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말뚝
나는 깡촌에서 농사를 짓는데,
농작물을 키울 때 문득 깨들은 게 있어서 우리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꽤 무서워서 써본다.
장문이 될 것 같아서, 장문이 싫은 사람은 그냥 지나가시길 바랍니다.
농작물에 비닐을 고정시킬 때 나무 말뚝을 사용할 때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나무 말뚝에는 모두 어떤 한자 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까지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근처 농가에서 사용하는 말뚝을 봤더니 그런 글자는 새겨져 있지 않았다.
우리 말뚝과 다른 집 말뚝을 구별하려고 쓴 건가 싶었는데
새겨진 글자는 우리 집 성도 아니고 별 관계가 없는 글자라 이상해서
할아버지께 왜 저 글자를 새기는 건지 여쭤보았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내 증조부)가 해주신 이야기인데,
자기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라서 실상은 모르겠다고 말하시더니
그 이유를 이야기해주셨다.
다이쇼 초기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전, 증조부가 젊은 시절 이야기이다.
사건의 발단은 증조부 마을에 사는 두 젊은이 (A, B)가
땔감을 구하려고 산에 들어간 것으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산에 들어가서 서로가 보이는 거리에서 땔감을 모았다.
정오 쯤 되어 A가 이제 슬슬 밥 먹을까하고 B에게 말을 걸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B가
"아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사람이 이토록 큰 소리를 지를 수 있나 생각될 정도로 절규했다.
갑작스러운 일에 A가 넋이 나가 있었는데
B는 폣속까지 뚫린 것처럼 절규하더니 풀썩 땅에 쓰러졌다.
A가 황급히 B에게 다가가보니 B는 흐릿한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했다.
몸을 흔들거나 뺨을 때려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그래서 A는 서둘러 B를 업고 산을 내려왔다.
그 후 하루가 지났지만 B는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산에 있는 신묘한 것에 홀린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인근에 있던 절에 데려가 액풀이를 하게 했다.
그럼에도 B의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난 쯤
오후의 조용하던 마을에 온 몸의 털이 쭈뼛 설 것 같은 절규가 울려퍼졌다.
"아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근방의 마을 사람들이 찾아가보니
지금까지 밭 일하던 모양새의 장년이 공허한 눈빛으로 오도카니 서 있었다.
달려온 사람들이 어깨를 잡고 흔들어보아도 반응이 없었다.
B와 같은 증상이었다.
그후 가족들이 병원에 데려가보아도, 기절 상태라는 것 외에는 알아내지 못 했고
인근의 절과 신사에 데려가 액풀이를 해봐도 변함 없었다.
미신을 믿는 노년층이 산의 신묘한 존재가 마을로 내려왔다며 떨었다.
시간이 지나자 증조부 마을 뿐 아니라 인근 마을들에서도
사람 목소리로 여겨지지 않는 절규가 퍼진 후, 기절 상태에 빠지는 자들이 발생했다.
게다가 발생 시간대도 다들 달라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점도 없는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증조부가 그 현상을 맞닥드린 건 바로 그때였다.
그날 증조부는 동생과 둘이서 밭일을 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이제 그만 돌아가려던 때,
자기가 갈고 있던 곳에 나무 말뚝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좀 전까지는 그런 게 없었고,
그것은 홀연히 눈 앞에 나타났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나무 말뚝이 이상해서 가만히 바라보던 증조부는 이윽고
"누구야!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한 게!"하고 약간 분노가 일어
"남의 밭에 이런 방해되는 걸 박다니..."
그런 생각을 하는 중
"방해돼 방해돼 방해방해방해방해방해방해방해방해방해방해방해"
당장이라도 말뚝을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으로 머릿속이 가득차서
그 충동대로 움직여 말뚝을 뽑으려고 한 그 순간,
동생이 어깨를 잡는 바람에 제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좀 전에 보이던 말뚝이 온데 간데 없었다.
동생에게 물었지만 그런 말뚝은 보지도 못 했다고 했다.
같이 돌아가려던 형(증조부)이 갑자기 아무 것도 없는 곳의 무언가를 응시하더니
무언가를 빼려는 동작으로 허리를 굽혀 힘을 주려길래
뭐하는 건가 싶어서 어깨를 잡았다고 한다.
그때 증조부는 현재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동이 떠올라서
행여나 동생이 말리지 않아서 말뚝을 뽑았더라면
자기도 다른 사람들처럼 미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간담이 서늘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증조부가 사는 마을에서 희생자 수가 10명을 넘어갈 때 쯤
촌장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소집되었다.
촌장은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언급하며,
이웃 마을과 협의하여 이상 현상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중임을 알렸다.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하며
그때까지의 이상현상에 대한 대책이라고 전해진 것은
"낯선 나무 말뚝을 보게 되어도 절대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증조부의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촌장은 덧붙여서
"농사일에 사용하는 말뚝은 자기가 박은 거란 걸 알 수 있도록
뭔가 표시가 될 만한 걸 새겨넣도록 하라"고 했다.
이유는 자기가 박은 말뚝 사이에 그 말뚝이 섞여 들어갔을 때
실수로 뽑을 수 있으니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설명을 듣고 지금 사태가 일어난 이유가 뭐냐 물은 자도 있었지만
촌장은 "사람의 원령, 동물 원령에 의한 현상과 같은 류라고 밖에 모르겠네.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넓으니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밖에 할 수 없어"라고 할 뿐이었다.
가령 피해를 당한 경우에는 구제될 수 있냐는 질문에는
"결코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네.
어느 신사에 액풀이를 하러 갔을 때 신관 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어.
-그들에게 액풀이할 만한 것이 씌이지 않았다-고 말이야"
라고 촌장이 대답했다.
신관 님 말씀에 따르면, 여우 같은 것에 홀린 게 아니라
지금의 일을 일으킨 무언가의 힘에 닿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정신이 무너진 결과로 이런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즉, 무언가의 영향에 의해 실신 상태가 된 게 아니라
무언가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실신 상태가 된 것이기 때문에
절이든 신사든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촌장은
"말뚝만 뽑지 않으면 무서울 일은 없네"라고 마무리 지으며
냉정히 대처할 것을 요구하고 해산했다.
마을 사람들이 나간 후, 증조부가 자기가 체험한 일도 있어서
촌장에게 가서 그 무언가에 대해 더 집요하게 질문했더니
"귀신이나 물건에서 발생한 집념, 사람이 기리는 신과 사람 사이에는
애매하지만 약속이라는 것이 존재하네.
상대의 영역에 멋대로 들어가지 않거나,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그런 것 말일세.
그들은 그것을 어긴 자에게는 천벌을 내리지만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는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지.
하지만 이번 사태를 일으킨 무언가에게는 그런 공식이 성립하지 않아.
듣자하니 그 무언가는 스스로 존재하는 대로, 존재함을 알리는 것 뿐으로도
사람을 제정신으로 있다간 버티지 못 하게 만들고
미칠 정도로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군.
나도 그 정도 밖에 듣지 못 했어.
저주를 하겠다거나 모시겠다는 생각도 안 가지는데도
존재 자체가 사람을 광기로 몰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인간이 필요 이상으로 알려 들지 않는 게 좋을 게야"
라고 하며 촌장은 가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 지나 증조부가 사는 마을에 신사가 세워졌다.
기이현상에 의한 희생자가 인근 마을을 포함해서 속출하고 있었지만
그 수가 점차 감소하여 신사가 완성될 쯤엔 전혀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무 말뚝은 무언가를 봉한 영적인 주문 같은 것이고
그걸 뽑음으로서 무언가의 힘이 일부 봉인 해제 되어
그에 닿은 사람이 미치는 결과를 불러일으킨 걸지도 모르겠다.
신사가 세워짐에 따라 그 무언가가 다시 강하게 봉인되어
기이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증조부가 할아버지께 말했다고 한다.
그런 경위로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나무 말뚝에는
우리 집 것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시를 지금까지도 새긴다고 한다.
인근에서 그런 건 못 봤다고 했더니
"인간이란 지나면 망각하는 존재라 지금은 거의 하는 집이 없긴 하지만
이 주변에서는 저기 어디냐 S 네 집이나 M 네 집에서도 아직 새기고 있으니 보고 오렴"
하고 할아버지께 말씀해주셨다.
정말 보러 가봤더니 S씨와 M씨 댁에서 사용하는 나무 말뚝에도
한자 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지금도 새기는 집은 대부분 희생자가 나온 집안이나
그 친척 집이겠지"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