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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20만 원 대의 스테레오 오디오에서 흘러간 가요가 울려 퍼진다. 30대 후반인 Y씨에게 최근 아이돌의 노래는 무슨 마법사의 주문처럼 들린다. 8~90년대. 컴퓨터로 목소리를 손댈 수도 없고, 편집기술도 용의하지 않아 가수의 노래를 한 번에 녹음 했어야 하는 그 시대. Y씨는 외모보다는 가창력이 존중받던 바로 그 시대를 풍미한 가요를 듣는 것을 즐긴다.
간혹 좀 더 성능 좋은 스테레오와 스피커에 욕심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하이퀄리티의 음질에 빠져, 주문제작한 고가의 진공관을 사들이느라 카드빚에 허덕이는 지인의 모습을 보면 그런 마음도 조심스럽다.
“크어어!”
지하창고에서 ‘그것’의 비명소리가 작게 새어나온다. 나름 방음처리를 했지만 역시 아마추어의 솜씨에는 한계가 있다.
Y씨는 수전노가 아니다. 좋은 스피커와 앰프의 악순환은 조금 겁내고 있지만 필요한 지출에는 대담한 편이다. 그래서 오늘은 건축업자를 집으로 불렀다. 상당한 지출을 각오해야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견고하고 완벽한 방음벽을 만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창고에서 들리는 작은 비명소리가 많이 거슬리지만 잠시만 참자. Y씨는 스테레오의 볼륨을 조금 올렸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작업이 조금 밀려서요.”
“아닙니다. 고작 15분 정도인데요. 많이 바쁘신가 보내요.”
“그렇지도 않아요. 이제는 그것을 벗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요. 작년이 딱 좋았는데. 사장님은 이제야 그것을 벗으셨나요? 고생 많으셨겠네요?”
“그러게요. 오래 입고 있어서 처분도 못하고 이렇게 보관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
“예. 그러죠.”
Y씨는 건축업자를 지하실 창고로 안내 했다.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악취와 함께 엄청난 비명소리가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악!”
창고 바닥 가운데 쇠사슬에 꽁꽁 묶인 그것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하지만 묶인 쇠사슬은 콘크리트 바닥에 고정되어 있어 그것의 몸짓은 간헐적인 꿈틀거림에 불과했다. 그러나 묶이지 않은 성대에서 뿜어나오는 비명소리는 지하실을 진동하게 할 정도였다.
“가아악! 쿠엑! 크아아악!”
건축업자는 비명소리에 질려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구. 이걸 이렇게 묶어 놓으셨네요. 다른 집에서는 보통 드럼통에 넣어서 시멘트로 굳혀놓는데.”
“아무리 저 꼴이 되었어도 어쨌든 내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함부로 다루고 싶지는 않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방음방은 지금 바로 설치하겠습니다.”
건축업자는 창고 한 구석에 빠르게 뼈대를 설치하고 벽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부품이 만들어진 조립식 방을 만드는 것이라, Y씨의 생각보디 빨리 설치가 끝났다. 방음처리가 된 작은 방의 설치가 끝나고 Y씨는 ‘그것’을 바닥에 고정한 사슬을 풀었다. 그것의 반항이 조금 더 거세졌지만 팔다리는 물론 온몸까지 꽁꽁 묶인 밧줄과 쇠사슬을 풀 수는 없었다. Y씨는 새로 설치된 방음처리 방으로 그것을 질질 끌고 들어가 다시 바닥에 고정 시켰다. 간혹 그것이 Y씨를 물어뜯으러 고개를 휘저었지만 미리 씌워둔 강철 입마개 때문에, 그 공격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Y씨는 그것이 튼튼하게 잘 고정이 되었는지 꼼꼼히 살펴본 후 방음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조용해 졌다. 돈을 쓴 보람이 있었다. Y씨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스테레오를 켰다. 그리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음악을 즐겼다.
처음 ‘그것’을 벗어버리는 현상을 사람들이 목격했을 때 그 반향은 무시무시했다. 초기에는 아직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것을 벗어버린 사람들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벗은 사람들은 입은 사람들에게 지독한 박해를 받았다. 저주받은 괴물로 취급되어 사랑하던 가족들에게 조차 버림받고, 린치를 당하고 살해당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벗고 싶다고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벗고 싶지 않다고 해서 계속 입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벗겨졌고, 최초의 현상이 등장하고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3년. 이제는 그것을 벗은 사람들이 절대 다수가 되었고 아직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가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정의가 되는 법이다. 이제 사람들은 아직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저열한 종으로 낙인찍고 박해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의 원인을 당시 태양의 기현상으로 꼽고 있다. 최초로 그것을 벗은 사람이 나타나기 전, 태양은 선명한 초록색의 가시광선을 뿜어댔다. 대혼란이 있었다. 세계최강대국의 연구소도, 그 어떤 천재과학자도 이 현상을 예측하기는커녕, 왜 태양의 색이 변했는지, 그리고 초록색태양이 세상에 무슨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했다. 모든 종교단체는 자신들이 주장하던 최후의 날이 도래했다고 주장했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자살과 폭동이 빗발쳤다. 지진도 해일도 화산폭발도 소행성의 충돌도 없었지만 금세 인간이 멸망하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의 대소란이 일주일동안 계속되었다. 초록색 태양이 나타나고 일주일 후, 돌연 초록색이 사라지고 태양은 원래 모습을 찾았다. 초록색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순간, 돌연 태양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안도했다. 혼란이 끝나고 다시 예전의 일상을 되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직후 사람들이 ‘그것’을 벗기 시작하면서 더욱 끔찍한 혼란이 찾아왔다.
상당수의 낭만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벗어버린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 반면 다른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혐오하여 빨리 살처분 하고 있다. 벗어버린 자신의 육체가 이성을 잃고 발광하는 모습을 본다면 연민 혹은 혐오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사람들이 헌 육체를 벗고 새 육체를 얻는 것이 정말로 초록색태양광선 때문이었는지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그 현상이 초록색태양광선이 사라진 직후 발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여기고 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사람의 몸에서 엑기스화 된 정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엑기스는 순식간에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낸다. 새로 만들어진 육체에 그 사람의 기억과 정신이 고스란히 옮겨간다. 남아있는 육체는 찌꺼기일 뿐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 어떤 규칙성조차 남아있지 않다. 어떤 그것은 벗겨지자마자 죽어버리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태양아래 흡혈귀처럼 타서 없어지기도 한다. 끊임없이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는 그것이 있는가 하면, 실이 끊긴 풍선처럼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것도 있다. 새로운 육체를 공격하는 골치 아픈 그것도 있다.
육체가 벗겨지는 것에 경악하던 사람들은 점차 새 육체에 익숙해 졌고, 새 육체의 놀라운 기능에 다시 한번 경악했다. 약간의 물과 광합성만으로 유지가 가능한 놀라운 효율성, 평균 8.0의 시력, 지상과 수중 어느 곳에서나 호흡이 가능한 것은 물론 최고 30분 간 숨을 멈출 수 있는 호흡기관, 라이플 탄환으로도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진공상태에서도 버틸 수 있는 내구력, 300년 이상의 기대수명, 200이상의 아이큐를 지니는 뇌구조. 보이지 않는 곳의 움직임은 물론 타인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는 발달된 육감. 인간들의 환골탈태가 시작되고 고작 3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류는 역사상 다시 없는 번영을 이루고 있었다.
Y씨는 최근에서야 겨우 벗을 수 있었다. 그것을 아직 입고 있던 Y씨는 미개한 원시인 이었다. 이 3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Y씨의 아내 역시 아직 입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Y씨가 그것을 벗고 5일이 지나고, Y씨는 새 육체의 초감각으로 아내의 초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를 지탱하던 둘 중 하나는 진화해 버렸고, 아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전락했다.
“그렇지 않아. 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해.”
“아니에요.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이제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내 남편은 당신이 아니에요. 내 남편은 지금 지하실 바닥에서 뒹굴고 있다고요.”
“그래서 그걸 보관하자고 우긴 거야? 내가 아니라 그 찌꺼기와 함께 살고 싶어서? 제기랄 그걸 당장 없애버리겠어.”
“안 돼!”
사실 새육체를 얻은 Y씨의 초감각은 아내의 감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당당히 없애버릴 핑계를 만들기 위해 아내의 화를 일부러 돋운 것이다. 새육체를 얻기 전에는 몰랐다. 오히려 새육체가 혐오스럽기 까지 했다. 그러나 새육체를 얻고 고작 5일. Y씨는 벗어버린 그것에 대한 혐오가 수백 배는 더 커진 것을 느꼈다. Y씨는 벗은 사람들이 아직 벗지 못한 사람들을 왜 그렇게 박해하는지 이해했다. 아직 벗지 못한 아내의 언행은 이미 벗은 Y씨에게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이었다. 그 저열한 행동과 이성에 Y씨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고작 5일 만에.
전 인류에게서부터 쏟아지던 차가운 경멸을 함께 이겨내던 아내가 고작 5일 만에 환멸스러워 진 것이다.
저열한 인류답게 아내는 간단한 도발에 넘어왔고, 이제 Y씨는 당당히 화를 내며 자신의 그것을 처분할 핑계를 얻었다. 지하창고로 향하는 Y씨에게 아내가 달려들었지만, 아내가 10명이 달려든다고 해도 Y씨의 힘을 막을 수는 없다.
Y씨의 그것은 특이하게도 본체를 공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혐오의 대상이다. Y씨는 저항하는 아내를 손쉽게 제압하고, 지하실의 그것의 모습을 간단하게 뭉개버렸다.
“살인자!”
아내는 너무나도 쉽게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남편의 옛 육체를 보며 오열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내의 몸에서 정기로 이루어진 엑기스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Y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가 그것을 벗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엑기스는 순식간에 형체를 이루어 아내의 새육체가 되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전처럼, 아니 전보다 더 완벽한 커플이 되는 거야.’
감격에 빠진 Y씨에게 새육체를 얻은 아내와 아내가 벗어버린 그것이 동시에 말했다.
“여보.”
이럴 수가! 가장 골치 아픈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사례는 단 한 건 뿐이었다. 벗어버린 그것에 본채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여보.”
아내와 그것이 또 동시에 입을 열었다. Y씨는 높은 지능으로 얻은 냉철한 이성으로 행동했다. Y씨는 네 번째 왼팔로 충격받은 아내를 부축하고, 머리에 돋아난 여섯 개의 촉수로 아내의 그것을 붙잡아 찢어버렸다. 이제 막 그것을 벗은 아내는 아직 여덟 개의 다리를 다루는 것이 부자연스러운가 보다. 하지만 곧 익숙해 질 것이다.
출처 | http://www.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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