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전] '왕따'가 아니라 '깍두기'를
김제동 ·방송인 ·학교폭력예방 홍보대사
입력 : 2005.04.01 19:04 13'
▲ 김제동/방송인
술 마신 다음날, 설렁탕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실 깍두기를 더 좋아합니다.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타
먹는 사람을 보면 대번에 그 사람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저는 가끔 깍두기였거든요.
제가 자라난 시골 마을에서 꼬마들은 무조건 모여 놀았습니다. 농사일이 바쁠 때는 모를까, 집에 있어봤자
심심하기만 했죠. 게임기도 컴퓨터도, 없거나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또래들
이 다 모이면 그래도 그 수가 만만치 않았기에 놀 때는 편을 가르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런데 편을 짤
때는 종종 문제가 생기곤 했습니다. 인원이 여덟이나 열이면 깔끔하게 나뉘어지련만, 일곱이나 아홉이 되
면 꼭 하나가 남았으니까요.
살구꽃 지고 복사꽃 피던 어느 날, 동네 공터에 우리 아홉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말뚝 박기를 하기로 했
고, 열두 살 열세 살이었던 두식 형과 성칠 형이 각각 대장이 되어, 편을 짜기로 합니다. 말뚝박기는 큰 덩
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두식 형과 성칠 형은, 가위 바위 보를 반복하며, 덩치가 큰 용철이, 근대, 민
석이, 영수 순으로 아이들을 하나씩 뽑아갑니다. 나는 내심 내 이름이 불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래도 내색은 하지 않은 채 신발로 흙을 파며 기다립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병호, 윤식이, 용훈이, 철희가 뽑혀가도록 내 이름은 불리지 않습니다. 하나 남은 나는
깍두기가 됩니다. 그래서 슬펐냐고요? 아닙니다. 서운한 감은 있었지만, 깍두기는 꼭 그렇게 슬픈 위치는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두식 형 편이 공격을 할 때는 전날 발목을 접질린 윤식이를 대신해 말 역할을 합니
다. 덩치는 작아도 몸 하나는 단단했던 나는, 엉덩이가 함지박만한 윤식이의 공격을 잘 막아냄으로써 박수
를 받는 깍두기가 되었지요.
성칠 형 편이 공격을 할 때는 또 어땠고요. 저는 가장 부실해 뵈는 철희 등 위에 날렵하게 다람쥐처럼 날아
올라, 철희를 쓰러뜨리고, 성칠 형 편이 공격에 성공할 수 있는 결정적 수훈을 세웠습니다. 돌아가는 길엔
기분이 좋아 바닥에 놓여 있는 차돌을 뻥뻥 차며 걸어갔습니다.
깍두기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덩치가 작아서, 어려서, 팀을 다 짠 후에 도착해서 등 여러 이유로 정식으로
어느 편에 속할 순 없었지만, 완전히 버려지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양쪽 어느 편이 승리를 해도
같이 기뻐할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을 가진 존재였다는 말입니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고민
은 빠지지 않더군요. 코스모스 꽃잎처럼 얇고 여린, 어린 소녀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표현까지 나오는
것을 들으며, 마음이 어찌나 아팠던지요. 그날 집에 돌아와 라면을 올려놓고 냉장고 문을 열다가, 저는 문
득 깍두기가 얼마나 다정한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와 달라서, 우리보다 약해서, 우리보다 못나서, 우리보
다 늦게 도착해서, 우리 편에 완전히 속하기에 모자람이 있다면, 그 아이를 깍두기로 삼아주었으면 좋겠습
니다. 동치미를 담고 남은 무 조각을 배추김치 사이에 끼워 넣듯 말입니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일본의 혼슈(本州)는 우리 땅이 아니지요. 깍두기는 우리 아이들의 풍습입니다. 왕
따는 우리 아이들의 풍습이 아닙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 왕따 대신 깍두기가 살았으면 좋겠습니
다.
------ 정말 좋은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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