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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를 삽니다.
남자는 뭐든 팔았다. 차를 팔았고, 집을 팔았고, 생활용품을 팔았다. 문제는 남자가 장사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돈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 이었다.
남자는 38살이 될 때까지 아르바이트 한번 하지 않았다. 매우 전형적인 백수, 니트의 삶과 함께 부모님 등골브래이커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매우 만족했다.
어머니는 항상 칼로리가 듬뿍 담긴 음식을 정갈하게 차려 주셨고, 정년퇴직 후에도 경비일을 하는 아버지는 여전히 좋은 물주였다. 일하지 않아도 밥은 맛있었다. 일하지 않아도 갖고 싶은 것은 살 수 있었다. 맛없는 밥이 차려지거나, 피규어구매을 결제하는 카드가 체납으로 끊겼을 때는 고함을 지르며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면 언제나 해결이 되었다. 남자는 17평짜리 임대아파트안의 황제였다.
남자의 폐위는 조금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언제나처럼 똑같이 해가 뜬 아침, 아침식사를 가져오는 어머니의 발길이 없었다. 남자는 새벽까지 온라인 게임에 매진하고 늦잠을 자느라 그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오후 두시 깨어난 남자는 점심식사까지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쓸쓸한 쓴웃음과 함께 야구방망이를 들고 방문을 열었다. 거실 겸, 주방 겸, 식당 겸, 부모님의 방인 공간에는 평소와 다른 물건이 매달려 있었다. 이미 싸늘하게 식고 굳어버린 부모님의 시체였다.
경찰이 발견한 부모님의 유서에는 ‘이제라도 재발 정신을 차려라. 미안하다.’라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남자의 부모님은 남자가 그 지경이 된 것에 자신들의 탓이 큰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심약한 부모가 남자에게 붙어 있는 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날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 가지 몰랐던 것은, 남자는 부모가 그런 모진 결심을 하게 되었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놈이었다는 것이다.
부모 없이 살아가던 남자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당연히 나와야 하는 물이 나오지 않는 순간 남자는 자연법칙 중 하나가 왜곡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전기가 끊어져 컴퓨터를 켤 수 없게 되자 남자는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프리미엄이 붙은 피규어경매에 단련된 남자는 흥정에는 자신있었다. 착각이었다. 중고차 매매상과 중고가구 매매상들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남자를 등쳐먹었지만 남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밀린 수도세와 전기세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몰라 쩔쩔매던 남자는 자기한데 돈을 주면 대신 내주겠다는 옆집 아줌마에게도 돈을 뜯겼다. 아버지의 퇴직금이나 저축은 부모님이 생존하실 때 진즉 증발한 상태였다. 남자는 PC와 블루레이 콜랙션, 피규어 등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어. 순결의 레이나 피키니폼 피규어가 새로 나왔네. 어머 이건 사야해! 그럼 뭘 팔아야 하나?”
집안을 뒤진 남자는 자신이 팔수 있는 것이, 사용하던 칫솔과 이가 빠진 밥공기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팔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리고 무한한 인터넷의 바다 속에서 자신이 팔 수 있는 것을 찾아냈다.
‘아이디어를 삽니다.’
‘삽니다’를 필사적으로 검색하던 남자는, 누가 봐도 수상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어떤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형체가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 특히 좋았다. 남자는 순식간에 회원가입을 하고 아이디어판매 신청서를 작성해서 전송했다. 신청서를 보내고 20분이 지나자 아이디어의 매입자가 남자의 아파트를 찾아왔다.
“저기…….”
“잠시만요.”
매입자는 정갈한 옷차림의 여자였다. 매입자는 초인종이 울려 남자가 문을 열자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와 남자를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남자의 머리위에 이상한 뚜껑을 씌워 놓고, 그 뚜껑과 연결된 테블릿PC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살짝 움츠러든 남자는 매입자의 눈치를 보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매입자는 번번이 말을 막았다. 질식할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매입자가 말했다.
“아이디어의 퀄리티는 나쁘지 않군요. 푹 빠져 살던 애니와 게임의 경력이 조금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키워진 상상력은 불순물도 많은 편이거든요. 아이디어구슬 하나에 48,500원 드리겠습니다. 계약서에 사인하시죠.”
남자는 매입자가 내미는 서류에 그만 반사적으로 서명했다. 어라, 잠깐? 남자가 자신의 당혹감을 말로 표현하기도 전에 매입자는 깔때기처럼 생긴 괴상한 기계장치를 꺼내 들더니 깔때기의 넓은 부분을 남자의 이마에 붙였다.
“저기…….”
“잠시만요.”
깔때기가 잠시 번쩍거렸다. 그리고는 밖으로 노출된 깔때기의 좁은 부분에서 작은 구슬이 하나 흘러 나왔다. 매입자는 그 구슬을 받아 작은 케이스에 조심스럽게 보관 했다.
“저기…….”
“당신의 아이디어구슬은 개당 48,500원입니다. 더 파시겠어요? 아니면 여기서 그만 두시겠어요?”
매입자가 가방에서 지폐뭉치를 꺼내며 물었다. 뭔가 설명을 요구하려던 남자는 그 지폐뭉치를 보고 그만 반사적으로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최대한 많이 팔고 싶은데요.”
깔때기가 계속 번쩍 거렸다. 그리고 남자의 머리는 28개의 구슬을 토했다.
“아이디어구슬 28개. 개당 48,500원. 총 1,358,000원. 제세공과금 10%제하고 1,222,200원입니다.”
“저기…….”
“제세공과금 공제는 그쪽이 서명한 계약서에도 나와 있는 겁니다. 잘 읽어보셨어야죠.”
“이런 젠장! 그게 아니라구!”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매입자는 별 표정의 변화 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 머리에서 뽑은 거 그거 뭐야?”
“아이디어구슬입니다. 자 여기 돈. 그리고 여기 영수증에 서명.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매입자는 돈뭉치를 내밀고 영수증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만져 보는 두꺼운 돈뭉치에 남자는 또다시 혼란에 빠졌고, 영수증에 서명했다. 남자의 정상적인 의식은 매입자가 아파트 밖으로 나가 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남자는 헐레벌떡 매입자를 뒤쫓았다. 하지만 벌써 매입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지폐뭉치를 들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남자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강철의 레이나 피규어 말고, 신작 블루레이를 살까.’
그리고 몇 달 후 만화왕국이라 불리는 모 국가에서 중견 만화가의 신작연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히트작이 되었다. 고작 두 권의 단행본이 나온 상태에서 벌써 드OO볼, 원O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의 대열에 올라섰다. 남자는 그 작품이 자신의 나라에 정식발매 하기 전부터 그 만화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작품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남자는 그 작품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시험 삼아 다음 호가 나오기 전, 만화의 내용과 대사를 먼저 정리 해 보았는데, 거의 70%가까이 자신의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공전절후의 히트를 친 그 작품의 내용은 남자가 평소 꿈꾸던 영웅의 이야기로, 자신이 초능력자 영웅이 된다면 하고 평소 빠져 지내던 망상을 기본으로 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였다.
‘누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본 거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이디어 판매.
남자는 분노했다. 지금 그 작품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일반인은 차마 상상도 못할 규모의 것이다. 그러한 콘텐츠의 원작자인 자신은 고작 푼돈을 받고 떨어졌다는 것에 남자는 심하게 분노했다. 아이디어를 팔았던 그 웹사이트에는 연락처가 없었다. 항의글을 남길 게시판도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판다는 신청서를 다시 작성해서 전송했다. 매입자가 찾아오면 목을 졸라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의도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이번에 찾아온 매입자는 전에 왔던 호리호리한 여자가 아니었다. 남자가 세 명이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할 정도의 건장한 남성이었다.
“잠시만요. 음, 이제 쓸만한 아이디어는 거의 없군요. 아이디어구슬 개당 2,000원 드리겠습니다. 고작해야 4개 정도 나오면 끝일 것 같은데, 추가매입계약서에 사인하시겠습니까?”
매입자의 우람한 팔뚝에 ‘저기’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던 남자는 우물쭈물하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구슬 4개를 팔고 7,200원을 받았다. 이대로 없던 일이 되는 건가? 안 돼! 매입자가 구슬을 챙기고 일어서는 순간 남자는 인생 최고의 용기를 내었다.
“저기요! 저작권에 관련해서 문의가 있는데요!”
“아이디어구슬의 저작권은 전매(專賣)입니다. 계약서에 명기되어있습니다. 그 만화에 대한 권리는 조금도 주장 하실 수 없습니다.”
남자는 절망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희망을 찾았다. 그 엄청난 작품의 원작자는 자신이다. 남자에게는 ‘재능’이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남자는 두문불출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더 뛰어난 이야기를 만들어서 갑부가 되겠다는 야망에 불타올랐다.
당연히 경제적인 사정은 더욱더 곤두박질 쳤다. 놀랍게도 남자는 피규어콜렉션을 팔기 시작했다.
‘한방만 터트리면 돼. 그러면 얼마든지 다시 되찾을 수 있어.’
남자는 거의 정신이 나간 듯이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고 정리했다.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잡혔다고 생각이 들자 그 이야기를 들고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어떤 인맥도 연줄도 없는, 마흔을 바라보는 아저씨의 이야기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대박 작가가 되어 갑부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남자는 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에만 매달렸다. 결국 남자는 의식주 모두를 잃었다.
굶주리고 병든 몸을 지하철 지하보도에 던진 남자는 자신의 원고뭉치만을 꼭 끌어안고 언제나 하던 황홀한 망상에 빠졌다. 어쩌면 다시는 몸을 일으킬 수 없는 치명적인 망상이었다.
곧 생명의 끈이 끊어질 것 같은 남자에게 정갈한 차림의 여자가 다가와, 남자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아이디어를 삽니다. 아이디어구슬 개당 80,000원 드리지요. 계약서에 사인하시겠어요?”
출처 | http://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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