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는 안 되는 산
엄마, 아니 외가는 어느 산과 좋지 않은 인연이 있다는데
외할머니로부터 절대로 그 산으로는 가선 안 된다고 다짐을 하셨다.
"저 산에 가면 안 돼. 절대 안 돼. 가면 못 돌아올 거야"라고.
어느 겨울,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쯤
친척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아빠, 엄마 그리고 나 셋이 장례식에 갔다.
일을 다 보고 돌아갈 때는 깜깜한 밤이었다.
그래서 가는 길에 저녁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고속도로에 있는 우동집에서 따뜻하게 먹고, 차를 타고 길을 계속 갔다.
주변은 암흑에 휩싸였는데, 시간은 9시가 지나 있었다.
한참 차를 달리다가 아빠가 갑자기 "아아아"하고 크게 하품을 했다.
장례식을 돕느라 웬종일 뛰어다니셔서인지 셋 다 지쳐서 아무 말도 없었다.
엄마는 쌔액쌔액 잠자는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창밖에서 가로등 수를 세며 애니메이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문득 보다보니 고속도로에서 내려올 땐 아니었는데, 주변 경관이 고즈넉했다.
주변에 집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가로등도 적었다.
나는 괜히 불안해서 운전하는 아빠에게 "집에 몇 시쯤 도착해?"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안 들리나?하는 생각에 한 번 더
"아빠, 집에 몇 시쯤 도착해?"하고 물었다.
잠시 답해주길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아빠?"
백미러를 통해 아빠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아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니, 아빠가 맞지만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노멘(일본식 가면)같은 얼굴이 이따금 지나치는 가로등 빛을 께름칙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온 몸이 굳어, 백 미러 너머 보이는 아빠 같은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 아빠였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아빠 가면을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빠? 아빠 맞지? 왜 그래?"
내가 아빠 어깨를 치며 점점 소리를 높여갔다.
그래서 엄마가 눈을 떴다.
"왜 그러니?"
그러자 엄마 목소리에 반응하듯 차 속도가 올라갔다.
시골의 구불구불한 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여보, 왜 그래요? 여기 어디에요? 빨리 집에 가요"
아빠는 반응이 없었고, 평소에는 안전운전을 입에 달고 살던 아빠가
차를 엄청난 속도로 몰고 있었다.
지나가는 간판을 보고 엄마는 차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까달았다.
이대로 길을 따라가면 그 산으로 들어가고 만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할머니로부터 가지 말라고 들어왔던 바로 그 산으로.
"여보, 차 세워요!!
여보!! 정신 차려요!!!"
엄마는 아빠의 가슴팍을 잡고 흔들었다.
그래도 아빠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엄마의 필사적인 애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노멘 같은 얼굴로 핸들만 이리저리 꺾었다.
차는 점점 스피드를 높였고, 산길로 들어가려던 길이었다.
주변에는 이제 가로등도 없었고, 차의 헤드라이트만 어둡고 고즈넉한 산길의 잡목들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울며 소리치는 날 눈물을 머금고 보시더니
"요스케, 안전 벨트 매렴. 그리고 엄마 등을 꽉 잡아"
하고 소리치고 심호흡하더니, 사이드 브레이크를 갑자기 당겼다.
차는 덜컹 덜컹 소리를 내더니 엄청나게 흔들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타이어가 땅과 마찰하며 속도가 줄었다.
차는 이리저리 돌다가 결국 반대 차선에 반쯤 튀어나간 상태로 겨우 멈췄다.
아버지는 그래도 무표정하게 악셀을 밟아댔다.
차가 크게 소리를 내며 끼익끼익하고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엄마는 아빠의 팔을 핸들에서 떼내려고 잡았지만
아빠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찰싹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아빠 안경이 날아갔다.
엄마가 뺨을 때렸다.
언제나 온화한 아빠 뒤에서 내조만 하던 엄마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처음 보았다.
뺨을 맞은 게 효과가 있었는지 아빠는 기절한 듯 무너지더니
악셀을 밟던 발에도 힘이 약해졌다.
엄마는 악셀을 밟은 아빠 발을 치우더니 차키를 뺐고, 차는 정지했다.
기도하듯 차키를 양손으로 꽉 쥐더니 엎드려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도 뒷좌석에서 엉엉 울었다.
아빠는 떨군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여보, 왜 울어?"하고 걱정하듯 말했다.
엄마의 울음이 오열로 바뀌며 아빠에게 매달렸다.
아빠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못 하며
"왜 그래? 왜 이러는 거야?"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 했다.
아빠는 그때 졸음 운전으로 사고가 난 줄 알았던 것 같다.
다음 날 엄마가 병원에 계신 할머니께 이 말을 했더니
"무사해서 다행이네"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