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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계인을 만났다.
‘나는 외계인이야.’ 그녀가 건넨 첫 마디는 그랬다. 어둡고 외진 곳이었고, 누구하나 지나지 않았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미.친.놈’이었으니까. 품 안엔 벌써 아홉명의 피를 머금은 칼이 있고, 나는 숙련된 도살자였다.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내게 유일한 유희가 알아서 찾아온 것이다. 헛소리 따윈 잊고, 그냥 가볍게 즐기면 될 일 이었다. 겉옷을 벗겨 팔을 뒤로 돌려 묶고, 속옷으로 안면을 가렸다. 냉랭한 두 번의 정사(情事), 풀 섶에 조금 튀었지만 문제는 없다. 비가 오고 있으니까. 알량한 지문 따위 단번에 쓸어낼 거친 폭우다. 여느 때와 같은 뒤처리, 목을 조르다, 가슴을 아홉 번 정도 난도질 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결말은 뻔하지만 과정이 주는 스릴은 여느 영화 못지않다.
시체를 유기한 후, 산길을 따라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와 이동한다. 그야말로 간단했다. 오히려 너무 쉬워 아쉬울 정도였다. 악을 쓰지도 노여워하지도 않는 걸 보니 그 여자도 나처럼 ‘별종’인가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다시 날 찾았다.
그것도 똑같은 모습으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나 외계인이라니까?’ 그녀가 내게 건넨 두 번째 말,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역시나 어둡고 외진 곳이었고, 누구하나 지나지 않았다. 나는 내 두 눈과 귀를 의심하여 몇 번이나 비비고 후벼 팠지만, 명확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쌍둥이일까?’ 유치한 의문을 가지기엔 이 여자, 너무도 태연했다.
결국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조용히 따져 물었다.
“진짜 외계인이야?”
“보고도 몰라?”
“생긴 게 똑같잖아. 촉수도 없고... E.T처럼도 안 생겼어!”
“모형 판매를 위한 영화사의 수작을 믿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여기 또 왔잖아. 그보다 명확한 게 있을까?”
그녀는 당차고 또한 평온해 보였다. 이제껏 내가 죽여 온 여타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울부짖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내 삶의 유일한 즐거움조차 시들하게 만드는 고약한 태도였다. 낙담한 나는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그런데 하필 왜 날 찾았어?”
“그럼 NASA라도 찾아 갈까? 아니면 국방부?”
“그것도 좋겠지... 순간이동 기술이라도 알려주면 내가 구태여 알리바이를 만들 필요도 없을 테니까!”
“어렵진 않아. 이해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지만”
“꽤나 쉽게 말하네. 내가 물은 거나 대답해. 왜 날 찾았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은 매우 궁금했다. 으슥한 곳을 찾는 것, 혼자 있는 사람을 찾는 것, 목격자가 없는 지를 확인 하는 것, 증거를 없애고 사라지는 것, 만약을 대비해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 일련의 행동들은 늘 그 높은 위험도만큼이나 나를 만족시켜 왔다. 하지만, 눈앞의 이 여자가 진짜 ‘외계인’이 맞다면, 알량한 취미의 우선순위 정도는 조금 미뤄도 좋을 것이다.
“궁금했어”
“뭐가?”
“왜 죽이는지”
“겨우?”
“우리로선 꽤나 난해한 일이야.”
“외계인도 퍽이나 할 일이 없나보구나?”
나는 실망스런 질문에 할 말을 잃었지만, 그녀는 그제야 나에 대한 호기심이 치미는 듯 바짝 다가와 열변을 토했다.
“이건 꽤나 중요한 문제야. 왜 지구인들은 동족을 죽이는가!”
“너희는 동족을 죽이지 않아?”
“당연히”
“절대로?”
“결코!”
“그래서, 동족을 죽이는 내가 궁금했다?”
“먹거나, 생존을 위한 이유가 아니니까. 그건 아주 특수한 경우라 할 수 있지.”
“재밌네. 나처럼 무미건조한 인간이 ‘특별’하다? 나쁘지 않네.”
웃었다. 얼마만의 일이었을까? ‘특별하다.’ 대게의 내가 들어온 단어는 ‘특이하다.’였다.
어린 시절, 기르던 개가 닭 뼈를 삼켜 ‘컥컥’거렸던 적이 있었다. 난 급히 녀석을 마당으로 데리고 나갔다. 도움을 주려는 아이의 마음이었다. 나는 곧장 TV시리즈에서 본 근엄한 의사로 분해 메스대신 식칼을 손에 들었다. ‘낑낑’대는 녀석의 입에 걸레를 물리고, 버둥대는 몸뚱이를 묶은 후 갈라냈다. ‘뭉클’ 핏물이 쏟아졌다. 옷을 더럽힌 일은 아쉬웠지만, 난 나의 첫 번째 집도(執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커다란 닭 뼈가 척출됐고, 개는 더 이상 ‘끙끙’거리지 않았다. ‘꺄악!’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내가 바란 것은 ‘가벼운 칭찬’ 그것뿐이었다. ‘별난 아이’ ‘무서운 애’ 엄마의 부탁으로 이뤄진 담임교사의 특별상담은 당시로선 큰 비밀이 아니었다. 선생님들끼리의 수다는 곧 나에 대한 다양한 수식어들을 파생시켰고, 그것은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말이다.
“알았으면 이제 들려줘. 이유 말이야!”
“이유? 뭐 이유랄 게 있을까? 그냥 좋을 뿐이야.”
“어떤 점이?”
“아무도 못 하니까.”
“아무도 못한다? 약간 어려운 데?”
“더 쉽게 말하면, 자아를 찾는 달까? 존재의 이유, 이게 더 어려운가?”
“아니, 흥미로워”
“굉장히 어려운 일, 아무도 못 하는 일,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나! 요지는 그거야!”
“일종의 자아실현인거네?”
“비슷하다 할 수 있지. TV에도 신문에도, 온통 내 얘기뿐이야. 어설픈 취미와는 비교할 수 없지.”
“잡힐 거라는 두려움은 없어?”
“일단은... 대부분 내 그림자도 밟지 못한 멍청이들뿐이니까. 어제도 봤어”
“뭘?”
“유력한 용의자를 체포해 심문중이라는 기사.”
“다른 사람을 너로 착각한 거네?”
“항상 그런 식이야. 난 저 멀리서 지켜보고, 그들은 헛발질을 하지. 그건 또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고.”
“그렇구나. 고마워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그녀는 그제야 조금은 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즈음 나는 약간의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어찌됐든 외계인이란 말은 이곳이 그녀의 집이 아님을 뜻했고,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취미의 우선순위까지 밀어둔 마당에 유행가 가사마냥 ‘웃으며 안녕 하는’ 그런 사이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넌 왜 그걸 묻지?”
“말했잖아. 궁금했다고”
“아니! 넌 분명히 꽤나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어.”
“내가 그랬나?”
“분명해.”
“할 수 없네. 털어 놓을 수 밖에...”
“뭔가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
“비슷해”
“비슷하다? 좋아 말해봐.”
“에일리언이란 영화 봤어?”
“응, 몇 년 전에 꽤 흥행했던 영화잖아.”
“거기서 에일리언이 인간에게 어떻게 하지?”
“그거야... 알을 까지, 인간을 숙주 삼아. 너 설마?”
“그래 비슷해. 고백할게, 인간은 우리의 숙주야 너희 모두는 우리의 알을 품고 있지”
“뭐?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어디? 대체 그 알이란 건 어디 있지?”
그녀의 말에 난 몸을 훑었다. ‘알’ ‘숙주’ 죽고 사는 일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내 안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약간은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찾을 필요 없어. 알은 바로 너니까”
“나?”
“그래 너”
“내가 어떻게 알이란 거지?”
“몸은 껍데기고 진짜는 영혼이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너 지금 내가 바로 그 알이고, 이 몸은 숙주다?”
“맞아. 인간의 육신을 빌어 우리 외계인들이 잠시 머무는 거야. 알이 성숙해져 유체를 탈피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보통 60년에서 90년, 숙주가 붕괴되면 모성(母性)의 별로 돌아가는 거지!”
“이걸 믿어야 하나?”
“그건 네 자유야. 어차피 때가 되면 다 알게 돼. 지루한 삶은 그저 나비가 되기 위한 번데기의 나날이란 걸, 껍질을 깨고 나오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되지.”
“그럼 너도 결국 인간이었단 얘기잖아!”
“맞아. 인간이었지. 너한테 죽은...”
“그럼 왜 나한테 물었지? 왜 동족을 죽이냐! 너도 인간이었으니 그런 질문을 할 필요는 없었잖아!”
“가끔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 본 적 있어?”
“물론”
“그들은 왜 귀신이 됐을까?”
“글세...”
“기억을 지우지 못해서야.”
“기억을 지워?”
“응, 육신이 붕괴되면 그 때의 기억은 모두 지워져. 지난 생에 대한 집착이 남으면 모성(母星)으로 가지 못해. 그걸 막기 위해 기억은 육신의 소멸과 함께 지워져.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지.”
“그러니까! 귀신들이 그 예외다?”
“그래... 원한이 깊거나 억울하게 죽거나, 보통 그런 사람들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고들 하잖아. 모성으로 돌아가 무한한 삶을 누려야 하지만 그 집념이 기억을 남긴 거야. 돌아가길 거부한 거지. 물론 종종 스스로 그 기억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긴 해. 하지만 그리 많은 건 아냐. 매우 희귀한 케이스라 할 수 있지.”
“그래서 나한테 왜 동족을 죽이냐고 물었다?”
“그래! 유충이 성숙해지기 위해선 일정한 숙성기가 필요해! 아까도 말했지만 어림잡아 40년, 짧아도 30년은 필요하지. 그 전에 죽어버리면 모성으로 돌아갈 추진력을 잃고 말아. 미아가 되는 거지. 두둥실 떠올라 저 위로 날아가지만 어느 한 점에서 힘을 잃고 끝없이 부유해. 우주엔 그런 길 잃은 영혼들이 그득하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그래서 나 같은 부류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재밌네... 그럼 난 어때? 충분히 성숙한 건가?”
“100% 확신할 순 없지만, 너 정도면 모성으로 돌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이네. 하지만 충분히 성숙한 후 오길 바래!”
“왜지?”
“모성으로 돌아와서도 동족을 죽이면 안 되니까. 풋 농담이야. 어떤 집념이나 해결하지 못한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네 기억도 지워 질 테니.”
“만약 내게도 해결하지 못한 불만이나 원망, 집념이 있다면?”
“그럼 너도 기억을 유지한 채 영원히 이 별에 남겠지. 모성으로 돌아가는 건 본능적 선택이니까! 본능을 억누를 의지가 있다면 남을 거야. 실제로도 그런 예가 있다고 들었어!”
“그럼 하나만 더 물을게. 기억을 유지하면, 너와 같은 성체(成體)가 되면... 난 또 같은 자들을 죽일까? 너와 같은 성체 말이야!”
“그건 대답하지 않겠어!”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Yes 와 No 둘 중 무어냐 묻는다면 Yes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확신했다. 모성의 별에 나와 같은 자가 없는 이유는 하나다.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이곳에서 지워지지 않은 기억으로 계속... 취미생활을 향유한 것이다.
“나 갑자기 가보고 싶어졌어.”
“어딜?”
“모성에...”
“정말?”
“진심이야.”
거짓말이었다. 나는 이곳에 남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취미를 거듭할 것이다. 손 끝을 짜릿하게 하는 이 스릴, 어찌 포기할 수 있을까? 다만 난 보다 완벽한 형태로의 변이(變異)를 원했다. 죽음, 보다 완벽한 죽음, 그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농담처럼 보여? 마음이 급해. 어떻게 하면 되지?”
“방법은 쉬워,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죽어라?”
“응”
“이렇게 말인가?”
쉬운 일이었다. 수도 없이 했고, 실수는 한 번도 없었다. 다만 그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목을 그었다. 뭉클대며 피가 솟구치고 숨이 막혀왔다. 내 수술의 첫 집도대상이었던 그 개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고통스럽다.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바람소리만 새어나올 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남은 힘을 모아 정신을 집중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 곳에 남겠다.’ 명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죽음은 끝났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한결 가벼워진 정신의 유체(有體)가 낡고 무거운 몸뚱이를 벗어던지며 지면을 박찼다. 날아올랐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그렇게 나는 완벽히 자유로워졌다. 모두 나의 집념 덕분이었다. 보다 완벽한 살인(殺人)의 미학(美學)을 원했던 나의 소망대로였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대지를 박차고 올라 저 먼 우주의 한 점으로 날아가고 팠지만, 난 멈춰 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돌아가지 않는다.’
‘난 여기에 머문다.’
생각의 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두둥실 떠올랐던 몸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나직한 착지, 흠뻑 젖은 지면 위에 두 다리가 닿았다. 더는 떠오르지 않을 마지막 착륙이었다. 비상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으나 낮은 곳의 저열한 욕망은 불타올랐다. 난 소리쳤다.
“이제 더 이상 거짓 껍데기가 아닌 진짜를 죽이리라.”
“모든 것이 나의 뜻 대로다!”
그때 잠시 잊고 있었던 존재가 말했다. 그녀였다.
“거봐요. 이러면 죽을 거라고 했잖아요.”
아홉 개의 빛이 보였다. 익히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잊었다. 그래... 그들도 떠나지 않았겠구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곧 종료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범인은 오리무중입니다. 지금이라도 범인의 신상에 대해 알고 계시거나, 중요한 사건의 단서를 알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제보를 기다리겠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다음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다. 아홉 명의 아니 열 명의 그녀들과 함께,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그것뿐이다. 유체의 힘은 숙성된 기간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 남녀의 차별이 없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해한 자는 그 고통을 영원히 감내해야 한다는 것.
그래... 나는 여기에 있다.
너희들의 곁, 지옥에...
<끝>
코멘트
봉신당 연재중에 떠오른 단편을 하나 올려 봅니다. 맨프롬어스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는데,
제 주제엔 과도한 욕심이었나 싶습니다.
요즘 공게의 르네상스라는데, 별 도움은 못 되겠지만 졸작이나마 미력한 힘을 보태봅니다.
지적을 많이 받아 삽화는 넣지 않았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출처 | 나 미스공 괴담공작소 - http://blog.daum.net/ozthewonder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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