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래. 한동안이라도 여기서 조금 쉬자. 이젠 어디를 가도 이런 상황이란 걸 알았잖아. 체념까진 아니지만 다른 어딘가를 찾아야할 필요성도 못느끼겠어.(배드 엔딩/살인마 A의 기습)
2. 이 곳은 너무 폐쇄적이야... 하다못해 도서관이 근처에 있었으면 해. 날짜가 지나간 신문들을 어느정도 보관해뒀을테니 뭐라도 찾아볼 수 있겠지.(엔딩 분기점 1. 진실은?)
3. A라면 제 목에 박힌 열쇠를 뽑아서라도 쫒아올 거야. 그만한 미친자식이라는 걸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지방쪽으로 이동하자. 차를 구해 도망쳐야해.(엔딩 분기점 2. 머나먼 곳으로)(3번 7표, 1-2번 1표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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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분기점 2. 머나먼 곳으로
차를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운좋게도 근처에 있는 관청 사무실을 수색한 결과 업무용 차량의 스페어 키를 얻은 것이다. 피시방에서는 따로 물품은 챙기지 않고 식사만 간단히 하고 나왔다. 지금도 충분 이상으로 무거운 배낭이다. 물을 다시 꽉채울 수 있었던 점은 행운이었다. 아직 수도는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 걸까.
조금 낮은듯한 경차였지만 여자 한몸에 짐 까지 쳐도 100kg이 안되는 무게 정도는 넉넉하게 끌어줄 수 있었다. 혹시나 A의 눈에 띌까 도시를 크게 돌아 아예 지방행 국도에 몸을 실었다. 적어도 도시 인구의 절반 이상인 좀비보다 단 한사람의 살인마가 무서워 도망치는 모양새야 썩 좋진 않았지만...
속력은 그리 크게 낼 수 없었다. 국도에는 몇대 밖에 없던 차량들이 고속도로에는 제법 많이 있었던 까닭이다. 좀비가 되어 차 안에 갖혀있는 사람들, 차를 버리고 도망간건지 그저 길가에 멈춰있는 차들 까지. 아예 막혀있지 않은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기름이 얼마 없었던 차라 가는길에 눈에 띈 주유소에 들렀다. 자동 주유기는 전기가 통하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옆에 있던 오일탱크에서 일일이 퍼올려 넣자 그럭저럭 한동안 달릴 수준은 되었다. 혹시 몰라 여분의 기름을 두 통정도 챙기고 잠시 스트레칭을 한 후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도시 초입을 지나 지방 고속도로로 가자 이제 막힌 차도 거의 사라지고 멀리까지 죽 뻗은 길들 뿐이다. 도로 옆 강가에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하고, 대형 식당이나 간이 휴게소에도 차만 없을 뿐 부서진 곳은 없다. 신기한 기분이다. 명절에 큰집에 올라갈 때는 운전하다 말고 내려 달려가는게 더 빠르다 싶게 막히던 길들인데 막상 이렇게 비어있는 모습을 보니 꼭 거울 속의 세계에 들어온 듯 하다.
멀리서 해가 지고 천천히 황금색 실타래가 태양을 방점삼아 하늘에 비단을 짜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제 곧 해가 질 것이다. 오늘 잠은 차에서 자야할까. 그러나 차에서 밤을, 그것도 고속도로 위에서는 조금 마음에 걸린다. 아니 좀 많이 걸린다. ...일단은 좀 더 이동해보자.
어스름이 지다가 결국 해가 완전히 졌다. 어둠 속에서 라이트는 켰다지만 계속해서 차를 모는 것은 위험했다. 벌써 차량 소음에 이끌린 좀비만 네마리를 치고 뒤에도 적잖게 쫒아오고 있지 않을까.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는 운전 속도를 높이고 차의 시동을 끄지 않고 음악 시디를 틀었다. 다행히 클래식이나 기성가요가 아니라 트롯트가 여러곡 녹음되어 있는 거였다. 재빨리 가방을 들춰매고 좀비가 몰려들기 전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차에게서 멀어졌다.
라이트가 켜진채 문을 열어둔 차 주변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엄청난 숫자의 좀비들이 몰려들었다. 게중에는 군복차림의 좀비들도 꽤 많아 보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마스크를 다시 쓰고 배낭을 몸에 고정한 뒤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도심에서 제법 먼 곳까지 도착한 듯 주변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뿐이었다. 낙석 방지용 철망들로 주욱 감싸인 도로는 요철도 없지만 인기척도 없었다. 아까 구한 스마트 폰으로 음악이라도 들을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이어폰도 딱히 챙기지 않았다. 스피커로 틀었다가는 아닌 밤중에 좀비와 크로스 컨트리를 해야겠지. 키득키득 웃으면서 걷고 있자니 먼 곳에 건물의 형상이 보였다.
민가인가? 일단은 가보자. 구불구불한 코너구간 없이 주욱 펼쳐진 길이었기에 멀리서 위치 자체는 확인 했더라도 가는 길은 생각 이상으로 멀었다. 적게나마 오르막길이었는지 삼십분쯤 후에는 정말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 호흡이 가빠졌다. 더이상은 힘들겠다 싶어 걸음을 멈추고 잠시 도로에 앉았다. 희미하게 빛이 보이는 것 같은데... 물론 전력이 끊겼으니 제대로 광원이 있을리 없지만 조금 기대가 되었다.
호흡을 고르고 천천히 걸어 도착한 곳은 휴게소였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산골 한가운데에 마련된 그 휴게소는 나름대로 편의점이니 식당이니를 갖춰둔 편이었다. 휴게소 정문은 잠긴 상태였지만 뜻밖에 직원숙소와 마주보고 있는 뒤편 후문은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편의점에서 숙소까지 젓가락이나 라면따위가 떨어져있어서 직원들이 급박하게 나가는 와중에도 먹을 것을 챙겨가려고 한 듯 보였다. 휴게소 내부는 그나마 덜 쌀쌀한 편이다.
건물에 들어서서 휴게소 식당가의 식탁에 가방을 올리고 지나치게 어두운 실내에 적응이 안되어 습관적으로 점등 스위치를 누르자, 정말 놀랍게도 불이 켜졌다!! 지하에서 엔진이 구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비상전력 가동망이 있는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일단 편의점으로 가보니 아직 냉장류 음식들도 멀쩡하다! 뜻밖의 행운에 재빨리 직원숙소로 갔다. 불은 꺼뒀다. 정말 예상 밖으로 보일러까지 가동되는 상황이었다.
아마 수도 자체는 연결된 상태에서 비상전력으로 보일러가 가동된 것 같다. 화장실 세면대의 레버를 왼쪽으로 조심스럽게 기울이자 물이 점차로 따스해진다. 맙소사. 맙소사.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따듯한 물로 못씻을줄 알았어요.
따듯한 물로 씻은게 무려 이틀 전. 찬물로나마 몸을 행궈내긴 했지만 사람 마음이 어찌 그걸로 다 차랴. 잽싸게 갈아입을 옷과 속옷을 꺼내두고 수건과 세면용품을 챙겨 직원용 샤워실로 들어갔다. 차디찬 공기가 가득한 욕실에 알몸으로 들어서니 전신에 오소속 소름이 돋는다. 샤워기의 헤드를 쥐고 뜨거운 물을 틀었다. 물소리에 이끌린 좀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접어두었다. 솨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김이 오르는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몸에 따듯한 물을 끼얹었다. 새삼스럽게 몸에서 땀냄새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머리위로 물을 흘려보내고 얼굴을 쓸어올리자 냉기에 트기 직전이었던 피부가 보드랍게 이완되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발목을 감싸고 돌자 눈물이 날 듯한 기분이다. 땟국물이 줄줄 나오는 것을 보고 우선 샴푸를 꺼내 먼지와 땀으로 눅은 머리카락을 훑고 벅벅 문대었다. 머리의 거품을 헹궈내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바디샴푸를 손에 비볐다. 아차, 편의점에서 샤워볼도 챙겨올걸.
후회는 늦었지만 일단 손으로라도 온 몸을 꼼꼼히 씻었다. 따듯한 물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후다닥 샴푸와 몸의 거품을 닦아내고 한참을 더 온몸에 온수를 끼얹었다. 까짓거 안전히 몸 누일 곳 정도만 찾자 싶었는데 이런 곳을 찾을 줄이야... 샤워를 하고 나오자 생각 이상으로 맹렬한 허기가 몸을 덮친다. 신발은 땀에 젖어 다시 신기는 좀 꺼림칙 한 까닭에 들고있던 휴지를 말아넣어 말리기로 하고 새 양말만 신은채 편의점으로 갔다.
전기가 통한다는 사실은, 전자레인지도 된다는 것.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이나 한줄김밥은 어쩔 수 없었지만 레토르트 식품들은 멀쩡하다. 작은 만두 여섯개가 든 봉지 하나를 튿어 돌리고 햇반도 데웠다. 구석에 있던 볶음 김치 하나를 꺼내고 레토르트 미역국은 종이 그릇에 담았다. 찬 휴게소 공기를 가르고 피어오르는 강렬한 향기... 다 먹는데 채 5분은 걸렸을까. 그리 굶은 것도 아닌데 어쩐지 좀 민망했다.
부른 배를 움켜쥐고 가방과 몸을 들어다 직원숙소에 던져 넣었다. 한구석에 곱게 접혀있는 이불을 꺼내 펴고 눕자 몸속으로부터 치솟는 온기가 전신을 감싼다. 행복하다.
내일은 어떻게 해야할까. 새벽에 잠드는 거니 오전이 지날때쯤 깰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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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품 : 의류 세벌, 양말 네켤레, 챙겨나온 식료품 1인기준 3.5일치, 설탕/소금 1kg, 후추 새 것 한통, 각종 생활용품 약간, 실 한타래, 과도 및 포크수저 한자루, 알콜 소독젤(1/9), 비상약품 일습.
1. 휴게소 입구의 철문을 닫고 아무도 없는 척 하자. 이럴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아무래도 사람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어. 이 작은 낙원, 아직 비상발전기가 가동 될 동안엔 혼자서 즐기고 싶어...
2. 문을 열어두고 지나는 사람을 막지 말자. 애초에 이 때가 되도록 사람 한명 보지 못했어. 나도 어지간한 성인남자 한명 정도는 때려눕힐 수 있다구. 혹시 모르잖아. 의사나 기술자와 일행을 만들지도.
3. 내일은 이곳을 떠나자. 물론 따듯한 물, 따듯한 음식 좋지. 하지만 여긴 지방으로 가는 고속도로 한 가운데이고 앞으로 얼마나 가야 다음 마을이나 휴게소가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가능한 한 체력을 회복하되 여기에 묶여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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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난번 선택은 첫번째 엔딩 분기점 이었습니다. 앞으로 A는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