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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맨
“내가 더 멀리 뛸 수 있어!”
아이는 이제 고작 8살이었지만 남자의 자존심과 오기가 발동하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는 없다. 겨우 학교 운동장에서의 멀리뛰기. 어른들이 보기에는 유치한 경쟁일지는 모르지만 지금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라이벌로 여기는 녀석이 자신보다 20cm는 더 멀리 뛰지 않았는가. 아이는 발가락과 허벅지에 힘을 모으고 힘차게 점프했다.
느낌이 좋다. 착지하기도 전에 느낄 수 있었다. 저놈보다 충분히 멀리 뛰었다.
아이가 신기록을 세우며 바닥에 내려설 때, 아이의 몸이 땅속으로 쑥 꺼졌다. 학교 운동장의 단단한 지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마치 물속으로 뛰어든 듯, 운동장의 흙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닥을 디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바닥 속으로 빠졌다. 흙바닥, 모래바닥, 콘크리트바닥, 아스팔트바닥 가리지 않고 바닥에 닿아있는 사람들이 물에 빠지듯이 땅속으로 빠졌다. 길을 걷던 샐러리맨이, 월드컵 경기장을 뛰던 축구선수가, 침대에서 잠을 자던 신혼부부가, 비행기를 타고 가던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 갑자기 바닥이 없어진 듯이 아래로 쑥 꺼져서 사라지는 일이 수시로 발생했다. 바닥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렇게 바닥 속으로 빠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 아이가 사라진 운동장에는 아이를 찾기 위한 모든 노력이 동원되었다. 깊이 5,000m에 달하는 기록적인 구멍을 뚫어보기도 하고, 레이저탐지, 적외선탐지 등 현대 과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이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인터넷 논객이 이 심각한 현상을 ‘퐁당맨’이라고 장난스럽게 명명했다가 엄청난 사회적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오히려 이 비난이 크게 이슈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퐁당맨’이라는 말을 단어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후 등장한 ‘휴먼싱크’라는 공식적인 명명 대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현상을 ‘퐁당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모국가의 여성단체에서는 ‘퐁당맨’은 남성중심적인 명칭이므로 ‘퐁당우먼’이라는 명칭도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퐁당맨을 처음 말한 인터넷 논객보다 더 심한 욕을 먹었다.
퐁당맨은 전세계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가리지도 않았다. 건강한 사람과 환자도 가리지 않았다. 부자와 가난뱅이도 가리지 않았다. 사람이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했다. 강대국의 지도자와 거대기업의 대표들이 무중력 공간인 우주로 달아나버렸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 루머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사람은 중력이 없는 우주공간에서 오래 살 수 없다. 우주로 달아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또 다른 공포와 싸워야 한다.
※
“어제 밤, 우리 딸이 퐁당맨됐다.”
연구소 팀장의 스산한 목소리를 들은 나는 움찔했다.
“아니 어떻게……. 남편분이 그렇게 된지 이틀 밖에 안됐잖아요.”
“그러게 말이야. 애가 아빠를 따라 갔나봐. 지 아빠가 빠진 곳과 똑같은 곳에서 바닥으로 쑥 빠졌어. 내 눈앞에서.”
팀장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아마 진심으로 웃고 있는 것 일 거라 짐작된다. 이 팀장은 조금, 아니 상당히 미쳤으니까. IQ 240의 재원인 팀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그에 따른 업적을 쌓아왔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결과만을 내놓은 공전절후한 천재였다.
능력은 인정받지만 학계에서는 조금 백안시 되고 있다. 왜냐하면 연구의, 빠르고, 신속하고, 정확한 결과를 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나친 과감성 때문이다. 실험을 위해 무단으로 마약을 제조하거나, 핵물질을 추출하거나 해서 체포된 적이 부지기수였다. 확인된 적은 없지만, 팀장이 개발한 항암물질의 합성을 위해 인체실험을 했을 거라는 흉흉한 소문도 따라다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긴급상황에는 팀장의 능력이 꼭 필요했다. 지금 팀장은 ‘안티휴먼싱크’, 속칭 ‘퐁당맨팀’의 팀장으로 퐁당맨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방지책을 알아내려 주력하고 있다.
“남편 분 일도 안됐지만,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따님이 그렇게 되다니 상심이 크시겠어요.”
나는 진심으로 걱정했지만 팀장은 여전히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었다. 도대체 이 여자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는 거지? 나는 고생물학자이지만 팀장의 요청으로 퐁당맨팀에 들어왔다. 그리고 연구소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공룡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팀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전부다. 내 업무가 퐁당맨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천재만 이해 할 수 있는 이유가 있겠지?
“상심한다고 해봐야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나도 곧 바닥에 퐁당 빠져서 남편과 딸애를 보러 갈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뭐, 덕분에 퐁당맨이 어떤 현상인지 대충 알아냈으니까 다행이라고 할까.”
천재라는 종족은 언제나 이렇게 침착하고 논리적인 것일까? 아니 잠깐. 근데 뭐라고? 퐁당맨이 어떤 현상인지 알아냈다고?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팀장은 여전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그래. 퐁당맨의 원인을 알아냈어. 30분 후에 높으신 양반들 모아놓고 브리핑 할 거니까 자네도 궁금하면 참석해.”
나는 환호를 지르고 싶었지만 팀장이 만류했다.
“쉿! 조용히 해. 앞으로가 더 큰일이니까. 그러면 이따가 보자.”
멀어져가는 팀장의 뒷모습에는 생기가 넘쳤다. 아무리 인류의 고민을 해결한 상황이라 해도, 이틀만에 남편과 딸을 잃은 사람의 생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팀장의 말 중 한 단어가 계속 내 안에 맴돌아 마음을 불안하게 휘저었다.
‘덕분에…….’
덕분에 퐁당맨이 해결되었다고? 누구 덕분에?
마음을 휘젓는 불안함에 등떠밀려 나는 팀장의 집을 찾아갔다. 다행히 팀장의 집은 연구소로부터 걸어서 15분 거리이다. 서둘러 다녀오면 브리핑 시간 전에 돌아올 수 있다.
팀장 집의 현관은 잠겨 있지 않았다. 진짜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그따위 잡다한 생각들은 집안으로 들어선 순간 몽땅 사라졌다.
거실 한가운데 사람의 목이 놓여 있었다. 잘린 목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목이었다. 덩그러니 남은 그 목은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 앞에 놓인 희멀건 물건이 무엇인지 눈치 챈 순간 나는 신음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목 앞에 놓인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하반신이었다. 다만 상반신만 거실 바닥 속에 처박힌 꼴로 벌거벗은 하반신과 다리가 허공을 향해 휘적거리고 있었다. 젊은 여자 아니, 어린 여자 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되는 여자아이의 하반신이 간헐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앞에 놓인 목은 흉하게 벌어진 여자아이의 가랑이를 보며 울고 있었다. 나는 단박에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팀장의 남편과 딸인 것이다. 나의 비명소리를 들은 남편이 소리쳤다.
“보지마! 보지말고 여기서 꺼져! 아, 아니. 뭐라도 좋으니 내 딸에게 옷좀 입혀주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벌거벗은 여고생의 하반신에 헐렁한 운동복바지를 입혔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모습에 색정적인 감각은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딸의 적나라한 하반신이 가려지자 남편의 목은 겨우 다른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 입니까?”
“내 아내요. 그 머리 좋은 미X년이 제 가족을 이 꼴로 만들었단 말입니다.”
역시. 나의 불안감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습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아내는 퐁당맨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았다고 했소. 우리는 아내를 믿었고, 그래서 그 해결책이라는 주사를 의심없이 맞았지. 하지만 그 주사는 실패였소. 퐁당맨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퐁당맨의 효과를 느리게 나타나게 할 뿐이었지. 덕분에 나는 여기서 이틀이나 꼼짝못하고 천천히 바닥에 빠지는 중이요. 어젯밤 목욕 후에 거실로 나오던 내 딸도 바닥에 미끄러져 머리부터 넘어지더니 지금 저 꼴이요. 그런데 아내는 이 꼴을 보고도 우리 덕분에 퐁당맨의 원인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신이 나서 출근을 하는 게 아니요.”
“아니 왜? 퐁당맨의 원인을 알았다면 당장 가족부터 구해야지 왜…….”
“퐁당맨은 사람이 바닥으로 빠지는 현상이 아니오. 퐁당맨은 지구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 현상이란 말이오.”
“예? 그게 무슨……?”
“지구는 살아있소. 그리고 자기 자신을 계속 살아있게 하기위해 주기적으로 특정 생물체를 번성하게 하고 잡아먹는 일을 반복…… 크러럭!.”
남편의 말이 끊겼다. 살펴보니 어느새 아래턱과 혀까지 바닥 속으로 잠겨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연구소로 돌아와 있었다. 뛰어왔는지 걸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친 듯이, 팀장이 브리핑하는 회의실을 찾았다. 회의실 문을 열자 팀장은 아까 말한 높으신 양반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있었다.
“공룡이 멸망한 진짜 이유를 아시겠죠? 포기하세요. 인류는 멸망할 겁니다.”
팀장의 얼굴에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출처 | http://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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