내는 대신, 이퀘스트리아에 처음 귀환했을 때 썼던 암갈색 망토 소환 마법으로 날개를 가리고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엔 얼굴을 가리는 후드는 쓰지 않았다.


    "아니 걔한테 꼬이긴 뭐가 꼬였다고 그래? 그냥 이번 주에 내 친구들이 놀러올 때 내 여동생을 봐줄 포니가 필요했을 뿐이라니까?"


    샤이니는 바닥을 구르며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하지만 벅은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네 여동생을 미끼로 캐이댄스를 끌어들이려는 수작 내가 모를 줄 알아?"


    벅은 샤이니의 코를 앞발굽으로 쿡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똑똑히 말해두지. 캐이댄스에게 꼬릴 쳤다간, 내가 네 면상을 칠거다. 아주 세게. 알았냐?"


    딱 끼어들기 좋은 때인 것 같아 선셋은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아까 그 놈이 한 썰렁한 농담보다 더 위트 있게 저 셋을 냉소적으로 비꼬고 싶었지만, 이번엔 그냥 직설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어이. 좋은 말 할 때 걔한테서 떨어져. 쳐 맞기 싫으면."


    세 수말은 샤이니를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일제히 선셋을 쳐다보았다. 다들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하긴, 누굴 탓하랴? 그동안 자기들에게 대놓고 시비를 틀 정도로 배짱 두둑한 포니는 만나본 적도 없었을 텐데..


    그 놈들에겐 불행한 일이지만 선셋은 배짱이 아주 두둑했다.


    하지만 벅은 선셋의 말을 봄 철 포니 귀에 불어오는 동풍마냥 무시했다. 오히려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선셋에게 다가왔다.


    "이봐. 아가씨. 데이트 신청은 - 어이쿠!"


    어스 포니는 과장되게 깜짝 놀란 시늉을 하며 앞발굽의 사정권으로 들어왔다.


    "미안한데, 난 돼지같이 찐 뚱뚱한 암말이랑은 안 놀아. 운동 좀 하고 다시 와. 훠이~"


    뚱뚱하다니... 


    뚱뚱하다니!!!! 


    물론 알리콘으로 변한 뒤 체중이 좀 불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절대 뚱뚱하다고 불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선셋의 코에서 푸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분노에 찬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선셋이 기죽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자 벅은 깜짝 놀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건 근육이라는 거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날개를 활짝 펼치며 일갈을 날린 뒤, 선셋은 벅의 머리에 빠르고 강력한 앞발굽 풀스윙을 날렸다. 날개 때문에 선셋의 망토는 그만 벗겨지고 말았다.


    찰나의 순간에 벅은 선셋의 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어디로 갔는고 하니, 벌써 오른쪽에 있는 건물에 머리부터 처박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기절해 있엇다.


    그놈의 성질 때문에 정체가 드러난 것도 아랑곳 않은 채, 선셋은 눈을 깜빡이며 벅이 날아가 처박힌 곳을 살폈다. 그리고 못 믿겠다는 듯 자신의 앞발굽을 이리저리 살폈다.


    "허.. 내 몸에 흐르는 어스 포니 마력이 이정도로 진했었나.."


    그리고 선셋은 고개를 들어 두 잔당을 쳐다보았다. 발굽을 한번 쾅 하고 구르며 선셋은 그 둘을 불렀다.


    "너희도 날아가고 싶어? 말만 해."


    선셋이 발을 구른 도로는 쩍 하는 소리를 내며 넓게 금이 가 있었다. 애플잭과 핑키 파이가 어스 포니로써 지닌 힘은 얼마나 강력하다는 건지.. 전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아..아뇨! 공주님!" 적색 갈기와 주황 털가죽의 수말이 허겁지겁 말했다.


    "그..그럴 턱이 있을 리가 없지 아..않지..아..아 않겠습니까?" 다른 수말이 말을 더듬으며 허둥지둥 말했다.


    "뭐야? 없지 않지 않겠다라면 결국 날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네?"


    얼굴을 찌푸리며 선셋은 뿔에 마력을 집중해 두 수말과, 여전히 머리 위의 별을 보고 있는 벅을 염동력으로 들어올렸다.


    잠시 동안 선셋은 저 셋의 처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망설였다. 약간의 재산 피해까지 났으니 이 세필이 그 근처 어디선가 뻗어 있어도 경비병들은 그저 힘만 쌘 사내자식들이 뻐기고 다니다가 사고를 쳤거니 하고 가볍게 생각하며 넘어갈 소지가 많...지 않았다. 분명 선셋의 폭력 행위도 정상 참작이 될.... 것 같지는 않았고 말이다.


    젠장.. 그리고 마법을 못 쓰는 어스 포니나 페가수스에게 함부로 마법을 시전하는 것 또한 불법이었고,(어스 포니나 페가수스가 신체 능력으로 유니콘보다 우위를 점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렇다.) 나중에 여러 귀찮은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많았다.


    알리콘도 결국 법 위에 있는 존재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때때로 공익을 위해 국가의 지도자들은 불법에 준하는 행위를 저지르기도 하지 않던가? 특히나 지금처럼 제 힘만 믿고 까부는 악한의 손아귀에서 선량한 약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뭐 그럼 거리낄 건 없겠군..


    "으아아!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끌려나온 무리의 우두머리를 돌아보며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오렌지색 포니가 다급하게 물었다.


    잠시 그 셋을 선셋은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감히 날보고 뚱뚱하다고 했겠다..  한 대 세게 때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문득 영감이 하나 떠올라 선셋은 뒤틀린 웃음을 지었다. 오호. 이거라면 괜찮을 것 같군..


    "왜 이러냐고? 너희들에게 딱 맞는 장소가 하나 생각 나서지!"


    찬란한 청록색 빛과 함께 불량배 세 필은 차원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목적지는 캔틀롯 두엄간이었다. 털에서 똥냄새 빼는 데 진땀 좀 빼 보라지.


    자. 이제 악당들은 처리했겠다. 선셋은 다시 마법으로 창조한 망토를 몸에 감고서 땅에 쓰러져 있는 유니콘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날개가 다시 접히지 않았다. 이런.. 이래서야 친근하게 다가가기도 힘이 들겠는데.. 어쨌든 선셋은 목소리만이라도 상냥하게 해 보려고 노력 정도는 했다.


    "야. 괜찮아?"


    앞발굽을 유니콘에게 뻗으며 선셋은 말을 걸었다.


    "어어어어어...." 여전히 그 유니콘은 쇼크 상태인 것 같았다.


    선셋은 웃음을 터뜨렸다. 얼빠진 유니콘의 표정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귀여워 죽을 것 같았다.


    "천천히 일어나도 돼. 급할 거 없어." 선셋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몇 분 후, 샤이니는 드디어 자신의 앞발굽을 뻗어 선셋의 앞발굽을 잡고 일어났다. 선셋은 혹시나 아까 벅 때처럼 유니콘을 당겨준다면서 힘이 너무 과해 어디로 던져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아주 조심하고 있었다.


    "괜찮아?" 선셋은 다정한 어조로 물었다. 아까 발을 걸려 넘어진 것 밖에는 못 봤으니 별로 다친 곳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포니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얼굴엔 읽어내기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이건 공포와 경악, 그 중간쯤 되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더...더엂?"


    ....아니면 그냥 뇌를 좀 다쳤거나..


    걱정이 된 선셋은 자신의 뿔을 그 수말의 머리 위에 갖다 댔다.


    "잠깐 있어봐."


    뿔로 그 수말의 얼굴을 찌르지 않도록 주의하며 선셋은 말을 이었다.


    "검사 주문을 걸어줄게. 오늘 의사들이 이 주문을 쓰는 걸 정말 질릴 정도로 봐서 외워버릴 정도였으니까."


    검사 결과, 다리 관절과 하악 부위에 약간의 타박상, 맥박이 약간 불안정하게 뛰는 맥박, 엄청난 긴장감 빼곤 딱히 이상 증후는 없었다. 왜 긴장하는지 선셋은 여러 가지 복합적 신경 신호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분석이 끝나자, 선셋은 다 알겠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샤이니라는 수말은 선셋이 3년 동안 수말이랑 만난 적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 선셋의 눈에는 더 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보호 본능을 막 자극하기도 했고 말이다.


    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 전에 선셋은 분석은 그만 두기로 했다. 그 대신 선셋은 정석적인 패턴으로 들어갔다.


    "선셋 쉬머라고 해. 네 이름은?"


    "샤-샤-샤이-샤-샤이닝 아머.."


    몇 번 말을 더듬고 나서야 그 수말은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었다.


    벅 같은 공공외설적인 이름 대신 대체로 무난한 이름이었다. 선셋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다시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가워 샤이닝 아머."


    여전히 짱짱하게 펴진 날개가 영 신경 쓰여 선셋은 찡그린 채 뒤를 돌아보며 마력으로 날개들을 강제로 접었다.


    날개도 해결됐겠다, 선셋은 샤이닝 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이며 말했다.


    "그나저나 다른 포니들처럼 날 보자마자 아이고 공주님 하고 넙죽 절해주지 않아서 고마워."


    샤이닝이 다른 포니들처럼 보자마자 아이고 공주님 하고 넙죽 절하기 전에 선셋은 미리 선수를 쳐 놨다.


    "그놈의 공주란 게 뭔지 원.. 오히려 그런 걸 신경 안 써주는 게 더 좋은데 말야.."


    선셋이 다가오자 샤이닝은 다시 '더어어어엂' 모드로 돌아가 버렸고, 선셋은 샤이닝에게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리고 아까 벅이 짓밟은 상자를 내려 보았다. 분명 '오블리엣 & 오우거'라는 희한한 제목이 써져 있던 상자였는데, 표지를 보니 귀가 무진장 긴, 마법사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포니가 검은 용이랑 싸우는 그림이 찍혀져 있었다.


    약간 호기심이 동해서 선셋은 마력으로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미니어처들과 맵 타일, 캐릭터 시트, 선셋은 인간 세상에서 이것과 같은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던전 & 드래곤 비슷한 건가?"


    선셋이 상자를 열자, 샤이닝은 멍한 상태에서 퍼뜩 깨어났다. "뭐..뭣?"


    "이거 말이야."


    선셋은 부서진 미니어처를 마력으로 복구하며 말을 이었다.


    "그....... 테이블 탑 롤플레잉 게임이라던가 이게.."


    샤이닝의 두 눈이 일순간 크게 뜨였다. "잠깐! 너도 O&O 해?"


    선셋은 가볍게 웃으며 다른 곳을 보며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약간 정도는 알아. 약간만.."


    반은 진실, 반은 거짓이었다. 인간 세상에의 첫 1년 동안, 인간 세상에서 마법을 쓰는 방법을 간절하게 찾다가 우연히 이걸 접하게 되었다. 약간 재밌긴 했었다. 비록 그 땐 가오가 있어서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나저나.. 버젓이 마법을 쓰고 다니는 존재들이 넘치는데다가 심지어 괴물이랑 용들까지 진짜로 돌아다니는 판타지 세상 그 자체에 또 다른 판타지 게임이 있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이거? 어이가 없어서 선셋은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꾹 눌러 참고 그냥 미소만 살짝 지었다. 샤이닝 아머에게 창피를 주긴 싫어서였다. 원래 저런 덕후들은 자존감이 부족한 법이다.


    선셋은 수리 주문으로 벅이 망가트린 상자와 내용물들을 말끔하게 되돌렸고, 휑하게 구멍이 뚫린 건물의 벽도 수리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 아머를 돌아보며 거리 쪽을 가리켰다.


    "아직 성에 돌아가기는 싫고, 오늘 본 포니 중에 네가 제일 흥미로운 포니라서 하는 말인데,  네 집까지 같이 걸어가도 돼?"


    "그...그래."


    샤이닝 아머는 다시 바짝 긴장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흠... 다들 바지를 안 입고 다니니 이런 점은 좋군.'


    선셋은 뒤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길거리로 걸어 나가는 샤이닝 아머의 꼬리 아래 부분을 힐끗 훔쳐보았다. 비록 그의 '검'은 검집 안에 들어가 내용물을 알 순 없었지만, 샤이닝의 뒷다리 부분이 은근히 튼실한 걸 고려해보면... 가능성은 엄청났다.


    샤이닝 아머의 귀여운 뒤태를 감상하며 선셋은 즐거운 기분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곧 선셋의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조화의 원소에서 본 육망성이 방패 안에 그려진 샤이닝 아머의 큐티 마크였다.


    '!!!... 뭐야 이거?!' 선셋은 눈을 비비고 다시 샤이닝 아머의 큐티 마크를 쳐다보았다. 


    선셋은 포니 역사상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된 질문, 즉 큐티 마크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선셋의 의도는 좀 달랐지만..


    "근데.. 음... 큐티 마크는 어떻게 얻게 된 거야?"


    "어?"


    샤이닝은 잠시 자신의 엉덩이 쪽을 돌아보다가 이내 다시 선셋을 보며 대답했다.


    "아. 그거. 전에 연기나는 산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이야긴데, 거기서 갑자기 우리 가족 쪽으로 커다란 바위가 굴러오는 사고가 있었거든? 내가 어쩌다가 강력한 보호막 주문을 시전해서 바위를 막아냈고, 그 때 이 마크가 생긴 거야."


    샤이닝은 얼굴에 홍조를 띄며 말을 이었다.


    "그..그래서 진로를 경비병으로 잡고 공부를 하고 있긴 있는데... 아직도 그 때만 한 보호막은 시전 못 하겠더라. 그게 벌써 5년 전 일인데도 말야."


    선셋은 몇 초 동안 샤이닝 아머의 큐티 마크를 보고 있었다. 저게 진짜 조화의 원소의 문양이라고 한들, 이퀘스트리아의 궁극 무기에 대한 지식을 이런 평범한 유니콘이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조화의 원소에 관해 질문을 해 봤자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았다.


    그 대신 선셋은 샤이닝 아머의 진로 문제에 약간 조언을 해 주기로 했다.


    "아마도 집중력 문제거나, 혹은 마력이 아직 부족해서 그 때 위력대로 보호막을 쓰는 걸 본능적으로 차단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보호막 주문은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주문이거든. 혹시 그 때 바위를 막아내고 기절하지 않았어?"


    샤이닝 아머의 얼굴은 한 층 더 붉어졌다. 먼 산만 보고 있었다. "어..."


    30분간 샤이닝 아머와 함께 걷는 건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샤이닝 아머가 쑥스러움을 감당하고 선셋에게 말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선셋에게 익숙해지자, 샤이닝 아머가 실은 꽤 부드럽고 따뜻한 포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약간 덕스럽고 범생이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선셋에게는 그게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였다. 인간 시절, 선셋이 만나왔던 인기 많은 남자들은 선셋이 마지막으로 사귄 남자친구 같이 여자의 인기를 얻으려고 별 짓 다하는 부류였거나, 혹은 미식축구 선수처럼 터프하게 보이려는 데에만 기를 쓰고 노력하며 정작 골은 텅텅 빈 화상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샤이닝 아머는 달랐다. 입만 열면 자기가 얼마나 멋진지 자랑 질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경비병이 되고 싶은 것도 그냥 멋져 보여서가 아닌, 자신의 적성과 일치한 걸 깨닫고 내린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수줍은 모습 속에 감춰진 따뜻한 내면에도 추가점이 부여되었다.


    샤이닝 아머의 집에 도달하자, 선셋은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다.


    어쩌면 이건 그냥 3년 동안 마음이 끌릴 정도로 매력적인 남성을 못 만나봐서 그랬던 거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건 그냥 선셋이 주도권을 쥐는 관계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선셋은 다른 사람/포니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는 걸 매우 좋아했으니까..


    ...아니면 그냥 샤이닝 아머가 매우 좋은 포니고, 또 자기가 뭐가 되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그 모습에 끌려서였을수도 있겠다.


    제길.. 이유가 무엇이든 선셋은 샤이닝 아머가 좋았다. 아니, 샤이닝 아머가 고팠다!


    "다 왔네.."


    샤이닝 아머의 집은 캔틀롯 동부 주거지역에 자리 잡은 2층짜리 집이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주 아늑해 보이는 곳이었다. 유년시절을 보내기에 딱 좋은 곳이 있다면 바로 저런 곳일까..


    선셋은 예전 자기가 꿈에서나 그리던 가정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멋진 곳인걸!"


    샤이닝의 어께에 몸을 기대며 선셋은 말했다. 이내 황급히 몸을 때긴 했지만 말이다. 고작 몇 분간 만나 이야기했을 뿐이지, 데이트하고 온 건 아니잖아! 아직 그런 사이도 아니고! 정신좀 차려라 좀!


    "고...고마워."


    샤이닝 아머는 안절부절 말을 계속했다.


    "어..그나저나... 그.. 정말로 토요일 날 올 거야?"


    싱긋 미소를 지으며 선셋은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온다고 하면 꼭 오고 마는 포니거든. 캐릭터 하나 짜서 올게."


    그 다음엔 약간 망설이는 투로 선셋은 말을 이어갔다.


    "그..... 같이 게임한다는 네 친구들 말인데.. 내가 처음부터 고레벨 캐릭터 들고 온다고 뭐라고 안 하려나?"


    코웃음을 치며 샤이닝 아머는 대답했다.


    "일단 넌 암말이잖아. 걔네들은 평생 암말이랑 데이트 따윈 해본 적이 없는 포니 군상들이고.. 네가 혈통빨 쩌는 20레벨 알리콘 마법사 캐릭터를 들고 와도 걔넨 어이구 제발 해 주십쇼 할 거다."


    선셋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하.. 뭐.. 알았어. 그때 봐. 캐이댄스에게 알바는 너네 집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 잘 해 놓을게."


    이렇게 말하고 선셋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아직도 선셋의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어두운 면모를 십분 이용해 꼬리를 살짝 올리고 엉덩이를 살랑 살랑 흔들며 샤이닝에게서 멀어졌다.


    "오빠! 밖에서 뭐 해? 들어와! 엄마가 저녁 먹으래!"


    동생으로 추정되는 어린 망아지의 소리가 선셋의 뒤에서 들려왔다.


    부끄러워 죽어가는 모습의 샤이닝 아머의 귀여운 모습이 눈에 선해서 선셋은 뒤를 한번 돌아보고도 싶었지만, 꾹 참고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샤이닝 아머가 우물우물 뭐라고 말 하는 소리가 들려 귀를 그 쪽으로 기울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알았어 트와일리.. 그..금방 갈게!"



    ------------------------------------------------------------------------------------------


    오히려 역사는 점점 바뀌어만 가고..


    자기 친구에게 평등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포니가, 실은 이 사건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선셋은 꿈에도 모를 겁니다.


    작업중.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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